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판 한겨레신문] 여운형, 윌슨 미국 대통령 측근과 접촉
신한청년당 동지들과 두문불출…사흘간 청원 작성
신한청년당 동지들과 두문불출…사흘간 청원 작성
<편집자주>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역사적인 해를 맞아 <한겨레>는 독자 여러분을 100년 전인 기미년(1919)의 오늘로 초대하려 합니다. 살아숨쉬는 독립운동가, 우리를 닮은 장삼이사들을 함께 만나고 오늘의 역사를 닮은 어제의 역사를 함께 써나가려 합니다. <한겨레>와 함께 기미년 1919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준비, 되셨습니까?
[1919년 1월1일 경성/엄지원 기자] 경술년(1910) 강제병합 이후 나라 밖에서 독립운동을 꾸준히 도모한 김규식(38)씨가 이달부터 불란서(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강화회의에 참석해 세계만방에 조선 독립의 정당함을 호소키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파리강화회의는 최근 종전된 세계대전 결과에 따라 패전국들의 배상문제를 논의하려는 국제회의인데, 이 자리에선 식민지 독립 문제도 다루어질 예정이어서 약소국 민중들의 큰 기대를 받는다. 이번 일은 지난해 11월 중국 상해에서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측근을 직접 만난 여운형(33)씨 등이 배후에서 적극 추진했다는 소식이다. 미주의 한인 독립운동가들도 이승만(44)씨 등을 강화회의 대표로 선정하며 조선 반도 안팎의 기대를 모았으나, 이는 여권 발급 문제 따위로 지지부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운형씨를 비롯한 상해 독립운동가들의 설명을 모아보면, 여씨는 지난해 11월27일 상해 소재 칼턴카페에서 열린 윌슨 대통령 측근 찰스 크레인씨의 방중 환영행사에 한국인으로선 유일하게 참석했다. 윌슨 대통령의 외교 임무를 받아 극동 지역을 순회중인 크레인씨는 이날 행사에서 “윌슨 대통령이 무력이 아닌 정의와 보편적 상호 이해에 기초한 세계공화국을 건설하려 한다”는 취지의 연설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월 윌슨 대통령이 미국 의회에 밝힌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각 민족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서 운명을 결정하고 타 민족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그의 선언은 우리 조선 민족뿐 아니라 식민통치에 신음하는 전 세계 약소민족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세계만방에 독립의 지당함 타전하러 갈 준비된 특사
평소 어학의 천재라 불려…동경외대 교수직도 거절
환영연에서 크레인씨 연설을 듣고 크게 감동한 여씨가 그에게 “우리들도 피압박 민족이니 모쪼록 이번 기회에 그 해방을 도모하고자 한다”는 뜻을 전하면서 파리강화회의행이 급물살을 타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씨는 “(크레인씨에게) 대표 파견은 문제없는가 하고 물었더니 그는 ‘문제없으며 이에 대해서는 나 자신도 충분히 원조할 수 있으니 모쪼록 대표를 파견하라’는 말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에 여씨가 상해에 체류하던 일본 유학생 출신 장덕수(25)씨 등 젊은 독립운동 동지들과 사흘간 두문불출하며 윌슨 대통령 등에게 보낼 조선독립청원서를 작성했다는 후문이다.
여씨 등이 중국 천진에 머물던 김규식씨를 굳이 상해로 불러 강화회의 파견 대표로 추대한 것은 그가 조선 독립에 대한 뜻이 굳건한 것은 물론, 미국 동부 로어노크대와 프린스턴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중국에서 상사원으로 근무해 뛰어난 외국어 실력을 갖췄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 반도 안팎에서 ‘어학의 천재’로 통하는 김씨는 미국 유학 뒤 동경외국어대 영어 교수 자리를 제안받기도 했지만 이를 뿌리치고 중국 망명길에 오른 인물이다. 알 만한 이들은 망국 뒤 변함없는 김씨의 꾸준한 독립운동 경험을 들어 “김씨야말로 준비된 특사”라고 전해 왔다.
본사는 지난달 10일 김씨가 미국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이끄는 박용만(37)씨에게 보낸 편지를 입수했는데, 이 편지에는 특히 파리행을 앞둔 김씨의 구체적이고도 결연한 의지와 몇가지 염려가 드러나 있다. 편지에서 김씨는 “나는 다음달 무렵 이곳을 떠나 유럽으로 가려고 매우 노력하고 있다”며 “우리는 귀하가 구라파(유럽)에서 합류하길 바라며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 민족을 위해 공보국을 개설하고 운영하는 데 조력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최소한 1년간 파리에 체류할 예정”이라는 뜻도 밝혔다. 다만 그는 “유일한 문제는 재정 문제”이고 “우리가 (재정 확보에) 성공한다면 우리 출발일을 귀하에게 전보로 알리겠다”고 단서를 달았다. 이와 관련해선 장덕수씨가 비밀리에 독립운동 자금을 뒷받침하는 부산 백산상회를 찾아 안희제(34)씨로부터 2천엔을, 김철(33)씨가 국내의 천도교 쪽으로부터 3만엔을 지원받는 등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다는 소식이다. 세계대전이 종료돼 자유를 빼앗겼던 세계 각국의 독립 움직임이 활발한 이때에, 파리로 향하는 김씨 등이 독립을 향한 조선인의 염원을 전 세계에 타전할 수 있을지 기대하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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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식(38)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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