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개념 교육과 시험을 위한 수업도 중요하지만 자립을 위해 필요하고 집을 꾸리는 데 필수적인 기술들을 익히는 수업을 상상해본다. 집과 관련된 일은 그게 가사가 됐든 기술이 됐든 지식이 됐든 사소한 일이 아니라 생활과 생존의 영역이 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 혼자 사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방문 하나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문을 열고 닫을 때 문과 틀 사이에 이가 잘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문 아래가 문턱에 자꾸만 걸렸다. 문을 열고 닫을 때 힘을 줘야만 했다.
“이거 문이 내려앉은 거네. 공구통 좀 갖고 와봐.”
친구집에 있던 거의 새것에 가까운 공구통을 받아 문 앞에 쭈그리고 앉은 뒤 경첩의 나사를 하나하나 손수 조였다. 그러나 이미 내려앉은 경첩과 나사 길이가 맞지 않아 자꾸만 나사가 빙빙 돌았다. 이럴 줄 알았지. 친구에게 나무젓가락을 가져다 달라고 시킨 다음, 나무젓가락을 나사보다 조금 짧은 길이로 조각조각냈다. 조각 하나를 나사 구멍 안쪽으로 집어넣고 나무 조각 앞에 나사를 다시 집어넣었다. 모든 구멍에 나무젓가락 조각과 나사를 순서대로 하나씩 집어넣었다. 다시 드라이버로 나사 하나하나를 조이자 내려앉았던 문이 견고한 경첩과 함께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덜컥덜컥 문지방에 걸리던 방문이 매끄럽게 잘 열리고 닫혔다.
별거 아니지만 어려운 일들
큰 산들 사이에 위치한데다 17층으로 꽤 고층에 자리한 본가는 늘 센 바람이 집을 드나들었다. 바람 때문에 우리 가족은 항상 문에 문 닫힘 방지 물건들을 끼워 넣었다. 그래도 깜빡하는 날에 문들은 맞바람에 여지없이 쾅쾅 닫히고 말았다. 덕분에 자주 쾅쾅 닫히던 내 방문은 자주 내려앉았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사람을 부르지 않고 신발장 속에 모셔뒀던 큰 공구통을 들고 와 느슨해진 경첩의 나사를 조였다. 친구네 방문처럼, 너무 내려앉은 탓에 경첩과 나사의 공간이 헐거워지면 나무젓가락을 조각내 경첩 구멍에 넣고 그 앞에 나사를 넣고 경첩을 단단히 조이곤 했다. 어릴 때부터 집 구석구석에 관심이 많고 손으로 뚝딱뚝딱 만지는 걸 좋아했던 나는 아버지 어깨너머로 그런 것들을 많이 관찰했다. 아버지가 나를 앉혀다가 가르치신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나는 아버지의 수리 방법을 기억해뒀다. 아버지는 긴 자취 경험이 있었던데다 당신이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성격 탓에 집 안 구석구석 수리를 모두 잘 해내셨다.
성인이 되고 집을 떠나 아버지 없이 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집 안의 모든 일들을 스스로 해내기 시작했다. 집에 쏟는 애정이 큰 편이라 ‘디아이와이’(DIY: Do It Yourself)는 말할 것도 없고 집 안의 교체나 수리가 필요한 일도 웬만하면 직접 해내려고 끙끙거렸다. 방 구조상 인터넷 선을 벽에 둘러야 할 때도 철물점에서 바닥 몰딩용 선 고정 핀을 사와 인터넷 선을 보기 좋게 정리했다. 화장실 수도관이 오래된 찌꺼기들로 막혀 물이 잘 내려가지 않을 때도 직접 수도관을 분리해 안쪽 이물질들을 모두 제거하고 세척했다. 지금 집으로 이사 와서는 기름때로 누리끼리해진 부엌 싱크대에 붙은 실리콘을 제거하고 새 실리콘을 발랐다. 체인이 고장난 자전거도 거꾸로 뒤집어 체인을 수리했다.
물론 처음부터 잘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아예 할 줄 모르는 게 더 많았다. 조금 복잡했던 디아이와이 화장대를 실컷 조립해놓고 물건을 다 채운 상태에서 슬쩍 옆으로 밀다 몽땅 무너지기도 했고, 수도관을 갈다가 부러트리는 바람에 사람을 부른 적도 있었다. 실리콘을 삐뚤빼뚤 엉망으로 발라 눈물 흘리며 다시 뜯기도 했고, 생애 처음으로 제대로 된 망치질을 하다 반대편 손을 찧기도 했다. 지금 할 수 있게 된 것들은 사실 별게 아니다. 별것들이 아닌데 왜 이렇게 어려웠을까. 아직 집 안 수리 ‘만렙’(온라인 게임 최고 레벨)을 찍진 않았기 때문에, 언젠가는 해내야 할 ‘별거 아닌 것들’이 남아 있지만 아직은 나에게 별거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집 안 수리에 실패할 때마다 괜히 열이 받곤 했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혹은 어른이 되면서부터 할 줄 알아야 하고 또 해야만 하는 일들이 많아지지만 딱히 누군가 가르쳐준 적은 또 없는 것 같았다. 워낙 집에서 무언가를 수리하는 데 흥미가 있어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어깨너머로 본 게 다였다. 실은 독립하면서 집과 관련해 겪어야 하는 문제가 수리만은 아니었다. 혼자 살 집을 구하는 것부터 앞이 캄캄했다. 월세 계약을 어떻게 맺는지, 기본적으로 어떤 서류들을 살펴봐야 하는지, 어떤 항목을 특히 더 꼼꼼하게 봐야 하는지, 사기당하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등. 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 정도는 겪을 일이지만, 나는 이걸 수능시험에서 사회탐구 영역을 치르기 위해 들었던 ‘법과 사회’에서 기계적으로 답을 맞히는 방법만 배웠다. 그나마도 유일했다. 성인 혹은 대학생이 되자마자 심리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독립하는 것을 이상으로 여기는 사회지만 정작 자립을 위한 준비는 돼 있지 않았다. 이런 걸 가정에서의 교육에만 기대야 하는 걸까, 고민이 들었다. 문제는 부모도 경험이 적으면 잘 모른다는 점이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학교 때까지 ‘실과’와 ‘기술가정’ 시간에 배운 것들을 떠올려봤다. 학교 대부분의 수업이 죄다 입시용 또는 수능용으로 돌아갈 때 그나마 실과나 기술가정 같은 수업들은 당장 삶에 실제로 도움이 될 것들을 가르쳤다. 초등학교 때 직접 톱질해 만들었던 구름 모양의 코르크 메모판은 아직도 잘 쓰고 있다. 바느질도 잘하진 못해도 그럭저럭 할 줄은 알게 됐다. 내가 먹는 음식들이 어떤 영양소로 이뤄졌는지도 대충 알게 됐다. 인두로 납땜하는 건 아직은 쓸데가 없긴 하지만.
2015년 개정된 기술가정 교육과정에는 ‘자원 관리’와 ‘자립’이라는 파트가 있다. 시간과 용돈을 관리하는 법, 옷 정리와 보관법, 정리 정돈하는 법과 재활용하는 법, 소비 생활, 가정생활에서 역할과 책임 등이 공통된 필수교육 과정이다. 다른 과목들보다 훨씬 일상에서 써먹기 좋은 지식이다. 기술가정 교육과정은 가정에서 제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게, 또는 자립한 후 자신의 삶에 오롯이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는 목적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가정에서의 역할과 자립에 정말로 실제로 도움이 되는 교육들이 더 많이 필요하지는 않은 걸까, 궁금해졌다. 이를테면 형광등 갈기나 수도관 청소하기, 망치질하기 등 사람을 부르기엔 누굴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집의 기술들. 바느질도 배우는데.
‘집꾸리기 교육’이 있었으면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끔은 이런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학교에서 개념 교육과 시험을 위한 수업도 중요하지만 정말 자립을 잘하기 위해서 필요한, 집을 꾸리는 데 필수인 기술들을 익히는 수업을 상상해본다. 전문 직업고등학교에 갈 만큼의 기술은 아니지만 자립하여 자신의 집을 세심하게 살피고 꾸리는 데 반드시 필요한 기술과 지식들. 최근 한국에서도 유럽처럼 노동 계약서를 직접 작성해보는 실습을 도입하고 있다. 노동(권)이라는 것은 그만큼이나 일상이고 중요하기 때문에 실제로 사회에서 계약서를 쓰기 전 학교에서 충분히 교육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대학생들의 절반가량이 원래 살던 집을 나와 살고 있고 다른 지역에서 일하기 위해 집을 떠난 20대 초반 청년들도 적지 않다. 따라서 실전에 들어가기 전, 월세 계약을 포함한 임대차 계약서를 써보고 등기부등본 같은 서류를 함께 분석하면서 감을 익히고 경험을 해보는 교육도 필요하지 않을까. 특히나 1~2인가구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고 가정에서의 교육이 예전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시대에는 더더욱 말이다. 집과 관련된 일은 그게 가사가 됐든 기술이 됐든 지식이 됐든 사소한 일이 아니라 생활과 생존의 영역이 될 수 있다.
혜화붙박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