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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친구의 조금 다른 결혼식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

등록 2018-01-07 09:28수정 2018-01-07 21:57

[토요판] 이런,홀로!?
이런 결혼이라면
아예 끌리지 않는 드레스를 찾지 못한 친구는 최대한 짧은 드레스를 입고 접어서 길이를 줄이는 방법을 택했다. 신부가 한 손으로 드레스를 잡아야 해 신랑의 한 손에 들린 부케는 신랑과 신부의 친구 중 가장 행운이 필요한 사람에게 던져졌다. 픽사베이
아예 끌리지 않는 드레스를 찾지 못한 친구는 최대한 짧은 드레스를 입고 접어서 길이를 줄이는 방법을 택했다. 신부가 한 손으로 드레스를 잡아야 해 신랑의 한 손에 들린 부케는 신랑과 신부의 친구 중 가장 행운이 필요한 사람에게 던져졌다. 픽사베이

“저희 ○○○와 □□□는 각자의 커리어를 존중하고 응원하며,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9월. 하늘이 맑고 높았던 어느 날 한 친구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친구인 신부와 그의 신랑이 함께 이 성혼서약서의 구절을 읽자마자 양쪽 테이블에서는 환호성이 터져나왔습니다. 이어 신부와 신랑은 다른 구절도 읽었습니다. “저희 ○○○와 □□□는 고정된 성 역할을 나누거나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하객 테이블 곳곳에서 또다시 환호성이 터져나왔습니다. 사실 맥주 몇 잔 비우고서 한껏 기분이 좋아진 저와 친구들은 심지어 일어서 박수를 치기까지 했습니다. 몇몇 어른들이 웃으며 쳐다보셨지만 저희는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친구가 신나게 식장을 춤추듯 입장했던 것처럼, 그날은 사랑하는 친구와 그 친구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한 축제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비슷한 성혼서약식을 지난 5월에도 이미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신랑 ○○○은 신부 □□□가 슈퍼우먼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때도 많은 하객이 환호성과 함께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결혼의 축소판이 결혼식이라면
여성이 주체가 되는 결혼식이라면
결혼생활도 달라지지 않을까

짧은 드레스를 입은 친구는
신부대기실을 나와 하객을 맞았고
신랑과 손을 맞잡고 입장했다

“희생을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한 사람이 지워지지 않는 결혼
그런 결혼을 꿈꾸기 시작했다

청첩장에 양가 부모님 이름 대신…

요즘 ‘며느라기’라는 웹툰이 인기입니다. 며느라기는 ‘사린’이라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마도) 30대 여성이 주인공으로, 결혼 생활과 시댁 식구, 제사처럼 새로운 변화, 관계, 결혼 문화 등을 다룬 웹툰입니다. 이 웹툰은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입니다. 결혼을 하기 전의 여성이나 결혼한 여성이나 모두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저도 저희 어머니에게 그 웹툰이 업로드될 때마다 링크를 보내드리곤 합니다. 며느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30대 정도로 추정되지만 저희 어머니도 많이 공감을 하실 정도로 며느라기 에피소드들은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며느라기를 찬찬히 읽다 보면 ‘과연 결혼이라는 것이 평등하고 동등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곤 합니다. 특히 명절날 에피소드에서 사린이 남편 무구영의 집에서 구영의 조상님들을 위해 음식을 차리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구영을 포함한 무씨네 남성들은 아무도 자신의 조상님들을 위한 음식을 차리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제사의 모습을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누군가가 그것을 객관적으로 그려놓으니 더욱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명절날 이야기, 시부모님(구영의 부모님)의 생일 이야기 등 다양한 결혼식 이후의 에피소드들을 돌아돌아 이야기는 다시 사린의 결혼식장으로 향합니다. 실은 사린의 꿈이었지만, 꿈속 사린의 결혼식에서 주례 선생님은 “며느라기를 받아들이겠습니까?”라며 사린에게 답을 요구합니다. 며느라기를 받는다는 의미는 며느리로서 어찌어찌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긴다는 뜻으로 그려집니다. 이 웹툰은 꿈이라는 다소 상상적 매개를 차용해 며느라기의 의미와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며느라기를 받아들이겠냐고 묻는 자리는 바로 다름 아닌 ‘결혼식장’입니다. 결국 결혼식의 모습은 여성의 결혼 후 삶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히 결혼을 두고 ‘두 사람이 모여 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저는 부모 세대를 포함해 결혼한 사람들을 보며, 하나됨이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지워짐’은 아닐까, 특히 여성의 지워짐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합니다. 결혼을 개인과 개인의 동등한 만남이 아닌 집안 대 집안으로 보는 사회적 관습, 그리고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회경제 구조 역시 한몫합니다.

여자 친구들끼리 모이면 가끔 대안적인 삶의 형태를 이야기하곤 합니다. 결혼과 결혼식도 그중 하나의 주제입니다. 며느라기처럼 어쩌면 결혼식은 곧 펼쳐질 결혼 생활의 일종의 압축적인 은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지금의 보편과 조금은 다른 결혼 생활을 꿈꾸듯, 우리는 조금은 다른 결혼식 문화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여성이 남성의 집으로 편입되지 않는, 다시 말해 여성 역시 주체적일 수 있는 결혼식. 또한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 아닌, 그저 사랑하는 개인과 개인이 미래를 함께하겠다는 걸 선언하는 결혼식. 그런 결혼식을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9월에 결혼한 친구는 부모님 친구 및 지인에게 보내는 것을 제외한 청첩장에 양가 부모님들의 이름을 모두 뺐습니다. 대신 신부 이름과 신랑 이름은 순서대로 적었습니다. 이름 몇 개 빼는 게 무어가 그렇게 어렵겠나 싶지만 결혼이 집안의 문제인 한국에서 그리 쉽게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키가 큰 편이 아닌 친구는 혼자서 자유로이 걸어다닐 수 있는 드레스와 신발을 골랐습니다. 처음에는 아예 바닥에 끌리지 않는 드레스를 입으려고 했으나, 놀랍게도 끌리지 않는 드레스가 거의 없어 엄청나게 제한된 선택지에서 애를 먹어야만 했습니다. 키가 160㎝ 초반인 친구는 웨딩숍에서 본 대부분의 드레스가 거의 175㎝ 키에 맞춰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평소에도 구두를 신지 않는 친구가 ‘15㎝짜리’ 힐을 신고 종일 서 있을 자신은 당연히 없었습니다.

결국 아예 끌리지 않는 드레스를 찾지 못한 친구는 최대한 짧은 드레스를 입고 접어서 길이를 줄이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친구는 식전 신부대기실에 꼼짝없이 앉아 있는 것 역시 끔찍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신부대기실을 없앴습니다. 친구도 신랑과 함께 식전 밖으로 나와 자신의 결혼식에 온 친구와 지인들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신부대기실 밖에서 좀더 자연스럽고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도 있었습니다. 본식이 시작되고 신부는 신랑과 함께 행복하게 식장으로 들어섰습니다. 신부의 아버지가 신부를 신랑에게 건네주는, 마치 부창부수와 같은 모습이 싫어 신부는 신랑과 함께 손을 잡고 입장했습니다. 누군가가 누군가의 소유물도 아닌, 그래서 어디론가 다시 편입되는 모습이 아닌 두 개인의 만남을 그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신부가 한 손으로 드레스를 잡아야 해 신랑의 한 손에 들린 부케는 신랑과 신부의 친구 중 가장 행운이 필요한 사람에게 던져졌습니다.

남의 집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닌

하나하나 사소해 보이지만 이 사소한 특이점들이 모여 성혼서약식 때 환호성을 자아냈습니다. 이제껏 본 그 어떤 결혼식보다 행복한, 재미있는 결혼식이었습니다. 괜한 억지 가족주의 서사로 눈물을 빼는 일도 없었습니다. 친구는 애초에 자기 자신을 하나의 개인으로 인식했으니, 부모님에게 속해 있다 남의 집으로 편입된다 따위의 서사도 없었습니다. 남의 집 사람이 된다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자리 그뿐이었던 것입니다.

실은 저는 결혼을 하고 싶지만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저와 상대에 대한 책임 이외에 져야 할 책임들과 역할이 두렵고 싫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친구의 결혼식과 또 그 이후의 결혼 생활을 지켜보며 조금은 용기와 희망을 얻었습니다. 결혼 이후의 삶의 모습이 어쩌면 결국 결혼식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어느 정도 맞는다면, 좀더 나은 결혼식을 꿈꾸고 싶습니다. 이어 더 나은 결혼 이후의 삶의 모습도 꿈꾸고 싶습니다. 두 사람을 위해 한 사람이 지워지거나 희생을 할 필요가 없는 결혼. 두 사람 이외의 사람을 위해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이 희생을 할 필요가 없는 결혼. 그런 결혼을 저와 친구들은 막 꿈꾸기 시작한 것입니다.

혜화붙박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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