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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인터넷 쇼핑하듯, 사랑해도 될까요

등록 2018-02-11 10:11수정 2018-02-11 11:43

[토요판]이런, 홀로!? 자기개발 세대의 데이팅앱
24시간 SNS 핫라인 데이팅앱
진짜 나 대신 ‘매력적인 나’로
무한한 가능성과 불확실성으로
상대를 ‘낚는’ 게 만남보다 즐겁다

구입할지 알 수 없는 물건을
쇼핑몰 장바구니에 담는 것처럼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방법으로
오늘도 ‘낯선 사람’을 찾고 있다
스마트폰에 데이팅앱을 깔기만 하면 나이와 세대, 국적까지 넘나드는 연애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앱부터 학력과 연령, 직업에 따라서 데이트 상대를 골라주는 앱까지 있으니 목적에 따라서 선택만 하면 그만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스마트폰에 데이팅앱을 깔기만 하면 나이와 세대, 국적까지 넘나드는 연애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앱부터 학력과 연령, 직업에 따라서 데이트 상대를 골라주는 앱까지 있으니 목적에 따라서 선택만 하면 그만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아줌마는 섹시해요.”

일곱살 아이가 건넨 뜻밖의 말에 미랜더는 깜짝 놀랐다. 그 말의 의미를 아느냐고 미랜더가 묻자 아이는 비밀이라면서 대답을 회피한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한다.

“그건 알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뜻이에요.”

미국의 소설가 줌파 라히리가 쓴 단편소설 <섹시>(Sexy)의 한 장면이다.

우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낯선 사람을 사랑한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사랑은 낯선 사람들끼리 하는 것이다. 그래서 1세대 페미니즘 소설 <비행공포>를 쓴 에리카 종은 ‘지퍼 터지는 섹스’(zipless fuck)를 위해서는 일단 상대방을 잘 몰라야 한다’고 일갈했고 가수 싸이는 뉴 페이스를 원한다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너무 극단적이라고? 그렇다면 덮어놓고 낯선 사람을 만나보는 것이, 사랑을 찾기 위해서 선결해야 할 전제 조건이라는 데는 동의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현대 연애의 기초이자 행동 강령 1조이기 때문이다.

플러팅과 SNS의 결합

나는 사랑도 자기개발처럼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배운 세대에 속한다. 언제부터인가 미디어가 나서서 좁은 시장을 벗어나 무한한 가능성을 어필하라고 가르쳤다. 이 모토를 실천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무능력하거나 자신감이 결여된 루저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여기에 갑자기 등장한 전화번호 플러팅(flirting·집적대는 행위)이 자기개발식 연애 문화의 확산을 도왔다. 데이트 문화는 일대 혁신을 맞았다.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아는지 모르는지의 여부가 사랑의 명운을 결정지었다. 그래서 처음 본 사람에게 대뜸 번호부터 묻는 것이 플러팅의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때마침 힙합 듀오 지누션은 ‘전화번호’라는 제목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뒤를 이어서 에스엔에스(SNS)용 자아 만들기가 인기를 끌었다. 마음에 드는 상대를 염탐하거나 쪽지를 보내고 아이템을 선물하던 그 시절을 기억하는가? 작고 소박한 세상이 열린 뒤에 에스엔에스 플랫폼은 발전을 거듭했다. 그 결과 현실보다 더 치열하고 경쟁적인 콜로세움이 완성됐다. <페이스북 심리학>(원제 Facehooked)과 같은 책이 출간되고 진지하게 읽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가장 최근에 등장한 데이팅앱은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수단이 결합하면서 탄생했다. 데이팅앱은 24시간 잠들지 않는 핫라인인 동시에 가상의 자아로서 기능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데이팅앱의 강점은 지금까지 등장한 그 어떤 수단보다도 단순하고 강력하면서 목적 지향적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스마트폰에 데이팅앱을 깔기만 하면 나이와 세대, 국적까지 넘나드는 연애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그의 친구를 알아야 하거나, 전문 업체에 부담스러운 비용을 지불할 이유가 사라진 셈이다. 게다가 이들 앱은 소비자의 욕구에 신속하게 부합할 줄 안다. 데이트의 목적에 따라서 이용자의 가입을 제한하는 앱이 성업 중이고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앱부터 학력과 연령, 직업에 따라서 데이트 상대를 골라주는 앱까지 있으니 목적에 따라서 선택만 하면 그만이다.

절차도 간단했다. 가입을 완료하고 지시에 따라서 프로필을 작성했더니 모든 준비가 끝났다. 한 가지 ‘매력적인 자아 만들기’에는 공을 들여야 했다. 원활한 매칭을 위해서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전용 자아와는 또 다른 스타일의 자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내세울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게 뭐든지 꺼내놓게 된다. 노골적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 또한 경쟁이며 되도록 많은 상대에게 매력을 인정받는 것이 목적임을 되새기면서.

오고 가는 관심과 ‘좋아요’나 ‘오케이’(OK) 따위로 매칭이 이루어지면 대화가 시작됐다. 그 전에 낯선 사람과의 대화에 중압감을 느끼는 나를 멀찌감치 제쳐뒀다. 그 자리에 활달하고 사교적이고 모험심 강한, ‘보다 멋진 데이트를 위해서 만들어진 새로운 나’를 등장시켰다. 실제로 데이팅앱을 애용하는 지인 중 하나는 데이트 상대를 낚는 과정이 이들 중 몇몇을 실제로 만나는 것보다 더 즐겁다고 했다. 앱을 통해서 누군가를 만나려는 것인지, 데이팅앱 자체에 중독된 것인지 모르겠다는 그의 고백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이 단계까지 무사히 도달하면 그다음은 쉬웠다. 매칭된 이들 가운데서 일부를 걸러냈다. 그동안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안목과 오감, 촉을 동원하면 된다. 여기서도 살아남은 후보들은 각각의 카테고리에 따라 분류했다. 그랬더니 일군의 나쁘지 않은 사람들, 괜찮은 사람들, 아주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핸드폰 번호는 신중하게, 상위 카테고리에 속한 이들에게만 알려주는 것이 내 나름의 철칙이었다.

메시지가 더 많이, 빈번하게 오고 갔다. 하는 일과 취향, 근래 유행하는 것들, 내가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인가를 화제로 삼았다. 하지만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진짜 나’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농담 코드나 취향을 확인하는 스몰 토크가 서로를 아는 것보다 훨씬 로맨틱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아는 사람을 사랑하기란 너무 어려우므로, 어쩐지 진지하게 아는 과정은 최대한 미뤄둬야 할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도 메시지를 주고받을 뿐인데 느리게 춤을 추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신경이 곤두섰다. 메시지를 확인하는 시간, 답장이 돌아오는 간격과 메시지의 빈도 따위에 신경이 쓰이고 매끄럽기만 하던 대화가 덜걱거리면 불안이 엄습했다. 그러나 이럴 때조차도 의기소침해져서는 안 된다. 아직 남아 있는 후보들의 리스트, 한 번도 매칭된 적 없는 이들까지 떠올리며 힘을 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자기개발 세대가 기댈 것은 무한한 가능성과 결정된 것이 없음에서 비롯되는 불확실성뿐이지 않나.

그런데 가능성과 불확실성이 관계 맺기를 방해하는 주범이라는 점 때문에 우리는 딜레마에 빠진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도 무수한 변수와 변덕스러움에 의해서 두뇌가 즉각 반응하고 나섰다. 이상하게도 머리에서 지시가 내려오기 시작하면 모든 일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런 이유로 회의감이 들 무렵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립반윙클의 신부>를 봤고 나는 이 영화의 도입부를 일종의 암시로 받아들였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주인공 나나미는 데이팅앱으로 남편감을 만났다. 그리고 자신의 에스엔에스 계정에 이렇게 썼다.

‘인터넷에서 쇼핑을 하듯이 간단히, 너무 쉽게 손에 넣었다.’

나나미의 독백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여러 사이트를 전전하며 실제로 사게 될지 알 수 없는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담고 같은 물건이라면 조금이라도 싸게 파는 곳을 찾다가 마음이 바뀌면 아예 다른 물건을 사고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구매 자체를 포기하는, 익숙한 패턴이 떠올랐다. 비슷한 양상이 데이트 상대를 만나는 중에도 재현됐다. 우리가 언제 투자비용과 효율성, 확률과 손익계산을 떠나서 사고한 적이 있던가? 심지어 데이트 상대가 인격체로도 보이지 않는 사상 초유의 상황을 맞았으나 불행히도 이럴 때 대처하는 방법은 배운 적이 없다.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는

결국 자기개발 세대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방법으로 사랑을 찾고 있다. 마치 절대로 행복할 수 없는 악조건 속에서 행복을 찾아 헤매듯이. 그 과정에서 실현되기 힘든 욕망과 적용하기 어려운 방법론을 마구 흡수한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한 사람에게 열정과 안정감, 의외성과 친근감, 카리스마와 다정함을 동시에 요구하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어느 한 가지도 포기하지 않는다. 또 세상의 중심이 나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존감을 지켜야 한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그러면서 자아를 잊을 정도로 강렬한 사랑에 연연한다. 게다가 우리는 사랑을 냉소하지도 못한다. 사랑은 여전히, 우리가 살면서 완성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그렇다면 자기개발식 연애의 모순성이 데이팅앱을 낳은 것일까, 아니면 데이팅앱이 모순성을 키워놓은 것일까? 나로서는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을 찾는 과정이 간단하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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