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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넷플릭스와 애플뮤직을 끊을 수 없는 이유

등록 2018-12-01 10:22수정 2018-12-05 20:21

[토요판] 이런 홀로
고정비용 줄여보기 위해
넷플릭스, 애플뮤직 등 해지
나의 우주가 좁아져버려
취향 위한 비용은 삭제 못해
애초 내가 ‘한달에 꼭 써야 할 고정비용’에서 살려둔 목록은 ‘생존’에 관련된 것이었고, 과감히 삭제 버튼을 누른 것들은 ‘취향’에 대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주거, 식사, 건강을 제외한 모든 것을 제한하는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심심하고 팍팍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애초 내가 ‘한달에 꼭 써야 할 고정비용’에서 살려둔 목록은 ‘생존’에 관련된 것이었고, 과감히 삭제 버튼을 누른 것들은 ‘취향’에 대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주거, 식사, 건강을 제외한 모든 것을 제한하는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심심하고 팍팍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숨만 쉬어도 돈이 든다. 혼자 살기 시작한 뒤 가장 놀란 것은 한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비용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내가 이 도시에서 숨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 서울시에서는 주민세를 꼬박꼬박 받아간다. 부모의 집에서 내 집으로 주소지를 이전하고 처음 그 고지서를 받았을 때 나는 놀랐다. ‘헐, 아무것도 안 하고 살아만 있는데 돈을 내라니.’ 물론 그것은 소액이었고, 지금은 당연히 내야 할 세금이라 생각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숨만 쉬어도 돈이 든다”

한 인간이 지붕 있는 집에서 비를 피하며 굶지 않고 숨을 쉬기 위해서는 돈이 든다. 일단 보증금과 월세. 이건 자가를 소유하지 않은 1인 가구의 지출에서 가장 큰 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각종 공과금(전기·가스·수도요금 등)도 있다. ‘자연인’이 되어 산속에서 알전구 하나만 켜도 전기세는 나오더라. 어디 이뿐인가. 부모의 집에서 독립하는 순간 화장실, 부엌의 자잘한 생필품을 채우는 것도 다 내 주머니에서 나간다. 다 쓴 샴푸통에 리필 샴푸를 채워 넣는다거나 주방의 더러워진 행주나 수세미를 새것으로 바꾼다거나, 한달에 한번 쓰레기봉투를 산다거나 하는 것에도 소소하게 돈이 나간다. 그래서 독립 초창기에는 엄마 집에 갈 때마다 두루마리 휴지라도 하나 훔쳐 와야 마음이 놓였다. 이런 돈을 통칭해 생활비라고 해보자.

생활비 외에도 각 가정에는 많은 고정비용이 있다. 이 고정비용은 세금처럼 통장에서 알아서 사라지는 돈이므로 각 가정은 그만큼을 뺀 상태에서 생활을 꾸려나간다. 그럼 계산을 시작해보자. 일단 엄마 말 잘 듣는 30대라면 실비보험과 연금보험 한두개는 가입했을 것이다. 취향과 취미의 영역까지 고정비용에 포함하면 매달 써야 하는 돈은 계속 늘어난다.

일단 인터넷과 케이블티브이 비용. 나는 통합 상품을 이용하는데 3년 약정으로 매달 3만4천원 정도가 자동이체된다. 그리고 휴대폰 요금. 이것 역시 안 쓸 수 없는 고정비용이다. 그리고 여기에 넷플릭스와 왓챠, 멜론과 애플뮤직, 아이클라우드까지 월정액으로 나가니 이를 전부 합하면 이미 고정비가 20만원 넘는다. 여기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집사들에게는 사료나 모래값 등의 비용이 추가된다.

이쯤 읽었을 때, “그게 무슨 필수 고정비용이야”라며 입을 삐죽일 독자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그러하다. 넷플릭스, 왓챠를 안 본다고 당장 큰일이 나는 건 아니다. 애플뮤직으로 음악을 안 듣는다고 청력이 손상되는 것도 아니며, 아이클라우드에 컴퓨터를 연동시키지 않는다고 업무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런 돈들은 생존비가 아니다. 절약체제로 돌입할 때 가장 먼저 삭제 대상이 되는 것도 위의 비용들이다. 추운데 보일러를 안 돌릴 수 없고, 전기장판을 안 켤 수 없으니 가스와 전기는 써야 한다. 귤도 사 먹고 싶다. 떡볶이도 먹고 싶어. 그럼 어디서 줄일까…. 고민 끝에 지난 9월, 나는 넷플릭스와 왓챠, 애플뮤직을 과감히 해지했다.

떠나려는 나에게 왓챠는 물었다. “정말 해지하실 건가요? 재미있는 신상 드라마가 이렇게나 많아요.” 눈을 질끈 감고 ‘네’ 버튼을 눌렀다. 무슨 폭탄을 해체하는 톰 크루즈라도 된 것처럼 마우스 클릭을 몇번 머뭇거렸다. 넷플릭스도 나에게 물었다. “서비스의 어떤 점이 마음에 안 드셨나요?” 도리질을 쳤다. 아니야, 넷플릭스. 넌 완벽해. 넌 훌륭해. 네가 나에게 제공한 서비스들은 최고였다. 널 잊지 못할 거야. 하지만 난 너 없이 사는 법을 배울 거야. 안녕. 여기까지는 그래도 무난히 진행됐다. 문제는 애플뮤직이었다. 내가 듣는 음악을 분석해 내 취향의 미국 인디밴드와 처음 보는 영국 록그룹, 1970년대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의 달콤한 목소리를 추천해주던 견문 넓은 애플뮤직과의 이별은 너무 힘들었다. 해지하시겠습니까? 예스(YES).

당연히 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머, 너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넷플릭스 드라마)도 모르다니, 시대에 뒤처졌구나. 너와는 더 이상 친구를 할 수 없겠어”라며 절교를 선언하는 친구도 없었고, 직장에서 소외되는 일도 없었다. 넷플릭스 1만원, 왓챠 3개월에 1만5천원, 애플뮤직 1만원. 매달 결제되던 월정액이 사라지니 홀가분하고 내가 현명하게 미래를 계획하는 재테크형 인간이 된 것 같아 흐뭇하기까지 했다.

취향·취미의 영역도 고정비

그런데 한달이 지나고 나는 깨달았다. 원래 좋아하던 것, 알던 것 이상으로 내가 새롭게 알게 된 음악과 영화가 없다는 것을. 나는 계속 알던 음악만 들었고 내 취향의 경계 안에 있던 이야기만 전해 들었다. 과거에 애플뮤직에서 유사한 아티스트 추천으로 알게 된 보노보스, 폴라리스, 스페셜아더스와 스펜서 등처럼 새로 알게 된 음악도 없었다. 넷플릭스 추천으로 보게 된 해외 다큐멘터리는 또 어떻고. 넷플릭스 오리지널과 특이한 해외 다큐멘터리들은 한국 티브이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내 집에서 내가 바깥 세계와 접선하는 방법이었다. 문을 닫으면 완전히 나만의 소우주가 되는 내 집에서 밖을 향하는 신호. 넷플릭스, 왓챠, 애플뮤직을 해지하고 나의 우주는 완전히 좁아져버렸다.

다들 눈치채셨겠지만, 지금 나는 다시 애플뮤직 월정액에 재가입했고 그 음악을 들으며 원고를 쓰고 있다. 매달 쓰는 돈을 줄여보겠다는 야심찬 포부는 이번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혼자 계속 살아가는 미래를 위해서는 돈을 아끼고 저축을 하고, 1인 가정의 계획성 있는 지출 규모를 꾸려야 한다는 것은 귀가 닳도록 들은 조언들이다. 하지만 지금 넷플릭스를 못 보고 왓챠에서 영화를 못 보고 애플뮤직을 듣지 못하는 데서 오는 소외감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이겨버렸다.

애초 내가 ‘한달에 꼭 써야 할 고정비용’에서 살려둔 목록들은 ‘생존’에 관련된 것이었고, 과감히 삭제 버튼을 누른 것들은 ‘취향’에 대한 것들이었다. 주거, 식사, 건강을 제외한 모든 것을 제한하는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심심하고 팍팍했다. 남들은 다 즐기고 있는데 나만 못 보고 못 듣는 스크린 너머의 세계가 있다는 게 나는 슬펐다. 더 이상 새로이 알게 되는 밴드가 없고, 새로 출시되는 외국 음반을 들을 수 없고, 시즌을 새로 시작한 드라마를 볼 수 없다는 것은 소외감이 드는 일이었다. 그것은 나의 우주가, 내 취향의 그릇이 확 좁아지거나 깨지는 것이었다.

역시 인간은 숨만 쉬어도 돈이 든다. 거기에 숨 쉬고 드라마 보고 전기장판에 누워 귤 까먹으며 음악을 들으려면 돈이 더 든다. 하지만 전기장판에 누워 귤 까먹으며 넷플릭스 보는 겨울밤의 행복을 아는 당신이라면 이것이 불필요한 고정비용이라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늘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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