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한 사이여야 했다.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들과는 나와 상대의 경계가 거의 없는 상태로 엉겨 있었다. 상대를 아낀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무례한 간섭과 편한 사이이기 때문에 쉽게 뱉는 상처의 말들이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의 증명이라고 생각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어렸을 때부터 몇년 전까지 나는 홀로의 공간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친밀함과 가까움이라 생각했고, 사람과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가 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가족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한 사이여야 했다.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들과는 나와 상대의 경계가 거의 없는 상태로 엉겨 있었다. 상대를 아낀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무례한 간섭과 편한 사이이기 때문에 쉽게 뱉는 상처의 말들이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의 증명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개인의 영역이 뚜렷한 관계를 두고선 그렇게 친밀한 관계는 아니지 않냐며 오만한 판단을 내렸다. 친구들과의 애착과 정서의 교환이 가장 높았던 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갓 성인이 된 이후 가족(친척) 중 어른의 영역에 들어가게 된 시절, 나는 이 관계들이 사랑스러웠고 나와 상대(들)의 공간을 지우기 위해 상당히 노력했다. 공간을 지우고 틈을 좁히는 동안 홀로의 영역은 사라졌다.
틈을 좁히는 게 전부가 아니다
그렇게 열일곱살에서 스무살까지의 시간이 흘렀다. 대학 입학 뒤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로 인해 더 다양한 관계를 맺게 됐다. 대표적으로 아주 친밀한 관계 중 하나인 애인이라는 관계를 형성했다. 대학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너른 의미의 폭력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성인으로서의 독립적 존재가 되기 위해 홀로의 존재를 고민했다. 사람들과 관계 맺는 법을 다시금 고민하고 기존의 관계들을 다시 돌아봤다. 내가 이제까지 사람들과 맺어온 관계에서 비틀림이, 문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회에 나와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다양한 방식의 관계를 맺게 됐다. 새로이 맺게 되는 관계의 방식과 과거 관계들의 방식 사이 간극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 안에서 나는 점점 날카로워지고 예민한, 상처에 취약한 사람이 돼가고 있었다. 나는 다시 관계의 방식을 고민하고 바로잡기로 했다.
‘관계’를 고민하겠다는 의지는 최근 몇년 사이에 강해졌다. 사람과의 관계를 담은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이 선 건 얼마 전 명절 때의 일 때문이다. 우리 친척들의 명절은 항상 행복했다. 아주 친밀하고 가까운 사이였으며 어느 관계 하나 크게 뒤틀림 없이 오랜 시간을 함께해왔다. 뒤틀림이 없어 보였던 관계는 실은 군데군데 친밀함을 가장한 폭력들이 숨어 있었다. 나는 그걸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오히려 더 어렸을 땐 그 폭력들을 친밀한 관계의 증거로 삼았다.
명절, 사촌들의 타투를 주제로 어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한 어른의 언성이 높아졌다. 부모가 물려준 몸에 감히 어떻게 타투를 할 수 있냐는 게 요지였다. 어른들이 먼저 토론을 하자고 제안을 했기에 토론에 참여했으나, 그들 입장에선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는 손아랫사람인 내가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흥분한 어른은 욕을 하기 시작했고 테이블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술에 취한,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성인 남성의 욕과 소리지름에 순간 멍해졌다. 그날 앞뒤 몇분간의 기억을 잃었다.
다음날 엄마는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 내가 먼저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게 엄마의 생각이었다. 이 관계는 본디 (최소한 그들에겐) 친밀했으며, 두터웠으며, 나로 인해 관계의 비틀림을 보고 싶지 않기에 내가 사과하길 바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관계가 과연 애초부터 친밀하면서도 비폭력적인, 상처를 주지 않는 관계가 맞았을까. 그간 숨어 있던 관계의 폭력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수가 조금이라도 틀리면 자기는 그냥 집으로 가버리겠다던 사위들의 협박, 나이가 어린 구성원이나 손아랫사람에게 부리던 어른들의 주폭, 가족이라는 이유로 나이가 어린 구성원을 하나의 소유물처럼 통제하려 들려던 일들, 당사자는 바란 적이 없지만 조언이라 우기던 오지랖의 칼날들.
이러한 방식의 관계가 지속된다면 과연 나는 그 속에서 상처받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걸까. 분명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이사이의 비틀림과 폭력을 모른 척 묻어두어도 괜찮은 걸까. 과거의 내가 그랬듯이 사랑하기 때문에 가깝기 때문에 그 정도의 비틀림은 애정의 증거로 남겨둘 수 있는 것일까. 과연 그 관계는 나에게 좋은 관계일까. 가장 가까운 관계로 흔히 얘기되는 가족이니 그냥 괜찮아야 하는 걸까. 나만 괜찮으면 이 관계는 계속 괜찮은 관계인 걸까.
그 뒤 서울로 올라왔고 얼마 뒤 친척 어른은 나의 부모에게 사과를 했다. 딸 같아서 그랬다는 어른의 말을 전해 듣고서, 그렇다면 나의 부모라면 나에게 그래도 되는 것인지 고민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라면 그래도 되는 관계인가. 나는 끝내 어른에게서 사과를 받지 못했다. 이 비틀린 관계 때문에 상처를 입은 건 나였지만, 비틀린 관계를 만들어낸 주체들의 관계 회복과 유지를 위해 나는 답이 돌아오지 않는 사과를 해야만 했다.
친밀함을 가장한 관계의 폭력은, 실은 오히려 ‘아주 친밀한 폭력’이라 불려야 되는 이 관계의 비틀림은 가족에게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친구나 지인, 사회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적지 않게 겪어왔다. 서로의 사이에 비어 있는 공간이 없을 정도로 엉겨 있는 것이 친밀함의 근거라 생각했던 때에 형성된 친구들 간의 관계에서도 종종 다쳤고 다치게 했다. 선이 없는, 서로의 공간과 영역을 인지하고 굽어볼 새도 없이 엉겨 붙은 관계였기 때문일까. 타인뿐 아니라 나 역시 마찬가지로 서로의 사이에 필요한 선을 인지하지 못했다. 참견, 비난, 오지랖, 지적, 꼬아 봄, 날것의 말들은 종종 서로를 다치게 했다.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된 그 관계를 친밀함의 방증이라 여기고 자랑스러워했다.
폭력 없이도 친밀할 수 있다
과거에 형성된 이러한 관계들이 지금의 나에게 뜻하는 바가 많은 만큼, 건강한 새 관계를 위해 오히려 일정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과거엔 친하지 않다며 비웃었을 그 거리를 의도적으로 두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만난 동료들에게도 새로 사귄 친구들과 애인에게도. 어쩌면 가장 친밀하고 가까울 수 있는 관계에 일정한 선을 긋고 그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친밀하고 안전한 관계를 위한 고민을 적극적으로 나누기도 했다. 선과 영역이 필요하다고도 이야기했다. 기존의 관계들에 대해서도 당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관계를 둘러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형성된 꽤 많은 관계들이 오랜 시간 동안 친밀하면서도 건강한 관계로 남아 있다. 혹은 비틀림이 조금씩 해소되고 건강한 관계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친밀해지면서도 상대의 개인적인 홀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선을 넘지 않으려 서로 노력하는 그런 관계들. 그래서 그 관계들은 더 소중하고 그에 대한 애착과 친밀함은 더 커져간다. 이런 관계들은, 비틀림은 친밀한 관계를 위한 일종의 필요악이므로 비틀림이 없다면 결국은 친밀해질 수 없을 것이라는 오랜 내 딜레마를 깨트렸다. 폭력이 없어도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를 충분히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친밀함과 폭력은 분리될 수 있으며 별개의 문제다. 관계에 대한 고민에서 스스로 내린 답이다.
혜화붙박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