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 인생을 상상했을 때 ‘결혼’이라는 단어는 ‘퇴사’ ‘여행’ ‘연애’ ‘고양이’라는 단어에 밀려 존재감이 없는 그런 단어였던 것이다. 그래서 결혼을 앞둔 사촌동생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너 결혼 왜 하니?’ 게티이미지뱅크
사촌동생 김씨는 1991년 10월14일, 경기도 의정부의 한 산부인과에서 3.4㎏의 몸무게로 태어났다. 큰외삼촌과 큰외숙모의 1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2018년 올해까지 햇수로 28년을 살았다. 안타깝게도 그의 태몽을 기억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외숙모가 말했다. “아이고… 태몽이 기억이 안 나네.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누가 태몽을 꿨는지도 모르겠네.”
사촌동생의 이름엔 한자로 순(順·순할 순)자가 들어간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지어줬다고 한다. 아기는 이름처럼 ‘순하게’ 살았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는 바람에 사촌동생은 태어난 뒤 3년간 서울 큰이모집에서 자랐는데, 큰이모는 “아기가 너무 순하게 커서 ‘할아버지가 이름을 그렇게 지어줬나보다’고 생각했다”고 기억했다. 아기는 낯선 사람 품에 안겨도 방긋방긋 웃고, 기저귀를 갈 때나 목욕을 할 때도 울지 않아 이모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큰이모가 말했다. “말도 엄청 잘 들었어. 얼마나 예뻤냐면, 이웃 아주머니들이 우리집에 놀러 오면 걔를 보고 너무 예쁘다면서 서로 데려가 키우겠다고 했다니까.”
김씨 스스로 돌이켜본 28년의 삶도 평탄함 그 자체였다. 부모님 속도 크게 썩여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내가 “그래도 살면서 부모님한테 엄청 혼났던 때가 있을 거 아냐?”라고 채근하자 김씨가 말했다. “아… 고등학생 때 부모님 몰래 보충학습 빼먹고 친구들이랑 하루 놀았거든? 근데 그걸 들킨 거야. 그래서 아빠가 불같이 화를 내긴 했는데, 차마 나를 때릴 순 없어서 내 휴대폰을 망가뜨렸어. 근데 내가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다니는 게 걱정된다며 이틀 만에 최신형 휴대폰을 다시 사줬어.(웃음) 그때 아빠가 휴대폰 망가뜨린 걸 땅을 치고 후회했지….” 부모님 속을 썩였다기엔 너무 소소한 에피소드다. 착한 딸 김씨의 인생은 그 뒤로도 이어진다. 김씨는 단군 이래 가장 큰 효도라는 ‘졸업 후 취직’에 성공했고, 5년 동안 성실하게 회사를 다니며 깨알같이 돈을 모았다. 그리고 1년여 전, 드디어 김씨에게 다음과 같은 카톡이 왔다. “언니, 나 결혼 날짜 잡혔어! 2018년 5월13일이야!”
청첩장 보내는 기준은?
맞다. 봄이다. 숱한 지인의 결혼식을 오가며 슬픈 사연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눈물을 흘리던 나였지만, 같은 항렬인 친척의 결혼은 처음이다.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인생을 지난 10년간 혼자 자취하며 살다 보니 결혼은 그저 ‘남의 일이겠거니…’라고만 생각해왔다. 앞으로의 인생을 상상했을 때 ‘결혼’이라는 단어는 ‘퇴사’ ‘여행’ ‘연애’ ‘고양이’라는 단어에 밀려 존재감이 없는 그런 단어였던 것이다. 그래서 결혼을 앞둔 사촌동생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너 결혼 왜 하니?’
아래의 내용은 오는 13일 결혼을 앞둔 한 예비신부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쯤으로 봐주면 되겠다. 결혼에 대해서는 정말 1도 모르는 나이기에, 결혼을 결심한 이유부터 청첩장 보내는 기준까지 기탄없이 다 물어봤다.
―결혼을 축하한다. 결혼을 앞둔 지금 심경은?
“언니, 그 질문은 1년 전에 결혼 날짜 잡았을 때 했어야지.(웃음) 처음 날짜 잡았을 때는 좀 설레고 그랬던 것 같은데, 1년 동안 조금씩 결혼 준비를 하다 보니까 이제는 ‘그냥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이거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공감할걸.”
―예비신랑과 결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 있다면?(속뜻: 대체 그런 결심은 어떻게 해야 드는 거냐?)
“신랑이 자영업자고, 나도 회사에 다니다 보니 3년 정도 연애를 하면서 매번 일주일에 주말 딱 하루 만났어. 근데 일주일에 하루 만나니까 만나면 헤어지기가 너무 아쉬운 거야. 하루는 내가 데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묻더라고. ‘너희들은 하루 종일 뭘 하길래 이렇게 늦게 들어오니? 그렇게 데이트하고 나가서 놀고 할 거면 차라리 결혼을 해라.’ 그 말을 듣고 본격적으로 결혼 준비를 하기 시작했지. 아빠는 엄마가 자꾸 결혼을 부추겼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고.(웃음) 어느 순간 각자의 생활을 즐기기보다는 서로 의지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오더라고.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결혼 생각을 했던 것 같아.”
―그래도 ‘결혼을 결심할 정도’의 예비신랑의 매력이 있었을 거 아냐.
“언니도 연애를 하면서 느꼈겠지만, 솔직히 사람을 만나다 보면 진짜 나쁜 놈 아니면 다 비슷비슷하잖아?(웃음) 그동안 평범한 연애를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굳이 이 사람인 이유를 꼽자면 ‘좀 더 착한 사람을 골랐다’ 정도? 신랑은 책임감이 강해서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거든. 그런 모습을 옆에서 보다 보니까 ‘같이 살다 보면 굶어죽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리고 연애를 하면서 정말 단 한번도 안 싸웠어. 내가 가끔 화를 내고 짜증을 낼 때가 있는데, 신랑은 엄청 차분하고 진지한 성격이라 다 이해를 하고 받아주는 모습을 보면 또 내가 미안해지는 거야. 성격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고… 둘 다 돈을 많이 못 벌어서 걱정이긴 한데 그건 어쩔 수 없어.(웃음) 아끼면서 잘 살아야지.”
―결혼 준비하면서 부모님에게 손 안 벌리고 둘이서 다 준비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해?
“아무래도 집 문제가 가장 컸는데, 다행히도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한 토지주택공사(LH) 행복주택에 당첨됐거든. 진짜 운이 좋았지. 사는 데 필요한 가구도 최소한으로만 준비했어. 신랑이 자취를 해서 전자레인지나 커피포트 같은 소소한 가전제품들을 다 갖고 있었거든. 그런 것도 새로 안 사고 다 쓰던 걸로 채워두고. (완전 알뜰살뜰하네?) 어. 사실 우리가 준비한 것만으로는 부족한 게 사실인데 그렇다고 결혼한다고 대출 받는 건 너무 싫은 거야. 모았던 돈을 다 쓰면 0부터 시작하면 되는데, 대출을 하면 마이너스로 시작해야 하잖아. 예물도 거의 안 했어. 물론 양가 부모님들도 잘 이해해주셨고.”
―결혼을 앞두고 걱정되는 것들이 너무 많잖아. 자녀계획부터 시작해서 경력단절, 대출, 육아, 고부갈등… 그런 걱정은?
“가장 걱정이 큰 건 당연히 경력단절? 나는 정말 아이는 낳고 싶거든. 근데 양가 부모님 모두 아직까지 경제활동을 하시는 상황인데다, 맞벌이한답시고 아이를 부모님에게 맡기기도 싫어. 직장 동료들 중에서도 결혼하고 아이 낳다가 결국 회사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어. 내 또래 여성들이 대부분 다 그렇지. 동료들에게 들었던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첫째 낳아서 좀 키워놓고 다시 일 좀 하려니까 둘째가 생긴다’는 거야. 어쩔 수 없어. 남편이랑 계획을 잘 세워야 할 것 같아.”
―그럼 이제는 진짜 쓸데없지만 궁금했던 것. 청첩장을 보내기 애매한 사람들 있잖아. 기준을 어떻게 세우면 되는 거야?
“나도 정말 고민 많이 했는데.(웃음) 기준은 최근에 연락한 횟수? 나한테 청첩장을 받았을 때 ‘이 사람은 꼭 와줄 것 같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만 보냈어. 그러니까 50명 정도 되더라고.”
―신혼여행은 어디로? 왜 거기로 고른 거야?
“푸껫. 이것도 좀 슬픈 얘기인데, 남편이 자영업자라서 시간을 많이 빼기가 어려웠거든. 그래서 최대한 직항이 가능해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곳으로 고르다 보니 선택지가 엄청 적어졌지. 그중에 적당히 쉴 수도 있고 관광도 되는 곳이 푸껫이라고 해서 그쪽으로 골랐어.”
―솔직히 축의금은 얼마나 내면 되는 거니?
“대외용으로는 ‘성의껏 주시면 됩니다’라고 하긴 하는데, 당연히 많이 주시면 주실수록 좋습니다.”
―결혼식 메뉴는?
“뷔페. 먹고 싶은 것 골라 드시면 됩니다.”
―앞으로 어떤 가족을 꾸리고 싶어?
“음… 우리 부모님을 생각해보면,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거든. 근데 그걸 잘 버텨낸 게 가족끼리 서로 사이가 좋아서였던 것 같아. 서로 양보하면서 평범하게 산 것 같은데 사실 서로 안 싸우고 평범하게 사는 게 너무 어렵잖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부모님처럼만 사이좋게 살았으면 좋겠어.”
―그런 가족을 꾸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연금복권 당첨.(웃음) 솔직히 로또 당첨은 흥청망청 쓸 것 같아서 위험해. 매달 성실하고 부유하게 살 수 있게 연금복권 당첨되면 좋겠다.”
정체되지 않는 삶을 살기를
사촌동생 김씨가 살면서 연금복권에 당첨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당연히 매우 낮을 것이다. 그렇지만 휴대폰 너머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겠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밝아 다행이다. 똥기저귀 갈 때부터 만나온 사촌동생이 결혼 때문에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정체되지도 않는 삶을 살기를. 그 과정에서 결혼이 새로운 행복의 기회로 남을 수 있기를. 마지막으로 딸의 결혼식을 앞둔 외삼촌과 외숙모의 한마디를 들어봤다.
“딸이 결혼한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다 내가 결혼식장에서 울 거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난 절대 안 울어. 안 울 거야. 진짜야. 어디 멀리 가서 못 보는 것도 아니잖아? 그동안 잘 커줘서 고맙고, 둘이 잘 살았으면 좋겠어. 아버지로서 그게 가장 큰 행복이야.”(큰외삼촌)
“28년 동안 말 잘 듣고 속 안 썩인 예쁜 딸이었어. 결혼은 남남이 만나서 같이 사는 일인데, 서로 배려하고 예쁘게 사랑하고,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란다.”(큰외숙모)
연금복권 예비 당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