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들은 아이를 낳고 키우고 싶은 아쉬움을 조카 사랑으로 해소한다. 조카를 데리고 다니면서 엄마가 된 기분을 느끼니까. 게티이미지 뱅크
“아빠, 고모 납치해서 집에 데려가자.” 오랜만에 만난 조카가 아빠한테, 그러니까 내 동생한테 말했다. “고모집에서 자고 가자”는 말까지 덧붙여서. 그 말에 절로 미소꽃이 폈다. 얼마만에 받는 조카의 애정인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뒤, 조카의 관심사는 다양해졌다. 고모밖에 모르던 조카는 ‘초딩’이 되더니 변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싶었지만, 현실을 받아들였다. 오래 전 이 지면에 ‘조카덕후감’ 코너를 연재하면서 “들러붙던 조카가 곧 떨어져 나갈 것”이라는 세상의 많은 이모, 고모, 삼촌들의 조언을 익히 접했으니까.
그래도 막상 닥치니 서운했다. 동생네 부부가 집에 오는 날에 조카는 안 왔다. “부끄러워” “만날 준비가 안됐어” 따위의, 대체 어디서 배운지도 모를 이유를 막 대면서. 그랬던 조카가 다시 애정 표현을 하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빙그레 웃고, 볼에 뽀뽀하고, 집에 안 가겠다고 떼 쓰는 모습 하나하나가 피로를 씻어줬다. 부모들이 말하는, 자식 키우는 행복이란 게 이런 거겠지, 싶다.
아이를 좋아한다. 홀로 생활에 만족하면서도 아쉬운 건, 아이다. 아이를 낳고 싶고, 키우고 싶고, 예뻐하고 싶다. 혼도 내고, 토라진 아이를 달래도 주고, 울먹이는 걸 안아도 주고 싶다. 내 아이가 있었으면 싶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자에게 아이란 쉽지 않다.
홀로 친구들끼리 유전자를 제공받아 인공수정으로 낳아 한 집에서 같이 키우자는 농반 진반의 이야기를 하곤 한다. 유전자의 남자는 어떤 사람이면 좋겠다는, 주변에 괜찮은 사람 없냐는, 드라마에서 본 말까지 늘어놓으며 아무말 대잔치를 연다. 바람을 담아 웃자고 하는 얘기이지만 그럴 용기는, 사실 우리 모두 아직 없다.
국내 한부모가족은 154만 가구라고 한다. 그러나 아빠가 없어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게 돕는 지원책 등은 전무하다고 들었다. 혼자 일하며 아이를 키워야 하는 한부모는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등등 여러가지 이유로 출생 신고를 못하기도 한단다. 한 핀란드 출신 방송인은 “핀란드는 결혼한 사람, 안 한 사람 누구나 아이를 낳으면 나라에서 다 키울 수 있게 도와주기에 경제적 이유나 주위 시선 때문에 아이를 포기하는 일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를 가장 고민하게 만드는 건 사실 시선이다. 차별적 시선. “결혼도 안 했는데 애가 있어?” “제 정신이야?” 등 홀로한테 아이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쓰여질 소설같은 이야기들을 견딜 자신이 없다. 그 시선이 아이를 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이를 키우는 홀로 엄마는 “주변 엄마들이 아이한테 ‘너네 아빠 누구냐’라고 묻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상황을 잘 모르는 아이가 상처를 받는단다. “엄마, 나는 왜 아빠가 없어?”라는 말은 송곳되어 가슴에 박힌다고.
이런 걱정이 드는 건 우리가 아이를 잘 키울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아이를 좋아하는 것만으로 좋은 보호자는 될 수 없을 테니. 하지만, 이런 걱정을 하지 않고, 꼭 결혼을 하지 않아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자연스런 사회가 되면 어떨까, 싶은 아쉬움은 늘 있다.
그래서 홀로들은 그 아쉬움을 조카 사랑으로 해소하나 보다. 조카를 데리고 다니면서 엄마가 된 기분을 느낀다. 또 하나의 로망을 조카로 실현할 일이 다가오고 있다. 올케가 둘째를 가졌다. 아이 좋아하는 홀로의 또 다른 로망, 딸 조카를 갖는 것. 내 조카는 죄다 남자다. 머리를 땋아주고, 깍쟁이 같은 딸과 친구처럼 지내는 로망이 둘째 조카로 실현되기를 꿈꾼다. 정현(곧 태어날 조카의 애칭)아, 꼭 딸이어야 해!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