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런, 홀로!?
홀로 직딩들의 애환
홀로 직딩들의 애환
꼭 ‘너는 누구 밥 차려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빨리 안 가도 되잖아. 좋겠다. 싱글 라이프를 즐겨’라고 한다. 그냥 얌전히 가라, 좀. 게티이미지뱅크
‘아내가 이혼하자고 협박하니…’
야근과 휴일근무는 언제나
“빨리 퇴근할 필요 없는”
싱글 직장인의 몫이다 두달 전 준비한 여름휴가도
“애 방학 맞춰야 해서…
혼자 가면서 조정 못 해줘?”
워킹맘 배려, 사회의 몫인데
왜 홀로에게만 떠넘기나 가장 직장생활을 오래한 10년차 직장인 ㄷ이 ‘이런 애송이들을 봤나’라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네요. ㄷ은 외국계 금융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직장생활의 애환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프로 직장인 ㄷ이 조용히 입을 엽니다. “나 요즘 아침 7시에 출근한다.” 원래 출근시간은 오전 9시일 텐데…. ㄷ은 오징어 다리를 질겅질겅 씹으며 말을 이어 갑니다. “임원진 회의가 9시에 시작해. 우리 팀에서 준비를 하는데, 회의하려면 자료에 회의실 세팅 등 은근히 일이 많잖아. 같이 해야 하는 과장이 아침에 아이 학교 데려다줘야 해서 일찍 못 나온대. 아내 회사가 멀어서 자기가 데려다줘야 한다고 나보고 다 해달라고 하더라. 애 학교 보내야 된다는데 어떻게 하냐. 알았다고 했지. 이건 괜찮아. 근데 우리가 외국계잖아. 본사 자료 받아서 보고해야 하는 것들이 있어. 시차가 있으니 오후 6시를 넘겨서 오기도 하지. 다음날 아침에 보고해야 하니 자료를 만들어놔야 하거든. 아침에 빨리 못 오면 이런 거라도 처리해주면 좀 좋아. 근데 야근 많이 하면 아내가 이혼하자 그런다면서 야근은 못 한대. 그럼 얌전히 가면 되잖아. 꼭 ‘너는 누구 밥 차려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빨리 안 가도 되잖아. 좋겠다. 싱글 라이프를 즐겨’ 이러면서 가. 그럼 나는 야근하고 다음날 아침 7시에 출근해야 돼. 아이 잘 챙기고 가정적인 남편 좋지. 그런데 같이 일하는 난 무슨 죄냐. 과장 애 키우는데 왜 내가 이렇게 힘드냐. 누가 알아주는 사람도 없어. 과장이야 애 잘 키워놓으면 좋은 아빠 되고 뿌듯하겠지. 과장 애는 알까. 내가 이렇게 힘들다는 걸….” ㄷ은 말을 이어 갑니다. “3월이면 아이 입학한다고, 새 학기 학교 인사하러 간다고 기혼자들 월차 내기 시작한다. 본인 월차 내고 가는 거니 잘못은 아닌데 결국 일은 나한테 와. 거기다 결혼기념일, 양가 부모님 생신, 부부 생일, 아이들 생일, 집안 대소사까지 경조사들도 많은데, 경조사 날짜가 회사 일정 따져가며 잡히는 게 아니잖아. 물론 당연히 챙겨야 할 것들인데, 문제는, 그래서 또 일은 결혼 안 한 나에게 와. 휴일에 갑자기 일이라도 생기면 그건 당연히 또 내 일인 거고. 야근, 출장 생기면 ‘이번에도 내가 하겠구나’ 싶고 그냥 내가 하는 게 속 편하기도 해. 문제는 꼭 ‘다들 애도 있고 집안일도 챙겨야 하는데, 자기는 싱글이니까 할 수 있지? 집에 있으면 뭐 해. 혹시 알아, 출장 가서 인연이라도 만날지?’ 아니면 ‘돈 벌고 좋지 뭐’ 이딴 얘기를 한다는 거야. 내가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나 생각해서 보내주는 것처럼.” 한창 하소연을 듣던 ㄹ도 할 말이 있나 봅니다. 건설사에 다니는 ㄹ은 작년 휴가 얘기를 꺼냅니다. “작년 여름휴가 두 달 전부터 일정 팀원들에게 다 물어보고 맞춰서 준비를 했는데 같은 팀 과장이 휴가 일주일 전에 아이 방학에 맞춰야 한다고 날짜를 바꿔 달라는 거야. 비행기표에 호텔까지 다 결제했는데. 당연히 안 된다고 했더니 혼자 가면서 일정 조정도 못 해주냐고 서운해하는 거야. 배려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나는 과장을 배려해줄 수 있지. 그런데 항공사, 호텔이 이 사정 배려해서 위약금 안 받는 게 아니잖아. 한두 푼도 아니고 벌써 돈 다 내놔서 안 된다고 했더니 나보고 이기적이래. 이거 내가 잘못한 거니.” 주변의 배려가 필요하겠지만 얘기를 듣다 보니 한숨만 나옵니다. 연일 언론에서는 ‘워킹맘’ ‘워킹대디’들이 힘들다는 각종 사연들이 오르내립니다. 사실 일하며 아이까지 키워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주변의 배려가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배려의 역할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싱글 직장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인가 봅니다. 누군가의 배려를 당연한 권리인 양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죠. 아니 그 전에 어쩌다 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게 타인의 배려와 희생 없이는 못 하는 일이 되어버린 걸까요. 사실 근본적인 문제는 항상 일손이 부족한 회사, ‘당신이 아이를 낳지 않아 내일모레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며 ‘애를 낳아라 낳아라’ 해놓고 낳아놓으면 ‘자 이제 잘 키워봐라’라며 등 돌리는 정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짜 문제는 위에 두고 힘든 사람들끼리 폭탄을 돌리느라 가슴에 생채기만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이런, 홀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