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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깜박했더니 떡도 안 주더라…내가 무슨 ATM이냐”

등록 2017-04-07 20:51수정 2017-04-07 21:08

[토요판] 이런, 홀로!?
‘프로 하객러’들이 말하는 축의금
봄은 꽃에서 오고 바람에서 오고 하늘에서 온다. 그리고 청첩장으로도 온다. “까톡” 소리와 함께. 게티이미지뱅크
봄은 꽃에서 오고 바람에서 오고 하늘에서 온다. 그리고 청첩장으로도 온다. “까톡” 소리와 함께. 게티이미지뱅크

바야흐로 봄입니다. 거리에는 꽃망울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더니, 어느새 벚꽃나무도 꽃피울 준비를 마쳤답니다. 아니나 다를까 카페에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 흘러나오네요. 진짜 봄이 왔나봅니다. 책 한 권 들고 카페를 찾아 커피 한 잔을 시키고 앉았습니다. 세상에 행복이란 게 별건가 싶은 휴일 오후 “까톡” 소리에 휴대폰을 집어들었습니다.

“작은 인연으로 연인이 된 저희 두 사람, 이제 하나가 되고자 합니다. 저희 두 사람 평생 아끼고 보살피며 잘살 수 있도록 부디 참석하시어 기쁨의 자리를 축복으로 더욱 빛내주시기 바랍니다.”

아, 카페엔 벚꽃엔딩이 카톡엔 청첩장이…. ‘결혼의 계절' 봄, 진짜 봄이 왔습니다.

이번달에만 벌써…

전 서른다섯살입니다. 아직 결혼은 안 했죠. 네 맞습니다. 저는 서른다섯 결혼을 하지 않은 ‘프로 하객러'입니다. 결혼식 하객 경력은 올해로 꼭 10년이 됐습니다. 쏟아지는 청첩장을 보고 봄을 느끼게 된 지는 6년쯤 된 것 같네요.

카톡에 뜬 이름을 한참을 봤습니다. 누구더라…. 모바일 청첩장을 열어 사진을 보고서야 생각이 났습니다. 재작년 배낭여행 중 만난 동생입니다. 여행을 다녀와서도 가끔 연락을 하곤 했지만 올해 첫 연락이네요.

“와~ 결혼하는구나. 축하해!”

이 친구가 결혼하는 날이 ‘길일'인 모양입니다. 먼저 청첩장을 받은 이날 결혼하는 커플만 두쌍이 더 있습니다. 12시에는 청담동 예식장에 갔다가 오후 2시에는 서초동 예식장에 갔다가 오후 6시에는 양재동 예식장에 가게 될 예정입니다. 손으로는 빠르게 자판을 두드려 축하메시지를 보내고 있지만 나도 모르게 입에서는 한숨이 새어나오고, 머릿속에서는 계산기가 돌아갑니다.

“다음주에는 누구 결혼식이더라… 이번달 축의금으로 나갈 돈이….”

여행 중에도 ‘서른이 넘도록 결혼하지 못한 고민'을 쏟아내던 동생이기에 잘된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돈 생각에 마냥 축하하지 못하는 마음이 속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씁쓸함이 고개를 듭니다.

“오랜만에 연락해 청첩장 보내면서 카톡은 좀 그렇지 않아? 만나서 주겠다고 했어도 서로 바쁘고 멀리 사는데 결국 카톡으로 보내라고 했겠지만, 전화도 아니고 톡으로 받으니까 기분이 좀 그렇다.”

역시 ‘홀로'인 친구들이 모인 단체카톡방에 투정 섞어 하소연을 하자 한 친구가 대뜸 “계좌번호 적혀 있지 않아? 그냥 돈이나 보내”랍니다.

“요즘엔 못 오면 축의금 보내라고 청첩장에 계좌번호 찍어서 보내잖아. 예전에 학교 졸업하고 연락 한 번 없던 애가 결혼한다고 청첩장 보냈길래 얄미워서 일하느라 못 간다고 미안하다 했더니 청첩장에 계좌번호 있다고 얘기하더라. 그 얘기 듣고 헷갈렸잖아. 얘가 나한테 맡겨둔 돈 있는 줄 알고.”

또 다른 친구도 말을 거듭니다.

“우리 나이에 한동안 연락 한 번 없다가 갑자기 연락 오면 100% 청첩장이지. 근데 한때라도 친했으면 결혼 소식 반갑지. 그런데 왜 연락했지 싶은 사람이 보내면 좀…. 전에 3개월 같이 일하고 회사 옮기면서 연락 끊긴 선배가 있었는데 갑자기 연락해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결혼한다더라고. 결혼식 이후로 또 연락이 끊겼지. 뭔가 ‘ATM'이 된 기분이었어.”

누군가에게는 사랑과 기쁨이 충만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을 텐데, 누군가에게는 씁쓸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나 봅니다.

“휴일에 쉬지도 못하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표도 내가 끊어 내려가 축의금 줬는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 연락이 없네? 청첩장 보낼 때는 바뀐 번호도 어떻게 알아내서 연락하더니 결혼식 마치고 나서는 와줘서 고맙다는 연락 한 번 없어. 돌잔치 연락은 없으니 다행인 건가?”

벚꽃과 함께 시작된 청첩장 ‘까톡’
아는 동생이 보냈다…그날만 세건
갑자기 연락하면 십중팔구 축의금
결혼 뒤엔 무소식…돈 맡겨놨냐?

호주에서 갔는데…“넌 안 냈더라?"
떡 돌릴 때 왕따…“봉투 주니 주더라”
축의금, 홀로에겐 때론 씁쓸한 기억
“비혼식이라도 해서 받아내야 하나”

결혼식 때문에 친구 사이가 멀어진 경우도 있답니다. 지방 원정 출장 하객 이야기를 하자 유학파 동생이 “나는 호주에서 서울까지 와서 결혼식에 갔는데 결국 그 친구와 연락이 끊겼다”며 분노를 쏟아냈습니다.

“유학할 때 친한 친구가 결혼한다고 해서 학기 중에 수업 빠져가면서 한국에 왔거든요. 결혼 선물을 준비해 와서 축의금은 안 냈는데, 학생이었던데다 첫 친구 결혼이라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기도 했고, 호주에서 결혼식 참석하려고 비행기까지 타고 온 거니까 온 것만으로도 반가워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신혼여행 다녀와서 축의금 안 냈느냐고 전화를 한 거예요. 너무 서운한 거예요. 내가 결혼식 참석하느라 비행기 표값만 150만원을 썼는데. 그 이후로 소원해져서 지금은 연락도 안 해요.”

결혼식이 다양해지면서 축의금 액수를 얼마나 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축의금을 얼마 해야 하는지도 애매해. 아는 동생이 청첩장을 주면서 ‘여기 밥값만 10만원이에요'라는 거야. 청첩장 주면서 다짜고짜 이렇게 말하는데 썩 기분이 좋지는 않더라고. ‘축의금 10만원 이상은 해야 돼요'로 들리더라고. 그런데 봄이면 결혼식이 한두 건도 아니고 축의금만 수십만원씩 나가는데 부담스럽더라고. 야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10만원짜리 밥이 먹고 싶은 것도 아니고 자기가 선택한 결혼식인데 내가 왜 이렇게까지 얘기 들으면서 돈 내러 가야 하나 싶더라. 축하를 해달라는 건지, 돈을 달라는 건지.”

결혼에 뜻이 없는 38살 언니는 "인간적으로 돌잔치는 진짜 친한 사람들이나 가족끼리만 모여서 했으면 좋겠"답니다.

“결혼식은 뭐 그렇다고 쳐. 전 회사 동료 결혼식, 첫째 돌잔치까진 갔는데 둘째 돌잔치는 안 갔거든. 그다음부터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더라. 그래도 종종 연락은 하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그 이후에는 연락을 해도 안 받아. 마음이 좀 안 좋아서 SNS에 올린 아기 사진에 ‘예쁘다, 귀엽다'면서 댓글도 달아봤는데, 다른 사람이 단 댓글에는 하나하나 답해주면서 내 글에만 답이 없어. 사실 내가 결혼 생각 없다는 것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뭐 친하다고 생각해서 불렀겠지만 둘째 돌잔치까지 부르는 건 좀…. 나중에는 나도 기분이 상하더라. 돈은 돈대로 쓰고 사이 안 좋아지고. 그동안 축의금 돌잔치에 쓴 돈만 1000만원도 넘을 텐데…. 지금은 진짜 축하해주고 싶은 사람들만 챙겨. 돈이 아깝지 않은 사람들. 어짜피 내가 결혼 안 하고 애 안 낳으면 못 받을 돈이잖아.”

언니는 말을 이었습니다.

“사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이에 경조사는 서로 주고받는다는 걸 전제로 하니까 이렇게 당연하게 부르는 거잖아. 그런데 축의금이 당연하게 주고받는 돈인가? 회사에서 얼굴만 아는 다른 부서 사람이 청첩장을 줬는데 깜빡하고 못 갔었거든. 잊고 지나간 거야. 신혼여행 마치고 돌아와서 떡을 돌리며 인사하는 걸 보고 아차 싶더라고. 다른 사람들한테는 반갑게 웃으며 떡을 주다가 날 보고는 인사도 없이 지나가더라. 보니까 손에 축의금 명단이 있더라고. 나중에 따로 봉투를 건넸더니 다음날 책상에 떡이 올라와 있었어. 5만원짜리 꿀떡인 거지. 서로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축하해 주고 받고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결혼을 할지 안 할지도 모르겠는데 결혼에 애들 돌잔치까지 계속 챙겨야 하나 생각하면 좀 그래. 오죽하면 비혼식한다는 사람들도 있다잖아 요즘. 나도 차라리 비혼식을 해서 그동안 뿌린 돈 다 받아낼까 하는 생각도 든다니까.”

아깝지 않은 축의금은 없을까

카톡 청첩창 얘기에 쉴새없이 울리는 카톡을 보다 문득 처음으로 지인 결혼식에 갔던 날이 생각났습니다. 아직 학생이던 때 선배 언니는 “와서 밥이나 먹고 가라”며 청첩장을 건넸습니다. 처음 받는 청첩장인데다 평소 좋아했던 언니의 결혼 소식이 참 반가웠습니다. 큰돈은 아니지만 학생으로선 피 같은 돈 3만원을 냈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언니는 “돈도 없는 학생이 축의금은 왜 했느냐”며 고맙다고 전화를 했었죠. 언니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지금은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 결혼을 한들 이 언니에게 축의금을 받을 수는 없겠지만, 그 돈이 아깝지는 않습니다. 청첩장을 건넸던 이의 진심을 느꼈기 때문일 겁니다.

결혼과 돌잔치. 정말 축하할 일입니다. 그 기쁜 소식을 듣고도 썩 기분이 좋지 않은 건 내 축하보다 돈을 더 원하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초대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야 ‘어차피 너도 결혼하고 애 낳으면 받을 돈 아니냐'고 하겠지만 비혼을 생각하고 있거나 아이 생각이 없어 초대에 응하지 않는다고 하면 또 서운할 일이 되겠죠. 언제부터 ‘축하'가 ‘거래'가 돼버린 걸까요. 날씨는 화창한데 입맛은 씁쓸한 봄날입니다. 조금씩 바뀌어 가겠죠?

이런, 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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