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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사람이 싫어서 동물과 사는 건 아니에요

등록 2018-07-08 09:32수정 2018-07-08 11:39

[토요판] 이런,홀로!? 1인 가구의 동물가족
‘정상가족’의 반려동물은
“새 식구”라고 부르면서
1인 가구에는 묻는다
“그래서 결혼 안하는 거지?”

아픈 가족을 보살피듯
생명은 돌봄이 필요하다
그게 사람이든 개·고양이든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고 싶다
애완에서 반려로 반려동물의 개념이 달라진 지 10년은 훌쩍 넘었는데, 1인 가구의 반려동물에게만은 아직 반려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데 인색하다. 4인 가구에서 반려동물을 새로 들이면 막내가 들어왔다, 새 식구가 생겼다고 말하면서, 1인 가구가 반려동물을 들이면 결혼하면 어쩌려고 하느냐는 말부터 나온다. 게티이미지뱅크
애완에서 반려로 반려동물의 개념이 달라진 지 10년은 훌쩍 넘었는데, 1인 가구의 반려동물에게만은 아직 반려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데 인색하다. 4인 가구에서 반려동물을 새로 들이면 막내가 들어왔다, 새 식구가 생겼다고 말하면서, 1인 가구가 반려동물을 들이면 결혼하면 어쩌려고 하느냐는 말부터 나온다. 게티이미지뱅크

저녁 약속을 거의 나가지 않는 이유는 개가 아프기 때문이다. 반려견 레니가 5월 말부터 종종 경기를 일으키고 먹은 걸 게워내고 있다. 밤에 잠을 잘 못 이루고 새벽에도 몇 번씩 깨기 때문에 나도 잠을 잘 못 자고 있다.

레니는 아직 8살밖에 되지 않았다. 기대수명이 최소 7~8년은 더 남았다. 그런데 수의사 선생님은 레니 신장이 고장났다고 했다. 선천적으로 좋지 않았을 수 있지만 내가 잘 돌보지 않아서일까 미안하다. 잘 짖지 않는 착한 개라 혼자 집에 두고 다닌 적이 많았다. 말 못할 스트레스가 레니의 병을 키웠을지도 모른다. 나는 하루에도 10번씩 제발 우리 레니 오래 살게 해달라는 기도를 한다.

반려동물에 왠 저출산?

집에서는 항상 동물을 키웠다. 가족상을 처음 치른 게 대학생 때라 성인이 될 때까지 죽음의 무게를 실감하지 못했다. 누군가와의 사별이 그렇게나 슬프고 영영 끝이라는 사실을 정을 나눈 동물의 죽음에서나마 조금씩 배웠다.

유치원 때 길에서 500원인가 주고 사 온 병아리는 중닭까지 자랐다. 닭이 되면 좋은 농장에 데려가 풀어주려고 했는데 그게 끝이었다. 어미가 버린 길고양이 새끼를 주워와 기른 적도 있다. 고등어 무늬의 녀석은 사고를 많이 쳤다. 자기 전 머리맡에 둔 가방 위에 올려놓고 얌전히 자라고 했더니 가방을 다 긁어놓았다. 그러고는 사라졌다. 다시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으면 죽었다고 생각하는 습관은 그때 생겼다. 13년을 키운 요크셔테리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자(동물의 죽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온 가족이 오열했다. 그 뒤로 엄마는 개를 키우지 못할 거라고 했지만 나는 용감하게도 또 개와 살고 있다.

“사람이 싫어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건 아닌가요?”

개랑 둘이 산다고 하면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사람만이 채워줄 수 있는 위로와 격려, 공감을 나도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개랑 산다고 하면, 사람이 싫어 동물과 지낸다고 넘겨짚는 걸까. 나는 그 점이 꽤 오랫동안 불만이었다.

“동물을 좋아한다고 사람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같이 살고 싶을 만큼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고 혹여 앞으로 못 만난다고 하더라도 개랑 둘이 살 것 같습니다.”

이렇게 대답하기까지 내 안에서도 고민이 많았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레니랑 놀면서 잊고는 했다. 술 취한 날 레니를 앞에 앉혀놓고 이런저런 푸념을 건넸고 기쁠 때면 레니 앞에서 오두방정을 떨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레니 때문에 내가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연애도 어렵고 결혼은 더 어렵다. 어려우니 더 열심히 노력하라고? 하고 있다. 하지만 출퇴근하는 것도 버겁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는 못 하겠다.

이쯤 되면 논란은 정리된 것 같은데 어떤 사람들이 또 말을 걸었다. 이번에는 타이르듯이 말했다. 개나 고양이를 키우면서 결혼을 안 하는 것이 마치 사회문제라도 되는 것처럼.

“개나 고양이가 있으니까 외롭지 않은 거지? 1인 가구가 반려동물을 많이 키우니까 결혼율이 떨어지고 저출산 문제가….”

남의 인생에 말을 막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개나 고양이도 생명이니 같이 살면 당연히 덜 외롭다. 또 당연히 개·고양이가 곁에 있어도 외로울 때가 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당신이 외로움을 더 절절히 느끼면 결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을 이어간 그는, 아내에게 꽉 잡혀 사는 아저씨였다. 자신은 외로울 새가 없어서 좋다는 건가. 그렇게 사는 거나 외로운 거나 정답도 오답도 아닌 것 같은데.

애완에서 반려로 반려동물의 개념이 달라진 지 10년은 훌쩍 넘었는데, 1인 가구의 반려동물에게만은 아직 반려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데 인색하다. 4인 가구에서 반려동물을 새로 들이면 막내가 들어왔다, 새 식구가 생겼다고 말하면서, 1인 가구가 반려동물을 들이면 결혼하면 어쩌려고 하느냐는 말부터 나온다.(2인 가구에는 아이 낳으면 어떡하냐고 한다) 1인 가구를 완전하지 못한 가구 형태로 전제하기 때문에 사람이 들어갈 자리에 동물이 들어가는 걸 정서적으로 거부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상가족주의라는 견고한 울타리를 감히 개, 고양이 따위가 넘볼 수 있냐는 말로 들린다.

나는 레니가 아프고 난 뒤 우리가 가족이었음을 더 잘 알게 됐다.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질병은 오로지 가족이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아픈 사람이 있는 가족들은 서로 품앗이하듯 시간과 돈과 정을 나눠 아픈 가족을 보살핀다. 같이 고생하고 같이 지쳐가면서 가족의 의미를 더 절절하게 또는 처절하게 느끼도록 의료돌봄시스템이 작동해왔다.

반려동물도 생명이라 병 앞에서는 똑같이 돌봄이 필요하다. 야근해야 하는 날, 회식이 있는 날, 전날 새벽에 레니 상태가 많이 안 좋았던 날 등 레니를 혼자 둘 수 없을 때면 휴가를 쓰거나 병원에 맡기거나 본가의 엄마한테 연락해 봐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서 레니는 분명 내 가족이었다. 이 감정을 두고 어찌 사람과 동물을 비교하냐고 한다면, 적어도 정서적으로 서로 으르렁대는 가족보다는 우리가 더 가족 같다고 말하겠다.

“그래서 레니가 죽으면 어쩔 건가요?”

속마음을 그대로 말했다면 또 어떤 말을 들을까 눈치가 보였다. 잘 보내줘야지 별수 있냐고 건조하게 답했지만, 막상 그 시간이 오면 적어도 3일은 휴가를 내고 싶다. 레니 장례 치르기 전에 레니가 좋아했던 동네 하천변도 다녀오고, 친구네 개와 같이 처음 여행 갔던 바다도 보여주고 싶다. 레니 용품도 정리해야 하고 내 마음도 추스르려면 휴가가 절실히 필요하지만 이런 말을 하면 나를 불편하게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인정해주고 있지만 확실히 인정받고 싶어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선 인구총조사를 할 때 반려동물 수도 조사한다. 이후 나라나 회사에서 몇만원의 가족수당을 줄 때 반려동물도 가족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안 그래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동물등록률이 낮은데 가족수당을 받으려면 동물등록을 하라고 하면 어떨까. 등록률 20%를 밑도는 동물등록제도도 빠르게 정착할 것이다.

한 집에서 10마리의 개를 키우면 어떻게 하냐고? 한도를 정하면 된다. 만약 모든 가정을 대상으로 하기가 부담이면 1인 가구부터라도 시작하면 된다. 등록과 함께 예방접종 기록을 의무적으로 제출하게 하는 것도 부당수급자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설마 가족수당 몇만원을 더 받기 위해 개·고양이를 기르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걸로 예상한다. 마음 같아서는 반려동물이 죽으면 하루만이라도 유급휴가를 쓰게 해달라는 것까지 바라보지만, 일단은 반려동물이 진짜 가족의 지위를 얻어야지만 더 요구할 수 있다.

개·고양이부터 사랑하며

어느 종편 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이 12년을 함께 산 반려견과 이별하고 새 반려견을 들이는 과정이 방송됐다. 나 역시 레니가 죽으면 또 다른 생명을 들일지도 모르겠다. 그 이별의 고통을 어떻게 또 겪으려고 하느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또 다른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고 싶어서라고 답을 할 것 같다. ‘개·고양이가 있어 외롭지 않으니 연애도, 결혼도 안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이 아주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만큼 개·고양이만으로도 충만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이 있고, 그래서 지금도 우리가 불완전한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사람은 평생 사랑할 대상을 찾는다고 한다. 내 짧은 인생을 돌아봐도 그렇다. 어려서는 부모밖에 몰랐고, 사춘기 때는 친구밖에 안 보였다. 연애를 하면서는 한 사람만 바라봤고, 레니랑 함께 살면서 레니가 부모님 다음으로 내 마음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앞으로도 나는 나 아닌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살고 싶다.

그러니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사느니 개·고양이부터 사랑하며 사는 삶이 좋지 않을까. 꼰대 아저씨 말대로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친다 한다면 후자가 더 나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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