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커가 서울 시내 한 카페에서 해킹을 시연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명박 정부 시절 경찰이 불법으로 피내사자의 전자우편과 시민단체 누리집 게시판 등을 감청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불법 감청’의 대상과 규모 등에 관심이 쏠린다. 구체적인 혐의점을 포착하지 못해 정식 수사에도 이르지 않은 ‘피내사자’를 대상으로 한데다, 법원의 영장 등 사법적 통제수단이 전혀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불법 감청이 매우 광범위한 규모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경찰청 사이버보안수사대가 사용한 불법 감청 시스템은 인터넷 회선을 통째로 감시하는 ‘패킷 감청’과 유사한 형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패킷 감청’은 인터넷망에 접근해 중간에서 그 회선을 오간 데이터를 모두 가로채는 방식이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이후 패킷 감청을 위한 장비를 도입해 국가정보원 등을 통해 패킷 감청을 일삼았다.
패킷 감청은 그 회선을 오가는 인터넷 활동을 실시간으로 모두 감시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도·감청보다도 그 위험성이 훨씬 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실제 국가정보원이 패킷 감청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미국에 서버가 있는 구글의 전자우편 서비스인 지메일의 수·발신 내용을 엿보고 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공개된 바 있다. 당시엔 지메일의 도·감청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더구나 회선 자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범죄 혐의와 무관한 사람이 해당 회선을 통해 주고받은 통신 내역까지 모두 감시망에 노출된다는 위험성도 크다.
이런 위험성 때문에 패킷 감청을 위한 ‘통신제한조치’를 받기 위해서는 구속·체포영장 발부와 마찬가지로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 경찰청 보안사이버수사대는 이런 사법적 통제를 벗어나 불법 감청을 벌여온 셈이다.
감청에 동원된 것으로 추정되는 ㅇ업체의 ‘클라이언트 전산시스템’(B.F.S Matrix SW)이 7800만원으로 고가인데다 경찰청 보안국이 직접 구매한 것으로 나타난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경찰 고위층이 불법 감청에도 개입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황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청 특별수사단(특수단)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서는 2010년 초대 경찰청 보안사이버수사대장을 맡았던 민아무개 경정의 구속영장만 신청한 상황이다.
이날 구속영장이 신청된 민아무개 전 보안사이버수사대장이 어떤 감청 대상자의 인터넷 기록에 접근해 어떤 자료를 빼냈는지도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특수단은 “민 경정이 군(국군사이버사령부)으로부터 ‘레드펜’ 자료(정부·정책 등 비난 댓글 작성자 아이디, 닉네임 등)를 건네받아 수사에 활용했고 이 과정에서 감청 프로그램을 이용해 영장 없이 불법 감청했다”고만 밝힌 상태다.
오병일 진보넷 활동가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영장 없이 불법으로 전자우편을 감청했다는 것은 중대한 범죄다. 특정 인터넷 서비스 업체의 서버를 모두 들여다보는 방식을 사용했다면 그 피해 규모 역시 광범위할 수 있다. 경찰의 불법 감청에 대한 진상이 명확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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