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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1인 가구가 착하게 ‘리빙’하는 법? 아무래도 죽기 전엔…

등록 2018-12-08 09:40수정 2018-12-08 11:21

반신욕조를 들인 뒤 일주일에 거의 서너번은 욕조에 몸을 담근다. 맥주 한 캔을 따 마시면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다. 문제는 목욕 뒤 개운함과 삶의 질이 높아지는 만큼, 수도요금과 죄책감도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반신욕조를 들인 뒤 일주일에 거의 서너번은 욕조에 몸을 담근다. 맥주 한 캔을 따 마시면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다. 문제는 목욕 뒤 개운함과 삶의 질이 높아지는 만큼, 수도요금과 죄책감도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토요판] 이런 홀로

혼자 살아도 필요한 가전제품들
“이게 진짜 필요해?”

삶의 질이 높아질수록
환경 오염 죄책감도 함께 높아져
넉달째다.

12월7일을 기준으로 정확히 넉달 되었다. 가격과 용량, 디자인, 전력소모량 등을 따지고 따져 엄선한 그 에어프라이어가 내 장바구니에 들어간 지 정확히 넉달째다. 한여름 폭염에 도저히 가스레인지를 켤 엄두가 나지 않아 장바구니에 모셔둔 에어프라이어. 넉달이 지났고, 계절은 겨울이 되었고, 첫눈이 내렸고, 그동안 나는 인터넷 쇼핑 결제를 대여섯번은 했을 것이다. 물론 그 대여섯번의 기회 가운데 단 한번이라도 눈 질끈 감고 에어프라이어를 함께 결제했다면? 에어프라이어는 오늘도 열심히 주인님을 위해 만두를 굽고 있겠지. 결론은 결제는 안 하고 장바구니에 모셔두기만 했다는 말이다.

‘님들 왜 안 삼? 레알 혁명템임 ㅇㅅㅇ’ ‘이걸로 감자튀김 꿉꿉하고 만두 꿉꿉하고∼ 정말 요물이네요 요물∼’ ‘#신혼 #남편이 만들어준 #치킨 #에어프라이어 #꽁냥꽁냥 #별게 다 있는 신혼집’….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와 있는 온갖 에어프라이어 후기를 보고 군침만 흘린 지 넉달째. 이 정도 고민했으면 살 법도 한데, 오늘도 눈물을 머금고 장바구니에 담긴 물건들 중 에어프라이어만 구매 표시를 해제하고 결제한다. 혼자 산 지 10년 차, ‘일정 크기 원룸엔 일정량의 가구만을 유지해야 한다’는 ‘1인 가구의 법칙’을 터득한 내 삶에서 리빙용품 구매를 막는 데엔 딱 한가지 질문이면 된다. “아, 근데, 나 혼자 사는데, 이게 진짜 필요해?”

계절의 변화는 ‘리빙’ 용품의 변화로

지난달 말 첫눈이 왔다. 1인 가구가 계절을 맞이하는 방법은 여느 가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먼저 서랍장 깊숙이 넣어둔 니트류를 꺼내 먼지를 턴다. 여름 내내 다용도함에 있던 소형 가습기를 꺼내 테이블 겸 책상에 놓고 전원을 연결한다. 그리고 난방텐트를 조립한다. 이게 참 요물이다. 내가 사는 열평 남짓한 원룸은 미닫이문이 침실과 ‘거실+주방+현관’을 겨우 구분하고 있는데, 침실은 외풍이 너무 센 탓에 이사를 온 뒤 처음 맞은 겨울엔 추워서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멀쩡한 침대를 놔두고 거실에 전기장판을 깔고 지낸 지 두달째, ‘따뜻해도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다’는 난방텐트를 침대에 설치했다. 그제야 침실을 제 용도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계절도 마찬가지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올 테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난방텐트를 접어 넣고 가습기도 청소해 넣어두겠지. 찰나의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올 테고, 그러면 선풍기 날개와 벽걸이형 에어컨의 필터를 청소해두겠지. 그리고 또 찰나의 가을이 오면 선풍기를 정리해 넣어두고 에어컨 덮개를 씌워두겠지. 서랍에서 무엇을 꺼내두는가, 그리고 동시에 무엇을 정리해 넣어두는가. 계절의 변화는 항상 집에 꺼내두는 물건의 변화에서 실감한다.

그런데 이렇게 살다 보니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고작 내 인생 하나(?)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이 너무나도 많다는 점이다. 그걸 다 유지하면서 살려면 ‘지구야 미안해’의 연속이다. 에어컨이나 난방텐트 정도야 우리나라가 이제 사계절이 아닌 두 계절밖에 없는 나라로 접어들었으니 그렇다고 치자. 자취 10년 차인 나에게 가장 큰 고민을 던진 가전제품은 바로 ‘공기청정기’였다. 집 앞이 바로 4차로 도로여서 창문을 조금만 열어둬도 자동차 매연이 엄청난데, 마침 나는 어려서부터 비염을 앓아 콧물을 줄줄 흘리는 아이였고, 이제는 황사에 미세먼지까지 심해진단다.

‘집에서조차 마스크를 쓸 순 없다.’ 이런저런 후기와 가성비를 꼼꼼히 따져 공기청정기 모델을 골라도, 막상 구매 버튼을 누르기 전 온갖 질문이 가로막았다. ‘근본적으로 미세먼지를 마시지 않으려면 밖에 안 나가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럼 일단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거 아닐까?’ ‘내가 쓸 공기청정기를 만드는 데 또 미세먼지가 만들어지겠지. 이건 어쩔 수 없는 현대인의 모순인가….’ 공기청정기 하나로 퇴사 고민부터 온갖 철학적인 질문까지 던지지만, 결국 ‘구매 포기’는 단 하나의 질문이면 된다. ‘나 혼자 사는데 이런 것까지 필요할까. 나 같은 이기적인 사람들 때문에 지구가 더 괴로워하지 않을까.’

나는 결국 완제품 구매를 포기했다. 그리고 한달여 뒤, 온라인을 뒤지고 뒤져 ‘착한’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공기청정기 조립 키트를 구입했다. 쓸데없는 외부 부품은 제외하고, 공기청정기의 핵심 부품인 공기 필터와 팬만으로 이루어진 키트였다. ‘공장 매연 뿜어내면서 만들어진 공기청정기보다 직접 만드는 게 환경에 조금이라도 더 낫지 않을까’라며 ‘착한 척’하면서 말이다. 아무런 외부 부품 없이 제 속살을 내보인 맨몸의 공기청정기 필터는 오늘도 팽팽 잘만 돌아간다.

“지구야 미안해”

‘환경을 생각해서 공기청정기 구매를 고민했다고? 너무 가식적이야.’ 여기저기서 이런 볼멘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런데 가식적이라고 하기엔 ‘나’라는 인간 자체가 이미 지구에 해로운 존재다. 인정하자. 나는 고기도 잘 먹고(좋아하고), 따뜻하고 가벼운 구스다운 패딩도 갖고 있고(오리의 가슴털이 뽑힌 사진을 보고 나는 더 이상의 구스다운 패딩은 사지 않기로 결심했다), 매번 급하게 출근하다 깜빡하고 집 형광등을 켜둬서 전기를 낭비하기 일쑤다. 텀블러는 쓰려고 산 건지 모셔두려고 산 건지, 매번 일회용컵에 든 음료를 사서 마신다. 환경을 보호한답시고 여기저기서 무료로 받은 에코백만 4개가 넘는다. 내 일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을 모두 고려했다면, 그리고 그로 인해 고통받을 지구와 환경을 생각했다면 난 일찍이 죽었어야 옳다.

‘그냥 죽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집에 반신욕조를 들이고 더욱 커졌다. 나도 나이가 들었는지 이제 따뜻한 물에 몸을 지지지 않으면 피로가 잘 풀리지 않는다. 인터넷쇼핑을 하다가 코딱지만한 원룸 화장실에도 들여놓을 수 있는 반신욕조를 우연히 발견했다. 말이 좋아 ‘반신욕조’지, 사실상 어렸을 때 욕조 대신 썼던 ‘빨간 고무 다라이’랑 다를 게 없다. 반신욕조를 들인 뒤 일주일에 거의 서너번은 반신욕조에 몸을 담근다. 맥주 한 캔을 따 마시면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다. (혹시 몰라 찾아보니 목욕 중 음주는 매우 위험한 행위라고 합니다. 역시 천국과 지옥은 같은 곳이군요.) 문제는 목욕 뒤 개운함과 삶의 질이 높아지는 만큼, 수도요금과 죄책감도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물 아낀답시고 몸을 담근 물로 머리를 감고 세수도 하고, 그러고도 남은 물로 일부러 욕실 바닥 청소까지 한다. 그렇다고 해도 물 부족 국가에서 ‘물을 많이 썼다’는 죄책감이 덜어지진 않는다.

1인 가구인 내 ‘삶의 질’은 ‘환경오염’과 불가분의 관계일까. 정말 그럴까. 특히 ‘리빙’ 용품에 있어서는 결국 3인 가구, 4인 가구와 똑같이 소비하는 1인 가구인 내가 죄책감을 덜어내는 방법은 없을까. 설마 ‘동거’나 ‘결혼’이 방법일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결혼을 해 누군가랑 같이 산다면, 1인 가구일 때보다는 죄책감을 덜 느끼며 에어프라이어를 사지 않았을까? 나뿐만 아니라 내 파트너, 내 가족도 같이 쓸 테니 말이다. 만약 내가 결혼을 해 아이를 낳았다면, 공기청정기를 사는 데에도 죄책감이 덜하지 않았을까? ‘나 혼자’ 쓰는 게 아니라 미세먼지 취약 계층인 ‘아이랑’ 같이 쓰는 것일 테니 말이다.

1인 가구가 착하게 ‘리빙’하는 법? 아무래도 죽기 전엔 못 찾을 것 같다. 지구야 미안해.

에어프라이어 사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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