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이런, 홀로!?
혼밥의 성지 기사식당
혼밥의 성지 기사식당
많은 기사식당은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탁자마다 설치되어 있고, 가스레인지 위에 불판을 올리고 양념한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올려 조리해 먹는 메뉴를 주력으로 삼는다. 기사식당의 기본은 혼자서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AI 창궐해도 계란프라이는 그대로
택시기사가 주고객…내공은 기본
홀로에게 ‘절실’한 야채반찬 푸짐 혼자 먹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워
때로는 삼겹살 2인분으로 파티도
출퇴근 시간에도 늘 열려있는
혼밥 어려운 시대의 마지막 보루 아침 일찍 문 열고 저녁 늦게 문 닫는다는 것도 장점이다. 조금만 부지런하면 제대로 된 ‘아침밥’을 먹을 수 있다. 웬만한 기사식당은 오전 6~7시 정도면 문을 연다. 손님이 많은 출근시간대 이전에 식사를 해결하려는 택시기사들을 맞기 위해서다. 점심식사 손님을 상대로 영업하는 일반적인 식당이 오전 10시30분~11시 정도는 돼야 문을 여는 것과 다르다. 밤늦게 밥을 먹고 싶다거나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언제든지 이용 가능하다. 나처럼 아침을 먹는 게 정말 중요하지만, 혼자 살아서 그러기 어려운 사람에게 기사식당만한 곳이 없다. 얼큰한 김치찌개에 밥 한 공기 뚝딱 먹고 출근하는 날이면 무언가 든든하다. 경우에 따라 24시간 하는 곳도 있다. 저녁식사를 못하고 귀가할 때 종종 들르는 ㅇ식당은 밤낮없이 하루 종일 4000원에 선지해장국과 비빔밥을 판다.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움을 느끼곤 한다. 혼자 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아니, 기사식당은 혼자서 밥 먹는 게 표준이다. 어딘가에서 차량을 몰며 생업에 종사하다, 잠깐 끼니를 때우러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대개 조용히 밥을 먹고, 기껏 해봤자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약간의 휴식을 취하는 정도다. 오히려 둘 이상 앉아 있는 경우가 특이하다. 그들이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 술 같은 걸 먹는 건 더 보기 어렵다. 누구나 혼자 잠깐 와서 밥 먹고 돌아가는 공간. 혼밥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편안한 식당 운영 형태다. 혼밥의 최고 난이도라는 고기 구워 먹기도 기사식당에선 쉽다. 아니, 기사식당의 기본은 혼자서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이다. 많은 기사식당은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탁자마다 설치되어 있고, 가스레인지 위에 불판을 올리고 양념한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올려 조리해 먹는 메뉴를 주력으로 삼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하자면 기사식당에서 돼지불백 다음으로 자주 먹는 게 삼겹살이다. 예의 단골집에서는 1인분 삼겹살을 판다. 생삼겹살은 200g에 1만원, 냉동삼겹살은 7000원(공기밥 제외)이다. 당연히 냉동삼겹살을 먹는다. 주문하면 알루미늄 포일이 얹힌 정사각형 불판이 설치되고, 알맞은 두께로 잘린 삼겹살 한 접시가 나온다. 포를 뜨듯 지나치게 얇지도, 신선한 고기를 강조한다고 지나치게 두껍지도 않은, 어린 시절부터 익숙하게 먹던 그런 냉동삼겹살이다. 조금 사치를 부려 2인분을 주문하고, 공깃밥을 하나 곁들여 먹는다. 같이 구운 김치와 마늘장아찌 같은 찬을 올려서 쌈을 싸 먹어야 제맛이다. 한 접시 가득 놓인 삼겹살을 구워 뚝뚝 흘러내리는 동물성 지방을 먹는 맛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혼자 가서 1만5000원을 내고 고기를 잔뜩 먹을 수 있는 곳은 정말 서울 시내에서는 흔치 않다. 그것 하나로 기사식당은 갈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사실 이렇게 기사식당에 대한 예찬론을 길게 펴는 것은 혼자서 맘 편하게, 적당한 금액을 지불하고 밥 먹을 수 있는 공간이 그만큼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동네마다 흔히 찾을 수 있었던 백반집을 이제는 찾기 어렵다. 그나마 구도심 지역은 사이사이 밥 파는 가게들이 있지만, 낡은 주택들을 헐고 들어선 뉴타운에서 제대로 먹을 만한 밥집을 찾기란 난망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팬시한 척하지만 실제 들어간 재료나 가공 상태를 보면 영 미덥지 못한, 그런 가게들은 비쌀 뿐만 아니라 혼자 편하게 밥 먹을 수 있는 공간도 아니다. 편의점 도시락이나 먹을 순 없잖아 요즘은 아예 재래시장이나 소규모 공장이 밀집해 있던 지역의 식당을 일부러 찾아가기까지 한다. 십몇년 전이라면 평범한 동네 식당이었을 가게들이 이제 흔히 찾기 어려운 맛집이 됐기 때문이다. 지난주에는 퇴근하고 성동구 뚝도시장의 ○○빈대떡을 찾았다. 가운데 빈대떡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만, 빈대떡은 팔지 않는다. 대신 밥과 각종 술안주를 판다. 찌개류는 각 6000원, 안주는 각 1만원이다. 두 사람이 부대찌개 2인분, 계란말이 하나, 해물파전 하나를 시켜 배불리 먹었다. 김치찌개 베이스인 국물에 스팸과 비엔나소시지, 콘비프가 들어간 부대찌개는 별미였다. 밀가루 사용을 최소화하고 대신 파와 오징어가 가득 들어간 반죽 위에 작은 새우를 얹은 해물파전은 사장님의 요리 센스가 남다름을 실감케 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먹고 있는 가자미구이가 먹고 싶어 속으로 군침을 삼키며 생각했다. “과연 이 가게는 앞으로 몇 년이나 갈 수 있을까. 이런 곳이 사라지면 공업제품을 연상케 하는 편의점 도시락이나 먹고 살아야 하는 건가.” 사람들은 지금이 혼밥의 시대라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혼밥하기 어려운 시대다. 그나마 기사식당이 최후의 보루가 아닐까. 그래서 오늘도 기사식당에 간다. 애국하는 심정이 이런 것일 게다. 고독의 구루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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