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런, 홀로!?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것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것
서른살 생일, 무뚝뚝한 아빠에게서 온 축하 문자. 내 생애 받아볼 일 없을 것 같았던 아버지의 생일 축하 문자를 나이가 계란 한판을 채우니 받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서 부모님과도 점점 친구가 되어간다. 게티이미지뱅크
생일 축하한다는 문자 받아
냉정했던 엄마도 갱년기 겪으며
숨겨왔던 감정 솔직하게 드러내 어른과 아이 아닌
어른과 어른의 관계로
반주하고 고민 나누며
부모님과 친구가 되어간다 ‘너무 단호해서 단호박인 줄 알았던’ 엄마의 뒷모습을 그 뒤로도 몇번 더 봤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동네 놀이터에서 놀다 남자아이와 싸운 적이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나는 분에 못 이겨 씩씩대다 이내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는데, 마침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지나가던 엄마와 눈이 딱 마주쳤다.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저 녀석에게 뭐라고 해주지 않을까’ 하는 알량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나를 보고도 그대로 지나쳐 집으로 향했다. 냉정한 엄마의 뒷모습에 더더욱 서글퍼졌는지도 모르겠다. 집에 돌아와 “어떻게 내가 울고 있는데도 모르는 척하고 지나갈 수가 있어?”라고 서럽게 묻는 내게 엄마가 눈길도 주지 않고 말했다. “같이 싸웠으면 아무리 남자애여도 이기려고 달려들어야지. 엄마가 너 대신 남자애한테 뭐라고 하는 순간 넌 확실하게 지는 거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그땐 이해하지 못했다.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것 요즘 부모님이 변했다. 아니 정확히는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무뚝뚝한 아빠는 요즘 그 누구보다도 잘 삐지는 사람이 됐다. 주변 사람을 좀 힘들게 할 정도로 잘 삐진다.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고, 퇴근하면 집 소파에서 곯아떨어지기만 했던 그 옛날의 30대 아버지는 이제 집에 없다. 뒤집어 생각하면 뒤늦게 예민한 감수성을 자랑하면서 그만큼 살가운 사람이 되기도 했다는 뜻이다. 내가 오랜만에 집에 가면 그렇게 좋아하고, 외식이라도 갈 참에는 먼저 팔짱을 끼기도 한다. ‘우리 딸 축가축가∼’ 내 생애 받아볼 일 없을 것 같았던 아버지의 생일 축하 문자도 내 나이가 계란 한판을 채우니 받기 시작했다. 비록 술김에 문자를 보냈을 게 확실할지언정 말이다. 엄마도 변했다. 자식들에게만큼 자신에게도 엄격했던 우리 엄마는 5년 전부터 갱년기를 겪으면서 숨겨왔던 감정들을 폭발시키고 있다. 엄마는 내가 아기 때 덮고 자던 이불을 덮어쓰고 펑펑 울었고, 내게 전화해 “내 인생이 허무하다”는 얘기를 하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모든 증상을 갱년기라는 한 낱말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오춘기’를 지난 뒤, 갱년기 ‘소강상태’를 겪는 요즘의 엄마는 마치 화력을 잃은 휴화산을 보는 느낌이다. “옷은 벗으면 춥고 입으면 더워.” “갑자기 짜증이 나다가도 조금 지나면 괜찮아져. 참으면 돼.” 갱년기의 대표적인 증상도 마치 자연의 섭리처럼 서술하신다. 마치 미칠 듯이 나대는 호르몬마저 컨트롤할 수 있게 된 수도승처럼 말이다. 나이가 계란 한판을 채우고 나도 변했다. 요즘 좀 부모님이 보고 싶어질 때가 많다. 대학에 입학하고 직장에 다니고, 10년째 자취를 하면서 조금 외로워졌기 때문일까. 1년에 두번, 명절 때만 가뭄에 콩 나듯 고향을 찾던 내가 올해만 벌써 여섯차례나 고향에 다녀왔다. 집에 간다고 해서 특별하게 하는 건 없다. 반주나 하면서 삶의 고충을 나누는 정도랄까. 남과는 다른 조금 특별한 사람들. 가족과 함께 나누는 ‘그런’ 느낌이 그리워서인지도 모르겠다. 나쁜 표현이 아니라, 같이 나이를 먹으면서 부모님이 좀 ‘만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전에는 부모님과 나의 관계가 ‘어른-아이’의 관계였다면, 지금은 똑같이 이 거친 세상을 헤치며 살아가는 ‘어른-어른’이 된 느낌이다. 아직도 부모님 눈에 나는 ‘아이’ 같아 보일 테지만 말이다. 이제는 아빠 입맛에 맞게 소맥도 제대로 탈 줄 알고, 목욕탕에서 엄마 등을 밀어주면서 시집 욕도 찰지게 같이해주고, 갱년기에 좋다는 영양제를 대령하며 ‘엄마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노력한다. 아무리 딸이라도 이제 ‘애어른’ 정도로는 봐주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짜장면과 단호박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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