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는 창간 30돌 특별기획 ‘노동orz’를 통해 낮게 웅크린 노동자의 삶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서 낮밤을 바꿔 일하는 제조업체 노동자와 감정·감시 노동의 이중고를 겪는 콜센터 노동자, 법·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 기술 발달로 더 위험에 내몰린 플랫폼 배달대행 기사의 삶을 전해드렸습니다.
이번 장면은 취재 실패기에 가깝습니다. 기자는 극한의 야근으로 구로디지털단지를 밝히는 게임업계 종사자가 돼보려 했지만, ‘문과생’의 한계로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번외편 ‘취재orz’은 그간 ‘노동orz’ 기획에서 전하지 못한 취재의 뒷이야기를 전합니다.
“대표적인 신성장 산업인 게임업계의 숨겨진 취약노동자 큐에이(QA)의 일터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노동orz’ 기획에 참여하며 팀장에게 제출한 발제안의 첫 문장이다. ‘구로디지털단지의 등대’라고 불릴 만큼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 높은 게임업계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취약직군인 ‘큐에이’(게임이 일정 수준의 품질을 가질 수 있도록 각종 테스트와 검수 작업을 하는 직종)로 취직해 내밀한 근무환경까지 살피겠다는 포부였다. 게임업계 전문 취업누리집을 통해 10여장의 이력서를 돌렸다. 게임업체의 지원업무를 전담하는 한 회사에 가까스로 취직했다. 계획했던 큐에이가 아닌 파견직 게임 모니터링 업무였다.
지난 4월2일 ㄱ업체에 첫 출근을 해 12일까지 약 2주간 근무했다. 처음 일주일은 업무를 익힐 목적으로 ‘말 그대로’ 게임만 했다. 이후에는 담당 게임 게시판을 살피며 ‘버그’나 ‘서버 이상’ 신고가 있는지 점검하는 모니터링 업무를 했다. 노동 여건이 상대적으로 양호해 ‘게임업계의 내밀한 환경’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었다. 당초 목표한 ‘크런치 모드’(게임 출시를 앞두고 극한의 장시간 업무를 지속하는 것)를 경험하기도 힘들어 보였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들었고, 결국 퇴사를 결정했다. 심기일전해 애초 목표했던 큐에이로 취직할 계획이었다. 다시 10여장의 이력서를 돌렸다. 하지만 관련 스펙이 전무한 문과 출신 ‘라이트 게임유저’에게 자리를 내줄 만큼 만만한 회사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기자는 실패기를 쓰게 됐다.
게임업계는 철야가 일상화된 곳이다. 유명 게임업체 넷마블 관계사에서는 2016년 7월 30대 직원이 돌연사하고, 같은 해 11월 본사의 20대 직원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과로사할 정도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3~4월 12개의 주요 게임회사를 근로 감독한 결과를 보면, 12개사 노동자 3250명 중 63.3%인 2057명이 주 12시간의 연장근로 한도를 초과했다. 노동자들은 ‘연장근로 수당 미지급’ 등으로 44억여원의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고용노동부는 ‘크런치 모드와 관행화된 초과근로’를 원인으로 꼽았다.
‘크런치 모드’는 ‘고질병’이다. 수없이 지적됐지만 고쳐지지 않는다. 게임개발자연대의 김환민 사무국장은 크런치 모드가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 한국 게임시장의 ‘갑을 관계’ 고착화를 꼽았다. 그는 “게임 환경이 모바일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수많은 개발사가 뛰어들었다. 유통과 마케팅을 책임지는 대형 퍼블리셔들이 과잉 공급된 개발사들을 입맛대로 ‘쇼핑’하는 게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갑’인 퍼블리셔가 무리하거나 변덕스러운 요구를 해도 ‘을’인 개발사들이 저항할 수단이 없다. 결과적으로 개발사는 퍼블리셔의 요청에 따르기 위해 인력을 ‘갈아넣는다’.
‘포괄임금제’도 오래된 문제다. 포괄임금제는 기본급에 평일 연장근로나 휴일근로 수당을 포함해 지급하는 제도를 말한다. 업무시간이 늘어도 임금에 변화가 없기 때문에 ‘공짜 야근’을 양산하는 원흉으로 꼽힌다. 한 게임업체에서 큐에이로 일했던 ㄱ(29)씨는 “새벽 12시, 1시까지 일하고 퇴근하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추가 수당은 못 받는다. 교통비만 주는 정도”라며 “모두가 문제인 줄 알지만 아무도 건들지 못하는 문제가 바로 포괄임금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게임업계 진입에 실패한 기자는 이런 문제를 다시 ‘겉핥기’로 언급할 수밖에 없다. 다만 짧은 ‘위장 취업’에서도 게임업계의 ‘체념적 분위기’는 느낄 수 있었다. ㄱ씨는 게임업계의 과중한 업무환경이 ‘웬만해선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사람이 죽고, 정부가 단속하면 그때뿐이에요. 몇몇 대기업은 몰라도 그 밑에서 하청을 받는 대부분의 개발사들, 자회사들은 바뀌지 않아요. 직원이 철야를 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회사들이니까요.”
ㄱ업체에서 함께 게임 모니터링 업무를 하며 문제가 발생하면 새벽 시간에도 개발자들을 깨워야 했던 동료가 비슷한 말을 했다. “회사에 불쌍하지 않은 사람이 어딨겠어요. 저도 그 사람 깨우려면 새벽시간에 눈 뜨고 있어야 하잖아요. 누군가는 24시간 대기하고, 누군가는 철야를 해야 돌아가는 곳이에요. 모두가 불행하면 아무도 불행하지 않은 거죠”. ‘모두가 불행하면 아무도 불행하지 않은 것’이라는 체념은 어디서 온 것일까. 등대의 언저리에만 머물렀던 기자는 그 아득하고 복잡한 체념의 밑바닥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