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남지은의 실전싱글기 13
형식 파괴한 결혼식을 원해
아끼던 친구가 결혼했다. “결혼”을 외치며 몇 년간 결혼 상대자를 찾아 다녔다. 결국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3개월 만에 결혼했다. 친구는 ‘남자’보다 ‘결혼’ 그 자체를 더 갈구했다. 대체 왜 그렇게 결혼이 하고 싶은 걸까? 친구지만, 그 마음까지 다 헤아리지는 못하겠다. 만난 지 2개월, 그러니까 결혼을 한 달 앞둔 시점에 진지하게 물었다. 이러이러이러한데, 꼭 해야겠니? 자신도 알지만 해야겠단다. 왜? 그냥 결혼이 하고 싶단다. 그래, 그럼 축하해줄게.
결혼식장에 가서 싱글벙글한 친구를 보니 마음이 좀 놓였다. 저렇게 좋아하니 잘 살겠지. 그런데 이내 불편해졌다. 어디로 튈지 모를 천방지축이 매력인 친구를 결혼식은 ‘애기씨’로 만들어놨다. 친구는 얌전하게 앉아 줄지어 기다리는 하객을 바꿔가며 사진을 찍었다. 평소 내 귀를 뻥 뚫어놓던 목소리도 감췄다. “신부님 예쁘게”를 외치는 웨딩업체 관계자에게 홀린 듯 미소만 지었다. 꽉 끼는 드레스와 높은 굽 때문에 친구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성큼성큼 걷던 친구는 남편 손에 이끌려 미끄러지듯 주례석으로 향했다. 행진하려고 서 있는 사이 눈이 마주쳤다. ‘야, 너 왜 그러고 있어?’ ‘그러니까, 나 너무 얌전 떨지?’라는 속마음의 대화가 오갔다.
식이 끝나고,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면서도 친구는 평소와 달랐다. 엷은 미소를 띄며 엄마와 시어머니 사이를 걸었다. 우리를 보자마자 내 손을 덥석 잡고 복화술을 했다. “가만 있어. 지금 시어머니 계신다.” 시어머니 앞에서는 얌전 떨어야 하는 거야? 왜? 왜 그래야 하는데? 그러고는 폐백을 하러 갔다. 시아버지가 대추를 던졌다. 아들딸 쑥쑥 낳으란다. 아기는 싫다던 친구는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아… 신이시여.
홀로를 택한 이유 중에는 결혼식이 싫어서도 있다. 첫 경험은 언니 결혼식이었다.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시간마다 커플을 바꿔가는 결혼식장은 충격 그 자체였다. 층마다 식이 열렸다. 섞어놓으면 아이돌그룹처럼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행진하고 주례 듣는 이 행위가 대체 무엇을 약속해줄 수 있을까? 요즘은 시골집을 빌리거나 제주도에서 하는 개성 있는 결혼식이 유행이라지만, 그 역시 시간과 돈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 보통의 우리에게, 대한민국 어른들에게 축의금은 중요하다. 친척들의 동선도 편해야 한다.
어른들도 만족하는 결혼식장에서 하면서 형식을 파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천방지축 삐삐가 얌전한 소공녀가 되어 걸어가는 모습을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걷기도 불편한 하얀색 드레스가 아니라, 쌔끈한 하얀색 바지 정장을 입고, 굵은 웨이브 파마를 한 머리에 심플한 면사포를 얹고, 남편과 손 잡고 신나는 행진곡에 맞춰 씩씩하게 걸어가면 어떨까. 하객들은 환호하고 박수를 치고, 친구들과 자유분방한 포즈로 기념 사진을 찍으면 어떨까. 주례 없이 서로의 약속을 읊고, 남편과 내가 함께 축가를 부르면 어떨까. 끝날 때는 다 같이 잔을 들어 앞날을 축복하고.
생각하다 보니, 갑자기 결혼식이 하고 싶어 졌다. 아, 어떡하지 결혼식만 할까.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결혼식장에서 결혼하더라도 형식을 파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주례 없이 서로의 약속을 읊고, 남편과 내가 함께 축가를 부르면 어떨까. 끝날 때는 다 같이 잔을 들어 앞날을 축복하면서.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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