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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아이 낳으면 아빠가 무조건 육아휴직 어떤가요

등록 2018-11-04 09:00수정 2018-11-04 14:50

[토요판] 신현호의 차트 읽어주는 남자
(24) 아빠의 육아휴직

한국 남녀 고용률 차이 OECD 중 4위
여성 능력, 남성에 뒤지지 않지만
출산·육아 부담 의식해 채용 꺼려

남성 육아휴직 거의 사용 안해
아빠에게 육아휴직 강제하는
북유럽 ‘아빠 할당제’ 관심 높아져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됨에 따라 전체 인구에서 취업자의 비중이 낮아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정년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어르신들의 취업률을 높이는 것부터 이민을 확대하는 것까지 여러 정책이 모색되고 있는데, 저는 그중에서 가장 시급하고 효과적인 것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늘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 채용 꺼린 부끄러운 기억

(그림1)에 주요국의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을 표시해두었는데요. 2017년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끝에서 5등입니다. 우리보다 낮은 국가는 터키(38%), 멕시코(47%), 이탈리아(56%) 및 칠레(57%)로 다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국가입니다. 반면 북유럽 국가들은 아이슬란드(86%), 스웨덴(81%), 덴마크(76%) 노르웨이와 핀란드(75%)까지 한결같이 이 지표가 매우 높습니다. 남녀 고용률 격차를 보시면 이 차이가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데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낮은 국가는 모두 여성 고용률이 남성에 견줘 뚜렷이 낮은 국가들이고, 반대로 북유럽 국가는 남성과 여성의 고용률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한국은 이 격차가 19%포인트로 오이시디 국가 중 차이가 크게 나는 네번째 국가입니다.

한국의 여성은 교육 수준에서 남성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무원 임용시험 등 각종 시험에서도 상위 합격자들의 여성 비율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볼 때 여성의 능력이 부족해서 경제활동 참가가 적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 개인적인 얘기를 하는 것을 이해해주신다면, 십여년 전 한 글로벌 컨설팅 기업에서 일을 하면서, 신입·경력 컨설턴트 채용 과정에 참여한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원 서류를 살펴보고 면접을 해보면 여성 지원자들이 남성 지원자들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었습니다. 대학과 대학원 시절 성적도 좋고, 외국어 구사능력이나 관련 자격증도 충분하고,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전달하는 능력도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 여러 컨설팅 회사의 파트너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여성 지원자를 뽑을 경우 결혼과 출산 뒤 회사를 그만두지 않을까, 육아를 위해 장기간 일을 떠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당장 먹기에 곶감이 달다’고, 저도 이런 생각 자체를 떨치기 쉽지 않더군요. 글로벌 컨설팅 회사들은 젠더 측면에서 공정한 고용이라는 원칙을 강하게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차별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 시절 경험을 떠올리면 개인적으로는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하고, 또 뭔가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보육에서 남성과 여성의 구실에 대한 형식적 요건을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특별히 문제가 되는 나라는 아닙니다. 출산과 양육 전후의 유급 휴가와 휴직을 합쳐서, 엄마에게 부여되는 모성휴가(maternity leave, 출산휴가), 아빠에게 부여되는 부성휴가(parternity leave, 출산휴가), 엄마와 아빠가 선택적으로 쓸 수 있는 부모휴가(parental leave, 육아휴직)로 구분해서 살펴보면, 부성휴가와 부모휴가를 제공하지 않는 국가가 상당수입니다. 미국은 두가지를 다 제공하지 않고 있고, 영국과 칠레 등은 짧은 부성휴가만 제공할 뿐 아빠가 쓸 수 있는 부모휴가는 없습니다. 한국은 엄마가 모성휴가 3개월과 부모휴가 1년(선택)을 사용할 수 있고, 아빠는 부성휴가 3일과 부모휴가 1년(선택)을 사용할 수 있어 형식적 요건으로는 나쁘지 않죠. 하지만 실제 아빠가 육아휴직을 쓰는 것은 매우 예외적입니다. (그림2)를 보시면 2016년 육아휴직자 가운데 엄마는 8만명이 넘지만 아빠는 7천여명으로 아빠의 비중은 8%에 머물렀습니다.(박미진, ‘성평등 인센티브의 남성 육아휴직 사용 확대효과’, <여성연구>, 2017)

아빠 할당제의 효과

‘경제 활동으로 돈을 벌어오는 아빠와 집 안에서 아이를 돌보는 엄마’라는 전통적 관념은 많은 국가에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엄마 또는 아빠가 부모휴가를 쓸 수 있다고 규정해도 많은 나라에서 엄마가 사용한 비율이 높게 나타납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북유럽의 ‘아빠 할당제’(daddy quota)라는 이색적인 제도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홍승아와 이인선, ‘남성의 육아참여 활성화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2) 이 제도는 부모휴가 가운데 최소한의 기간을 아빠가 쓰도록 강제하고 만약 이 기간을 아빠가 쓰지 않아도 엄마에게 양도할 수 없도록 한 제도입니다(use-it-or-lose-it). 1993년 노르웨이와 1995년 스웨덴에서 부모휴가 가운데 한달을 아빠에게 할당하면서 도입되기 시작해 핀란드, 독일, 포르투갈, 아이슬란드로 확산되었습니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아빠 할당 기간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3개월로 늘어났고, 아이슬란드는 3+3+3 모델이라고 하여 엄마 3개월, 아빠 3개월, 엄마나 아빠 선택 3개월을 쓰도록 해 이 세 나라의 아빠 할당제가 가장 강력합니다.

이들 국가는 제도 도입 이후 아빠의 육아휴직 참여가 대폭 늘어나면서,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 언론들은 육아휴직에 참여한 아빠들을 ‘라테 대디’(latte daddy)라고 부르면서, 자국에도 도입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거나 안고 놀이터와 어린이집과 공원을 누비며 커피를 마시는 스웨덴의 ‘멋진 아빠’라는 이미지가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스웨덴의 사진가 요한 베브만은 육아휴직 경험을 살려서 아이를 키우는 아빠의 모습을 담은 <스웨덴의 아빠들>이라는 사진집을 출판했는데, 지난해 한국에서도 전시회가 개최된 바 있습니다.

이 제도는 단순히 멋진 이미지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미국 과학·공학·의학 학술원 보고서에 의하면, 아빠가 아이의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경우, 아이의 언어 및 인지능력이 향상되고, 성적이 오르고, 정서적으로 안정되며, 친구들과의 관계도 더 좋아지는 ‘아빠 효과’(father effect)가 발생한다고 합니다.(‘양육의 중요성: 0~8세 아이의 부모 지원’, 미국 학술원, 2016)

그런데 약간의 부작용도 있는 것 같습니다. 독일 뒤스부르크 에센대학의 경제학자 다니엘 아브디크와 스웨덴 웁살라대학의 경제학자 아리소 카리미의 연구에 의하면 이 제도가 결혼의 불안정성을 높이는 효과가 관찰되었다고 합니다.(‘현대적 가정? 부성휴가와 결혼의 안정성’, <아메리칸 이코노믹 저널―어플라이드 이코노믹스>, 2018) 앞서 말씀드린 대로 스웨덴의 경우 1995년 1개월의 아빠 할당 기간이 설정되었는데, 이 제도의 적용 대상은 1995년 1월1일 이후 출생한 아이에 국한되었습니다. 두 연구자는 이를 이용해서 1994년 12월에 태어난 아이의 부모와 1995년 1월에 태어난 아이들의 부모를 비교하였습니다. 두 시기는 거의 차이가 나지 않고, 부모가 스스로 선택했다고 보기 어려워서 사회과학자들이 인과관계를 분석하기에 적합한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3-A)에 있는 결과를 보시면 부모휴가 중 아빠가 사용한 부분은 1995년 1월과 2002년 1월에 급등한 것이 보입니다. 1995년은 1개월의 아빠 할당제가 도입된 시점이고, 2002년 1월은 아빠 할당제가 2개월로 늘어난 시점입니다.(3개월로 확대된 것은 올해 1월이어서 분석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사용한 부분은 1995년 1월에는 아빠의 사용과 대체되어 하락하였는데, 2002년 1월에는 하락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점에 아빠 할당 기간이 늘어난 것과 더불어 총 부모휴가 기간이 15개월에서 16개월로 늘어났기 때문에 엄마의 휴가가 아빠의 휴가로 대체된 효과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림3-B)에 표시된 것은 두 집단의 부모 가운데 아이가 다섯살이 될 때까지 이혼한 비율의 누적치입니다. 이것을 보시면 세살이 될 때까지 아빠 할당제의 적용을 받은 집단의 이혼율이 그러지 않은 집단의 이혼율보다 1%포인트(8%)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혼율 격차가 시간이 지나면서 해소되는 것으로 보아 이혼율을 절대적으로 높였다기보다는 이혼 시점을 당긴 측면이 크다고 합니다. 연구자들은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게 되어 보다 빨리 서로에 대한 정보가 쌓인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미국경제학회 인터뷰에서 이것을 이유로 아빠 할당제의 도입이 쓸모없다는 결론에 도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부성휴가 기간을 3일에서 10일로 늘리고 엄마와 아빠가 교대로 육아휴직을 할 경우 급여를 높여서 아빠의 육아휴직 참여율을 높일 계획을 밝힌 바 있습니다.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되며 더 나아가 아빠 할당제에 대해서도 진지한 검토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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