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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배달음식 플라스틱에 죄책감이 든다면

등록 2018-08-04 09:51수정 2018-08-04 11:12

[토요판] 이런,홀로!?
플라스틱과 나

1인가구 따라 성장한 배달음식
겹겹이 싼 비닐과 플라스틱이
돌고 돌아 다시 날 위협한다

쓰레기로 폐쇄된 보라카이섬
더 파괴시키지 않을 고민을
미미한 나부터 시작해야 할 때
플라스틱 뚜껑을 열면 떡볶이를 담은 플라스틱 몸통에 비닐 랩이 씌워져 있다. 비닐 랩을 벗겨낸다. 떡볶이를 담은 플라스틱 통 옆에는 달걀찜을 담은 플라스틱 통, 주먹밥을 담은 플라스틱 통도 있다. 함께 온 수저도 플라스틱이다. 잘 싸맨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1층 재활용 통에 담으면서 늘 죄책감이 든다. 게티이미지뱅크
플라스틱 뚜껑을 열면 떡볶이를 담은 플라스틱 몸통에 비닐 랩이 씌워져 있다. 비닐 랩을 벗겨낸다. 떡볶이를 담은 플라스틱 통 옆에는 달걀찜을 담은 플라스틱 통, 주먹밥을 담은 플라스틱 통도 있다. 함께 온 수저도 플라스틱이다. 잘 싸맨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1층 재활용 통에 담으면서 늘 죄책감이 든다. 게티이미지뱅크

혼자 방에 굴러 다니다 배가 고프다. 배달 앱에서 떡볶이를 장바구니에 넣고 간편 결제로 버튼 하나 띵 누르면 40분 뒤 집 앞에 배달음식이 온다. 떡볶이를 들고 식탁에 앉아 큰 비닐봉지에서 플라스틱 통을 빼낸다. 플라스틱 뚜껑을 열면 떡볶이를 담은 플라스틱 몸통에 비닐 랩이 씌워져 있다. 비닐 랩을 벗겨낸다. 떡볶이를 담은 플라스틱 통 옆에는 달걀찜을 담은 플라스틱 통, 주먹밥을 담은 플라스틱 통도 있다. 함께 온 수저도 플라스틱이다. 떡볶이를 먹고 남은 음식물 찌꺼기를 버리고 최대한 깨끗하게 헹궈내 버리지만 이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재활용이 안 될 가능성이 높다. 잘 싸맨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1층 재활용 통에 담으면서 늘 죄책감이 든다.

최근 몇몇 나라들은 카페에서 파는 음료에 쓰이는 빨대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물건의 과대 포장을 줄이고 플라스틱이 반드시 필요할 경우에 생분해 플라스틱 사용을 권고한다. 생분해 플라스틱은 기존 플라스틱에 비해 짧은 시간 내에 자연에서 썩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제품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배달 음식이 복병이다. 1인가구가 늘어나고 배달음식 업계도 날로 성장하지만 그만큼 재활용이 잘 되지 않고 썩지 않는 플라스틱 쓰레기도 늘어만 간다. 세계에서도 순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높은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를 발생시키고 있는데, 그마저도 업체 비용 문제로 생분해 플라스틱은 잘 쓰이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별로 특별하지 않았다. 쓰레기와 분리수거에 대한 윤리 의식이 비교적 높은 엄마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나도 모르게 체득하게 됐다. 솔직히 말하면 자손에게 물려주기 위한 지구라든가 하는 이야기는 잘 와닿지 않는다. 쓰레기에 고통스러워하는 동물 사진은 그나마 조금 뜨끔거릴 뿐 실천으로까지는 좀처럼 이어지지 않는다. 실천은 별나 보이고 귀찮고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러다 우연히 한 기사를 보게 됐다. 영국에서 판매된 여러 소금 제품 안에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돼 모두 수거했단다. 인간의 욕심이 돌고 돌아 동물을 넘어 이제는 인간에게 재앙으로 다가가는 시기가 됐나 보다. 미세먼지, 지구온난화로 제트기류가 무너져 생긴 극강 한파, 그리고 말도 안 되게 더운 지금의 여름 등. 결국은 나 개인을 위해 조금이라도 환경 오염에 덜 기여하고자 노력하게 됐다. 미미하겠지만 나 같은 사람들의 행동이 모여 그나마 내가 덜 고통받기 위해. 테이크아웃 컵 대신 텀블러를 쓰는 것처럼 플라스틱을 발생시키지 않으려 노력하는, 할 수 있는 선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의 마인드로 노력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내 주변의 누군가가 실천하고 있을 때 나도 모르게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봐온 엄마에게 영향을 받았듯이, 최근에는 옆자리 동료에게 그 영향을 크게 받게 됐다. 동료는 채식주의자에 환경운동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 나에게 동료는 사실상 거의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하루 동안 쓰레기를 아예 만들어내지 않는 것)에 가까웠다. 플라스틱 테이크아웃 물품은 일절 쓰지 않고 점심시간에도 늘 작은 에코백과 텀블러를 챙겨 나갔다. 그 동료는 나에게 어떠한 강요도, 제안조차 하지 않았지만 옆에서 지켜보며 나도 저 정도는 실천할 수 있겠지 하며 할 수 있는 걸 하게 됐다. 주변의 힘은 생각보다 컸다. 나 말고 다른 동료도 그 동료를 보고 실천하기 시작했다. 근래 한국에서 매장 내 테이크아웃 컵 사용을 엄격하게 금지하기 전부터 몇몇 동료들과 테이크아웃 컵을 사용하지 않고 텀블러 사용을 서로 약속했다. 물론 조금 귀찮긴 하지만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다. 주변에 강요한 적은 없지만 내가 이런 걸 실천하고 있다고 늘 알렸다. 그랬더니 남자친구도 스스로 한번 해볼 만하겠다 싶었다며 카페 매장에서 일회용컵 대신 유리컵을 요청해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주변의 실천을 직접 목격하게 되면 좀더 쉽고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얼마 전, 여름휴가로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로 여행을 떠났다. 코타키나발루에서 이틀 묵고 바로 약 3시간이 넘게 걸리는 만타나니라는 섬으로 향했다. 섬이 워낙 아름답고 조용해 휴양하기에 딱이라기에, 버스와 배를 갈아타야 하는 불편한 교통편에도 2박을 머물기로 계획했다. 어렵게 도착한 만타나니섬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얕고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닷물에 고요한 자연환경이 너무너무 아름다운 섬이었다.

그러나 해변은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만타나니섬은 아직까지 크게 알려지지 않은데다 오래 머물다 가는 관광객이 적어 섬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쓰레기는 적었지만, 문제는 보르네오섬에서 밀려오는 수많은 쓰레기들이었다. 해변은 정말 발 디딜 틈 없이 쓰레기로 빼곡했다. 해변을 따라 걷는데 쓰레기가 너무 많아 발을 어떻게 디뎌야 할지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찾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사람이 사는 집이 있거나 리조트, 펜션 앞의 해변은 사람들이 직접 청소해 그나마 깨끗했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의 해변은 엄청난 쓰레기가 쌓이고 쌓여 있었다. 만타나니 사람들은 하루에 몇번씩 집 앞 해변을 청소했지만 쓰레기는 계속해서 쌓인단다. 자고 일어나면 한가득이다. 심지어 어떤 집 앞에서는 페트병에 물을 채워 수백개를 쌓아두는 퍼포먼스 아닌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지난 4월부터 보라카이가 폐쇄됐다. 인간이 버린 쓰레기는 결국 인간에게 손해를 가하는 식으로 돌아오고 있다. 만타나니섬도 이런 식으로 가다간 폐쇄될지도 모른다. 내가 묵었던 펜션은 만타나니의 환경 파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 직접 실천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곳을 포함한 만타나니의 여러 숙소는 플라스틱을 일절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페트병에 담긴 생수가 아닌 보르네오섬에서 직접 떠온 물을 관광객들에게 제공했다. 우리 숙소는 오로지 전기를 태양광 발전으로만 가동했고 저녁 9시에 발전기를 내려 새벽엔 자동으로 모든 전기가 끊겼다. 더운 나라라 견딜 만하긴 했지만 온수도 가열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나오지 않았다. 변기 물도 재활용한 물이었고 당연히 에어컨도 없었다. 섬이라 쓰레기 처리도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드니 최대한 쓰레기 발생을 줄이려 노력하고 있었다. 심지어 묵은 방의 한 면은 벽돌이나 시멘트가 아닌, 플라스틱 병에 진흙을 채워 쌓은 뒤 그 사이사이를 흙으로 채운 방이었다. 예전에 적정기술을 잠깐 조사했을 때 봤던 사례를 실제로 보게 됐다. 벽돌 같은 재료를 만들어내기 위해 드는 비용을 쓰지 않고, 이미 발생한 쓰레기를 재활용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더운 나라이기 때문에 이 벽은 창문 이외에도 바람이 잘 통하게 해주고 진흙으로 온도를 낮추는 데 효과가 있다.

보라카이 다음은 어디?

2박3일 동안 이 숙소에 머물면서 당연히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또 적응하니 생각보다 살 만했다. 보르네오섬에서 원주민과 관광객들이 쓰레기를 마구마구 버려댈 때 만타나니섬과 사람들은 그 쓰레기를 고스란히 받아내며 처리를 고민하고 있다. 당장 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환경을 더 좋게 만들지는 못해도, 더 파괴시키지 않을 고민을 하게 된다. 혹은 이미 상해버린 자연 속에서 어떻게 자연과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입사 후 습관적으로 매일같이 사먹던 커피를 담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들, 1인가구 핑계로 자주 시켜먹는 배달음식을 담은 플라스틱 그릇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산 물건을 습관적으로 담는 비닐봉지들, 또 쇼핑몰에서 산 옷을 담는 비닐봉지들. 지금은 보라카이와 만타나니겠지만 다음은 또 어디가 될지 모른다.

혜화붙박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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