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화려한 동네 청담동에는 드라마와 케이팝 한류처럼 ‘케이뷰티’ 열풍을 생산하는 ‘청담뷰티공단’이 있다. 이 공단은 최저임금보다 적은 ‘열정페이’를 손에 쥐고 하루 12~18시간 노동하는 ‘스태프’들에 의해 돌아간다. 1970~80년대 구로공단 등에서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됐던 ‘시다’들의 2018년형이다. <한겨레>는 3회에 걸쳐 이들의 노동 실태와 구조적인 문제, 그리고 대안을 짚어봤다.
민호(가명·27)는 ‘청담뷰티공단’에서 일한 지 2년 된 ‘하찮은’ 스태프다. ‘디자이너 선생님’이 되려면 아직 3~5년은 더 샴푸를 해야 한다. 민호가 처음부터 미용 경력을 청담동에서 시작한 건 아니었다. 7년 전 수도권의 한 ‘외곽숍’(청담동·압구정동·신사동 외 미용실)에서 스태프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군 생활을 마친 민호는 ‘외곽숍’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거기만 들어가면 서울대 들어간 것처럼 모든 게 다 잘될 것 같았거든요.” 민호가 말하는 거기란, 청담동이다. 서울대는 한국 사회에서 출신 그 자체로 신분이다. 그리고 미용업계의 서울대는 청담동이다. 민호의 예상을 청담동 미용실에서 민호를 면접 보던 ‘실장님’도 쉽게 인정했다.
“네가 볼 때는 청담이나 대치, 도곡 모두 ‘강남’이겠지만, 메카는 ‘청담’이고 나머진 다 외곽이야.”
그뿐 아니다. 민호는 자신의 예상과 실장님의 인정을 현실에서도 거듭 확인한 적이 있다. 민호가 이따금 외곽숍에서 ‘스페어’(일당을 받고 아르바이트처럼 일하는 것)를 뛸 때다. 어딜 가나 스태프는 ‘하찮은’ 존재여서 외곽숍 디자이너들은 스페어로 온 스태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러나 민호가 청담동에서 왔다는 걸 알게 되면 순식간에 눈빛이 달라졌다. 외곽숍 디자이너들은 기다렸다는 듯 “청담은 어때?” “청담은 우리랑 뭐가 달라?” “거긴 커트비가 얼마야?” 등과 같은 질문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그럴 때면 민호는 청담동 ‘버프’(온라인 게임 등에서 캐릭터의 능력치를 높여주는 효과)를 받아 하찮은 스태프에서 청담동 미용인으로 신분이 급격히 상승하는 자신을 느꼈다.
“같은 프랜차이즈 소속인데도 제가 청담동 매장에 있다고 하면 외곽 디자이너들이 저를 우러러본다고 할까? 스태프들도 나를 자기들보다 한 단계 높은 사람으로 바라보는 게 확연히 느껴져요.”
■ ‘청담동 버프’, 신분이 상승한다
민호는 그래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면서도 “청담이니까 다른 곳보다 적게 받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민호만 그런 게 아니다. 10대와 20대들이 직업 정보를 얻는 창구 가운데 하나인 유튜브에서도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에게 ‘청담동 버프’를 주입하는 청담동 선생님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청담동 유명 헤어숍의 디자이너이자 30만명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뷰티 유튜버 ‘기우쌤’은 지난 8월 올린 ‘진로, 고민 상담’ 동영상에서 청담동과 외곽숍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예전보다 (지역 간) 경계는 모호해지고 있지만, 업무 차이는 있어요. 청담에서 일할 때 가장 좋은 점은 다양한 경험입니다. 드라마, 뮤직비디오, 화보 촬영, 출장 행사, 웨딩, 헤어쇼, 패션위크, 각종 세미나 등 다른 지역에서 경험하기 힘든 이런저런 경험할 것들이 많아요. 연예인(미용)을 하고 싶으면 연예인이 많이 다니는 살롱에 가야 해요. 자기가 나중에 어떤 디자이너가 될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면서 ‘기우쌤’은 이런 말도 했다.
“스태프들은 박봉이에요. 저는 지금 스태프들보다 훨씬 더 열악한 조건으로 시작을 했고, 훨씬 열악한 페이를 받고 시작했지만 저는 그냥 대학 다닌다는 생각으로 최면을 걸었던 것 같아요. 정말 힘들게 일하고 박봉 받았는데, 저는 그렇게 하면서 그 힘든 스태프 생활을 버텼습니다.”
학교가 노동인권을 가르치지 않는 사이 헤어 디자이너를 꿈꾸는 10대들은 유튜브 속 청담동 선생님을 만나 ‘네 미래를 위해 열악한 노동조건을 참고 견뎌라’는 ‘청담동 버프’를 주입 받는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시아게’(일본어로 ‘마무리’라는 뜻)급 스태프인 지원(가명·25)이 5년째 청담동을 떠나지 못하는 것도 ‘기우쌤’의 설명과 같은 이유다. 6년 차인데도 여전히 최저임금보다 적은 월 130만원을 받는 지원이 가장 두려운 건 청담동을 떠나면 연예인이나 웨딩 고객과 작업할 기회가 사실상 사라진다는 점이다. 최고가 되고 싶어 청담동에 온 지원은 헤어 디자이너로서의 실력과 감을 잃은 ‘그저 그런 동네 미용사’가 되고 싶진 않다고 강조했다.
“동네 미용실(외곽숍)에서 벌써 디자이너가 된 친구들이 가끔 자기가 디자인한 머리를 에스엔에스(SNS)에 올리거든요. 그걸 보면 어떻게 디자인했는지 제 눈에 다 보일 정도로 뻔해요. 요즘에는 청담동 디자인이 에스엔에스에 많이 공유되니까 동네 미용실에서도 비슷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기술은 다르거든요. 청담에선 100%를 만들 수 있는데, 외곽숍에서 제 수준을 낮추고 싶지 않아요.”
지금은 청담동을 떠나 외곽숍에서 디자이너가 된 유경(가명·22)도 지원과 비슷한 말을 했다. “청담동 친구들이 업스타일이나 드라이는 특출나게 잘해요. 가끔 청담동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트렌드 같은 걸 볼 기회가 없는 게 아쉽긴 하죠.”
청담과 외곽이라는 확실한 구별 짓기. ‘청담뷰티공단’은 하나같이 청담동이라는 거대한 성을 외곽숍과 구분 지어놓고, 그 안에서 성공할 “네 미래를 생각”해서 현재의 열악함을 거름 삼아야 한다고 스태프들에게 끊임없이 강조한다. <한겨레>가 ‘청담뷰티공단 리포트’를 위해 만난 20대 초·중반 청담동 스태프들 역시 이 구별 짓기 논리에 익숙해진 말투로 열악한 노동조건에도 청담동이라는 성 안에 남아 있길 원했다. 이들은 청담동 미용실의 저임금과 초과 노동 등의 문제를 꼼꼼히 지적하면서도 동시에 노동자로서 자신의 권익을 지키는 일을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거나 “해이함”으로 여기는 양가적인 태도를 보였다.
2016년 기준 서울 강남구에 있는 미용실은 모두 1210곳이다. 이 가운데 청담동·압구정동·신사동에 자리한 미용실 355곳만이 ‘청담동 미용실’이라 불린다. 지난달 청담동 골목의 한 미용실 외벽에 대형 광고판이 걸려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끝없이 “최면 거는” 스태프 인성 교육
무엇이 스태프들을 이렇게 만드는 걸까. 여기에는 청담과 외곽이라는 구별 짓기를 통해 발생하는 ‘청담동 버프’와 함께 청담동 미용실의 ‘인성 교육’도 큰 구실을 한다.
유경은 청담동 미용실이 “학교와 똑같았다”고 했다. 그는 청담동 미용실에서 일하면서 기술 교육도 받았지만 동시에 일상생활 전반의 것들을 “세뇌”받았다고 표현했다. 교육 시간에는 때마다 화려한 청담동에서 멋지게 성공한 디자이너 선생님들의 ‘성공 스토리’가 강조됐다. ‘지금은 힘들지만, 참고 견디면 디자이너가 됐을 때 다 보상받을 수 있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덧 ‘기우쌤’의 말처럼 스스로 “최면을 거는” 스태프들이 생긴다.
어떤 미용실에선 하루 12~18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스태프들에게 한달에 책 한권 읽기를 강요하고, 매달 초 독서 토론회를 열기도 한다. 미용실에서 읽으라고 말하는 책은 주로 최고경영자(CEO)와 재벌들을 주인공으로 한 경제·경영 서적이나 자서전, 고통을 감내하고 성공한 이들의 삶을 그린 자기계발서다.
철저한 ‘인사 관리’도 스태프들을 ‘세뇌’하는 또 다른 장치다. 보통 미용실에서 카운터 업무를 담당하는 ‘실장’ 또는 ‘매니저’가 스태프들을 채용하고 관리하는 일을 맡는다. 이들은 스태프의 결손에 따른 인력난을 막으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여기 그만두고 다른 데(청담동 미용실) 가도 다 똑같다”는 말로 스태프들의 이탈을 막는다. 신기한 건 실장과 매니저의 ‘인사 관리’ 문제를 설명하는 청담동 2년8개월 차 ‘층장’ 윤주(가명·24)의 입에서도 유경처럼 똑같이 “세뇌”라는 표현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저희 실장님은 늘 세뇌를 시켜요. ‘네가 지금은 스태프지만, 언젠가 디자이너가 될 거고, 최종 꿈인 숍을 차렸을 때 스태프가 돈 더 달라고 난리 치면 넌 좋을 것 같냐’고 말하는 거죠. 그런 얘기를 계속 듣다 보면 처음엔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나중엔 그냥 그러려니 하게 돼요.”
■ 스태프들 꿈꾸게 만드는 청담동 ‘스타 시스템’
물론 스태프들이 ‘인성 교육’과 ‘인사 관리’만으로 ‘세뇌’되진 않는다. 청담과 외곽의 가장 큰 차이 가운데 하나는 청담에선 ‘스타 디자이너 시스템’이 운용된다는 점이다. 청담동 디자이너들의 명함에는 외곽숍 디자이너들과 달리 개인 휴대전화 번호가 적혀 있다. 직접 자신의 고객 명단을 관리한다는 얘기다. 외곽숍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외곽숍에선 손님 전화번호는 미용실만 알고, 손님은 디자이너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알지 못한다. 디자이너 명함에도 미용실 번호만 적혀 있다. 이 때문에 외곽숍 디자이너들은 개인 사정으로 미용실을 옮기거나 그만둘 때 자신의 단골 고객을 포기해야 한다. 이는 미용실 입장에서 고객의 이탈을 막는 동시에 디자이너와의 종속 관계를 강화할 수 있는 장치다.
그런데 청담동에선 디자이너가 직접 고객에게 자신의 연락처를 알리고 예약도 받는다. 디자이너가 미용실을 옮기면, 고객도 미용실을 옮기는 경우가 많다. 청담동 미용실들이 월 매출 2천만~3천만원에 이르는 스타 디자이너를 영입하려고 치열한 로비전을 펼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 ‘스타 시스템’은 청담동 스태프들의 ‘꿈’에도 영향을 끼친다. 스태프들은 억대 연봉을 버는 ‘스타 디자이너’들의 권력을 고스란히 옆에서 보고 겪는다. 때로는 스타 디자이너들의 위력에 기대 자신의 신분 상승도 경험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자신도 언젠가 그런 권력을 쥔 자가 될 수 있길 꿈꾼다.
“단가가 낮은 미용실일수록 손님들은 스태프가 자기 머리 만지는 걸 싫어해요. 염색약을 타서 가면 ‘선생님은요?’라고 물어보죠. 내가 어디서 얼마나 일했는지 상관없이 ‘보조’라고 무시하는 분위기예요. 반대로 청담은 고객 대부분이 단골이고, 선생님을 믿으니까 그 밑에 스태프로 있는 저를 믿어주는 거죠.”(민호)
하지만 이렇게 억대 연봉을 버는 ‘스타 디자이너’는 열명 중 한명이 될까 말까 한다. 청담동에서 실패하고 있는 디자이너도 수두룩하다는 얘기다. 청담동 미용실은 시술 비용이 많이 드는데다 대개 주택가 골목에 있고 외관도 미용실보단 카페에 가까운 분위기다. 동네 미용실과 달리 길을 가다가 우연히 머리를 하러 들어오는 ‘워킹(walking) 손님’이 드물다. 기존 단골이거나 신규 고객이라고 하더라도 특정 디자이너를 소개받아 예약하고 찾아오는 고객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스타 디자이너는 계속해서 매출이 올라가고, 막 디자이너로 승급한 ‘초디’(초급 디자이너)들은 고객을 확보하기가 만만치 않다. 이 때문에 최근 몇년 사이 청담동에선 한달에 150만원 정도밖에 못 버는 초디들도 생기고 있다. 청담동과 외곽의 구별 짓기에 이어 청담동 안에서도 연봉 1억원이 넘는 ‘스타 디자이너’와 최저임금만큼도 못 버는 디자이너 사이에 구별 짓기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격차 역시 스태프들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좋은 소재가 된다.
“‘펌 44만원, 커트 6만6천원’이라는 가격표를 보고 처음 청담동 미용실 면접을 봤을 때는 ‘3년만 잘 붙어 있으면 나도 억대 연봉 디자이너가 되는 건 껌이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달에 100만원도 못 버는 디자이너를 보니까 지금은 속은 기분이에요. 하지만 지금처럼 하루하루 버티다 보면 저도 열명 가운데 하나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죠.” 윤주의 ‘희망 고문’이다.
■ ‘실패자’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은 청춘들
대체로 고등학교나 전문대를 졸업한 뒤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이 청담동 미용실이라는 점도 스태프들이 ‘꿈의 공장’에 갇히는 이유다. 미용업계 밖에서 사회생활을 한 경험이 없어 다른 곳의 노동 조건을 모르기도 하고, 첫 사회생활에서 ‘실패자’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원에게 뒤늦게 ‘현타’(‘현실 자각 타임’의 줄임말로 헛된 꿈이나 망상 따위에 빠져 있다가 자기가 처한 실제 상황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라는 뜻)가 찾아온 건 청담동 생활 4년 차였던 2016년 가을이었다.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한테 ‘적금 얼마 넣어?’라고 물었는데, 그 친구가 ‘지원아, 이런 말 하기 미안한데 나 네 월급만큼 넣어’라는 거예요. 그때 제 월급이 110만원이었거든요. 나는 한달 빌빌 기면서 100만원 버는데, 친구는 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상여금 받아 명품 지갑 사고, 100만원 넘게 적금 넣고….”
지원은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처럼 ‘빨간약’을 먹고 뒤늦게 현실을 자각했지만, 그렇다고 20대 초반을 꼬박 보낸 청담동을 떠날 순 없다고 했다. “지금 외곽숍을 가면 제 나이는 다 디자이너예요. 스태프로 들어가면 저보다 경력, 실력, 나이가 적은 사람을 ‘선생님’으로 모셔야 하는 거죠. 그래서 저처럼 직급이 높은 스태프들은 청담동을 못 나가요.”
유경도 청담동의 노동 착취가 가능한 원인이 스태프들의 ‘좁은 네트워크’ 때문이라고 했다. 대부분 스태프가 미용고등학교, 전문대 미용학과 등을 졸업한 뒤 바로 청담동에 취업했지만, 유경은 고등학교 졸업 뒤 피부미용사 등으로 일하다 헤어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미용실 스태프가 됐다. 유경은 자신이 여느 스태프들과 달리 “미용업계 밖에 있다 온 사람이기 때문에 청담동 미용실의 노동 조건이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3년 전 성형외과에서 상담할 때 한달에 200만원 가까이 받았어요. 그때 사회생활 하면서 ‘이 정도 받는 게 큰 금액이 아니구나’라는 걸 알았던 거죠. 그 친구(청담동 스태프)들은 사회 초년생 때 다른 직종에서 일해본 적이 없어요. 청담동에서 디자이너로 크면 잘될 거라고 ‘세뇌’가 된 거죠.”
미용실을 그만둔 스태프에게는 ‘나약한’ ‘의지가 약한’ ‘열정이 없는’ 등의 꼬리표가 붙는다. “디자이너들끼리 평판 조회가 가능하니까 스태프를 뒷담화하고, 텃세 부려서 나가게 만드는 거죠.” 그렇게 점점 청담에서 밀려난 스태프는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된다. “눈물, 콧물 다 빼면서 힘들게 일했는데 지금 포기하면 말짱 도루묵 되는 거잖아요. 다른 일 하는 것도 싫고…. 저 같은 사람이 많으니까 청담동의 고인 물이 계속 유지되는 것 같아요.” 윤주의 말이다.
실패자 낙인만이 아니다. 청담동 일대 미용실에서 문제를 일으킨 스태프는 실제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재취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고용노동지청에 신고하면 돈을 더 받을 수는 있지만, 청담동에서 계속 일을 할 수는 없게 된다. “청담동 디자이너들은 한 다리 건너 다 아는 사이니까 신고자가 누군지 다 알죠. 그 위험을 감수하면서 신고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 누구도 이들에게 ‘언어’를 알려주지 않는다
20대 초·중반 스태프들이 이런 굴레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건 현행 교육 과정에서 노동인권 교육을 접할 기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한국산업노동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유형근 부산대 교수(일반사회교육학)가 발표한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의 실태와 평가 그리고 향후 과제’를 보면, 2016년 청소년 1만3122명(중·고등학생 및 가출·범죄 위기청소년) 가운데 ‘최근 1년 동안 적어도 1번 이상’ 노동인권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한 학생은 28.3%에 그쳤다. 이를 다시 학교급 및 청소년 유형별로 분석하면 특성화고(50.6%) 중학교(26%) 위기청소년(25.2%) 일반고(23.7%) 차례다.
특성화고는 그나마 2011년 광주 기아자동차 공장의 현장실습생 사고를 계기로 ‘특성화고 현장실습제도 개선대책’(2012년 4월)이 발표된 뒤 교육 기회가 늘어났다. 하지만 일반고 학생들은 여전히 ‘노동교육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한겨레>가 만난 청담동 미용실 스태프 6명 가운데 5명 역시 일반고 졸업생이었다. 청담동 스태프들은 샴푸 독이나 중화제 독이 올라 손가락 마디마디가 찢어지고 피가 나는 손을 ‘산업재해’라고 말할 수 있는 언어를 애초부터 배우지 못했다.
이렇게 어제의 스태프 가운데 극히 일부가 오늘의 스타 디자이너로, 다시 그중에서 극히 일부가 내일의 미용실 오너로 성장하는 구조 속에서 미용실 스태프들은 “훗날 네 미래를 생각하라”는 말에 스스로 자신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하거나 체념한다. 헤어 디자이너처럼 정규 직업을 갖기 위해 일정 기간 도제교육 기간을 거쳐야 하는 ‘직종노동시장’ 종사자들이 자신들이 겪는 노동 착취를 외부에 알리지 못하는 이유다. 보육교사, 사회복지사, 간호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현실을 바꿔보려 애썼던 이들은 좌절했다. 3년 전 페이스북 ‘미용노조’ 페이지를 운영하며 미용 스태프들의 노동 문제를 상담했던 성훈(가명·26)은 이제 자신이 만든 ‘미용노조’ 페이지에 들어가지 않는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란 무력감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게 이거였는데, 미용과 졸업해서 다른 데 가기도 쉽지 않고, 딱히 미용말고 하고 싶은 일도 없어요. 그냥 하고 싶은 일이니까 한 건데 바꿀 수 있는 건 없고…. 꿈은 꿈이지만 돈이 되는 것도 없고요.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싶은 거죠.”
[‘청담뷰티공단’ 리포트] ① 미용스태프 노동 실태를 보시려면
▶월급 70만원…스태프 갈아서 세운 ‘청담동 미용 공단’
선담은 송채경화 기자
s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