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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5㎏만 빼면”…세상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등록 2017-08-25 19:47수정 2017-08-26 18:00

“세 끼 다 먹으면 살쪄요”라는 어느 여배우의 말처럼 하루에 두 끼 혹은 한 끼만 먹고, 퇴근 후 헬스장에서 한 시간 이상 땀을 흘리고, 친구들과의 약속을 피해 가며 외딴섬을 자처해야 하는 다이어터의 삶을 다시 견뎌낼 수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세 끼 다 먹으면 살쪄요”라는 어느 여배우의 말처럼 하루에 두 끼 혹은 한 끼만 먹고, 퇴근 후 헬스장에서 한 시간 이상 땀을 흘리고, 친구들과의 약속을 피해 가며 외딴섬을 자처해야 하는 다이어터의 삶을 다시 견뎌낼 수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토요판] 이런, 홀로!?
7년째 다이어트
나는 5㎏만 빼면 내 인생이 달라질 거라고 믿는다. 대한민국에 다이어트 비디오 열풍을 일으킨 모델 이소라도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인생은 살이 쪘을 때와 안 쪘을 때로 나뉜다”라고.

1998년에 출시된 ‘이소라 다이어트 비디오’는 대한민국 다이어터 여성들 중에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비디오가 출시됐을 당시, 우리 집은 아파트 상가에서 비디오 가게를 했다. 그때는 손님이 요청하면 원하는 비디오를 녹화해서 판매했는데, 이소라 다이어트 비디오는 하루에도 서너 개씩 꾸준히 팔렸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오후 시간이 여유롭다는 이유로 비디오 녹화를 담당했다. 나는 편하지도 않은 수영복을 입고 춤도 아닌 기묘한 동작들을 반복하는 다이어트 비디오를 시청하면서 ‘왜 어른들은 이런 비디오를 보는 걸까’ 의아했었다.

‘나는 왜 남자친구가 없을까?’
그 답을 다이어트에서 찾았다
‘이소라 비디오’로 두달이 지나
바지 사이즈는 줄고 매력은 늘고

‘왜 나만 안 생겨요?’

그로부터 10년 후, 나는 고향을 떠나 대학에 입학했다. 서울 사는 친구를 처음으로 사귀었고, 1호선 지하철이 노량진역을 지날 때 보이는 63빌딩처럼 생긴 건물이 진짜 63빌딩이었음을 알았다. 2학년이 되자 대부분의 여자 동기들은 남자친구가 생겼다. 3학년이 되었을 때 그녀들은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고무신이 되었거나, 새로운 연애를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남자친구가 없었다.

조금씩 현실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나는 왜 남자친구가 없는 걸까?’ ‘왜 저만 안 생겨요?’ 이 문제의 답을 얻고자 평소 신뢰하던 남자 선배를 찾아갔다.

“오빠, 왜 저만 남자친구가 안 생기는 걸까요?”

학교 앞 호프집에서 만난 선배는 프라이드치킨에 맥주 500㏄ 잔을 앞에 두고 말이 없었다.

“음… 그게… 아무래도 내 생각에는 말이야….” 고민하던 선배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살을 빼봐, 그러면 남자들이 널 보는 시선이 달라질 거야.”

그날 선배의 진심 어린 조언을 듣기 전까지, 나는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통통해서 귀엽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고 “맏며느리감이네”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을 뿐이다. 나는 ‘마르지 않은’ 내가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깨달았다. 내가 날씬하지 않아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음을 말이다.

인터넷에서 다이어트 방법을 검색했고 다이어트계의 고전이자 해답으로 불리는 이소라 다이어트 비디오를 다운로드했다. 나는 두 달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밤 다이어트 체조를 했다. 해본 사람은 안다. 이 다이어트 체조가 얼마나 괴롭고 힘든지. 게다가 아침에는 수영을 했다. 수영장에 갈 때는 자전거를 탔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운동을 하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재미와 성취감을 얻는다는데… 글쎄…? 나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매일 터질 것 같은 허벅지와 찢어질 것 같은 뱃가죽의 고통만 느꼈을 뿐이다.

식단 조절도 철저히 했다. 빵과 과자를 끊었고 튀김은 금물, 김치볶음밥처럼 기름에 볶은 음식도 먹지 않았다. 오로지 학교 기숙사 식당에서 하루 두 끼, 백반만 먹었다. 그마저도 배고프지 않게 허기를 달래는 정도로만 먹었다. ‘이 초콜릿 한 조각이면 몇 분을 더 뛰어야 하는데… 떡볶이는 칼로리가…’ 하는 생각으로 식욕을 억제했다. 하지만 가장 힘든 건 나의 소울푸드였던 카페모카를 참는 일이었다. 다이어터에게 카페모카 위에 얹어진 휘핑크림이란, 차라리 솜 뭉텅이를 입에 넣는 편이 나았다.

누구든 붙잡고 ‘도대체 이 고통은 언제 끝나나요’라고 행패라도 부리고 싶은 고난의 시간을 두 달가량 보내고 나서야, 나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계획되고 날씬한 몸을 가질 수 있었다. 참고로 다이어트 성공 당시의 내 키는 160㎝, 몸무게는 49㎏이었다. 여자 몸무게에서 앞자리 5와 4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아는지.

힘들었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다이어트 효과는 분명했다. 다이어트에 성공한 적이 있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인생은 살이 쪘을 때와 안 쪘을 때로 확실히 나뉜다는 것을 말이다.

먼저 입을 수 있는 옷의 세계가 달라진다. 정확히 말하면 뭘 입어도 태가 난다. 치마가 짧든, 티셔츠가 허리에 딱 붙든, 바지를 입었을 때 허벅지 안쪽 라인이 드러나든, 어떤 형태의 옷도 입을 수 있다. 특히 당시에는 걸그룹 소녀시대가 입은 색색의 스키니진이 유행이었다. 바지 사이즈가 29인치에서 26인치로 줄었던 나는 스키니진을 색깔별로 골라 입었다.

예쁜 옷을 입게 되니 실제로도 예뻐졌다. 외모에 자신감이 생기면서 삶을 대하는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얼굴살이 도드라질까 무표정하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웃는 모습이 예쁘다고 이야기해주는 남자가 생겼다. 매장에서 물건을 살 때, 특히 옷을 살 때 직원들이 더 친절해졌다. “고객님은 날씬하셔서 뭘 입어도 잘 어울리세요”라는 멘트는 덤.

우리가 살을 빼고 나면 새로운 모임 혹은 낯선 사람들을 만났을 때 “제가 날씬하지 않지만, 알고 보면 꽤나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사람이랍니다”라고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을 어필하지 않아도 된다. 예쁘고 날씬하면 충분히 쉽게 설명이 가능하다. 술자리에서 연애를 하고 싶다고 울적하게 이야기할 때마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소개해줄 텐데…”라고 말끝을 흐리던 동기, 선배, 후배들이 미팅, 과팅, 소개팅을 먼저 제의해올 수도 있다.

다이어트에 성공했을 때, 나는 세상살이가 한결 편해졌다.

그러나… 예상 가능한 결말처럼 요요가 찾아왔다.

다시 살이 찌기 시작한 건, 대학 졸업 후 기숙사를 벗어나 홀로살이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취업 준비를 하던 때라 용돈을 아껴야 했고 밥은 항상 자취방에서 혼자 차려 먹었다. 문제는 요리를 하면 1인분이 아닌 1.5인분 혹은 그 이상으로 만들어졌다. 찌개를 하나 끓여도 끓는 물의 양이 있으니 1인분 이상, 소시지를 부쳐도 꼭 한두 조각이 남았다. 애매하게 남은 반찬을 처리하기 위해 다시 밥통에서 밥을 한 주걱씩 더 퍼내면서 조금씩 살이 찌기 시작했다.

나는 하반기 취업에 성공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저녁 밥상을 차릴 필요가 없어졌다. 퇴근 후엔 늘 회식이 이어졌다. 신입사원인 나는 1차 삼겹살부터 3차 호프집의 마른안주가 이어질 때까지 자리를 지켜야 했다. 다음날 아침식사는 언제나 지하철역 근처에서 산 차가운 커피 한 잔이었다. 혼자 사는 나에게 해장 콩나물국을 끓일 정신과 체력 따위는 없었다.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나면 점심에는 늘 폭식을 하게 되었다. 홀로살이 1년 차 더하기 직장생활 6개월 차에 내 몸무게는 완전히 원래 궤도를 되찾았다.

다이어트 성공과 함께 옷장을 채웠던 예쁜 옷들은 ‘살이 찌기 전 입었던 옷’으로 분류되어 하나씩 의류 수거함에 넣어졌다. 물론 색색의 소녀시대 스키니진이 가장 먼저였다.

취업과 홀로살이…‘요요’의 습격
자존감 떨어지고 ‘뽀샵’만 늘어
‘나대로 괜찮다’는 말 안 통하는
외모가 경쟁력인 사회의 비애

“세끼 다 먹으면 살쪄요”

살이 찌면서 자존감은 다시 낮아졌고 신경 쓸 일도 많아졌다. 먼저 휴대폰으로 에스엔에스에 사진을 올릴 땐 포토샵 앱의 ‘다이어트 기능’으로 수정을 거친다.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삶의 질이 높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포토샵은 필수다. 옷은 최대한 날씬해 보이고 자신 없는 신체 부위를 가려주는 것으로 골라야 한다. 그저 입고 싶은 대로 입었다가는 “그 몸매에 저런 치마를”이라는 험담을 듣기 쉽다.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 사회가 몸뚱이를 기준으로 옷을 고르게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나대로 괜찮아’라는 긍정은 외모가 경쟁력인 이 사회에서 통하지 않는다.

최근 다시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회사 근처 헬스장에 3개월 회원 등록을 하고 일주일 성실히 출석했다. 이제 기한은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또다시 헬스장에 기부를 한 셈이다. 이번 생에 다시 한 번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을까. 아침 출근길에 따뜻한 라떼 한 잔과 버터향이 좋은 크루아상을 포기하고 “세 끼 다 먹으면 살쪄요”라는 어느 여배우의 말처럼 하루에 두 끼 혹은 한 끼만 먹고, 퇴근 후 헬스장에서 한 시간 이상 땀을 흘리고, 회식 자리에서 눈치껏 술과 안주를 덜어내고, 친구들과의 약속을 피해 가며 외딴섬을 자처해야 하는 다이어터의 삶을 다시 견뎌낼 수 있을까.

7년째 하고 있는 “5㎏만 빼면 세상이 달라질 것 같아”라는 넋두리는 이제 그만할 때도 된 것 같은데, 다이어터의 길은 너무 외롭고 험난하기만 하다.

청파동 파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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