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바람처럼 찾아오는 것이라는 내게 결혼은 안 해도 연애는 해야한다며 친구들은 소개팅을 권했다. 꾀임에 넘어갈까 했더니, ‘이것’들이 자신들의 흑역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라는 걸까, 말라는 걸까. 게티이미지뱅크
[토요판] 남지은의 실전 싱글기
6. ‘흑역사’ 수다
“글쎄 세번 만나는 동안 그것에만 혈안이 돼 있는 거야. 급기야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키스를 퍼붓더라니까. 아 정말 미친놈 짜증나서 문 열리자마자 나와버렸어.”
친구 1은 한참 퍼붓더니 익숙한 듯 툴툴 털었다. “다 그런 거지 뭐. 소개팅해서 잘되는 꼴을 못 봤어.”
친구 1은 끊임없이 남편 찾아 삼만리를 해왔다. 커플 매칭 회사에 가입도 해보고, 앱도 활용했다. 사전에 묻고 따지지도 않았다. 그냥 다 나갔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천 번, 만 번도 더 되지 않을까. 하지만 소개팅이라면 질색하는 나와 그의 현실은 별반 다르지 않다. 친구 1은 말한다. “소개팅해서 좋은 남자 만나기란 로또 당첨과 다름없어.”
좋은 상대를 만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고, 그게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복불복’이라는 뜻이다. 세상 모든 남녀의 만남이 그런 것 같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인데, 수십 년을 각자 방식대로 살아온 남녀가 짧게는 몇 개월, 길면 수년을 만난다고 속속들이 다 알까. 정말 잘 맞아서 결혼해도 살다 보면 헤어지기도 하는 게 남녀관계이지 않나.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는 노랫말은 정말 철학적이었던 것이다.
“요즘은 겁이 나기도 해. 데이트 폭력이다 뭐다 이상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내가 아는 언니는 앱으로 만난 남자가 정말 젠틀해보였는데 알고 보니 집착이 장난 아닌 거야. 안 만나준다고 매일 집 앞에 와서 기다리고 그랬대.”
친구 2는 급기야 “남자 만나기 겁나는 세상”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세상 모든 남자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아니다. 소개팅 전문가인 친구들이 체감하기에는 과거에는 성격이 다른 정도였다면, 요즘은 ‘이상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이 확실히 많아졌다고 한다. 아는 언니도 데이트 폭력을 경험하긴 했다. 사귈 때는 한없이 다정했던 남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하니 찾아와 뺨을 연달아 때린 뒤 가버렸단다.
그걸로 끝이었다는 게 다행일까. 실제로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데이트 폭력은 매년 1000건 이상 증가했다. 2017년에만 1만303건이 집계됐다. 피해자는 90%가 여자라고 한다. 친구 3은 카페에서 여자친구 머리를 때려놓고 “니가 무슨 맞을 짓을 했는지 생각해보라”는 남자를 목격하기도 했다. “대체 뭐하는 거냐”며 참견하다가 이상한 여자로 몰렸단다. 친구 3은 말한다. “그래서 혼자 사는 게 속 편하지.”
이 모든 이야기는 “나 소개팅 해볼까”라는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사랑은 바람처럼 찾아오는 것이라는 내게 “결혼은 안 해도 연애는 해야 한다”며 친구들은 소개팅을 권했다. 꾀임에 넘어갈까 했더니, ‘이것’들이 자신들의 흑역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라는 걸까, 말라는 걸까.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가지는 확실하다.
“내가 너네 때문에 연애를 못해!”(*물론, 여자가 남자를 때리는 경우도 있다. 이건 ‘여자’인 우리 입장에서 한 이야기이니 악담은 말아주길.)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