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런, 홀로!?
이런! 냉장고
이런! 냉장고
이상하게 혼자 사는 사람들은 의외로 마요네즈나 케첩, 머스터드, 심지어 굴소스 같은 고급(?) 소스류들도 사놓는 경우가 많다. 물론 대체로는 유통기한이 끝나고도 1년이 넘을 때까지 처박아둔 채로 재활용을 하긴 하지만.
마스크팩·먹다 남은 소주병·맥주캔
바나나 같은 시꺼먼 무언가까지
냉장고 문 열기가 때론 두렵다 ‘애매한’ 1인분은 쓰레기가 됐고
레시피 속 재료는 늘 하나가 부족
그렇게 요리의 기쁨을 잊어버렸다
그냥 오늘도 편의점에서 사 먹을까? 가장 슬픈 순간은 잊고 살다 우연히 열어본 전기 밥솥 안을 확인할 때가 2위일 테고, 부모님이 보내주신 반찬을 그대로 음쓰로 버려야 할 때가 최고로 슬프다. 아까운 쌀밥들, 아까운 반찬들. 나는 분명 요리를 좋아했고, 잘했던 사람인데 왜 이렇게 됐을까. 혼자 사는 다른 내 친구들은 대체 왜 그렇게 됐을까. 자취 경력 중 많은 시간을 친구와 함께 살면서 정말 잘 해 먹었다. 1~2주마다 공금으로 장을 봐왔고 주말엔 함께 어려운 요리도 척척 하며 밥을 먹었다. 평일에도 늘 마트에서 산, 부모님이 보내주신 반찬들을 꺼내 야무지게 먹었다. 혼자 요리를 해 먹고 싶은 날엔 신선한 재료들을 사와 요리를 했고 넉넉한 양을 만들어 친구에게 내일 먹으라고 일러줬다. 가끔은 학교 친구들을 불러 함께 장을 보고 요리를 해 먹기도 했다. 머나먼 스웨덴에서 타향살이를 할 적에도 자전거로 20㎏이나 되는 일본 쌀 포대를 꾸역꾸역 날랐고 아시안 마트에서 그나마 한국 것과 비슷한 식재료를 사와 기숙사 공용 부엌에서 열심히도 요리했다. 근처 살던 한국인 친구들도 초대해 요리를 함께 해 먹었고 여러 국적의 외국인 친구들과 정성스레 함께 요리한 각자 나라의 음식도 자주 먹었다. 마트에서 돼지 털이 박힌 껍데기가 그대로 붙어 있는 포크 밸리를 사온 다음 직접 손질해 삼겹살을 구워 먹기도 했다. 이렇게나 열정적이었던 나의 요리 라이프는 왜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일까. 변명 하나. 아무리 식재료 양을 어림잡아 적게 사들고 와도 요리를 하면 꼭 남는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1인분짜리 음식을 요리하는 일이다. 꼭 애매하게 조금 남아 다음날 먹기도 양이 적다. 그래서 넉넉하게 2인분을 만들면 다음날 꼭 약속이 생겨 저녁을 거르게 된다. 그렇게 하루 이틀 정도 냉장고에서 살고 있던 음식은 나중에 형체를 알 수 없는 모습으로 나를 맞이한다. 딱 지금 이 끼니만 먹을 수 있을 정도면 좋을 텐데. 엄마의 ‘대충 눈대중’이 세상 신기하다. 사실 완성된 음식이야 조금 남으면 그래도 다음날 먹거나 그릇에 잘 담아 냉동고에 얼려뒀다 나중에 먹으면 된다. 문제는 재료다. 곧 또 해 먹겠지 싶어 넣어둔 채소와 고기는 냉장고를 굴러다니다 늘 그렇듯 나와 헤어져 음쓰로 간다. 변명 둘. 뭔가 꼭 재료 하나가 없다. 요즘 모바일 영상들은 온통 ‘냉장고에서 굴러다니는 재료’를, 몇분 만에, 쉽게 해 먹을 수 있다는 요리 레시피들이 널려 있지만 어째 내 냉장고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베이컨김치말이를 해 먹자니 일단 베이컨은 우리 집 냉장고에 입주해 있지 않다. 다른 레시피를 보니 우리 집엔 콘샐러드도 없고 버터도 없다. 치즈도 당연히 없다. 아니 식빵은 무슨, 이렇게 상하기 쉬운 대용량은 당연히 잘 안 산다. 음… 부침가루는 밀가루로 대체해도 되나요?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오븐이 잘 없다. 뭔가 굉장히 쉬워 보이는 레시피인데, 내가 봐도 구하기 쉬운 재료들인 것 같은데 어쨌든 우리 집엔 없다. 없다! 없다고! 고것 몇개 사러 나가자니 귀찮고, 사온다고 한들 며칠 냉장고에 머무르다 또다시 음쓰통으로 가진 않을까 생각하니 그냥 엉덩이를 땅에 붙여버렸다. 없는 재료로 요리하면 대부분의 경우 니 맛도 내 맛도 없다. 변명 셋. 혼자 먹으면 맛이 없다. 이건 팩트다. 귀찮음을 이겨내고 꾸역꾸역 근처 마트로 가 이것저것 재료를 고르고 있다 보면, 이걸 집에 들고 가 씻고 손질하고 썰고 어떻게 저떻게 더운 불 앞에서 요리하고, 그 오랜 시간 동안 배고픔을 달래며 간을 재며 맛을 보며 요리하자니 벌써부터 지친다. 그 생각을 하다 슬그머니 장바구니에 담았던 식재료를 제자리에 내려놓기를 오백번 했다. 너희들은 음쓰 말고 좋은 집으로 가야 해. 친구와 혹은 애인과 함께 요리하고 마주보고 앉아 천천히 이야기하며 먹는 음식들은 그렇게 맛있는데, 혼자 애써 만든 음식은 뭔가 투입하는 노력에 비해 그 맛과 먹음이라는 행동의 효능감이 썩 좋지 않다. 이 중 하나의 변명만이라도 해결이 된다면 조금이라도 요리할 맛이 날 텐데, 일하는데다 혼자 살기까지 하니 선뜻 쉽지가 않다. 가끔 미디어에서는 스스로 해 먹는 요리를 건강하고 행복한 슬로푸드라고 일컫던데 어째 난 귀찮고 쓸쓸한 푸드인가. 냉동실이 있기에 물론 자취 경력이 길어지다 보면 나름의 변명거리들을 해결할 나름의 혜안이 생긴다. 대형 종이컵을 산다. 된장찌개 재료인 집된장, 파, 두부, 버섯, 멸치가루, 다시다, 다시마 등을 넉넉하게 사 손질한다. 그다음 재료를 대형 종이컵 여러 개에 나눠 넣고 입구에 랩을 씌운다. 냉동실에 넣는다. 한 시간 불린 쌀로 맛있게 밥을 짓는다. 다 된 밥이 조금 식으면 반찬통에 나눠 냉동실에 넣는다. 먹고 싶을 때마다 된장찌개 컵을 꺼내 물을 부어 끓이고 밥은 전자레인지로 해동한다. 물론 전자레인지가 없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거나 이렇게 먹으면 버릴 일도 없이 덜 귀찮게, 마치 우리가 인스턴트음식을 먹는 정도의 노력으로 나름 건강한, 직접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물론 한번 얼렸기 때문에 맛은 조금 떨어질 수 있고, 물론 무엇보다 밥에서 냉동실 냄새가 날 수도 있다. 물론 냉장고가 작아 소분한 컵이 안 들어갈 수도 있다. 그래도 어쩌겠나. 조금씩 시도해보며 깨달음을 얻고 나만의 팁들을 얻어가거나 아니면 주말엔 그냥 편의점에서 사 먹자. 솔직히 이게 제일 편하다. 난 아마 안 될 거야. 혜화붙박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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