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관련 수형인들이 3월19일 오후 제주지법 형사2부(재판장 제갈창) 심리로 열린 재심 청구 사건 심문기일에 출석하기 앞서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왼쪽부터 법무법인 해마루의 임재성·김세은 변호사와 재심을 청구한 부원휴(89) 오희춘(85)씨. 앞쪽 김평국(88·왼쪽) 현창용(86)씨는 휠체어를 타고 법원에 왔다. 김민경 기자
제주 4·3 당시 불법구금과 고문을 당한 뒤 군사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수형인 18명의 재심이 개시된다. 4·3 관련 형사재판에서 재심 개시 결정은 처음이다.
제주지법 형사2부(재판장 제갈창)는 3일 “재심 청구인들의 구속영장 존재가 전혀 확인되지 않고, 일부 청구인들은 40일을 초과해 구금됐거나 조사 과정에서 폭행과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 불법구금 내지 가혹행위는 (당시) 제헌헌법 및 구 형사소송법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서 재심 사유가 존재한다”며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제헌헌법과 옛 형사소송법은 사람을 체포·구속하기 위해서는 법관이 발부한 영장이 있어야 하며, 영장이 발부되더라도 구속기간을 40일로 제한하고 있다. 공무원의 불법구금이나 고문은 재심 사유에 해당한다.
이 사건 핵심 쟁점은 재심의 전제인 ‘유죄의 확정판결’이 존재하는지였다. 4·3 수형인들은 1948년 12월과 이듬해 7월 두 차례 제주도에 설치된 고등군법회의(군사재판)에서 내란죄, 간첩죄 등으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전국 형무소에 분산 수감됐다. 그러나 남아 있는 판결문이나 재판 기록이 없는 상태다. 유일한 기록은 ‘수형인 명부’뿐이다. 이 명부에는 2530명의 이름, 본적지, 판결, 선고 일자, 수감 장소가 기재돼 있다.
재판부는 수형인 명부와 재심 청구인들의 진술이 일치한다며 ‘유죄의 확정판결’이 존재한다고 인정했다. 먼저 재판부는 “유죄의 판결은 특정인이 어떤 형벌 법규를 위반했다는 사실을 확정하고, 해단 법률에 따른 위반자의 처우를 결정하는 사법기관의 유권적 판단”으로 정의한 뒤 “사법기관의 판단이 내려진 것으로 인정되는 이상, 판단 권한이나 과정에서의 하자가 존재하더라도 판결 자체의 성립이나 존재를 부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즉 ‘원판결의 등본’을 제출하지 못했다고 해서 재심 청구에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이어 재판부는 “수형인 명부의 기재에 의하면 재심 청구인들은 군법회의 재판을 받았고, 당시 군법회의는 일제의 계엄령 등에 의해 재판권을 행사하는 지위에 있었다”며 “수형인 명부에 기재되어 있는 재심 청구인들에 대한 형과 그 언도 일자, 복형장소 등이 진술 내용과 대부분 부합할 뿐만 아니라 범죄·수사경력회보에 기재된 내용과도 대체로 일치한다”고 밝혔다.
재판 과정에서 추가로 발견된 오영종(88)·현우룡(93)씨의 ‘군 집행지휘서’에도 재판부는 의미를 부여했다. 재판부는 “군 집행지휘서 등은 해당 재심 청구인들에 대해 어떠한 형태로든 당시 법령에 따른 ‘판결’의 존재가 전제되지 않은 이상 작성되기 어려운 문서”라고 지적했다. 이를 종합하면 “재심 청구인들에 대한 공소제기, 공판기일 진행, 판결 선고 등 절차가 적법하게 이루어졌는지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육지로 이송돼 형무소에 수형인으로 구금된 것은 수형인 명부에 기재된 형벌을 부과하기로 하는 군법회의 판단이 근거가 되었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재판부는 결론 내렸다.
4·3 당시 전주(9명), 인천(6명), 대구(2명), 서울 마포형무소(1명)에 수감됐던 생존자들은 지난해 4월 “인권유린 행위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구한다”며 약 70년 만에 재심을 청구한 바 있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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