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던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않으면 좁은 집이 이내 난장판이 된다는 사실도, 화장실 청소를 일주일마다 하지 않으면 붉은 물때가 낀다는 사실도, 싱크대 하수구에 낀 음식물 쓰레기를 제때 버리지 않으면 집 전체에 악취가 난다는 사실도 혼자 살며 배워 나갔다. 게티이미지뱅크
“그 지역 근처에 투룸 좀 알아봐라.”
회의 시간, 스마트폰에 카톡 알림이 떴다. 엄마였다. 싫다고, 같이 살 자신이 없다며 짧게도 쳐보고 나름의 이유를 주렁주렁 달아 길게도 썼다가, 그냥 지웠다. 한숨을 푹푹 쉬며 그냥 폰을 내려놓았다.
내 밑으로 9살 차이 나는 남동생이 하나 있다. 동생은 엄마, 아빠와 함께 지방에 산다. 나는 10년 전에 집을 떠나 기숙사에 살았고, 그 후 서울로 올라와 햇수로 7년 동안 혼자 살고 있다. 이렇게 영원히 떨어져 살 줄 알았는데, 얼마 전 동생이 서울로 대학을 가겠다고 선포했다. 그런데 하필 학교가 영등포구에 있단다. 나는 몇주 전에 혜화에서 선유도로 이사왔다. 말도 안 되게 비싼 서울의 집값 때문에 엄마는 잘됐다 싶었나 보다. 동생도 처음엔 친구들과 함께 살겠다고 고집을 피우다가, 앞으로 들 등록금이며 생활비며 월세며 계산을 해보더니 미안했는지 엄마에게 누나와 함께 살겠다고 결론을 내렸단다.
이기적이면 안 돼?
엄마가 보낸 카톡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어떻게 말해야 서로 서운하지 않게 엄마를 이해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다. 성공해 보겠다고 서울에 올라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뒷바라지를 해주신 엄마에게 어떻게 하면 이기적이지 않은 딸로 보일까 걱정했다. 아니, 내가 정말 이기적인 건가? 아니, 이기적이면 안 되는 건가?
동생은 만 20년을 집에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제 속옷 하나 직접 손으로 빨아본 적 없다. 아마 화장실 청소를 정기적으로 해줘야 한다는 사실도 모를 거다. 그나마 자기 방을 어지럽히지 않는 게 엄마를 도와주는 일이다. 엄마는 동생에게 집안일을 시키지 않았다. 물론 나도 엄마를 돕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내가 혼자 살기 시작했고 꽤 긴 시간 동안 이전과는 아예 다른 패턴의 삶을 살게 됐다. 쓰던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않으면 좁은 집이 이내 난장판이 된다는 사실도, 화장실 청소를 일주일마다 하지 않으면 붉은 물때가 낀다는 사실도, 싱크대 하수구에 낀 음식물 쓰레기를 제때 버리지 않으면 집 전체에 악취가 난다는 사실도, 쓰레기 배출 요일이 언제인지 플라스틱은 투명한 봉지에 담아 버려야 한다는 사실도 혼자 살며 배워 나갔다. 정리정돈과 깨끗함에 유난히 강박이 있는 성격도 한몫했다. 그러다 본가에 내려가면, 나는 누나이기 때문에 동생의 아침과 점심을 챙겨야 했고 동생은 당연히 자기가 먹은 그릇을 씻지 않았다.
그런 동생과 함께 살 자신이 없다. 친구를 데려오든지 말든지, 갓 스무살이 되어 술을 먹고 뻗든지 말든지, 애인을 집에 데리고 오든지 그 어떤 것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간 집이 어질러져 있거나 공용 공간을 제대로 청소하지 않거나 내가 밥을 챙겨주길 바랄 때, 동등한 동거인의 관계는 깨지고 그야말로 동생 뒤치다꺼리를 해야 한다. 사람이 늘면 그만큼 집안일도 늘어난다. 집안일 분담은커녕 이내 어지럽히지 않는 것에 고마워하게 되겠지. 엄마는 갓 서울에 올라간 동생을 잘 보살펴주길 바라서라고 했지만, 실은 그 보살핌 안에는 서울과 학교에 적응하는 것 외에도 동생 끼니도 챙겨주고 집을 사람 사는 집처럼 관리하는 것 역시 포함돼 있다. 어쨌거나 이만한 나이 차이에다 부모님은 성역할 고정관념까지 굳건하시니, 결국 내가 대부분의 집안일을 부담하고 동생은 고생하는 누나를 위해 열심히 돕는 포지션 정도가 될 테다.
사실 자취 경험이 없으면 성별 상관없이 집안일이 낯설다. 엄마가 다 해주니까. 그러나 유난히 남자들에겐 더욱 낯설어 보였다. 밥솥에 쌀을 안치기 전에 쌀을 씻어야 하는지 모르던 동기, 라면조차 자기 손으로 끓여본 적이 없다던 선배, 브로콜리가 실은 거의 얼굴만큼 커다란 채소인지 모르던 친구, 진짜 부엌에 들어가본 적이 없다는 친구 등등. 단체로 엠티를 가면 주로 여자들이 요리하고 밥상을 차리던 그 풍경이 크게 이상할 것이 없었다. 물론 남자 중에서도 요리가 취미이고 자주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소수였고 동시에 그건 그의 특기였다. 반면 여자의 요리 능력은 기본적인 자질이었고 못하면 장난스레 욕을 먹거나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가끔 받는 칭찬은 ‘시집가도 되겠다’ 따위로 귀결됐다. 남자가 요리를 잘해도 ‘장가가도 되겠다’는 소리를 듣진 않는다.
가부장제 아래에서 할머니 세대와 어머니 세대는 그야말로 중노동을 도맡아 했다. 심지어 어머니 세대 이후는 맞벌이도 하면서 집안일까지 모두 부담해야 했다. 똑같이 돈을 벌어도 남편은 도와줄 뿐이다. 어머니 역시 아버지보다 돈을 더 벌어도 대부분의 집안일을 한다. 아버지는 명절 때 일하고 이따금씩의 청소로 좋은 남편이라 생색낸다.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에게 ‘여자는 이래야만 해!’라고 자주 말씀하시는 편은 아니었지만, 은연중에 여자로서의 역할을 바라곤 했다. 그걸 보고 자라며 배운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집안일이 여성의 몫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엄마라는 존재의 몫이라는 것. 다른 여자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록 자신이 어머니만큼 집안일을 부담하진 않더라도, 딸로서 여자로서 가사노동 능력을 강요받았다. 그 강요는 오빠나 남동생 같은 남자 형제와 비교했을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명절날 일손이 필요할 때도 대부분 딸인 친구들이 불려나가고 평소에도 오빠와 남동생을 위해 밥상을 차려줘야 했다. 이러다보니 자취 경험이 없더라도 꽤 많은 여자 친구들은 기본적인 집안일을 할 줄 안다.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어머니가 독박 쓰던 집안일은 이제 결혼한 딸에게 넘어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기준 한국 남성의 집안일 분담률은 최하위권에 머문다. 맞벌이 한국 여성의 집안일 시간은 한국 남성의 노동시간보다 약 4배 이상 높다. 아이가 없는 맞벌이 부부는 그나마 덜하지만, 아이가 생기는 순간 독박 가사노동에다 출산휴가와 육아휴가를 마음껏 쓸 수 없는 독박 육아 역시 마주해야 한다. 공공기관에서는 남편의 육아휴직 제도가 있지만 대상자의 5%도 사용하지 않는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여성은 아이를 포기하거나 경력을 포기해야 한다. 오죽하면 이번 대선 후보들이 남성 육아휴직 인센티브니 슈퍼우먼방지법이니 여성과 육아와 관련된 공약들을 내세웠을까. 사적인 공간으로 여겨지는 집안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집안에서 벌어지는 성역할의 문제는 결국 돌고 돌아 사회 전체에도 영향을 끼친다. 그 사회 전체는 또다시 집안에 영향을 끼친다.
설령 가족이라 할지라도
아마도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럼 이제라도 동생이 집안일을 잘할 수 있도록 잘 가르쳐 봐라’고 하실 테다. 그러나 같이 살지 않으면 나는 누굴 굳이 가르칠 일이 없다. 스트레스 받을 필요도 없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잘 살 텐데. 이미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지 않나. 집안일은 시킨다고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리고 동생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혼자서 잘 배워나갈 거다. 집안일을 해줄 엄마와 내가 없으니까. 어쩌면 혼자 살아도 집안일을 잘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 어때, 혼자 사는데. 대신 우린 가끔 만나 맛있는 밥이나 사먹을 테다. 나의 공간을 누군가에게 침해받고 싶지 않다. 침해받는 공간을 회복하기 위해 시간을 쓰고 싶지도 않다. 대신 그 시간을 내게 쓰고 싶다. 설령 그게 가족이라 할지라도.
혜화붙박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