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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회계전문가들 “법원, ‘스모킹 건’ 눈감고 삼바 손해만 강조” 직격 비판

등록 2019-01-22 18:27수정 2019-01-23 09:31

삼성바이오 ‘제재 효력 정지’ 법원 결정 논란
교수 등 전문가 소견 근거 내세워…“직접 판단 회피”비판
법조계 “신청인 쪽 의견 받아들이는 통상적 판단” 시각도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 겸 증선위원장이 12월14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고의적으로 4조5천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발표를 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신소영 기자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 겸 증선위원장이 12월14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고의적으로 4조5천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발표를 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신소영 기자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가 ‘회계 사기’를 이유로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에 부과한 제재 효력을 법원이 일단 정지시키면서, 법원의 ‘재벌 봐주기’가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법원이 이날 결정문에 “기업 이미지 타격” “분식회계 낙인” 등 삼성바이오 쪽 의견을 그대로 담았기 때문이다. 회계전문가들은 고의적인 회계 조작을 입증할 ‘스모킹 건’인 삼성바이오 내부문건(<한겨레> 2018년 11월1일치 등) 등에 대한 판단 없이 “회복할 수 없는 삼성 쪽 손해”만을 지나치게 강조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법조계에선 “조금이라도 다툴 여지가 있다면 일단 신청인 쪽 의견을 받아들이는 법원의 통상적 판단”이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도 있다.

회계처리 적정 여부
이날 법원의 판단 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2012~2014년 삼성바이오 회계처리가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부분이다. 앞서 증선위는 이 시기 삼성바이오가 고의로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했고, 이를 기반으로 2015년에 무려 4조5천억원이 부풀려진 분식회계가 가능했다고 판단했다. 2015년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에 핵심 지렛대 구실을 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이뤄진 시기다. 삼성바이오는 제일모직 자회사였다.

하지만 법원은 이날 결정을 내리며 “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조차 당초 삼성바이오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취지로 답변했다가 이후 위법하다고 통보한 점, 서울대 회계학연구센터 소속 교수들과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등 다수의 회계 전문가들도 삼성바이오의 회계처리가 국제 기준에 부합한다는 취지의 소견을 제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모두 삼성바이오 쪽이 금융감독원 재감리와 증선위 심사 과정에서 강력하게 주장했던 내용들이다.

회계사인 노종화 변호사는 “교수 등 전문가 소견을 근거로 든 것은 법원이 이 사안에 대해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직접 판단을 하지 않고 가장 안전하고 편한 판단을 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김경율 회계사도 “법원이 독자적 판단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꼬집었다. 특히 김 회계사는 ‘금융감독원의 판단 번복’이라는 삼성 쪽 주장을 법원이 인용한 부분을 강하게 비판했다. 과거 관련 정보가 없던 시절 참여연대가 보낸 간략한 1차 질의서에 금융감독원이 형식적으로 답변한 것을 두고, 삼성은 “금융감독원도 분식회계가 아니라고 판단했었다”고 주장해 왔다. 삼성 쪽 논리가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법원이 집행정지 인용 근거로 든 서울대 회계학연구센터 등의 소견서 역시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삼성바이오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교수 등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금융감독원에 제출하도록 했다는 사실(<한겨레> 2018년 5월11일치)이 드러난 바 있다. 법원은 이에 대해서도 별다른 판단을 하지 않고 그대로 인용했다.

재무제표 미수정으로 인한 손해는?
법원은 “증선위 결정에 따라 삼성바이오가 재무제표를 수정하게 될 경우 기존 재무제표를 신뢰해 삼성바이오에 투자한 주주와 채권자, 고객이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투자를 회수하는 등 삼성 쪽은 규모를 가늠하기 쉽지 않을 정도의 막대한 금전적 손해를 입을 위험에 노출된다”고 했다. 이를 근거로 “증선위 결정의 효력을 정지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무제표를 섣불리 고쳤다가 나중에 본안 재판에서 분식회계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올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삼성바이오의 고의적 분식회계를 주장해 온 쪽은 “오히려 뒤늦은 시정이 기존 투자자는 물론 신규 투자자의 손해로 이어지는 공익적 측면을 법원이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홍순탁 회계사는 “법원은 재무제표를 수정해 공시하면 그 피해가 크다고 판단했는데, 반대로 수정하지 않은 재무제표를 믿고 투자한 이들의 피해도 상당할 것이다. 이로 인한 잘못된 투자 결정 등을 법원이 너무 가볍게 본 것 같다”고 지적했다. 분식회계가 아닐 경우의 ‘공익’만 따졌다는 것이다.

특히 법원은 △이미 기존 재무제표 수정 가능성이 언론을 통해 공지됐으며 △효력 정지는 본안 판결 전까지 잠정적 정지에 불과한 점 △따라서 법원이 효력을 정지한다고 해서 기존 투자자나 미래 투자자가 손해를 입을 염려가 적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법원 스스로 ‘삼성바이오 및 8만여 소액 주주의 손해 발생’을 가처분 인용의 핵심 근거로 든 대목과 모순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19일 집행정치 신청 심문기일을 열었다. 당시 삼성바이오 쪽은 증선위가 고의 분식회계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고의 분식회계 의혹으로 폐업 위기까지 내몰렸다. 기업 이미지에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본안 소송에서 다툴 기회도 없이 분식회계 낙인이 찍혀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증선위 쪽은 “삼성바이오의 불이익은 기업 이미지 손상에 불과하지만, 기존 투자자는 물론 신규 투자자의 피해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며 즉각적인 제재가 필요하다고 맞섰다.

김남일 고한솔 최우리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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