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탄자니아 아줌마도 묻는다 “노 허즈번드? 노 쁘렌?”

등록 2017-03-19 09:34수정 2017-03-19 10:17

[토요판]이런, 홀로!? 나의 ‘혼행’ 자서전

13년 동안 11개 나라를
홀로 떠났다, 나를 만나러

성공과 실패, 모두 내몫인 ‘혼행’
실수투성이 내가 미울 땐
그때 그 작은 ‘성공’을 떠올린다
괜찮다고, 충분히 훌륭하다고

여행지에서 경험한 작은 성공들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밑거름이 된다. 나에게 이런 장점이 있다는 걸 떠올려야 할 때 작은 성공의 경험들이 나를 다독인다. 괜찮다고. 충분히 훌륭하다고.
여행지에서 경험한 작은 성공들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밑거름이 된다. 나에게 이런 장점이 있다는 걸 떠올려야 할 때 작은 성공의 경험들이 나를 다독인다. 괜찮다고. 충분히 훌륭하다고.

탈 때부터 불안했다. 기네스북에라도 오를 기세로 봉고차(정확히는 탄자니아의 저가 버스 ‘달라달라’)에 사람들을 욱여넣는데 내 옆에 엉덩이를 바짝 붙인 아주머니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짧은 영어라도 꼭 한마디 붙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입을 뗀 그의 첫마디. “얼론?”(혼자 왔어?) 그렇다고 답하자 재빨리 두번째 질문을 던진다. “노 허즈번드? 노 쁘렌?”(남편 없어? 친구도?) 모든 대답이 ‘노’(No)로 끝나자 차에 탄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본다. 마치 사람만한 벌레라도 만난 양. 나는 몹쓸 짓이라도 하다 걸린 사람처럼 망연히 창밖을 내다본다. 탄자니아에서마저 이 꼴을 당할 줄이야. 그러면서 중얼댄다. ‘혼자가 뭐 어쨌다는 거야.’

나는 혼자 여행을 즐긴다. 내 나이보다 둘 모자란 서른세개 땅을 밟았다. 그중 11개 나라는 혼자 갔다. 혼자 떠나는 여행의 재미를 스멀스멀 깨닫게 된 지 어언 13년째. 함께하는 여행의 묘미를 모르는 게 아니다. 모든 여행은 나름의 의미가 있으니. 그러나 혼자 가는 여행을 선호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대답은 하나다. 낯선 땅에서 나를 발견하는 그 시간이 너무도 소중해서. 그렇다. 나는 나를 만나러, 나와 대화하러 여행을 간다.

“가시든 뭐든 전부 그대로, 지금 내 모습 그대로 날 받아들여야 해.”
<고슴도치의 소원> 톤 텔레헨

나는 지도를 참 잘 읽는다. 세계 어디를 데려다 놓든 지도 한 장만 있으면 뚝딱뚝딱 길을 찾는다. 상황 판단도 참 잘하는 것 같다. 뭔가 계획이 틀어졌다 싶을 땐 대안을 잘 찾는다. 웬 자랑질인가 하실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경험한 작은 성공들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밑거름이 된다. 직장을 10년이나 다녔지만 여전히 서툴고 실수투성이인 내가 꼴도 보기 싫을 때가 있다. 나는 그럴 때 여행지에서 훌륭했던 나 자신을 떠올린다. 나에게 이런 장점이 있다는 걸 떠올려야 할 때 작은 성공의 경험들이 나를 다독인다. 괜찮다고. 충분히 훌륭하다고.

성공만 있겠는가. 여행에선 작은 성공과 실패가 반복된다. 하지만 여행에서의 실패가 나의 인생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려 놓겠는가. 그저 웃어넘기면 되는 일들인 경우가 많다.

2년 전 독일 여행을 갔을 때다. 뮌헨에서 하루의 여유가 생겨 알프스 자락을 볼 겸 기차를 타고 근교 도시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으로 갔다. 산악열차를 타고 독일 최고봉인 추크슈피체에 오를 계획이었다. 시간표를 보니 두어 시간이 남았다. 시간도 애매하니 근처 슈퍼에서 맥주 한 병을 사다가 기차역 앞에 주저앉아 들이켰다. 어느덧 출발 시간이 되어 기차를 탔다. 그런데 얼마 안 가 기차가 종착역이라며 어느 한적한 마을에 선다. 내 계산으로 30분은 더 가야 마땅했다. 알고 보니 시간표를 착각해 중간까지만 가는 기차를 탄 것이다. 추크슈피체까지 가는 마지막 기차는 이미 출발한 지 오래. 돌아가도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너털웃음이 나왔다. 가만히 보도블록에 앉아 생각도 해봤다. 방법이 없을까. 하지만 1분도 안 돼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이 마을에 내가 언제 또 와보겠는가. 또 언제 바로 그 기차역 앞에 주저앉아 아까 마신 그 맥주를 마셔보겠나. 마을이나 한 바퀴 돌아본다. 포기하고 나니 즐겁다. 웬 동양인 관광객이 어슬렁거리나 싶겠지만 마을 사람들도 눈이 마주칠 때마다 찡긋 웃어준다. 이런 실패라면 해도 문제될 것 없지 않겠는가.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일수록 누군가와 함께하는 일에도 능숙하다.”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 유은정

고독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하지만 일상에서 고독의 시간을 찾기란 어지간해선 불가능하다. 사람이건 기계건 나를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지로 도피한다. 안타깝게도 대다수 사람들은 여행지에서조차 고독을 즐길 줄 모른다.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시도 때도 없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친구를 만들지 못할까봐 불안해한다. 하지만 괜찮다.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지 않은가. 뭐든 하다 보면 몸에 익고 몸에 익으면 나만의 원칙과 스타일도 생긴다. 나도 그랬다.

혼자 밥 먹고 혼자 영화 보는 것도 두렵지 않아 하는 이들마저 혼자 떠나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위험할까봐, 혹은 외로울까봐. 평소에는 세상 누구보다 용감해 보이는 이들조차 말이다.

나 역시 첫 혼행은 힘겨웠다. 혼자 떠난 첫 여행지는 인도였다.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덕에 수년째 ‘인생을 알려면 인도로 가라’는 말이 먹히던 시절이었다. 본격적인 취업 준비 전 극한의 상황으로 나 자신을 몰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 자신을 알기는커녕 하루하루를 버티기 힘들었다. 외로웠고 누군가와 대화하고 또 의지하고 싶었다. 한달의 여정을 계획했지만 출국 닷새를 남기고 결국 비행 일정을 앞당겼다.

그때 난 무엇에 지쳤을까. 이 글을 쓰기 전 처음으로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때는 여행의 목적이 없었다. 남들이 가는 루트를 쫓으며 하루하루 버티기 바빴다. 지금 내 여행의 목적은 분명하다. 나를 만나는 것이다. 지금은 틈이 날 때마다 일기를 쓰고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귀 기울인다. (물론 3대 불가사의는 못 가봤지만) 제아무리 세계 3대 불가사의라 해도 내가 흥미 없으면 바로 생략이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욕심 많은 내가 이 경지에 가기까진 물론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첫 혼행에서 쓴맛을 본 뒤에도 나는 혼자 떠났다. 정말 힘들 때 누군가에게 기대기보다는 혼자 숨을 만한 동굴을 찾는 습성도 한몫했을 거다.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고독을 택하는 타입이랄까. 연애의 끝이 보이기 시작할 때면 어김없이 비행기에 홀로 올랐다. 한때는 내가 여행 준비를 시작하면 가족들도 ‘저 못난 것이 또 어느 놈팽이와 헤어지는구나’ 지레짐작을 할 정도였다.

이별 후 혼자 여행하면 매일 밤 펑펑 울고 술 한 잔 걸친 후 헤어진(혹은 헤어질) 그에게 편지를 쓸 거라 상상들 하시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하루 종일 너무나 바빴던 나머지 밤이면 곯아떨어져 잠들 때가 많다. 누가 나 대신 무거운 가방을 짊어져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쉬는 사이 다음 일정을 알아보거나 숙소를 찾아주지도 않는다. 나 혼자 모든 역할을 도맡아야 하니 쉴 틈이 없다. 이 모든 일을 하루 종일 수행하고 나면 이별의 슬픔은 먼 나라 얘기다. 돌아올 때쯤엔 ‘이렇게 고생스러운 일도 척척 해냈는데 이별이 별건가’ 싶다.

“자신을 모른다는 것은 위험하다. 본인과 다른 사람에게 모두 그러하다.”
<멀고도 가까운> 리베카 솔닛

딸 셋 중 둘을 출가시키고 서른다섯살, 과년한 딸을 봉양하는 내 어머니의 가장 큰 근심은 두 가지다. ‘내 딸이 누군가와 함께 여행하지 못할 정도로 괴팍한 성격을 가진 것이 아닌가’가 첫째, ‘저런 오지를 계속 돌아다녔다가는 제 명을 살지 못하는 건 아닐까’가 (첫째여야 마땅하나 의외로) 둘째다. 열한번을 혼자 떠났으니 이제 그만 물으실 법도 하나 매번 “왜 혼자 가느냐”고 물으신다.

인간에겐 누구나 괴팍한 면모가 있으니 나 역시 일부 그럴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와 함께 여행하지 못할 정도로 괴팍하다 생각하진 않는다. 까칠하거나 타협을 모른다, 지나친 자존감의 소유자일 것이다 등등의 오해도 받지만 나름 사회에서 ‘성격 좋다’는 말은 듣고 산다.

혼자 다니면 둘이나 셋일 때보다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높은 건 사실이다. 그 탓에 촉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숙소와 루트를 세심하게 고르고 멀리 돌아가더라도 안전한 길을 택해야 하는 수고로움도 있다. 만용을 부리지 않겠다는 원칙도 나름 지키고 있다. 물론 뉴스를 볼 때마다 지금까지 사고 없이 여행을 다녔던 것도 천만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릴 때가 많지만.

그런데도 혼자 떠나는 건 나랑 노는 게 재미있어서다. 혼자 놀다 보니 도가 튼다. 이제는 바다에서 혼자 파도타기도 하고 퍼레이드 행렬에 난입해 춤도 춘다. 한국에선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어 하지 못할 일들을 할 때마다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누가 보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나만 즐거우면 그만이지.

꽃보다 혼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내란 확정처럼 쓰지말라, 선배로 당부” 복귀한 이진숙 ‘보도지침’ 1.

“내란 확정처럼 쓰지말라, 선배로 당부” 복귀한 이진숙 ‘보도지침’

[속보] 검찰, 중앙지법에 윤석열 구속 연장 신청 2.

[속보] 검찰, 중앙지법에 윤석열 구속 연장 신청

현직 검사 ‘부정선거론’ 일축…120쪽 총정리 파일 무슨 내용? 3.

현직 검사 ‘부정선거론’ 일축…120쪽 총정리 파일 무슨 내용?

헌재, 마은혁 불임명 ‘최상목 권한쟁의’ 2월3일 선고 4.

헌재, 마은혁 불임명 ‘최상목 권한쟁의’ 2월3일 선고

국민연금 시행 37년 만에…첫 ‘월 300만원 수급자’ 나왔다 5.

국민연금 시행 37년 만에…첫 ‘월 300만원 수급자’ 나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