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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1919 한겨레] 조선인들 충격과 통곡… 독립진영 기민한 움직임

등록 2019-01-23 16:16수정 2019-01-24 17:39

기미년통신 개시 ③ 왕의 죽음
무력한 황제에 등돌린 민심 의외
기생과 유생들 덕수궁 앞 오열
총독부, 소요 발생 감시 지령
1919년 3월3일 앨버트 테일러가 찍은 고종장례 행렬 모습. 서울역사박물관.
1919년 3월3일 앨버트 테일러가 찍은 고종장례 행렬 모습. 서울역사박물관.

<편집자주>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역사적인 해를 맞아 <한겨레>는 독자 여러분을 100년 전인 기미년(1919)의 오늘로 초대하려 합니다. 살아숨쉬는 독립운동가, 우리를 닮은 장삼이사들을 함께 만나고 오늘의 역사를 닮은 어제의 역사를 함께 써나가려 합니다. <한겨레>와 함께 기미년 1919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준비, 되셨습니까?

1919년 1월22일 경성/엄지원 기자】 광무황제(고종)의 돌연한 훙거 소식에 조선반도는 어찌할 바 모르는 비통함과 황망함에 빠졌다. 경술년(1910) 국망 뒤 나라를 일제에 내어준 무력한 황제를 향한 민심이 숫제 등을 돌렸음을 돌이켜보면, 훙거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덕수궁 대한문 앞에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는 민중들의 곡소리는 다소 뜻밖의 일이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상복을 차려입은 기생 수백명이 무릎을 꿇은 채 곡을 하는 기이한 광경에 대한문 앞을 지나던 일본인들은 아연한 표정이었다. 광교·한남·대정 등 경성의 기생 권번(일제강점기 기생조합의 일본식 명칭)이 총출동하였다고 전해졌다. 기생들은 앞서 21일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가 광무황제의 병환이 중하다는 호외를 경성시내에 배포한 뒤부터 “우리가 천기일 망정 오늘 이때를 당하여 여전히 불경한 태도로 요리점에 가서 장구 치고 노래하는 난잡한 행동은 일절 못 하겠다” 하며 근신하였다. 수원 기생들도 성복일(상을 당한 지 나흘째의 절차)에는 상경하여 대한문 앞에서 망곡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기생들만이 아니다. 황제의 중병 소식에 경성시민들 일부는 오밤중에도 덕수궁 앞에 나와 서성이며 그의 건강을 기도하였다. 극장에선 “안연히 연극을 흥행할 수 없다” 하고 휴연을 발표하였고, 훙거 뒤엔 종로의 상점가들도 가게를 거두고 애도하는 뜻을 표하였다. 더욱이 훙거 직후부터 황제의 죽음을 둘러싸고 자결설, 독살설 등의 소문과 억측이 나돌면서 민중의 감정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있다.

국망 이후 9년 동안 무기력하다 못해 무감각해 보였던 조선 민중의 어디에 이토록 뜨거운 감정이 숨어 있었던 것인가. 조선인들 스스로도 놀랍다는 반응이다. 기독교청년회(YMCA) 총무 윤치호(54)씨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수천명의 조문객들이 깊은 슬픔에 잠겨 몸을 가누지 못하고 엎드린 채 통곡하는 놀라운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고 전했다. 윤씨는 “광무황제의 통치가 어리석음과 실수로 점철된 오랜 통치였다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광무황제의 승하가 조선의 자결권이 끝내 소멸되었음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이토록 울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한때 개화운동을 통해 황제와 가까이 지내고, 독립운동에도 열성으로 나섰으나 모두 수포로 돌아간 뒤 거의 칩거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 인물이다.

생전 고종의 모습. 그는 153㎝의 키에 70㎏ 정도의 비만 체질이었다. 한겨레 자료
생전 고종의 모습. 그는 153㎝의 키에 70㎏ 정도의 비만 체질이었다. 한겨레 자료
황제의 죽음으로 특히 복잡한 심기를 나타내는 이들은 유생들이다. 경성의 노인들은 상복을 차려입고 국치 뒤 9년간 쌓인 울분과 수치심을 드러내고 있다. 유예된 ‘망국’의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된 모양이다. 황제의 훙거를 통해 비로소 500년 종묘사직이 끊긴 것을 절감하게 된 듯하다. 일부 유생들에게서는 자결을 각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나라가 없으나 임금은 있어 복국될까 기다렸더니 시방은 상황 돌아감이 쓸데없으니 어찌 살겠냐”는 것이다. 그런 한편 일부 유생들은 ‘이태왕(고종)은 대한제국을 멸망시킨 사직의 죄인’이라며 상복 입기를 거부하는 등 유생들 사이에서도 황제의 훙거는 간단치 않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나라 안팎의 독립운동 진영에 이번 일은 ‘기회’일 수밖에 없다. 민중의 감정이 격앙된데다, 다수가 모일 구실이 명백하다. 평범한 유학생조차 “이태왕 서거로 인하여 민중이 회집하여 혁명을 하는 데 절호의 기회”(명치대 학생 양주흡)라고 말하며 흥분할 정도다.

때마침 18일 파리강화회의 개막으로 세계 각지 독립운동 세력이 움직이는 때다. 근자에 상해와 상항(샌프란시스코), 연해주 등지에서 파리강화회의에 우리 대표를 파견하려는 움직임은 이미 본사에서 보도했거니와, 국내에서도 심상치 않은 동향들이 전해진다. 천도교 쪽의 권동진(58)·오세창(55)·최린(41)씨 등이 지난 연말부터 자주 회합하여 독립운동의 방략을 논했다는 소식이다. 동경에서 독립선언을 준비 중인 유학생들은 국내에 사람을 보내어 정보를 공유할 계획이라고 하고, 여운형(33)씨를 중심으로 한 상해의 신한청년당원들도 파리강화회의 대표자로서 김규식(38)씨를 불란서(프랑스) 파리행 선박에 태울 준비를 거의 마쳤다고 한다.

심상치 않은 기류는 미미하나마 조선총독부에도 감지되고 있다. “민족자결(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공명하는 사상과, 이태왕 승하의 원인에 대한 (독살설 등) 망설에 현혹되어 원망하는 마음이 상하의 구별 없이 그들의 가슴속에 충만하여 일종의 요운(불길한 징조)이 경성 전시에 가득 차, 누구의 말이랄 것도 없이 국장의 전후에 무슨 일이나 사변이 발발하지 않을까 하는 말이 퍼져, 민심이 매우 평온하지 않은 상태에 있었다”는 게 경기도 도장관의 보고다. 평안북도 도장관도 “훙거의 보가 전해지자, 이 급격한 불의의 사건을 애도 비탄하는 소리보다는 오히려 경악괴아(놀라고 이상하게 여김)하는 부르짖음이 높다”고 보고했다. 윤치호씨는 “일본 당국이 조선인들이 광무황제에게 보이는 충성심에 놀랐고, 전국적으로 각 지방 관리들에게 소요가 일어날 조짐이 있는지 잘 감시하라는 비밀지령을 내렸다고 한다”고 전했다.

윤치호는 당시 상황을 “수천명의 조문객들이 깊은 슬픔에 잠겨 몸을 가누지 못하고 엎드린 채 통곡하고 있다”고 적었다. 한겨레 자료
윤치호는 당시 상황을 “수천명의 조문객들이 깊은 슬픔에 잠겨 몸을 가누지 못하고 엎드린 채 통곡하고 있다”고 적었다. 한겨레 자료

△참고문헌

김상태 옮김, <윤치호 일기>(역사비평사·2001)

조선소요사건 상황, <독립운동사자료집6>(국가보훈처)

서동일, ‘김황의 일기에 나타난 유림의 3·1운동 경험과 독립운동 이해’(한국독립운동사연구·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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