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여성의 존재가 나의 삶을 규정해나간다는 점’에 남성 싱글의 특징이 있을 것이다. 분명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결혼이나 동거는 아직 하지 않고 있음에도, 우리는 어딘가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지는 않은(또는 못한) 존재였다. 게티이미지 뱅크
나는 싱글이다. 그리고 30대 중반의 남자다.
이렇듯 글의 도입부에서 굳이 내 성별을 밝힐 필요가 있었을까? 난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찌 됐든 나는 내 생물학적인 성이 나의 ‘싱글’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어떤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이 코너에 연재된 다른 필자들의 글을 살펴보았다. 다들 가명으로 글을 쓰셨으니 필자분들의 성별을 다 알 순 없는 노릇이지만, 원고를 죽 읽어보면 분명 ‘싱글’이면서도 ‘여성’인 분들의 사연이 훨씬 더 많았던 게 분명해 보인다.
나는 여성들이 얼마나 글을 잘 쓰는지 알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여성의 글쓰기와 남성의 글쓰기가 얼마나 다른지를 알고 있고, 어떤 관점에선 여성의 글쓰기가 남성의 그것보다 훨씬 더 완성도가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성분들이 듣기 좋은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건 내가 오래전부터 느껴왔던 뚜렷한 경향일 뿐이다. 한참 전 대학을 졸업할 즈음, 한때 언론사 기자를 꿈꿨다. 성별이 혼합된 스터디도 많이 했고, 여성 지망생과 함께 서로의 글을 합평하기도 했다. 몇년간 그런 경험을 하면서 나는 (나를 포함한) 남성들보다 여성들의 글쓰기가 ‘대체적으로’ 훨씬 더 섬세하고 논리적이라는 뚜렷한 인상을 받았다. 한 사람의 ‘남성 지망생’으로서 그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발견이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현실이 그랬던 것이다.
싱글의 삶을 이야기하는 지면에서 이렇게 성별을 운운하는 것이 이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역시 이런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왜냐면 내가 위에서 말했듯, 나의 ‘싱글 생활’에 가장 민감한 요소로 작용하는 건 내가 ‘남성’이라는 것이니까. 단언컨대 나는 지금 내 싱글의 삶에 충분히 만족을 느끼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대화 주제 주로 여친, 연애, 결혼
이것은 무슨 말인가?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나와 가장 가까운 ‘남성’ 친구 및 선배와 후배 10명을 꼽고 이들에 관하여 찬찬히 생각해보았다. 그 10명 가운데 3명은 결혼했고, 6명은 ‘싱글의 삶’을 살고 있고, 나머지 1명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이 남성 싱글 6명과 내가 가장 일상적으로 나누는 대화 주제는 ‘싱글의 삶’ 그 자체는 아니었다. 그 6명과 내가 그동안 나눈 이 주제의 대화를 면밀히 관찰해보면, 대체적으로 우리는 현 여자친구(우린 모두 이성애자다)와의 관계를 이야기하거나, ‘여자친구와의 결혼에 대해서 이러저러하게 생각한다’거나, 또는 ‘나는 너무 외로우니 여성과 어서 사귀고 싶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자신이 싱글이어서 누릴 수 있는 삶의 단독자적인 즐거움 같은 것은 그다지 대화의 축에 끼지 못했다.
즉, 우리는 물리적으로는 싱글이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싱글이 아닌 삶을 살고 있었다. 엄격하게 본다면 이것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라고도 할 수 있겠다. 또 지금 이 싱글의 삶을 ‘잠시 거쳐가는 단계’로 여기는 무의식의 발로였을지 모른다. 적어도 나와 내 가까운 친구들은 그랬던 게 분명하다. 그리고 나는 남성 싱글에 관한 이런 느낌이 꼭 우리 7명에게만 한정되는 건 아니라고 본다.
나는 생각한다. 싱글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여성의 존재가 나의 삶을 규정해나간다는 점’에 남성 싱글의 특징이 있을 것이다. 분명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결혼이나 동거는 아직 하지 않고 있음에도, 우리는 어딘가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지는 않은(또는 못한) 존재였다. 우리 남성 싱글에게는 약간은 부초(浮草) 같은 의식이 있었다. 내가 이처럼 다소 거리를 두고 이런 의식을 바라보고 있다 하더라도 나 또한 그로부터 자유롭다고는 말할 수 없으리라.
적어도 나의 인간관계에 한한다면, 남성 싱글은 여성 싱글보다 ‘쿨’하지 못하고 대개는 연애와 결혼에 대하여 훨씬 더 ‘로맨틱’했다. 즉 그들은 ‘싱글’이면서도 ‘싱글의 삶’ 자체에 대해서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다(또는 못한다). 남성 싱글의 삶에는 보통 어떤 결핍이 있고, 지향점이 있고, 서사가 있었다. 그들은 (그것이 옳은 방향이든 아니든) 여성 싱글보다 더 ‘지금 이 순간’에 붙박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고, 어디론가 나아가고 싶어 했다. 이런 내면의 유동성을 “그건 결혼 제도가 남성에게 유리하기 때문이지”라는 한마디로 단정 지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홀로의 삶’ 누릴 취향 부족해
어쨌든 남성 싱글은 갈대 같은 존재에 가깝다. 우리의 깊은 내면엔 한곳에 오래도록 정박해서 ‘홀로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섬세한 취향 같은 것은 없다. 아니, 없다고 할 순 없겠다. 그런 것이 여성보다 훨씬 더 부족하다. 2년 동안 이 코너에 글을 쓰신 여성 필자분들의 저 꼼꼼한 싱글의 삶, 다채로운 취향의 묘사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더 강해진 것도 사실이다.
대다수 남성 싱글은 결국 여성(‘내 인생의 단 한 사람’)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규정하는 은근한 지향성이 있는데, 우리는 이런 순간에 ‘여자 없는 남자들’로 우리 자신을 정의하고 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은 과연 통찰력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하루키의 저 남성 중심적인 작품 세계 전반이 왜 그렇듯 ‘여성’에게 간절히 목을 매는지가 명확하게 들여다보이지 않는가?(고백하자면, 나는 하루키의 왕팬이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그럴듯한 성 고정관념과 퍽 다른 묘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관계를 지향하는 여성’ ‘야망을 추구하는 남성’ 등등의 헐거운 편견 따위는 언급할 가치도 없다. 내가 보기엔, 우리(남성)가 훨씬 더 (여성과의) 관계를 지향하고 있었다. 우리가 더 끈끈하게 여성을 필요로 하고, 여성과의 관계를 통하여 자신들의 ‘이런 홀로’의 삶을 설명하고자 했다. 꼭 그러려고 해서 그러려는 게 아니라, 우리 내면의 깊은 곳에 각인된 무늬가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결론은 이렇다. 남성 싱글들은 ‘싱글’보다 ‘남성’이라는 점에 훨씬 더 방점을 두고 있다. 그들은 ‘홀로’이면서도 ‘홀로’가 아닌 상태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묘사했던 남성 싱글의 어떤 내면적인 서사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신다면, 그건 역시 내 글솜씨가 부족해서일 것이다.
산책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