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런, 홀로!?
‘약속 갑질러’의 횡포
‘약속 갑질러’의 횡포
▶ 한국의 4가구 중 1가구는 혼자 삽니다. 굳이 수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여러분 주변엔 결혼적령기(라고 알려진)를 맞았거나 이미 지나버린 젊은이가 수도 없이 많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 또한 당신이기도 하고요. 그런 당신과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외롭고 쓸쓸하지 않은, 혼자서도 잘 사는 홀로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지기를 바라면서. 기사에 대한 의견이나 사연도 기다립니다. fkcool@hani.co.kr로 보내주세요.
“약속 당일 혹은 전날에 취소하는 사람들은 영락없는 노총각 트랙이다.”
때로는 독설이 현실을 반영할 때가 있다. 적어도 한 술자리에서 들은 위의 노총각 ‘결정론’은 나에게 설득력이 있었다. 오해하지 마시라, 물론 대한민국의 모든 노총각들이 약속 시간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의 경험상 이 가설은 일정 부분 설득력이 있다.
독신들이 기혼에 비해서 월등히 많은 것이 있다면 바로 시간에 대한 자율성이다. 결혼을 하고 나면 최소 2인 공동체이기에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 없다고 토로하는 결혼 선배들을 본다. 거기에 아이까지 생기거나 2배 이상으로 늘어난 일가친척들의 경조사에 참석하다 보면 나의 시간은 사라진다. 시간은 24시간 한정되어 있는데 내가 투여해야 할 관계는 곱하기가 되니, 결국 내가 누릴 수 있는 시간은 자연스레 나눠진다. 여기까지 상황이 닿으면, 나만의 시간은 어느 문학 에세이에서 나올 법한 한가로운 소리라고 결혼 선배들은 입을 모은다. 나 역시 아직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대충은 알 수 있다. 그리고 더욱 지금 묶여 있지 않은 시간을 즐겨야 한다. 지금이 인생의 화양연화일지 모른다.
“오늘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아”
대개의 직장인들이 그러하듯 휴일이나 주말은 소중한 시간이다. 그래서 이토록 귀중한 시간에 누구를 만나고, 어디를 가야 할지를 사전에 충분히 고민한다. “주말만 산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황금시간대에 무엇을 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벌써부터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시간에 대한 행복한 계획, 아니 배분이다. 오래된 친구를 만날 수도 있고, 무엇을 배우러 갈 수도 있고, 훌쩍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이렇게 기쁘고 행복한 시간을 훼방 놓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주말만을 학수고대하고 살아왔는데, 평일도 아닌 신성한 주말의 일정을 망쳐놓는 사람이 있다면 누가 좋아할까. 앞서 ‘배분’이라는 단어가 그러하듯, 이것은 일종의 우선순위에 기반한 결정이다. 내가 그 혹은 그들과 약속을 잡음으로써 내가 할 수 있는 잠재적 다른 활동은 포기했다는 말. 그런데 여기서 별안간 취소는 나의 스케줄에 대한 공격이다. 그리고 계획은 뒤틀린다.
세상에 흔한 오해 중 하나는 혼밥, 혼술하는 사람들이 외로운 사람일 것이라는 착각이다. 외롭다는 것은 세상의 편견이다. 적어도 나에게 혼밥과 혼술은 자발적인 선택의 영역이다. 자신의 시간표대로, 전략적으로 시간을 운용하겠다는 발상이다. 하지만 산이 깊으면 골도 깊은 법, 이러한 쿨한 행보를 거듭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시간을 타인과 맞추기 어려워진다. 여기서 갈등이 발생한다. 일부 나홀로 행보에 익숙한 사람들은 자신이 운용할 수 있는 시간의 범위를 넘어서 타인의 시간표까지 흔들어놓으려 한다. 그러니 자신의 의도나 기대에 부합하지 않는다 싶으면 임박한 약속을 취소해버린다. 대개 이럴 때 우는소리로 상대방에게 통보한다. “오늘은 조금 어려울 것 같아”, “컨디션이 안 좋아서 다음에 만나자”와 같은 문구는 여기서 빈출 표현이다.
지난 주말, 별안간 약속 취소 통보를 받았다. 셋이 모이기로 했는데 하나가 취소하니 덩달아 나머지 한명도 다음에 보자고 한다. 이미 약속 장소에 도착한 나는 남산 일대를 어슬렁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걷다가 오기가 생겼다. 분한 마음에 문득 이렇게 습관성 약속 취소 남녀들을 가리켜 ‘약속 갑질러’로 부르는 것이 어떨까 싶었다. 타인의 시간을 두고 잦은 교체 및 취소를 연발하는 그네들의 모습은 요즘 사회적 문제라고 하는 갑질과 닮았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으니 내친김에 유형화도 할 수 있다. 첫번째 부류는 자아도취형. 이들은 자신의 매력에 대해서 과대평가한다. 자신의 넘쳐나는 매력을 고려하여 갑질을 너그럽게 양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대개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하드웨어에 해당하는 외모가 뛰어나거나,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지식이나 콘텐츠가 좋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처럼 자신의 내용과 형식에 대해서 믿는 구석이 있으니 타인과의 시간 약속을 가볍게 여긴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고서 받은
“컨디션이 안 좋아서, 다음에…”
나의 주말은 뒤틀린다 약속 갑질은 내 삶에 대한 침범
영화관 ‘20분 전 취소’처럼
마음 상하지 않는 관계는 없을까 두번째 유형은 바로 골방형 예술가 유형. 그들은 사실 사회적인 동물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천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누가 말했나. 약속이라는 것이 결국 사회적인 성격인데, 태생적으로 타인과 무엇을 같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유형의 사람도 있다. 이들은 천성적으로 약속 시간이 다가오면 부담감을 느낀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나도 일정 부분 그러했다. 상대방이 특별히 싫어서가 아닌데 타인과 무엇을 같이하는 것이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공통의 화제는 무엇인가?’, ‘어디 가서 무엇을 해야 하나?’와 같은 내용에 직면하다 보면, 약속이고 뭐고 만사가 귀찮아진다. 남은 버튼은 임박한 취소. 공통적으로 이러한 약속 갑질러들이 시사하는 바는 바로 시간에도 권력 관계가 있다는 것. 그리고 약속 갑질이 어쩌면 ‘갑질 오브 갑질’이자 갑질의 최고봉인지 모른다. 혼자서 텅 빈 시간에 무엇을 할까 하다가 근처의 영화관에 갔다. 스마트폰으로 자리를 선택하고 결제했다. 알림이 뜬다. “20분 전에만 취소하면 100% 환불 가능”하다고 친절히 일러준다. 문득 극장의 영화는 20분 전까지만 취소하면 환불이 되는데, 사람과의 약속도 20분 전까지 취소하면 면피할 수 있는 것일까? 안 그래도 영화가 요즘 너무 길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게다가 극장까지 나가기 귀찮아지면, 21분 전에, 침대에 누워서 앙증맞은 취소 버튼을 성큼 누르곤 했다.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데 두명의 갑질러한테 당하고 보니, 문득 ‘사람이나 관계도 그럴 수 없는 걸까?’ 싶었다. 20분 전에 취소 버튼을 누르면, 아무도 다치지 않고 마음 상하지 않는 그런 행복한 경우의 수는 없는 것일까? 15초 정도 진지하게 생각해보니 참으로 터무니없는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극장의 영화는 일방향적인 서비스이지만 사람은 상호적인 관계니까. 관계의 기본은 쌍방이니까. 우리 모두는 시간에 매여 있다 신생아들은 태어나서, 엄마의 젖을 물면서, 자연스럽게 나와 내가 아닌 것을 배운다고 한다. 그 뒤로 30여년이 흘렀다. 하지만 불쑥불쑥 우리는 내가 아닌 것에 대한 통제를 시도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타인의 시간표를 나의 편의대로 바꿔놓는 것. 나의 시간이 나의 것이라면, 타인의 시간은 내 것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심 기대도 한다. 상대방이 내 시간표대로 움직여줬으면 한다. 우리는 친하니까, 서로 알고 지낸 지 오래되었으니, 우리는 지금 진지하게 만나고 있으니까.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시간에 매여 있다. 그러니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잘 보냈느냐, 이것이 가장 중요한 삶의 목적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개념 없는 약속 갑질러가 나의 귀중한 시간을 망쳐놓는다면, 그건 나의 삶에 대한 침범일지 모른다. 영화는 끝났다. 극장을 나서면서 난 스스로에게 원칙을 정하기로 했다. 다음부터 유사한 일이 발생할 경우, 첫번째는 경고 사격. 두번째는 응징. 그리고 세번째부터는 동일하게 나도 그의 시간에 갑질을 행사할 생각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상상만 해도 벌써부터 마음이 후련해진다. 정연욱 30대 홀로남
결국 우리 모두는 시간에 매여 있다. 그러니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잘 보냈느냐, 이것이 가장 중요한 삶의 목적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개념 없는 약속 갑질러가 나의 귀중한 시간을 망쳐놓는다면, 그건 나의 삶에 대한 침범일지 모른다. 게티이미지뱅크
“컨디션이 안 좋아서, 다음에…”
나의 주말은 뒤틀린다 약속 갑질은 내 삶에 대한 침범
영화관 ‘20분 전 취소’처럼
마음 상하지 않는 관계는 없을까 두번째 유형은 바로 골방형 예술가 유형. 그들은 사실 사회적인 동물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천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누가 말했나. 약속이라는 것이 결국 사회적인 성격인데, 태생적으로 타인과 무엇을 같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유형의 사람도 있다. 이들은 천성적으로 약속 시간이 다가오면 부담감을 느낀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나도 일정 부분 그러했다. 상대방이 특별히 싫어서가 아닌데 타인과 무엇을 같이하는 것이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공통의 화제는 무엇인가?’, ‘어디 가서 무엇을 해야 하나?’와 같은 내용에 직면하다 보면, 약속이고 뭐고 만사가 귀찮아진다. 남은 버튼은 임박한 취소. 공통적으로 이러한 약속 갑질러들이 시사하는 바는 바로 시간에도 권력 관계가 있다는 것. 그리고 약속 갑질이 어쩌면 ‘갑질 오브 갑질’이자 갑질의 최고봉인지 모른다. 혼자서 텅 빈 시간에 무엇을 할까 하다가 근처의 영화관에 갔다. 스마트폰으로 자리를 선택하고 결제했다. 알림이 뜬다. “20분 전에만 취소하면 100% 환불 가능”하다고 친절히 일러준다. 문득 극장의 영화는 20분 전까지만 취소하면 환불이 되는데, 사람과의 약속도 20분 전까지 취소하면 면피할 수 있는 것일까? 안 그래도 영화가 요즘 너무 길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게다가 극장까지 나가기 귀찮아지면, 21분 전에, 침대에 누워서 앙증맞은 취소 버튼을 성큼 누르곤 했다.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데 두명의 갑질러한테 당하고 보니, 문득 ‘사람이나 관계도 그럴 수 없는 걸까?’ 싶었다. 20분 전에 취소 버튼을 누르면, 아무도 다치지 않고 마음 상하지 않는 그런 행복한 경우의 수는 없는 것일까? 15초 정도 진지하게 생각해보니 참으로 터무니없는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극장의 영화는 일방향적인 서비스이지만 사람은 상호적인 관계니까. 관계의 기본은 쌍방이니까. 우리 모두는 시간에 매여 있다 신생아들은 태어나서, 엄마의 젖을 물면서, 자연스럽게 나와 내가 아닌 것을 배운다고 한다. 그 뒤로 30여년이 흘렀다. 하지만 불쑥불쑥 우리는 내가 아닌 것에 대한 통제를 시도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타인의 시간표를 나의 편의대로 바꿔놓는 것. 나의 시간이 나의 것이라면, 타인의 시간은 내 것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심 기대도 한다. 상대방이 내 시간표대로 움직여줬으면 한다. 우리는 친하니까, 서로 알고 지낸 지 오래되었으니, 우리는 지금 진지하게 만나고 있으니까.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시간에 매여 있다. 그러니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잘 보냈느냐, 이것이 가장 중요한 삶의 목적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개념 없는 약속 갑질러가 나의 귀중한 시간을 망쳐놓는다면, 그건 나의 삶에 대한 침범일지 모른다. 영화는 끝났다. 극장을 나서면서 난 스스로에게 원칙을 정하기로 했다. 다음부터 유사한 일이 발생할 경우, 첫번째는 경고 사격. 두번째는 응징. 그리고 세번째부터는 동일하게 나도 그의 시간에 갑질을 행사할 생각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상상만 해도 벌써부터 마음이 후련해진다. 정연욱 30대 홀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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