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벌어진 일이었다. 야근하는 날이 지독하게 계속되던 중이었다. 진심으로, 야근하다 생을 마감할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덜컥 들어 일을 좀 쉬어보자 생각했다. 훗날을 도모하며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날까, 어느 햇살 좋은 나라에서 나른함을 실컷 누려볼까, 생각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꿍꿍이를 짜고 있던 어느 날, 미국 주재원이라는 예상 밖의 제안을 받았다. 현지에서 바이어와 본사 사이를 긴밀하게 연결할 수 있는 누군가가 급하게 필요한 상황에, 바이어와 공급자 양쪽의 경력을 모두 가진 사람이 몇 없는 터라, 내가 물망에 올랐던 모양이다. 상상했던 ‘멈춤’과는 다른 또다른 업무로의 귀속이긴 했지만, 멈춤을 조금 뒤로 미뤄도 좋을 제안이라 생각하고 미국행을 선택했다.
출장으로 여러 번, 그것도 장기로 몇개월씩 지내본 적도 있는 익숙한 곳이라서 떠나기 전에는 미국에서 산다는 게 이렇게나 익숙한 것들과 멀어지는 일인 줄 상상하지 못했다. 비록 내가 가야 할 곳은 소와 말이 이웃에 사는 시골이었지만, 세계적인 리테일러 월마트의 본사가 있는 동네이기도 하고, 골목마다 스타벅스가 넘쳐나는, 혹시 못 챙겨 간 짐이있다 한들 사면 그만인 미국이었으니까.
혼자라서 더 나쁠 것도 없었다. 혼자 잘 먹고, 여행하고, 영화 보고, 살고 지내고….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터라 미국이라고 뭐가 다를까 걱정도 해본 적이 없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내가 혼자인 것은 달라질 리 없는 팩트 그 자체니까.
혼자 잘 산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사는 곳은 아칸소주의 북서쪽 마을-도시라든가 하는 단어는 가당치가 않다-벤턴빌로 불과 몇년 전까지도 5층을 넘는 건물은 보기 어렵던, 말 그대로 시골마을이다. 지금도 공항을 빠져나오며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광경이 광활한 풀밭과 그 풀을 뜯는 소와 말들, 그리고 볼 때마다 놀라운 하늘 정도?
잘 정비된 공항이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놀라운 그런 곳이다. 이 마을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1980년대 미국드라마 <초원의 집>을 이야기한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한다고 수선을 떠는 동네 사람들이 들으면 무슨 섭섭한 소리냐며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목장이며 나지막한 지평선이며, 시대가 변해서 등장인물들의 의상이 조금 변했을지언정 이곳은 40년 전 드라마 속 마을과 많이 닮아 있다.
시골이라서 이렇게나 다른 건가, 미국이라서 다른 건가 생각을 하다가, 아마도 ‘미국의 시골’이라서 너무나 다른 것일 테지, 하고 생각을 바꿨다. 서울에서 익숙하던 많은 것들이 없거나 다르거나 멀어져 버려서 가끔씩은 이것이 불편함인지 외로움인지 분간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걷다가 만나는 골목의 소소한 재미를 참 좋아하는데, 개인 주택의 정원이나 아파트 단지의 작은 공간 외에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길목이랄 곳이 없다.
혼자인 삶을 즐긴다 생각하고
미국주재원 제안을 받아들였다
‘초원의 집’ 같은 시골마을엔
느리고 답답한 일들투성이였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며
이방인의 삶에 익숙해질수록
떡볶이와 김치는 더 그리웠다
내 ‘혼삶’의 가벼움을 깨달았다
떡볶이라는 같은 이름을 가지고 수만 가지 다른 맛을 즐길 수 있는 선택지도 더 이상은 없다. 한강과 한강변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뿜어내는 노란색 불빛이 눈 감으면 선하고, 방 창문을 열면 남산타워가 보일 것만 같은데…. ‘집에 들어가는 길에 잠깐 들렀어’ 하고 불쑥 찾아갈 친구가 없고, 어린 시절에 우리가 그랬지, 하면서 함께 깔깔댈 수 있는 저녁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바람이 되어 버렸다. 서울에서 혼자 사는 것과 미국에서 혼자 사는 것의 ‘혼자’는 그 밀도 자체가 너무 달랐다.
혼자 잘 지내는 사람, 오히려 혼자를 즐기는 지경이라고 믿어왔던 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혼자도 밥을 잘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사는 곳이 달라지고 보니 남이 차려준 ‘맛있는’ 밥을 혼자 잘 먹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도 수많은 레스토랑이 있지만 하나같이 양만 많고 맛은 별로였다. 여행 중엔 되도록 현지 음식을 즐겨 왔는데, 동네에 단 하나 있는 한국식당이 맛의 객관성 따위는 잊을 만큼 중요한 곳이 되었다. 평생에 걸쳐 먹은 김치보다 지난 2년간 미국에 살면서 찾아 먹은 김치의 양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는 곳은 아칸소주의 북서쪽 마을-도시라든가 하는 단어는 가당치가 않다-벤턴빌로 불과 몇년 전까지도 5층을 넘는 건물은 보기 어렵던, 말 그대로 시골마을이다. 1980년대 미국드라마 <초원의 집> 속 마을과 닮았다.
혼자서도 잘 보던 영화는 취향에 맞는 영화를 상영하는 입맛에 맞는 극장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집 밖에 나가지 않아도 외로운 줄 모르던 주말들은, 치열한 평일이 있었기에 오히려 즐거운 고독이었다는 것을, 평온하기만 한 미국 시골의 일상 중에야 깨닫게 되었다.
이제 겨우 두 번의 겨울을 보낸 마당에 남부 내륙의 한 시골마을에 살면서 미국이 어떻느니 하고 떠드는 것은 왜곡을 전제할 테지만, 뭐든 빠르고 편하게 이뤄져야 하는 한국 서울의 오늘과 이곳의 오늘은 참 많이 다르다. 은행에서 가장 간단하게 할 수 있는 통장을 개설하는 일도, 운전면허증을 발급받거나, 심지어 휴대폰을 개통하는 일도 단번에 실수 없이 긴 시간 기다리지 않고 끝난 적이 없다. 천연덕스럽게 “퍼펙트!”를 외치며 처리한 일들에 오류와 실수투성이인 것을 보고 처음에는 참 황당하기도 했다. 또 화가 나기도 해서 서울에선 이 실수들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를 설명하기도 여러 번 해봤다. 그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서울’은 도시를 대변하는 단어였으나 아마도 그 의도대로 전달이 되었을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이해할 수 없는 동양인의 불만 정도?
전국 동시에 비가 내릴 리 없는 넓은 땅에 사는 이 사람들은, 그렇게 넓은 땅덩어리에 맞는 생활 방식을 가지게 되었겠지. 특히 이 지역 사람들은 사람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걸 예절이라고 믿는다. 길을 걸을 때나 심지어 식료품 매장에서도, 사람이 마주 오면 그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기다린다. 미국에 온 지 두 달쯤 되었을 때 뉴욕에 갔다가 어깨를 부딪히며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뭐 이렇게 예의가 없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도 어느덧 남부식 매너에 익숙해지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러면서 또 ‘서울에서 지하철은 어떻게 탔던가’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여기라고 얼마나 다를까
차창 밖 풍경과 이웃과 나누는 인사말이 아직은 어색하지만 조금씩 천천히 익숙해지고 있나 보다. 그러고 보니 밤새 안녕했는지 안부를 물어볼 몇몇의 친구도 생겼다. 분명 이국의 거리인데 고향과 닮은 모습이 발견되기도 한다. 다음 식사는 또 뭘 먹나 고민하던 차에, 더없이 반가운 저녁 초대로 잠깐이나마 가족과 함께 먹는 식사에 감동하는 날도 더러 있다. 이렇게 적응을 하는가 보다.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다. 한국인이 많이 없기 때문도 아니고 워낙 결혼들을 빨리 하는 문화 속에 혼자 던져졌기 때문도 아니다. 이곳에 적응을 하면 할수록 언젠가 떠나야 하는 이방인이 느끼는 허기는 더욱 커지는 중이다. 한국에서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맥주의 참맛에 기대어 긴 저녁 시간을 채우고, 가끔씩 훌쩍 떠나는 여행으로 허기를 조금씩 달래며 지낸다.
얼마 전 아들이 16살이 되어 드디어 면허증을 딸 수 있게 되었다며 함께 면허시험장에 갔던 현지인 사무보조 아주머니가 돌아와 자신의 나라와 민족(?)을 욕하기 시작했다. 야외에서 2시간을 기다렸는데, 시험장에서 한다는 소리가 “사람이 너무 많아 두 명만 더 처리하겠으니 나머지 사람들은 알아서 다시 일정을 잡으라” 했다고. 그 얘기를 들으며, 훨씬 발전되고 어떤 면에서든 훌륭할 것만 같던 미국이라는 이미지는 어쩌면 내가 만들어 낸 실체 없는 허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사람 사는 모습은 또 여기라고 얼마나 다를까 생각하며, 또다시 습관처럼 맥주를 마시며 허기를 달래고 있다.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그리워하는 낯선 이방인들이 모여 만들어진 이곳 미국에서는 누구나 외로운 법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그 이방인들을 위해 건배!
Wanderlu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