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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개도 웃어요! 그거 맞아요, 개 웃음소리”

등록 2018-09-02 09:29수정 2018-09-02 10:02

[토요판] 이런, 홀로!?
유기견이 행복할 수 있는 나라
유기견에게는 가족을 잃었다는, 부모에게 버려졌다는 처절한 슬픔이 표정에서 읽힌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그런 표정은 ‘가족’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싹 사라져버리고 ‘행복한 개’로 변신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유기견에게는 가족을 잃었다는, 부모에게 버려졌다는 처절한 슬픔이 표정에서 읽힌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그런 표정은 ‘가족’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싹 사라져버리고 ‘행복한 개’로 변신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캐나다 에어비앤비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덩치 큰 개가 앞길을 막았다.

호스트: “자, 인사해요. 얘 이름은 밀리.”

나: “아 네~ ^^; 하이 밀리~.”

진땀을 쓰윽 닦았다. 한국의 내가 살던 동네에는 기껏해야 내 넓적다리만한 개밖에 없었는데, 이 밀리라는 개는 쭉 일어서면 내 어깨까지 올라오는 크기다. 체중은 열살짜리 어린이 한명은 거뜬히 넘을 것 같고, 거무튀튀한 발가락은 우둥퉁하고 묵직하다. 입을 쫙 벌리면 그 크기는 내 입의 세배. 그 안에 날카로운 이빨이 빼곡하다. 인간계 대표 쫄보는 잔뜩 겁을 먹었다. 그런데.

엥? 꼬리가 프로펠러처럼 오도도도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입은 웃는 듯 헤벌어져 있다. 이 인간이 언제 쓰다듬어주나 기다리는 자세로 날 쳐다본다. (멀.뚱.멀.뚱. 어서 들어와서 쓰다듬지 뭘 꾸물대시나?) 경계하지 않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내가 이 집에 손님으로 온 걸 이미 완벽하게 깨달은 눈치다. 어허~ 훌륭한 견공이로다. 한국에 있는 우리 집 견공께서는 귀한 손님이 오면 귀가 찢어질 듯 짖어대고, 때로는 손님 발 냄새 맡는 척하다가 발뒤꿈치를 앙! 하고 깨물어버리는 매너를 자랑하는데.

캐다나 여행 숙소에서 만난 밀리
미국서 입양된 친화력 좋은 견공
안락사 피해 국경 넘어온 유기견
한국은 유기견 입양 보내는 나라

최근엔 외국여행 가는 사람들이
비행기 화물편으로 운송 봉사도
개도 행복하면 헥헥거리며 웃어
버려진 개도 가족 찾을 때 행복

견공의 훌륭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얼마나 훈련이 잘돼 있는지, 하루에 배변을 두세차례 몰아서 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뒷마당 문을 열어주면 아침용 소변을 깨끗이 해결하고 집에 들어온다. 가끔 지나친 수분 섭취로 소피가 급히 마려울 때면 뒷마당으로 나가는 문을 긁는다. 문 열어달라고.

북미의 개인주의 스타일은 개에게도 적용되는 걸까. 매일 아침 엄마(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출근하면 밀리는 알아서 2층으로 올라가 엄마 침대에 누워 기다린다. 그러다 좀 무료하다 싶으면 1층에 내려와 자기 침대에 앉아 있고, 내가 집 안을 돌아다닌다 싶으면 뒷마당 문을 열어달라고 나를 졸라 햇볕을 쬐고 들어온다. 인간인지 개인지 헷갈릴 정도로 자기만의 시간을 알차게 보낸다. 어쩌면 혼자 있을 때 밀리는 <똑똑한 반려견 되기 101가지 방법> 같은 책을 들춰 볼지도 모르겠다.

밀리의 파란만장한 견생사

“밀리 몇 살이에요?”

“열한살 정도요. 저랑은 8년을 살았어요. 얘가 세살 정도일 때 유기견 센터에서 데려왔거든요.”

밀리는 유기견이었다. 주인에게 버림받아 고속도로를 돌아다니다 비쩍 마른 채 유기견 센터에 입소했고, 지금의 주인을 만났다고 했다. 밀리가 발견된 건 미국이었는데, 미국 쪽 동물보호소에서 입양 공고 기간이 끝나 안락사를 피해 캐나다로 옮겨졌다고. 밀리에겐 이토록 파란만장한 견생사가 숨겨져 있었다.

“제 주위 사람들은 유기견 보호소에서 반려견 입양을 많이 해요. 아는 사람 중 80% 정도는 유기견을 입양했어요.”

문득 교환학생 시절에 만났던 미국 할머니 반려견이 떠올랐다. 핑크색 혀가 유난히 눈에 띄었던 까만 믹스견이었는데, 역시 유기견이었다. 사람을 유난히 좋아해 누구에게나 예쁨받았다. 할머니 집에 놀러 가면 어느새 내 옆에 다가와 쓰다듬어달라고 까만 주둥아리를 들이밀었다. 유기견에게는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있고, 안 좋은 버릇이 들어 함께 살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만난 유기견들은 온갖 애정을 퍼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웠고, 훈련도 잘돼 있었다.

미국과 캐나다는 유기견 입양이 활발한 나라다. 심지어 두 나라는 외국에 있는 유기견을 가족으로 맞아들이기까지 한다. 한국은 북미에 유기견을 ‘입양 보내는’ 나라 중 하나다. 국내에서 입양이 잘 안 되는 대형견이나, 믹스견이 가족을 만나러 해외로 먼 길을 떠난다.

그런데 북미로 입양 가는 유기견 이동 경비가 만만치 않아 문제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이런 봉사가 나왔다. ‘유기견 이동봉사’. 해외로 입양 가는 유기견을 본인이 여행 갈 때 타는 비행기편 화물로 운송해주는 봉사다. 유기견을 보호자 없이 해외로 보내면 돈이 100만원 정도 드는데, 봉사자의 비행기 화물로 보내면 수화물 추가 가격 20만~30만원 내외로 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비용은 입양을 보내는 기관이나 입양자 쪽이 전액 부담한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꽤 생소한 봉사였는데, 소셜미디어 홍보글과 동참하는 연예인 사진을 자주 접해 그런지 이젠 나도 시도해볼까 고민할 만큼 익숙한 이야기가 됐다. 그런데 이동봉사를 하려면 필요한 조건이 있다. ‘환승편’은 안 된다는 것. 반드시 ‘직항’이어야 한다. 부족한 경제 사정으로 눈이 빠지게 ‘환승 비행기’를 검색하는 나는 봉사조차도 불가능한 인간….(잠깐, 눈에서 왜 진땀이 나지;;)

친구 동생이 두달 전 미국으로 귀국하면서 이동봉사를 신청해 유기견 두마리를 데려갔다. 공항에 도착해보니 어미 개와 어린 강아지가 공항에서 봉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개는 따뜻한 봉사자 덕에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함께 비행한 유기견이 현지에서 따뜻한 새 가정을 찾게 되면, 봉사자는 유기견의 행복한 근황 사진을 받아 볼 수 있다.

개 웃음소리를 자주 듣고 싶다

개도 행복하면 웃는다. ‘웃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웃음소리’까지 낸다. 사람처럼 ‘깔깔’ ‘낄낄’ 이런 소리는 아니고 ‘헥헥’ 하는 소리가 바로 개 웃음소리다.

우리 집에서 15년째 애지중지 끼고 사는 5㎏짜리 꼬맹이 개로부터 이 사실을 알게 됐는데, 처음에는 이게 힘들어서 헉헉대는 소리인 줄 알고 크게 당황했다. 그런데 외출하려 목줄을 꺼냈을 때, 간식을 꺼내는 소리가 들릴 때, 놀이시간이 재밌을 때 등 온갖 행복한 시간에만 이 소리를 내는 걸 보고 이건 기뻐하는 소리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더군다나 수의사 선생님께 물어봤더니 “개도 웃어요! 그거 맞아요. 개 웃음소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개에게 ‘웃음’이 있듯이, 개의 감정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다양하다. 비가 와서 산책을 못 하면 ‘우울’한 듯 구석에 앉아 있고, 주인이 다른 개를 예뻐하면 ‘질투’하면서 깡깡! 짖고, 주인이 슬퍼하면 옆에 엉덩이를 대고 철퍼덕 앉아 ‘위로’한다. 5㎏ 남짓한 개에게 이렇게 다채로운 감정이 있을 줄은 반려견을 입양하기 전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유기견에게도 감정이 있다. 유기견에게는 가족을 잃었다는, 부모에게 버려졌다는 처절한 슬픔이 표정에서 읽힌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그런 표정은 ‘가족’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싹 사라져버리고 ‘행복한 개’로 변신한다.

인터넷에 올라온 입양 전후 사진을 보면 같은 개인데도 표정이 완벽하게 다르다. 똘똘해진 눈망울에, 하늘로 무섭게 치솟은 입꼬리, 행복함에 젖어 있는 핑크색 혓바닥. 누가 봐도 생기 충만한 사랑스러운 개가 된다. 얼마 전 그렇게 슬퍼하던 그 유기견이 정말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최근 한국에도 유기견 입양이 늘어나면서 유기견이 ‘행복’을 되찾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공고 기간이 끝난 유기견의 안락사를 막기 위해 임시 보호를 자처하는 사람, 텔레비전에 도움이 필요한 개가 나오면 직접 연락해 입양하겠다 나서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급히 입양 보내야 할 유기견이 나오면 네티즌은 힘을 합쳐 입양 홍보에 힘쓴다. 사람들이 애쓴 덕분에 유기견들은 필요한 가족을 만나곤 한다. 그렇게 우리나라에도 ‘밀리’처럼 행복한 유기견이 늘어나는 추세다.

에어비앤비 숙소를 떠나던 날 밀리를 찾았다.

“밀리야 만나서 반가웠어. 고맙다. 너의 존재만으로 이 여행이 더 즐거웠다. 악수 한번 해야지? 피이~스.”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뭉툭한 엉덩이를 슬그머니 들이민다. 뭐 별수 있나, 쓰다듬어드려야지.

권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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