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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초콜릿 좋아하는 당신, 노벨상을 노려라?

등록 2018-10-21 10:34수정 2018-10-21 13:31

[토요판] 신현호의 차트 읽어주는 남자
(23) 노벨상 뒷얘기
다양한 초콜렛. 위키미디어 커먼스
다양한 초콜렛. 위키미디어 커먼스

해마다 10월 초가 되면 노벨상 발표가 있고 그때마다 우리 언론과 국민들은 한국 수상자가 없다는 것에 탄식을 합니다. 약간 겸연쩍은 얘기이긴 하지만, 일본인 수상자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서 질투가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노벨상은 국력과 연구의 전통 등이 종합된 것이라 단기간에 목표를 세운다고 수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상은 잊어버리고 열심히 기초 연구를 수행하다 보면 오히려 수상할 수 있다는 비판도 타당한 것이긴 하지만 어디 사람의 감정이 그렇게 이성적으로만 작동하겠습니까?

노벨상 수상자의 패턴은 사실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선 국가별로 보면 미국이 377명으로 가장 많고 10등 안에 들어가는 국가는 대부분 북미와 유럽의 선진국들입니다. 10등 안에 들어가는 국가 중에서 이 지역을 벗어난 유일한 사례가 일본으로 28명입니다(위키피디아). 수상자의 소속 기관도 예측한 대로 미국의 하버드대학이 36명으로 일등이고,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을 제외하면 10등 안에 든 기관은 모두 미국의 엘리트 대학입니다(물리학, 화학, 생리학, 경제학상 한정, 노벨위원회). 수상 시점의 나이를 살펴보면 2014년 파키스탄 여자아이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탈레반과 맞서 싸워온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17살로 가장 어렸습니다. 과학자들 중 가장 어린 나이의 수상자는 1915년 25살의 나이로 엑스(X)선 분석의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영국의 윌리엄 브래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이고, 전체 수상자 나이의 중간값은 60살로 노벨상은 충분한 업적을 쌓은 후에 주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수상자는 경제학상에서 나왔는데요, 메커니즘 디자인으로 수상한 레오니트 후르비치 교수가 당시 90살이었습니다(노벨위원회). 아 그리고 물론 남성과 여성의 차이도 매우 심해서 총 52명의 여성이 노벨상을 받아 전체 수상자 908명의 5%에 불과한 상황입니다(노벨위원회). 여기까지 보면 전형적인 노벨상 수상자는 하버드대학에 근무하는 60살의 남성 미국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노벨상과 출생 순서

사실 이상의 내용은 언론에서 많이 다루어진 내용인데 노벨상이 워낙에 유명도가 높고 오래된 상이다 보니, 이 외에도 다양한, 때로는 좀 엉뚱한 연구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 몇개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첫번째는 ‘출생 순서 효과’(birth order effect)입니다. 대중 심리학에서는 오래전부터 ‘첫째는 보수적이다, 막내는 창의적이다, 몇째는 동성애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식의 다양한 주장이 있습니다. 합리주의를 기치로 내건 블로그 레스롱(Less Wrong)에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을 대상으로 이와 관련된 조사를 했고, 그 결과가 (그림1)에 정리되어 있습니다(‘노벨 물리학상에서 발견되는 출생 순서 효과’ 2018).

형제자매의 수가 2~5명인 경우를 대상으로 살펴보니, 모든 경우에 첫째의 비율이 공평한 n분의 1 비율일 때에 비해서 뚜렷이 높아서 전체적으로 10%포인트 정도 높았습니다. 이들은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학자 150명을 대상으로 별도로 조사했는데, 이것 역시 노벨상 수상자와 마찬가지로 첫째의 비율이 높았습니다. 이 경우는 그 격차가 17%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의 대규모 조사에 의하면 대부분의 경우 출생 순서에 따라 지능이나 성품이 차이가 나는 효과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노벨상 수상자와 위대한 수학자들에서 나타나는 출생 순서 효과는 자료의 한계(자서전 등의 자료에서 형제의 수와 출생 순서를 유추하다 보니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 우연(수많은 성공 사례를 살펴보다 보면 우연히 첫째가 높은 비율을 띠는 경우도 있다는 것) 또는 투자의 형제간 불비례(첫째에게 가족의 자원이 상대적으로 많이 투여되었기 때문이라는 것) 등이 제시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학자들의 진지한 논의에서는 출생 순서에 따라 타고난 지능이 다르다는 것을 믿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노벨상 수상자 중 첫째 비율 높아
출생순서 따라 지능 차이는 없어
초콜릿 많이 먹는 나라 수상자 많아
상관관계이지 인과관계는 아니야

노벨상은 은퇴 뒤 받는 경우 많아
필즈상으로 대신 연구해봤더니
수상 뒤 논문 수 줄어들어
연구 등한시보다는 주제 바꾼 탓

초콜릿과 노벨상 수상

노벨상 수상자를 점치기 위해서 출생 순서를 따지는 것보다 더 쇼킹한 연구가 몇년 전에 있었습니다. 내과의사인 프란츠 메설리는 초콜릿의 플라보놀 성분이 인지능력 개선에 효과가 있기 때문에 초콜릿 소비량이 높은 나라에서 노벨상을 많이 받게 된다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초콜릿 소비, 인지 능력 및 노벨상’,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 2012) (그림2)를 보시면 가로축에 국민 1인당 연간 초콜릿 소비량이 표시되어 있고, 세로축에는 국민 천만명당 노벨상 수상자 수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보시면 매우 분명하게 초콜릿 소비량과 노벨상 수상자 수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양학자와 인지학자들은 이 논문이 주장하고 있는 논거가 매우 부실하기 때문에, 이 두 변수 사이에는 상관관계는 있지만 인과관계는 없다고 일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차트는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한 대표적인 사례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 같은 저명한 의학저널에 어떻게 이런 논문이 실렸는지 의아해하는 분위기라고 할까요. 그래도 이 연구가 흥미있었는지,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 의학교수인 비어트리스 골럼 팀이 과학과 경제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남성 23명을 대상으로 초콜릿 소비량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노벨상 수상자의 초콜릿 섭취’, <네이처>, 2013). 노벨상 수상자들 중 일주일에 두번 이상 초콜릿을 먹는다는 응답자는 총 10명으로 43%에 달했는데요, 이것은 비슷한 연령대의 교육받은 남성 평균치인 25%에 비해서 뚜렷이 높았습니다. 당연히 이것 역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 설문에 참석했던 수상자들은 “노벨위원회는 시상식에서 금박으로 포장한 메달 모양의 초콜릿을 나눠준다. 이것으로 보아 노벨위원회도 초콜릿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음에 분명하다”거나, “내 아내는 초콜릿 중독인데 아직 노벨상 위원회에서 전화 안 왔어”라는 유의 농담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클락하면 큰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 이후의 연구 성과

이번에는 조금 진지한 연구를 살펴보겠습니다. 노벨상 상금은 900만스웨덴크로나로, 대략 11억원이 넘는데(공동 수상의 경우 수상자들은 이것을 나눠 갖습니다), 실제 가치는 이것보다 훨씬 더 클 것입니다. 강연료가 껑충 뛰고 저서의 판매량도 급등합니다. 노벨 문학상 발표가 나면 수상자의 작품은 심지어 한국의 번역서 시장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혹시 노벨상을 받으면 돈을 너무 많이 벌게 돼서 연구를 등한시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대로 노벨상 수상자 대부분이 나이가 많아 연구의 절정기를 지나거나 심지어 사실상 은퇴한 상태에서 상을 받기 때문에 수상 이후의 연구활동에 대해 분석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하버드대와 노터데임대학의 경제학자 조지 보하스와 커크 도런은 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를 대상으로 이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상과 생산성: 필즈상 수상은 연구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저널 오브 휴먼 리소시스>, 2015) 필즈상은 노벨상과는 달리 40살 이하의 가장 뛰어난 수학자를 대상으로 해 수상자들이 상을 받은 이후에도 상당 기간 현역 수학자로 왕성한 활동을 하기 때문에 분석하기에 용이합니다.

이들은 필즈상 수상자의 비교 대상으로 필즈상 다음으로 저명한 6개의 상(아벨상, 울프상, 베블런상 등)을 40살 이하에서 수상하였으나 필즈상 수상에는 실패한 수학자들로 구성하고 이를 각각 ‘수상자’와 ‘경쟁자’로 명명하였습니다. (그림3-A)를 보시면 수상자와 경쟁자들이 각각 상 수상 전후로 매년 논문을 얼마나 발표하였는지 표시되어 있는데요. 수상 전에는 경쟁자와 수상자가 모두 출판된 논문의 수가 증가한 반면, 수상 이후에는 경쟁자와 수상자들의 행보가 갈려서, 경쟁자들의 논문은 늘어났지만 필즈상 수상자들의 논문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예상대로 위대한 상을 받으면 ‘헝그리 정신’이 사라져서 연구에 등한시하기 때문일까요? 보하스와 도런은 다소 다른 이유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림3-B)는 수학자들이 자신이 주로 하는 연구 영역에서 완전히 새로운 영역으로 변경하는 비율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시면 경쟁자들은 수상 전후로 연구 영역 변경 비율이 일관되게 낮게 유지되고 있지만, 필즈상 수상자들은 상을 받은 이후에는 과감하게 새로운 영역으로 넘어서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벨 연구소의 수학자였던 리처드 해밍은 1956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던 순간 수상자였던 동료 물리학자 월터 브래튼과 함께 있었는데 그때를 회고하면서, “브래튼은 울먹거리면서 ‘나는 노벨상 효과가 무엇인지 안다. 나는 거기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늘 그렇듯 예전의 그 좋은 월터 브래튼으로 남을 것이다’라고 말했지. 나는 이 말이 훌륭하다고 느꼈지만, 몇 주도 되지 않아서 월터가 노벨상 효과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 친구 거대한 문제만 파고 있더라고”라고 적고 있습니다.(‘당신과 당신의 연구’, 1986)

저는 이것이 꼭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장 훌륭한 상을 받음으로써 천재적 업적을 인정받았고, 학계에서의 위치도 견고하게 된 과학자라면 아무나 도전하지 못하는 그런 주제에 과감하게 맞서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상으로 노벨상과 관련된 몇가지 알려지지 않은 연구들을 살펴보았는데, 재미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설마 독자 여러분께서 자녀분들을 훌륭한 과학자로 키우기 위해 첫째 아이에게 투자를 집중한다든가 초콜릿을 잔뜩 사준다든가 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고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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