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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나 없는 방에서 텅 빈 냉장고를 보고 슬퍼하지 않도록

등록 2019-01-26 09:41수정 2019-01-26 09:51

[토요판] 이런 홀로!?

홀로 맞은 죽음의 ‘디테일’이
누군가를 슬프게 할까 봐
냉장고 정돈하는 습관 생겨

혹시나 무슨 일이 생겨 내가 없어진 집을 상상해본다. 가족들이 내 냉장고를 열어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냉장고 안에 묵고 상한 것이 숨어 있지 않은지 살피고 정돈하는 이유는 나를 걱정할 사람들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혹시나 무슨 일이 생겨 내가 없어진 집을 상상해본다. 가족들이 내 냉장고를 열어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냉장고 안에 묵고 상한 것이 숨어 있지 않은지 살피고 정돈하는 이유는 나를 걱정할 사람들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주에 있었던 일이다. 출근해서 따끈한 커피를 한잔 따라 마시는데 본가에서 전화가 왔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복도로 나가 전화를 받았을 때 엄마는 벌써 울먹거리는 목소리였다.

“얘, 언니가… 아휴, 어떡해.”

우리 엄마나 볼 법한, 주말 연속극에서나 볼 법한 ‘질병·사고·불행의 클리셰’가 단번에 귓가로 날아들었다.

“인기척이 없어요, 어떡하죠?”

사건은 지난밤 언니한테서 몸이 안 좋다는 메시지가 온 것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그 뒤로 부모님이 여러번 전화를 걸었지만 아침까지도 언니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실, 거기까지 들었을 때 이미 ‘각’은 딱 나와 있었다. 이 인간 또 야근하고 곯아떨어졌군. 같이 살던 시절, 언니는 한달에 한두번은 꼭 아팠다. 감기나 배탈이 아니라 야근이 많은 영업 일을 하느라 잠이 모자라서 오는 몸살이었다. 그럴 땐 집에 오자마자 웃옷만 벗어던지고 한나절씩 뻗은 채로 잠을 몰아서 자고 나면 나았다. 자는 동안엔 집이 무너져야 겨우 눈을 뜰까 말까 했다. 그러니 가방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처박혀 있을 휴대폰 진동 정도로는 잠을 깰 리가 만무했다.

더 들어야 ‘안 봐도 비디오’다 싶어 심드렁하게 전화를 끊으려는데 엄마가 다급하게 외쳤다.

“언니 회사에도 물어봤는데 아직 출근을 안 했대….”

순간 머릿속에 두가지 생각이 스쳤다. 첫째, ‘엄마도 참, 언니가 중학생도 아니고 대뜸 회사에다 전화를 하면 어떡해!’ 둘째, ‘아니, 아무리 아파도 회사는 기어서라도 갔을 사람인데?’ 문득 시계를 보니 오전 9시30분이 넘은 시각이었다. 결근 얘기가 제법 먹혔다고 느끼셨던지 엄마는 다시 울음기를 섞어가며 나를 몰아치기 시작했다. 새벽에 꿈자리가 사나웠다는 둥, 언니가 요 며칠 늦도록 야근을 했다는 둥, 요새는 젊은 사람들도 뇌출혈이니 심장마비니….

‘알겠다, 일단 가보겠다’고 짧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일단 114를 통해 언니가 사는 오피스텔 관리사무소로 전화를 걸었다. 당장 사무실에서 나가 택시를 잡아타도, 우리 회사에서 언니 집까지는 40분 정도가 걸린다. 그렇다면 일단 의식이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게 우선일 것이라 생각했다. 직원분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송구스럽지만 천몇백몇호 초인종을 좀 눌러봐주십사’ 하는 부탁 전화를 드렸다. 그리고 바로 사무실로 돌아와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속으론 보나 마나라고 생각하면서도 한구석의 찜찜함을 떨치지 못하는 내 마음이 낯설었다. 일단은 언니도 나도 30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저녁나절 앓는 소릴 하다가도 아침이면 멀쩡히 칼출근을 하던 그 ‘안 봐도 비디오’는 우리가 20대 때의 것이다. 30대가 되면서 서로 회사 근처로 집을 갈라 나온 뒤론, 나 역시 30대의 언니는 어떻게 아프고 어떻게 낫는지 잘 몰랐다. 내가 의지하고 있는 이 오래된 기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이라면? 잠시 자릴 비운 상사를 기다리는 이 1~2분이 알고 보면 ‘골든타임’이면 어떻게 하나? 잠시 사이 나까지 부모님처럼 걷잡을 수 없는 불안에 빠져들려는 때, 관리사무소에서 ‘몇번이나 벨을 눌러도 인기척이 없다’는 회신이 왔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집에 일이 생겨 좀 나갔다 오겠다는 양해를 구하고, 급하게 점퍼를 집어 들고 사무실 밖으로 뛰어나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119에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 정말 그 순간에 전화가 울렸다. 엄마였다. ‘언니가 이제 일어났대, 얘.’ 엄마의 말소리에서 이미 울음기는 싹 가시고 없었다. 아까 초인종 소리를 듣고 언니가 잠에서 깬 모양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도로 닫히고, 나는 허탈하게 다시 복도를 걸어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식은 커피를 들이키며 놀란 가슴을 다독이는데 뒤에서 상사가 토끼눈을 하고 말을 걸었다.

“○○씨, 아까 집에 일 생겼다고 가봐야 한다고 안 했어?”

“아, 일이 갑자기 없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냐, 무사만한 다행이 없지. 다행이네.”

그렇다. 갑작스러운 사건은 도로 없는 것이 되었다. 잘 해결된, 다행스러운, 조금 우스운 얘기로 끝났다. 이날 언니는 연가를 쓰고 회사를 쉬었고, 폐를 끼친 관리사무소에 음료수를 돌렸다. 한동안 부모님의 안부 전화와 카카오톡 메시지가 갑자기 유난스레 늘었다가 도로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인기척이 없어요, 어떡하죠?’ 하는 말을 들었을 때의 서늘한 느낌은 며칠이 지나도 잘 잊히지 않았다.

들을 사람 없지만 “다녀오겠습니다”

예전에 오래 키운 강아지가 떨치기 힘든 병을 앓았을 때 나는 매일 밤 잠들기 전에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르신, 아무 눈치 보지 말고 힘들면 아무 때나 가도 돼. 근데 나 없을 때 가고 싶으면 딱 반나절만 기다렸다 가.” 병원에서 시한부라고 한 한달 동안, 강아지는 매일 몇시간씩 병원에서 수액을 맞았다. 그러느라 점심시간마다 집에 들러 강아지를 입원시키고 회사로 복귀했다가, 퇴근길에 강아지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었다. 반나절만, 반나절만 기다려주라. 점심 때까지만, 저녁 때까지만, 아침에 내가 일어날 때까지만. 이미 늙어서 귀도 들리지 않는 노견에게 그런 생떼를 부릴 만큼 나는 어리석고 겁이 많았다.

강아지는 정말 내가 아직 출근하지 않은 아침에 숨을 거두었다. 화장하고 난 강아지의 유골은 고향집 화단에 묻혀 선인장을 무럭무럭 키워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을 마주할 용기를 손가락 한 마디만큼도 키우지 못했다. 지난주의 해프닝을 겪으며 그걸 새삼 깨달았다.

두려운 것은 또 하나 있다. 내가 혼자 살았다는 것만으로, 언젠가 내가 맞은 죽음의 ‘디테일’이 누군가를 슬프게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여행을 가거나 출장을 갈 때 일찌감치 짐을 챙겨놓고 나서 하는 일은 청소다. 방바닥을 쓸고 닦고, 욕실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줍고 하면서도, 한번 더 살피게 되는 것이 있다. 냉장고다.

이건 몇해 전 드라마 <도깨비>를 열심히 챙겨 보고 생긴 습관이다. 여주인공에게 구질구질 달라붙던 귀신들 가운데 내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고시원에서 죽은 수험생 귀신이었다. 엄마가 고시원 방에 와서 텅 빈 냉장고를 열어보고 슬퍼하지 않도록 냉장고를 채워달라는 부탁. 아, 그렇구나. 평소 내가 먹고 사는 것이 온통 다 그 직사각형 기계에 들어 있었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겨 내가 없어진 집을 상상해본다. 가족들이 내 냉장고를 열어보는 순간, 냉장 칸 제일 안쪽에 있는 병맥주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거기가 제일 시원한 자리라 거기 뒀을 뿐인 내 꿀 같은 휴식의 상징이, 술을 전혀 못하시는 부모님 눈에는 말 못 하고 꽁꽁 숨긴 시름처럼 보이지 않을까? 생라면과 다이어터의 양심, 두마리 토끼를 쫓느라 반만 부숴 먹고 밀봉해놓은 안성탕면은 어떤가? 라면 하나도 양껏 못 먹는 서러운 배곯음으로 해석되면 어쩌나. 그런 생각을 하며 냉장고 안에 묵고 상한 것이 숨어 있지 않은지 뒤적뒤적 살필 때면, 나를 걱정할 사람들에 대한 걱정에 슬며시 속이 춥다.

불조심, 물조심, 차조심, 커오면서 부모님께 지겹게 들었던 이야기들의 무게를 점점 깨닫게 된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사람을 만나러 외출할 때마다, 집을 나서기 전에 습관적으로 방안을 돌아본다. 그러고서 들을 사람 없는 ‘다녀오겠습니다’를 외치는 까닭은 정말로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이 집으로 돌아와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대보름 부럼다람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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