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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33살 선희언니 “우린 기계잖아…시급 7000원짜리 기계”

등록 2018-05-16 05:02수정 2018-05-16 13:55

[창간30 특별기획/ 노동 orz]
1부 노동OTL 10년, 다시 찾은 제조업 현장 ② 떠도는 언니들
박희정(51·이하 모두 가명) 언니의 하루는 빈틈이 없다. 지난 3월 언니는 야간 근무로 하룻밤을 꼬박 새우고 오전 9시께 집에 도착했다. 늦게 집을 나서는 첫째와 남편의 아침을 차리고 세탁기를 돌렸다. 혼자 먹는 점심을 대충 해결하니 오후 2시. 그제야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안 와 휴대전화로 고스톱을 치다가 그것도 마땅치 않아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날은 비몽사몽 하다 저녁 6시께 잠에서 깼다. 주간 근무 때 6~7시간을 잔다면, 야간 근무 땐 보통 2~3시간 잔다. 저녁 8시30분 야간조 출근 전에는 동태전을 부치고, 김을 구웠다. 달래간장도 만들어뒀다. 제각기 다른 시간에 귀가하는 두 자녀의 저녁상이다. 기계와 함께 밤을 꼴딱 새우지만, 집안일은 누가 대신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언니는 마흔 중반에 접어들어 공단에 들어왔다. 아동복 가게를 하다가 반년 만에 접고 미용실을 시작했다가 건강이 나빠져 다시 휴업했다. 누군가 언니 쉬는 꼴을 시샘이라도 했을까. 그새 남편 사업이 부도를 맞으면서 5천만원의 빚이 생겼다. 예체능 계열인 첫째의 학원비 180만원도 외면할 수 없었다. 언니는 ‘스리잡’을 뛰기 시작했다. 아침에 생식을 배달했고 오후엔 보험 영업을 뛰었다. 밤엔 화장품 용기 제조업체에서 12시간씩 야간 고정으로 일했다. 넉달 뒤 ‘바쁜 시즌이 지났다’는 이유로 야간조가 사라졌다. 스리잡이 투잡이 됐을 뿐이다.

고된 삶 짊어진 50대 주부 박희정 언니
철야노동 퇴근해도 집안일은 ‘언니 몫’
어디에도 ‘나’를 위한 시간은 없다
막다른 선택 힘겨워도 “그저 버텨야지”

돈없어 꿈 미뤄둔 ‘주독야경’ 대학생 정아
영어 연수비 마련 위해 철야야근 선택
“카톡방서 학교·공부 얘기에 눈물 핑”

얼마 뒤 자동차 부품 공장으로 직장을 옮겼다. 정직원으로 5년 넘게 일했다. 하루 11시간에서 최대 16시간 가까이 일했다. 아침 8시30분부터 일하다 물량이 많으면 자정을 넘겨서 퇴근하는 식이다. 한창 바쁠 땐 이틀에 한번씩 그랬다. 목과 허리에 디스크를 얻었다. 더는 일할 수 없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잠시 쉬다 파견업체를 통해서 주야 맞교대 일자리를 얻었다. “남편이 대학 보내준다고 결혼하자고 했었지. 그런데 대학은커녕 ‘인생 대학’만 엄청 보내줬네.” 언니가 마른 웃음을 지었다.

50대 희정 언니도,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희진이도 이곳에선 모두 ‘언니’다. “일이 없다”는 이유로 소리 없이 잘리거나 스스로 자취를 감추고 다시 다른 업체에 출근하기 시작한다. 이름을 갖지 못한 이들은 모두 ‘언니’로 불렸다. 언니들의 또 다른 이름은 ‘주야 맞교대 파견노동자’였다.

“○○(이)라고 화장품 만드는 회사 아시죠? 머리카락 들어가면 안 되니까 방진복 입어야 해요. 부담 없죠?” 지난 2월, 인천의 한 화장품 제조공장에 취업하기 위해 ㄱ파견업체에 면접을 보러 간 날이다. 내가 파견노동자로 일하는 업체의 이름은 11번째 질문 끝에, 가서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18번째 질문 끝에 알게 됐다. 기자는 그날로 ㄱ업체 소속으로 공장에서 일하는 파견노동자 20여명 중 한 명이 됐다. 공장이 설비를 늘리며 ‘신입’을 대거 채용했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여성 10여명은 나름의 ‘입사 동기’가 됐다.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보류한 꿈 예지(25)는 일주일 앞서 들어온 파견노동자다. 고등학교 졸업 후 경기도 파주 텔레비전 생산 공장에서 주야 맞교대로 2년 동안 일했다. 모아둔 돈으로 친구와 의류 쇼핑몰을 열었지만 사업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예지는 사업을 일으키기 위한 종잣돈을 모으기 위해 다시 주야 맞교대 일자리를 찾았다고 했다.

3월1일 공장에 예지가 보이지 않았다. 전날 언니들 사이에서 ‘3·1절이 유급휴일인지 특근인지 일반출근 처리 되는지’ 의견이 엇갈리던 차였다. 정답은 ‘3·1절은 출근해야 하는데, 특근 아닌 정상출근 처리가 된다’였다. 휴무인 줄 알고 말없이 결근한 사람은 하루치 일당뿐 아니라 주휴수당, 만근수당 등 30여만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날 예지를 포함해 적어도 두 명이 말없이 결근했다. 다음날 조회시간 조장 언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쉬는지 안 쉬는지) 나한테 묻지 말고 파견업체에 물어보세요. 내가 월급 주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3·1절, 광복절, 무슨 절, 무슨 절… 우리는 ‘절’은 안 쉬어요.” 입을 삐쭉 내밀던 사람들의 입이 쏙 들어갔다. 예지는 그날부터 하루 이틀 빠지더니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예지와 같은 20대 여성 노동자들은 꿈을 잠시 보류해두고 이곳을 찾았다. 대학생 정아(25)는 새터민이다. 부모님, 동생과 차례로 탈북했다고 했다. 경기도 한 공단에서 맞벌이하는 부모님과 떨어져 동생과 둘이 산다. 매일 신문기사를 받아쓰기하며 한글에 익숙해지려고 악착같이 노력했는데, 취업하자니 정작 영어가 걸림돌이 됐다. ‘빡세게’ 일해 1년치 대학 등록금과 200여만원의 동남아시아 국가 어학연수 비용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다. 매달 30여만원의 방세와 생활비를 보태주시는 부모님께 더는 손을 벌릴 수 없었다. 정아는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돈을 버는 ‘야간 고정’ 일자리를 찾다 아쉬운 대로 주야 맞교대 일자리를 구했다. 치위생사를 꿈꾸는 정아는 국가고시를 통과해 작은 치과에서 일하고 싶다. 친구들이 카톡방에서 시험공부 하느라 힘들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물이 핑 돈다고 했다. “마스크팩 검사하면서 머릿속으로 전공 지식을 떠올려봐도 모래알처럼 사라져서 소용이 없어요.”

“잔금 청산할 생각에 속이 다 시원해요.” 월급날 희진(22)이의 목소리가 들떴다. 택배 상하차 일을 하는 남자친구와 함께 동거하는데 원룸 월세 40만원이 나흘 밀렸던 차였다. 관리비 5만원은 두달째 내지 못했고 교통카드로 쓰던 신용카드도 끊겼다. 희진의 꿈은 간호조무사다. 한달 20만원 정도 내는 간호학원에 다니다 중도에 그만뒀다. 생활비도 빠듯한데, 10개월 과정의 학원을 더 다닐 수 없었다.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한테 독립을 선언한 이상 집에 손을 벌릴 수도 없었다. “침대 위에 창문이 달려 있는데 햇살 ‘쩔어서’ 잠이 잘 안 와요. 그래도 같은 시간 일하는데 돈은 더 주니까 야간으로 일하는 게 훨씬 더 좋은 거 아니에요?” 노동시간을 최저시급에 곱하는 단순한 셈법에 익숙해 보이는 희진에게 야간노동은 그저 유리한 거래 조건일 뿐이었다.

이들은 “꿈을 이루는 데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3~6개월 바짝 돈을 벌어야 하는데 장시간 일하면서 야간수당도 받는 주야 맞교대만한 일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꿈을 이루기 위해 꿈을 잠시 보류해둔 셈이다. 그런 이들에게 이곳은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야 할 곳이다. 대학생 혜정(23)이가 말했다. “하루 12시간씩 공장에 몸만 처박아두면 시간은 잘 가는데, 난 계속 이렇게 살고 싶진 않아요, 언니.”

주야간 고정, 3조2교대, 주야맞교대로 떠도는 삶 3일 이른바 ‘은박 불량’이 쏟아졌다. 은박 불량은 마스크팩 파우치의 윗면이 아랫면과 정확하게 겹쳐지지 않아서 여분의 은박이 외부로 보이는 상태를 뜻했다. 깔끔한 포장에 실패했으니 불량이다. 누군가 불량이 80만~100만장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10여명의 언니가 기계를 뒤로하고 테이블 두개에 빙 둘러앉아 밖으로 삐져나온 은박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회사가 정규직을 적게 뽑아서 그래. 일주일, 한달 일한 파견직들이 이게 불량인지 어떻게 알겠어.” 한 언니가 작게 읊조렸다.

자신을 30대라고 소개한 중국 국적의 장수진 언니는 한글로 쓰인 정품 보증 스티커가 거꾸로 붙어 있는지 모르고 검사를 진행하다가 수천장의 불량을 쏟아냈다. 회사는 엄정했다. 조장 언니는 그에게 사유서를 쓰라 했다. 한국어가 서투른 언니는 하얀색 A4 용지를 앞에 두고 자기 이름만 삐뚤빼뚤 써놓곤 안절부절못했다. 보다 못한 다른 언니가 대신 펜을 쥐었다. “밀려 나오는 제품에 당황해서 검사를 제대로 못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수진 언니도 ‘일을 새로 알아보더라’는 이야기가 들리더니 며칠 뒤 자취를 감췄다. 공단 노동자들의 단기근속 비율(근속연수 1년 미만)은 37.3%에 달한다.(민주노총, 전국공단 실태조사, 2015년)

실제 경인 지역을 떠돌며 만난 30대 여성 노동자들은 옮겨 다닌 공장만 적어도 10여곳이라 했다. 주간고정, 야간고정, 주야 맞교대, 3조2교대, 4조3교대 교대 형태에 따라 손에 쥐는 돈은 천차만별이었다. 선희(33) 언니는 처음엔 “가볍게” 일을 시작했단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최저임금도 벌지 못했다. ‘공단에 들어가면 돈을 많이 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기도 안산의 복합기 조립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한 게 8년 전이다. 한 식품 제조공장에서 주야 맞교대로 일할 땐 기계를 아예 세우지 않아 주간조가 기계 앞에서 일어나면 바통 터치 하듯 야간조가 자리에 앉아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야간에 일하면 또 얼마나 졸려. 커피 알갱이만 입에 털어넣는 언니들도 있었어.”

선희 언니는 스스로 언제든 교체할 수 있는 ‘부품’ 같다고 느꼈단다. 공장이 ‘세팅’해놓은 시간대에 맞춰 살며 주당 60시간 이상 일하는 부품 말이다. 안산·시흥에서 교대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경우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57.6시간(휴일근무 포함)에 달한다. 출퇴근 등 업무를 위해 소비하는 시간을 포함하면 66.8시간이다. 휴일근무도 정상근무자는 1.4일인 데 반해 교대근무는 2.8일이었다.(안산시 비정규직 노동자지원센터, 2017년) 기계에 종속된 교대근무자에게 장시간 노동은 일상이었다.

○○화장품 제조생산본부 생산팀 직원 60여명 중 정직원은 19명으로 추정됐다. 생산팀 산하 같은 팀에 근무하는 노동자 20여명 중 정직원 목걸이를 건 사람은 서넛뿐이었다. 정규직 언니들은 작업장에 핸드폰을 들고 다니며 카톡방을 통해 대화했다. 나머지는 적어도 다섯곳의 파견업체에 소속된 파견노동자였다. 파견법에 의해 ‘일시적·간헐적’으로 인력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어 최대 6개월까지 일할 수 있는 파견노동자들이 팀의 4분의 3을 차지했다. 이 공장의 사정이 특별한 것 같지는 않았다. 전체 공장의 인원과 비교해 파견노동자가 절반 넘는 경우는 49%에 달한다는 실태조사 결과도 있다.(인천지역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2015년)

지난 9일 저녁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반월공단에서 통근버스를 타고 출근한 야간근무자들이 공장으로 향하고 있다. 안산/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 9일 저녁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반월공단에서 통근버스를 타고 출근한 야간근무자들이 공장으로 향하고 있다. 안산/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가장’이 돼 다시 찾은 공단 “새로운 선생님은 어떠셔. 좋아?” 지난 3월2일 박민주(45) 언니는 쉬는 시간 화장실에서 아들과 짧은 통화를 했다. “엄마 다음주부터 야간이야. 목소리가 왜 그래. 삐졌어?” 민주 언니는 회원권을 관리하던 남편의 사업이 부도를 맞으며 공단에 발을 들였다. 언니에겐 중학교·초등학교에 다니는 남매가 있다. 야간조로 근무할 때 ‘피부가 뒤집어졌다’며 화장기 없는 얼굴로 출근하던 언니가 색조 화장을 하고 온 날이 있었다. 둘째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을 만나고 공장으로 바로 출근했기 때문이다. 이날 언니는 “눈도 못 붙이고 왔다”고 말했다.

결혼해 아이를 키우는 40·50대 언니들은 퇴근 후에도 쉬지 못했다. 집에 가면 집안일과 육아 등 가사노동이 기다렸다. 언니의 수면은 아침상과 점심상, 저녁상 사이 어딘가에 자리했다. 여성 노동자가 짊어지게 되는 ‘이중노동’의 딜레마를 주야 맞교대 노동자라고 피해갈 수 없었던 셈이다. 그런 언니들에게 혼자만의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연극·뮤지컬’을 좋아한다는 희숙 언니는 가장 최근에 본 공연이 뭔지 기억하지 못했다. “공연 보러 갈 여유도 돈도 없지. 그냥 좋아하는 마음을 갖는 게 취미고 취향이라는 거지.”

40·50대 언니들은 가족의 생계비와 자녀 학자금, 결혼 비용을 대기 위해 일을 한다 했다. 이런 마음은 국적을 가리지 않았다. 인천 공단에서 만난 40대 후반 중국인 장수연 언니는 한국 대학을 다니는 딸의 등록금을 대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 한국에 온 지 5년이 넘은 그는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주간고정 정규직으로 일했다. 지난해 시급은 7800원. 관리자를 제외하곤 대부분 러시아·베트남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였다. 이유가 있었다. 위험했기 때문이다. 중국인 동료가 두 엄지손가락을 제외하고 손가락 여덟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눈앞에서 목격했다. 정신적 충격이 컸고 도망치듯 일을 그만뒀다. 한국어가 서툰 언니가 “위험해”와 공단 근처 “○○병원”의 이름만큼은 정확하게 발음했던 이유다. 딸은 지방 4년제 대학을 다니며 20여만원짜리 고시원에서 지낸다. “언니 닮아 예쁘겠다”고 하니 손사래를 치면서도 “나랑 안 닮아서 키는 크다”고 웃어 보였다.

이들에게 주야 맞교대는 ‘선택지’라기엔 가혹한 피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생활비, 자녀 학자금, 결혼 비용 등 언니들은 저마다 이유를 댔지만 결국은 돈이 무서웠다. 공장의 단순노동은 경력이나 기술이 없는 언니들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일터였다. 일이 고되고 험할수록 수당은 따박따박 붙었다. 주간고정으로 하루 8시간 일하면 한달 기준 157만3770원의 기본급여만 손에 쥘 뿐이다.

“우리는 일종의 생체기계잖아. 야간은 시급 1만원짜리 기계, 주간은 7천원짜리 기계.” 자조하듯 말했지만, 언니들은 기계가 아니라서 자주 아팠다. 전소은(45) 언니의 오른쪽 팔뚝은 군데군데 퍼렇게 멍으로 물들었다. 팔뚝으로 마스크팩을 눌러 제품을 검사하느라 생긴 멍이다. 언니는 아버지가 드셨다는 관절염약을 먹는데도 팔의 통증이 낫지 않는다고 했다. 민주 언니도 출근길마다 진통제 몇 알을 입에 털어 넣고는 했다. 비어 있는 사물함 한 칸은 일종의 간이 응급실이었다. 언니들은 저마다 진통제, 반창고, 붕대, 파스 한 상자를 넣어두곤 아픈 언니들에게 달래듯 상비 약품을 건네곤 했다. “돈 벌러 나와서 병원비도 안 나오게 생겼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것 같아도 어떡해, 버텨야지. 버티고 버텨야지.”

경기 안산시 안산역 근처 파견사무소 입구에 파견노동자 모집 공고가 빼곡히 붙어있다. 안산/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경기 안산시 안산역 근처 파견사무소 입구에 파견노동자 모집 공고가 빼곡히 붙어있다. 안산/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새벽 5시30분 ‘계단 만찬’ 새벽 5시30분 야간조 마지막 쉬는 시간이 되면 탈의실은 부산해졌다. 지난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쉴 새 없이 일하느라 기진맥진해진 언니 대여섯명이 음식 섭취가 금지된 탈의실을 나와 공장의 비상계단으로 모였다. 장시간 노동을 버티기 위해 쉬는 시간 ‘당 섭취’는 필수였다. “이 시간만 되면 왜 이렇게 배가 고픈지 모르겠어. 이거라도 먹어야 남은 시간 버틴다.” 손에 손으로 저마다 집에서 챙겨 온 초코파이, 삶은 달걀, 귤, 요구르트가 오갔다. 간식을 입에 밀어넣듯 해치웠다. 언니들은 계단에서 크라운산도를 나눠 먹으며 약속했다. “월급날 되면 아귀찜 먹으러 가자.”

마지막날 마스크팩 2만1530개를 검사했다. 기계 고장이 잦아 3만개를 채우지 못했다. 창이 없어 햇빛은 비추지 않았지만 손목시계는 아침 8시를 가리켰다. 친구 사이라는 두 언니가 주고받는 말이 들렸다. “고기 먹자.” “아침에 무슨 고기야?” “아니거든? 저녁이거든? 고생하는데 고기라도 먹어야지.” “됐고, 라면이나 먹자.”

언니들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최저시급을 받으며 일하다 보니 장시간·야간 노동으로 내몰렸다. 이들은 ‘살아내기 위해’ 저임금을 장시간 노동으로 만회했다. 모든 시간은 ‘일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주야 맞교대로 하루 10~11시간씩, 주 52~55시간 노동에 주말 특근을 하면 주 66~78시간까지 초장시간 노동이 가능했다. 유행인 듯 ‘워라밸’(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일과 삶의 균형)을 외치는 시대이지만, 아무도 언니들의 삶은 주목하지 않는다.

기자가 일을 그만둔 뒤 희정 언니가 잔업·특근이 더 많은 회사로 옮겼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월급날 아귀찜을 먹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언니들이 이곳에 남아 있을까. 언니들은 언젠가 주·야간의 무한루프를 끊고 어딘가에 안착해 한숨 돌릴 수 있을까. 공장을 나서니 쏟아지는 아침 햇살에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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