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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 한겨레] “민족자결주의는 당위 명제니 우리의 충정을 모아야 않겠소”

등록 2019-01-01 07:38수정 2019-01-01 09:13

독립운동 소식 | 각 지역 우국지사들 서신, 본사 도착
<편집자주>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역사적인 해를 맞아 <한겨레>는 독자 여러분을 100년 전인 기미년(1919)의 오늘로 초대하려 합니다. 살아숨쉬는 독립운동가, 우리를 닮은 장삼이사들을 함께 만나고 오늘의 역사를 닮은 어제의 역사를 함께 써나가려 합니다. <한겨레>와 함께 기미년 1919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준비, 되셨습니까?

파리강화회의 개최 소식에 흥분하는 것은 중국 상해 동포들만이 아니다.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독립의 실력을 키우고 있는 우국지사들이 암중모색의 준비 상황을 국내 독자들에게 알리는 서신을 보내왔다. 본사에 도착한 서신들 일부를 실어 나라 안팎의 독립운동 소식을 전하니, 독자 여러분은 읽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시라.

최린(41) 보성고보 교장.
최린(41) 보성고보 교장.

◇국내(경성)=요사이 경성의 천도교 간부들 움직임이 심상치 않소. 천도교 쪽인 보성고등보통학교의 최린(41) 교장이나 오세창(55)·권동진(58) 선생이 민족문제를 논의한다며 자주 만난다는 소식이오. 일제에는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들 보고 있소.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말하는 민족자결주의의 새로운 기회를 우리도 이용해보자는 목소리들이 국내에서도 커지고 있다오. 천도교는 이미 지난해 중앙총부 청사 건축을 명목으로 교도들로부터 건축특성금도 모아온 터요. 논밭과 황소를 가진 이들은 가진 것을 팔고,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은 짚신을 삼고 삯바느질을 하여 모아낸 성금이 100만원의 거액이라고 하더이다. 조선 민중의 열정이 그와 같소. 그러나 천도교는 독자 행동에 나서기보다 다른 세력들과 연합을 노리고 있는 모양이오. 3년 전인 을묘년(1915)에 이미 천도교에서 시국선언을 하려다 일제에 발각되어 수포로 돌아간 일(천도구국단 사건)이 있지 않소? 듣자 하니 기독교 쪽에선 신해년(1911)에 데라우치 총독 암살미수 사건으로 이미 옥고를 치른 이승훈(55) 선생이 독립운동을 구상중이라 하오. 그러나 우리 민족운동 세력이 일제에 일망타진을 당했던 신해년 당시의 일을 떠올려보면, 이름이 알려진 이들 중 몇 사람이나 용기를 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 밤잠을 이루기가 힘드외다.

왼쪽부터 임동식, 정한경, 이승만.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의 한국친우회 건물 앞에서. <하와이의 한인들(눈빛 출판사)>
왼쪽부터 임동식, 정한경, 이승만.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의 한국친우회 건물 앞에서. <하와이의 한인들(눈빛 출판사)>
◇미국(샌프란시스코)=세계대전의 종결로 열린 이번 기회를 이용해 한인들도 집단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북미에서도 끓어넘치고 있소. 우리 북미 교민들도 이번 불란서 파리에서 열리는 강화회의에 대표자들을 보내기로 하였소. 지난해 11월25일 안창호(41) 회장 주재로 열린 중앙총회에서 결정된 사안이오. 안창호 회장은 그간 “한국인의 언약이라면 믿을 수 있다”는 믿음을 이웃 서양인들에게 심어줄 것을 동포들에게 노상 충고했다오. 이번처럼 기회가 다가왔을 때 그들이 우리의 주장을 지지해줄 수 있도록 말이오.

이번에 파견될 대표자는 이승만(44)·정한경(28)·민찬호(41) 세 사람이오. 이미 대표원 3명 중 미국 본토에 있던 정씨와 민씨는 지난달 14~15일 뉴욕에서 열린 약소국 회의에도 참석했소. 하와이에 있는 이승만 박사는 본토행 출국허가장의 발급이 늦어져 아직 호놀룰루에서 발도 떼지 못하였다고 하오. 다만 이 박사가 본토에 오더라도 과연 대표원들이 파리로 가는 여권을 얻을 수 있을지 우려스럽소. 정씨가 파리행 여권 수속을 준비 중이나 뉴욕 지역 일본 총영사의 방해 공작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오고 있소.

◎경성-천도교도 성금 100만원 달해
◎샌프란시스코-대한인국민회 파리 파견 결의
◎동경-유학생들 자주독립 외침 커져
◎연해주-시베리아 혹한 이긴 민족운동 불길

1919년 일본에서 2?8 독립 선언문을 발표한 도쿄 유학생들.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1919년 일본에서 2?8 독립 선언문을 발표한 도쿄 유학생들.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일본(동경)=겨울 한파가 거세지고 있지만 이곳 동경 유학생들의 독립을 향한 열기는 나날이 더해가고 있습니다. 무오년(1918) 들어 줄기차게 열렸던 유학생 웅변대회들이 기운을 고취한데다 미국 한인 동포들의 파리강화회의 대표 파견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타오르는 불꽃에 기름을 부은 형국입니다. 정초를 앞둔 12월29일 열린 동경조선유학생학우회 망년회와 그 이튿날 열린 동서연합웅변대회에선 서춘(25)·김상덕(28) 형 등이 나서서 열변을 토하였습니다. 자유, 평등, 민족…. 이 얼마나 가슴을 뜨겁게 하는 말들입니까. 우리는 예정된 시간을 넘겨서도 해산하지 못하고 의견을 나눴습니다. 이제야말로 밀실에서 우리끼리 웅변을 이어갈 것이 아니라 마침내 찾아온 기회를 붙들 때가 아닌가 합니다. 때마침 조도전(와세다) 대학의 천재라 하는 이광수(27) 형도 중국에서 돌아와 독립 방책을 논의할 사람을 고르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유학생 학우회 기관지의 편집국장을 맡아 유학생들에게 신임이 두터운 최팔용(28) 형이 이 형과 불콰한 얼굴로 선술집에 앉아 독립 모의를 하는 것을 본 이들도 있답니다. 일본 제국의 한복판에서, 우리 유학생들이 조국의 독립을 외칠 날이 머지않은 듯합니다.

문창범(49) 회장.
문창범(49) 회장.
◇노서아(러시아·블라디보스토크)=시베리아의 혹한이 몰아치는 여기 간도와 연해주에선 세계대전이 종결되면서 그간 얼어붙었던 독립운동이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오. 러시아 내전이 발발한 뒤 일본 정부가 질서 유지를 명분 삼아 지난해 무오년 대규모 병력을 파병한 뒤, 노령(시베리아)의 민족운동이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오. 하나 세계대전의 와중에 동구라파(동유럽)의 보헤미아 독립운동이 체코슬로바키아라는 당당한 공화국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목격하지 않았소.

이곳에서는 이번 파리강화회의에 민족 대표를 파견하여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홍보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데 뜻이 모이고 있소. 최근 이곳 노령 지역의 동포들을 이끌고 있는 문창범(49) 회장과 윤해(31) 부회장이 파리에 파견할 대표 선발을 고민하고 있다고 하니, 일단은 논의를 지켜볼 요량이오. [1919년 1월1일 경성/편집국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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