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비앤비나 현지에 살고 있는 친구들의 집을 방문하면 그 공간들의 특색이 한국과 다른 점을 찾아보는 게 그렇게 재밌다. 특히 단번에 인식이 잘되는 공간은 뭐니 뭐니 해도 화장실이다. 반드시 쓰게 되는 공간이고 그만큼 한국에서도 익숙했으니 비교도 잘된다. 게티이미지뱅크
[토요판] 이런,홀로!?
낯선 공간의 화장실
얼마 전 친한 회사 동료가 스페인으로 긴 휴가를 다녀왔다. 한껏 들뜬 그에게 스페인의 이야기를 듣는 건 즐겁다. 그는 스페인 화장실에서 아주 신기한 무언가를 보았다고 이야기했다. 대부분의 스페인 화장실에, 심지어 포르투갈 리스본의 화장실에도 변기 근처에 딱 변기 높이의 작은 세면대가 놓여 있단다. 하지만 세면대는 따로,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세면대 크기로 마련돼 있다고. 그 변기 높이의 세면대 같은 게 대체 뭘까. 찾아보니 그것은 바로 스페인의 비데였단다. 비데라고? 구글링을 한참 해보니 진짜 비데다. 도저히 상상이 안 간다. 딱 세면대처럼 생긴 여기서 뭘 어떻게 씻는다는 거지? 나 말고도 궁금한 사람이 많은 듯했다. 한글로도 영어로도 스페인의 이 화장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비데’에 대한 아티클(글)이 많다. 심지어 유튜브에 영상도 있다! 뭐가 정답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비데를 사용하는 방식도 내 상상과는 완전히 다르다.
소변기 없는 화장실, 스웨덴
20살 때부터 본가의 넓은 집을 떠나 좁은 집들을 전전하다 보니 공간 활용에 대한 관심이 저절로 높아졌다. 어딜 가나 장소의 인테리어와 공간 활용이 먼저 눈에 들어오게 됐다. 자기 집을 꾸미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겠지. 어떻게든 이 좁은 5평짜리 방을 넓게 보이기 위해, 넓게 활용하기 위해 이리저리 노력한다. 이렇게 공간 활용에 관심을 갖다 보니, 여행에 가서도 자연스레 공간 활용을 살펴보곤 한다. 특히 에어비앤비나 현지에 살고 있는 친구들의 집을 방문하면 그 공간들의 특색이 한국과 다른 점을 찾아보는 게 그렇게 재밌다.
어떻게 공간을 활용하는지, 혹은 동일한 쓰임새의 공간이어도 어떻게 다르게 설계되는지, 그런 경향성이 무엇인지, 그 이유는 무엇일지. 마치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 고온다습하고 비가 자주 오는 지역은 바닥에 공간을 두고 조금 높게 집을 짓기도 한다고 배운 것처럼 그 공간들을 눈여겨보고 찾아보고 나름 분석해보기도 하는 게 여행의 또 하나의 재미가 돼버렸다. 특히 단번에 인식이 잘되는 공간은 뭐니 뭐니 해도 화장실이다. 반드시 쓰게 되는 공간이고 그만큼 한국에서도 익숙했으니 비교도 잘된다.
처음 한국 외의 화장실을 겪어본 곳은 스웨덴에서였다. 교환학생으로 갔던 스웨덴의 화장실은 한국과 크게 달랐다. 물론 안에 마련된 것들은 그 모양도 크기도 쓰임새도 비슷비슷했지만 공간 자체가 한국과는 크게 달랐다. 학교의 화장실도 마트 화장실도 공중화장실도 모두 성별이 구분돼 있지 않았다. 그냥 통합된 화장실이었다. 마치 방처럼 문을 열면 모든 게 있었다. 변기, 세면대, 그리고 아기 기저귀를 가는 판. 그곳은 정말 방 같았다. 위아래가 모두 막힌, 방문 손잡이를 돌려 열고 닫는 그런 방.
신기한 점은 한국에 있는 남자용 소변기가 없었다. 남자들은 보통 앉아서 소변을 보거나 커버를 올리고 볼일을 봤다. 스웨덴은 성평등 지수가 비교적 높고 퀴어에 대한 고민이 높은 사회이므로, 화장실 또한 성별 이분법으로부터 벗어난 공간으로 설계된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사방이 막힌 방 개념이다 보니 조금 더 안전함을 느꼈다. 이러한 화장실을 성별 중립적 화장실(gender neutral toilet)이라고 부른다. 전통적인 성별 구분뿐 아니라, 트랜스젠더나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겪는 이들이 화장실을 갈 때마다 괴로워하거나 두려워하는 일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한 스웨덴의 사회적 고민의 결과이기도 하다. 스웨덴은 성별 중립적 화장실을 더 늘려갈 계획이며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이를 두고 토론이 활발하다. 얼마 전 한국에서도 성별 중립적 화장실 도입을 두고 토론이 벌어졌으나, 여성 대상 범죄나 불법촬영 사건 때문에 여성들 사이에서도 반대 의견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한달 동안 떠난 동남아 여행에서도 화장실의 특이점을 발견했다. 타이와 라오스, 베트남 모두 대부분의 화장실에서 늘 변기 옆에 작은 샤워기 호스가 비치돼 있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느꼈지만 숙소든 카페 화장실이든 어디에서나 눈에 띄니 대체 이게 뭘까 궁금해졌다. 여기서 샤워를 하진 않을 테고. 아, 화장실 청소할 때 쓰는 건가? 변기 씻을 때 바깥의 수도를 끌어오기 위해 호스를 연결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한 게 아닐까. 지혜로운데? 그러다가도 아, 변기 물이 잘 안 내려갈 때 뚫기 위해 마련된 걸까? 아니면 손 씻는 곳인가? 그만큼 그 샤워기는 수압이 꽤 강했다. 보통 욕실의 샤워기와는 조금 다르게 물이 분산되기보다는 한곳의 강한 수압으로 모였다.
검색을 해보니, 실은 이게 비데란다. 회사 친구가 스페인에서 본 세면대 같은 비데처럼 타이와 라오스, 베트남은 이 변기 옆의 샤워기 호스가 바로 비데인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쓰는 걸까. 구글링을 마구 해보니 양변기에 앉아서 가랑이 사이로 그 비데 샤워기를 어떻게 어떻게 잘 넣어서 씻는다고. 스페인 비데만큼이나 상상이 안 가지만 그렇단다. 써본 사람들은 이게 훨씬 청결하고 깔끔하단다. 나는 도저히 못 쓰겠다 싶었는데, 결국 한번은 쓰게 됐다. 라오스 방비엥에서 한참 물놀이를 하는데 그 전날 많이 마신 술로 장이 난리가 나버리고 말았다. 더운 날씨, 습한 기후, 이미 물놀이로 축축해져버린 몸. 다들 충분히 아시다시피 이런 상황에 몸을 휴지로 닦을래야 닦을 수가 없다. 결국 용기를 내 변기 옆에 놓인 샤워기 비데를 들어올렸다. 마치 ‘로컬’(현지인)처럼 잘 씻어냈다. 그렇게 깔끔할 수가 없었다.
일본의 공간은 여러모로 관심을 갖게 했다. 한국과 가장 근접한 아시아권 국가이며, 도쿄의 경우 집값이 서울보다 비싸면서 인구도 밀집된 공간이란 점이 그 이유였다. 워낙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쓰는 사회이기도 하고. 전체적으로는 좁은 공간 활용을 잘하는 느낌이었는데, 많은 가정집에서 샤워하는 공간과 대소변을 보는 공간을 분리하는 게 가장 흥미로웠다.
다시 말해 한집에 샤워실과 화장실 두개의 공간이 분리돼 있다. 이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온천이나 목욕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피로를 푸는 공간과 대소변을 보는 공간이 함께 있는 것을 조금은 이상하게 느끼거나 방해받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오사카에서 카우치서핑으로 묵었던 조금 넓은 집도, 도쿄에서 묵었던 우리 집 원룸 크기만한 좁은 에어비앤비에서도 대소변을 보는 화장실과 샤워를 하는 화장실이 분리돼 있었다. 샤워 뒤에 볼일을 봐야 할 때 변기를 비롯한 화장실 전체가 젖거나 습하지 않은 점이 좋았다.
변기 위의 세면대에는 변기 레버를 내리면 변기로 갈 물이 그 전에 손을 씻을 수 있게 나와 물을 절약한다. 또 동행인이 있을 때, 각각 화장실과 샤워실을 사용해야 할 상황에 한국처럼 기다리지 않고 부담 없이 각자 공간을 사용할 수 있었다. 도쿄의 에어비앤비는 비교적 습한 기후와 살인적인 집값 탓에 좁은 공간을 활용하기 위한 노력이 군데군데 보였는데 화장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좁은 집에서는 아무리 환기를 잘 시켜도 빨래를 널면 집 전체가 습해지며 빨래가 잘 안 마르기 마련인데, 화장실 천장에 빨래걸이와 라디에이터를 설치해 이를 해결했다. 한국과 달리 온돌 문화가 아님에도 화장실의 빨래와 라디에이터로 크게 건조하지 않고 따듯하게 머물 수 있었다. 라디에이터는 환기만 시키는 찬 바람, 따뜻한 바람, 뜨거운 바람 등 바람의 종류도 조절할 수 있게 설계돼 있었다.
이상하고 어색하지만
각 나라, 지역의 화장실을 살펴보면 그 지역의 문화나 가치관, 기후, 습관, 공간 활용 방식 등과 연결돼 있곤 하다. 한국에 오래 살지 않은 이들은 변기에 직접 비데를 달고 화장실과 욕조가 함께 있는 이 문화가 이상하고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겠다. 이방인에게는 한국의 화장실 공간 활용과 특성이 무엇으로, 또 어떻게 느껴질까. 말레이시아 공항의 화장실에서 레버처럼 생긴 두 버튼 중 고민하다 눌렀던 버튼이 내 옷에 정면으로 물을 쏜 것처럼 어떤 이들은 난처한 경험도 조금 했겠지. 조금은 지저분하고 웃기지만 앞으로도 다른 지역을 여행할 때 화장실 공간을 살펴보고 기록해둘 생각이다.
혜화붙박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