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한 시간을 갖고 노력하면 조금씩 나아진다는 것을 알게 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토록 원했던 성장의 고양감을, 내가 가장 자신 없어 하던 맨몸운동에서 찾은 것은 무척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움직이는 방법을 배울 때마다 나는 ‘개체분열’한다. 처음에는 분명히 하나의 나로 시작하는데 어느 틈엔가 여럿이 되어 있다. 제일 먼저 코치를 따라서 움직이는 내가 있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비웃는 내가 있고 비웃는 나를 꾸짖는 또 다른 내가 나타난다. 그 모두를 향해서 동작에 집중하라고 단속하는 나와 자신감이 없다고 움츠리는 나, 자신감을 가지라고 응원하는 내가 연이어서 생겨난다. 분열하는 개체들의 모체는 어떤 일이든지 실수 없이 매끄럽게 해내고 싶은, 욕심 많고 비대한 나의 자아다.
나는 움직임에 관한 감각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이고 세상은 이런 나를 몸치라고 부른다. 내 기억으로 초등학생 시절 나는 학교에서 줄넘기를 가장 못하는 아이였다. 이른바 ‘쌩쌩이’라고 불리던 더블언더에 성공한, 벌새마냥 허공을 붕붕 나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저것은 내가 영원히 구현할 수 없는 동작’이라고 굳게 믿었다.
‘와드에 러닝이 있는 날’
그런 내가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체력을 길러볼 요량으로 아니, 솔직히 말하면 살을 빼고 싶어서 크로스핏에 도전했다. 오직 나 말고는 집을 떠나는 이도 돌아오는 이도 없는, 프리랜서로 사는 나 같은 솔로에게 생활의 분기점이 필요하기도 했다.
크로스핏이라는 운동은 역도와 유산소 운동 사이에서 태어난 변종 악마다. 여기서 말하는 역도는 커다란 오륜기 아래에서 메달을 목에 걸고 자랑스럽게 웃는 선수들의 운동, 바로 그 역도가 맞다.
그날, 내가 처음 박스(크로스핏 체육관을 일컫는 용어)를 찾았던 날, 역도는 근력과 민첩성과 유연성과 순발력과 용기를 요한다는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한눈에 봐도 어려운 운동임을 알 수 있었으니까. 피브이시(PVC) 파이프를 들고 역도 동작을 어설프게 따라하는 내가, 그걸 바라보는 또 다른 내가 보기에도 너무나 가소로웠다.
하필이면 그날따라 수업을 듣는 사람은 나 하나였다. 코치는 다른 사람들이 결석한 게 러닝 때문이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 말의 정확한 뜻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곧 알게 됐다.
‘와드(WOD, Workout Of the Day의 약자)에 러닝이 있는 날 출석률이 저조하다.’
역도+유산소운동이 낳은 변종
음악에 맞춰 바벨을 들어올리자
코치가 외쳤다 “달려!”…다음 순간
골목을 달렸다, 퇴물 복서처럼
1년3개월, 생생한 고통을 지나
근력도 지구력도 없던 내가
물구나무 푸시업을 하고 있었다
더 빨라졌고 똑똑해졌다
크로스핏 초보들이 이 말의 의미를 알아채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우선 와드, 워크아웃 오브 더 데이는 크로스핏의 꽃이다. 역도와 유산소를 적절히 섞어 놓은 와드의 원리는 단순하다. 정해진 시간에 최대한 많은 라운드를 소화하거나 반대로 정해진 라운드를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와드는 날마다 바뀌는데 박스의 헤드 코치가 그날의 와드를 구성해서 미리 발표한다. 레스토랑의 헤드 셰프가 그날의 코스요리를 내놓는 것과 같다. 고전처럼 전해지는 와드도 있다. ‘그레이스’ ‘신디’ 같은, 예쁜 어감과 다르게 악명 높은 운동량을 자랑하는 걸스네임 와드나 크로스핏 영웅을 기리는 히어로 와드가 따로 있다.
문제는 내가 와드에 대해서 순수할 지경으로 무지했다는 점이다. 갑자기 클럽에서나 틀 것 같은 음악이 흐르기에 ‘신나고 좋네’ 하는데 어느 틈엔가 웃옷을 훌렁 벗은 코치가 어서 시작하라고 외쳤다. 알고 보니 타임워치의 숫자가 초 단위로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코치의 구령에 맞춰서 바벨을 드는 시늉을 몇 번 하자니, 그가 헬스키친(미국 요리사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저승사자 고든 램지처럼 고함을 질렀다.
“달려! 달려! (이 굼벵이야.)”
다음 순간 나는 식당과 호프집과 편의점이 늘어서 있고 자가용과 배달 오토바이가 오고 가는 골목을 달렸다. 사람들 눈에는 재기를 꿈꾸지만 너무 망가진, 퇴물 복서처럼 보였을 것이다. 생각과 달리 별로 창피하진 않다. 다만 그 와중에도 고통이 너무나 생생해서 놀라웠다. 정말이지 너무 힘들고,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때 코치가 물었다.
“아직 200미터 더 남았는데 뛸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바로 그 순간. 나는 그 순간이 지나고 1년3개월을 크로스핏에 바치게 된다. 근력도 지구력도 민첩성도 유연성도 없는 내가, 사람 많은 골목에서 ‘뛸 수 있습니다!’라고 외쳤기 때문에.
그 일이 있고 몇 달간 가장 빈번하게 들었던 말은 ‘동작에 집중하라’ ‘순간적으로 힘을 쓰라’였다. 나 나름대로는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쉽지 않은 게 당연했다. 일단 나는 집중력이 꽝인지라, 수업 때마다 ‘여섯살 때 마당에서 키우던 치와와를 만난 날’ 같은 일화를 떠올리는 인간이다. 집에 두고 온 피자를 그리워하고, 헤어진 남자친구를 회상하고 툭하면 지나간 인생을 반추했다.
몇 달간 배운 동작을 코치 앞에서 선보일 때마다 그들의 낯빛이 어두웠다. 살면서 만난 거의 모든 코치들에게 들었던, ‘원래 운동 못하시죠?’라는 질문이 정해진 수순처럼 따라왔다. 나는 달이 바뀌면 당장에 사라질 멤버처럼 보였다. 그런 동시에 좀처럼 결석하는 법이 없는 별난 존재였다.
와드, 워크아웃 오브 더 데이는 크로스핏의 꽃이다. 역도와 유산소를 적절히 섞어 놓은 와드의 원리는 단순하다. 정해진 시간에 최대한 많은 라운드를 소화하거나 반대로 정해진 라운드를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와드는 날마다 바뀌는데 박스의 헤드 코치가 그날의 와드를 구성해서 미리 발표한다.
무기력과 냉소 대신 얻은 것
어른이 되면서 우리가 잃어버리고, 그래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순수함이나 희망 따위가 아니다. 우리는 성장의 서사, 성장과 함께 고무되는 감정을 잊어버린다. 어떻게 낯선 과업을 배우고 실패하고 마침내 해내고 성장했는지 떠올려도 까마득하기만 하다. 고양감이 있을 자리에 무기력과 냉소와 패배주의만 쌓인다.
나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글을 쓰거나 읽으면서 보낸다. 아니, 정확하게는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아간다. 계산될 것 없이, 거의 유일하게 좋아하는 일이지만 어디에서도 성장의 지표를 찾을 수 없어서 지쳐갔다. ‘전보다 글을 더 잘 쓰게 됐는가’ ‘능숙하게 이야기를 풀어낼 줄 아는가?’ 하고 자문하면 한 톨의 근거도 찾을 수 없다. 다른 직업인들은 직급이 올라가고 급여를 더 받는 것을 지표로 삼지만 나는 어제도 지망생이었고 오늘도 지망생이며 어쩌면 영원히 지망생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이제야 운동에 조금은 미쳤던 이유를 생각해본다. 나는 크로스피터들의 직업군으로 꼽히는 경찰이나 군인, 소방관이 아니다.(크로스핏은 애초에 이들의 체력단련을 위해서 탄생했다.) 체력을 기르면 좋지만 그렇게까지 절실하지 않다. 나에게는 꾸준한 시간을 갖고 노력하면 조금씩 나아진다는 것을 알게 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저 내 몸이 움직이는 방법을 터득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너무나 오랜만에 오감으로, 성장을 느꼈다는 사실이다. 그토록 원했던 성장의 고양감을, 내가 가장 자신 없어 하던 맨몸운동에서 찾은 것은 무척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결국 나는 죽어도 할 수 없을 것 같던 더블언더를 해냈다.(그 모습을 본 어머니는 우셨다.) 물구나무선 채로 푸시업을 했고 클린이나 스내치, 오버헤드 스쾃 같은 동작에 능숙해졌다. 욕심 많고 비대한 내 자아가 잠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많은 굴욕과 실패의 기억을 잊을 수 있을 만큼 멋진 경험이었다.
그리고 하루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 매일 찾아온다. 원하는 만큼 글을 쓰고 그토록 좋아하는 집을 나서 박스로 간다. 짧게 찰랑거리는 단발, 평상복이 된 레깅스와 운동화, 별것 아닌 사소한 것들이 두려움을 모르는 자유를 선사한다. 비록 먼지가 자욱해도 거리에는 생동감을 감출 수 없는 봄이 완연하다. 여자들의 옷차림이 하이힐과 스타킹, 원피스 일색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전보다 훨씬 가볍고 자유롭고 다채롭다. 대로변에 커다랗게 자리한, 상점에 시선이 멈춘다. 남성 고객을 버린 지 오래인, 스포츠 브랜드들은 운동하는 여자의 강한 이미지를 경쟁적으로 내세운다. 혼자 힘으로 강해지고 자유로워진 여자들을, 무작정 트렌드를 쫓는 힙스터라고 폄훼할 수 없을 것이다.
단지 신체 기능을 향상시켰을 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변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히트곡 ‘파이터’의 한 소절처럼 나는 더 강해지고 빨라지고 똑똑해졌다. 힘이 세진 동시에 민첩해지고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잊지 마시라. 크로스핏의 부상은 ‘룰루레몬’의 쇼윈도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마네킹과 흡사한 어깨와 허벅지 라인이다. 이 많은 변화 중에 하나라도 당신의 구미를 자극하는 게 있다면 좋겠다. 크로스핏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당신은 분명히, 어떤 방향으로든 변할 것이다.
All Al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