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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홀로’였기에 가능했던 ‘면 생리대’라는 대안

등록 2018-11-03 09:52수정 2018-11-04 13:41

[토요판] 이런, 홀로!?
면 생리대 입문기
매번 생리대 파우치를 들고 다닐 때면 혹시 주변 사람들이 눈치채려나 걱정하며 종종걸음을 걸었다. 이런 나에게 지난해 여름 일회용 생리대에서 독성물질이 검출됐다는 소식은 20년이 다 된 ‘생리 라이프’에 변화를 가져온 계기가 됐고 면 생리대라는 대안을 탐색할 수 있었다. 게티이미지뱅크
매번 생리대 파우치를 들고 다닐 때면 혹시 주변 사람들이 눈치채려나 걱정하며 종종걸음을 걸었다. 이런 나에게 지난해 여름 일회용 생리대에서 독성물질이 검출됐다는 소식은 20년이 다 된 ‘생리 라이프’에 변화를 가져온 계기가 됐고 면 생리대라는 대안을 탐색할 수 있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어김없이 찾아온 그날, 생리대 파우치를 가방에서 꺼내 화장실로 갈 때면 떠올라 피식 웃게 되는 기억이 있다.

초경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일이다. 가족들은 모두 잠이 든 깜깜한 여름밤 나는 슬그머니 침대에서 나와 생리대를 넣어둔 옷장을 열었다. 생리대를 꺼내려고 뒤적이던 순간, 갑자기 난 큰 소리에 깜짝 놀랐다. 벌써 자는 줄로만 알았던 남동생이 뒤에서 소리를 치면서 와락 달려든 것이다. “누나! 과자 혼자 먹지 마”라고 외치면서. 놀란 것도 잠시 옷장 안에 과자는 없다고 알려주려고 형광등을 켜서 생리대를 보여주려는데 이게 무엇인지 설명할 길이 참 막막했다. 동생은 과자가 없어 실망했고.

그땐 그런 동생이 참 미웠는데, 지금은 내가 생리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어린 동생이 내가 밤마다 옷장을 열어 과자를 찾았다고 상상했을 걸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벗어나기 힘든 일회용 생리대

이 일을 아직까지도 떠올리는 건 남들에게 생리기간을 들켜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아직까지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깊은 밤에 아무리 살금살금 걸어가도 누군가는 눈치를 채고 있는 것처럼, 정말 어려운 일인데도 말이다. 일단은 아무 데서나 트림을 하고 방귀를 뀌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학교, 직장 등 여러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서 지켜야 하는 예절 정도라고 스스로를 설득해 본다. 그래서 매번 생리대 파우치를 들고 다닐 때면 혹시 주변 사람들이 눈치채려나 걱정하며 종종걸음을 걷게 된다.

이런 나에게 지난해 여름 일회용 생리대에서 독성물질이 검출됐다는 소식은 20년이 다 된 ‘생리 라이프’에 변화를 가져온 계기가 됐다. 결과적으론 면 생리대라는 대안을 탐색할 수 있었다. 독성물질 검출을 둘러싼 논란 자체는 혼란이었다. 한 시민단체가 의뢰해서 국내 연구진이 진행한 독성 실험의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는 어떤 기사를 봐도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정부에서 비슷한 실험을 한 뒤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왠지 믿음직스럽진 않았다. 도리어 인터넷 공간에서 익명의 여성들이 털어놓는 생리 경험담을 읽는 일이 속 시원했다. 일단 ‘생리대’라는 소재가 이렇게 많은 사람의 입에 한꺼번에 오르내린 기억이 없었다.

여러 사람의 경험담과 비교하면서 내가 매달 겪어왔던 통증과 불편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됐다. 나는 ‘아파도 죽지는 않아’라는 말만 들으면서 그저 매번 그 시기가 지나길 기다려왔다. ‘월경 전 증후군’(PMS)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져 있지만 사람마다 컨디션에 따라 다양한 고통들이 있고 해결책도 다양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은 면 생리대를 일회용 생리대의 대안으로 꼽았다.

그렇다고 20년간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해오던 습관에서 하루아침에 쉽게 벗어날 수는 없었다. 상황에 따라 야근도 외근도 해야 하는 직장 환경에선 일회용 생리대는 확실히 편리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 예상치 못한 야근이라도 해야 한다면 깨끗한 면 생리대를 미리 준비해서 하루 종일 보관했다가 들고 오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때그때 버릴 수 있는 일회용 생리대만 답인 것 같았다.

생리대를 파우치에 넣고도
‘생리하는 나’ 들킬까봐
스스로 옥죄던 나날들

독성물질 검출 계기로
면 생리대에 입문해
1년 지나서야 적응

불편함을 숨기지 않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던
홀가분함 기억하고 싶어

생리혈이 묻은 생리대를 들고 다니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불쾌한 냄새를 풍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됐다. 인터넷 쇼핑몰 후기를 통해 비닐 안에 보관하면 냄새 걱정은 없고 생각보다 부피가 크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지만 막상 첫발을 떼기까지 반년이 넘도록 진척이 없었다. 제대로 면 생리대를 사려면 한번에 일회용 생리대 4개월치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 부담에 ‘정말 지금인가’ 질문만 던지다가 모니터를 껐다.

올해 초부터 시작한 ‘홀로’ 자취 생활은 면 생리대 구매 버튼을 누르게 된 계기가 됐다. 대학 졸업 이후에도 몇년간 함께 살던 동생이 다른 지방으로 발령이 나면서 온전히 혼자만의 방을 가지게 된 것이다. 혼자만 쓰는 화장실, 혼자만 쓰는 옷 건조대에서라면 아무리 빨아도 생리혈 흔적이 조금씩은 남는 면 생리대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지금이 아니라면 절대 다양한 시도를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조바심이 났다.

확실히 그 판단은 옳았다. 면 생리대를 구매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나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컨디션에 따라, 업무량에 따라 어떤 크기를 사용할지를 조정하는 데에만도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퇴근한 뒤 그날 사용한 면 생리대들을 화장실에서 세탁하는 일을 손에 익히는 데에만도 3개월이 넘게 걸렸다. 나만의 공간에서 생리혈이 묻은 면 생리대를 다시 하얗게 세탁하면서 어느 때보다 홀가분함을 느꼈다.

그렇게 생리대 파동이 일어난 지 1년이 훨씬 지나서야 나만의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20년 가까이 일회용 생리대만 고집한 내가 너무나 바보스럽다. 더 비싼 일회용 생리대를 더 많이 소비한다고 해서 티브이 광고 속 ‘깨끗하고, 맑고, 자신 있는 나’가 될 리는 없었던 것이다.

챙긴 건 건강만이 아냐

일회용 생리대가 나쁘고 면 생리대가 무조건 좋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어디서나 구입할 수 있고 쓰레기통에 버릴 수 있는 장점은 어떤 것도 대체할 수 없다. 그러나 굳이 매번, 하루 종일 일회용 생리대만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예상이 가능한 일상 속에선 깨끗이 빨아놓은 면 생리대를 사용하고 그러지 않은 경우엔 일회용 생리대를 보조하니 병원에 가는 횟수도 줄었고 비용도 적게 들었다. 수십년이 지나서야 분해된다는 일회용 생리대 쓰레기를 줄인 뿌듯함은 덤이다.

그동안엔 다른 것을 상상할 여유가 없었다. 면 생리대를 오프라인 매장에서 찾아볼 수 없었고 유튜브나 블로그 후기 속 온라인 정보도 경험으로 체득하기까지는 시간과 돈이 필요했다. 게다가 직장 생활과 병행하면서 면 생리대에 익숙해지는 일은 꼼꼼함의 최대치를 요구할 것이 뻔했다.

특히 혼자 살지 않았다면 면 생리대를 사용하기까지 더 큰 용기가 필요했을 거 같다. 남성 가족 구성원과 함께 사용하는 공간에서 면 생리대를 냄비에 푹푹 삶을 수 있을까. 가족 분위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쉽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을 것 같다. 어떤 후기에선 가족들을 배려하기 위해 속이 비치지 않는 용기에 물을 받아 담가놓았다가 세탁을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하려면 지금보다는 확실히 더 부지런해져야 할 것이다.

면 생리대를 쓰면서 느낀 홀가분함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다. 면 생리대의 장점은 건강에 좋고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것만이 아니다. ‘생리를 하는 나’에 대해 단순히 예절의 수준을 넘어 옥죄고 있었던 규범들을 풀어내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동안엔 아무에게도 티 내지 않고 나만 불편함을 참고 말면 된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나 참기에만 급급하지 말고 불편함을 기억하고 다양한 해결책을 직접 탐색하고 시도해야 했다. 이번에야 우연한 기회에 혼자만의 공간을 가지게 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지만 언제까지나 이 공간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닐 듯하다. 앞으로 어떤 동거인이 생기든 간에 나의 불편함을 참지 않고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었던 그 홀가분한 기분만큼은 잊지 않고 추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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