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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과장네 애는 알까, 저 때문에 내가 힘들다는 걸

등록 2017-03-12 10:07수정 2017-03-12 10:10

[토요판] 이런, 홀로!?
홀로 직딩들의 애환
꼭 ‘너는 누구 밥 차려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빨리 안 가도 되잖아. 좋겠다. 싱글 라이프를 즐겨’라고 한다. 그냥 얌전히 가라, 좀.  게티이미지뱅크
꼭 ‘너는 누구 밥 차려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빨리 안 가도 되잖아. 좋겠다. 싱글 라이프를 즐겨’라고 한다. 그냥 얌전히 가라, 좀. 게티이미지뱅크

“나 주말에 또 출장 가야 돼. 이번주 팀장이 가는 출장이었는데 내가 가게 됐어. 나 지난주에도 지방 다녀온 거 알지? 햐… 이러니 내가 술을 끊겠니.”

불타는 금요일. 역시 직장인의 삶이라면 금요일 밤 맥주 한잔을 빼놓을 수 없겠죠.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연달아 ‘원샷’을 이어가며 속사포처럼 한 주간 맺힌 한을 쏟아냈습니다. ‘술 마실 핑계도 좋아 아주’라고 말하려다, 그렇게 말했다가 등짝 한 대 맞을 것이 분명하다는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조심스레 친구의 맥주잔에 소주를 살짝 타며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오늘 모인 우리는 서른다섯 살입니다. 아직 결혼은 안 했죠. 네, 맞습니다. 우리는 서른다섯 결혼을 하지 않은 직장인들입니다. 직업은 다르지만 모두 회사를 다니고 있죠.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고, 그 대가로 한 달에 한 번 월급을 받고, 월급을 링거 삼아 하루하루를 버티는, 이 시대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런 직장인들입니다.

직장생활 5년부터 10년까지 경력은 다르지만 우리의 공통점은 여전히 ‘홀로’,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미혼이 0순위”

이날의 포문은 잡지사에 다니는 ㄱ이 열었습니다. ㄱ은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수집해 전달하는 게 일입니다. 취재원 일정에 맞추다 보니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출장이 잡히곤 한답니다.

“주말에 아이들이랑 놀아줘야 한대. 근데 그냥 이런 이유로 일을 못 하니까 양해해 달라고 하면 출장이야 대신 갈 수 있지. 그런데 꼭 스케줄 회의 한다고 모이면 매번 ‘아이들이랑 놀아줘야 하는데…’로 시작을 해. 한두 번도 아니고 이번에도 답답해서 그냥 내가 하겠다고 했어. 그랬더니 ‘그래? 내가 가도 되는데…’ 이러더라. 그러고는 뭐라는 줄 알아? 자기가 떠넘긴 거 아니래. 저번 출장도 ‘가족이랑 놀러 가기로 했는데…’로 시작해서 결국 내가 갔잖아. 가족들 챙기는 거 좋지, 이해해. 그런데 매번 이러는 건 좀 너무하지 않아? 저런 말이나 말아야지. 지난달 대체휴가만 4일인데 휴가를 쓰기는커녕 이달에 또 대휴만 쌓이고 있다고. 니가 가도 되면 니가 가라고!”

울분을 터뜨리며 세차게 맥주잔을 테이블 위에 내리꽂는 ㄱ을 보며 ‘이유도 잘도 만들어내 아주 하고 말했다가는 큰일 날 뻔했네’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찰나, 옆에서 조용히 ‘소맥’을 말던 ㄴ이 고개를 듭니다.

ㄴ은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공기관에서 일합니다. 저녁 6시 ‘칼퇴’가 가능한데다 정년까지 보장된 곳이죠. ‘신붓감’으로 1위라는 공공기관 정직원 ㄴ이 ㄱ의 말에 ‘네가 뭘 모르는구나’라는 표정으로 한마디 건넵니다.

“야, 지방출장은 원래 미혼이 0순위야.”

그러고 보니 각종 정부 시험을 주관하는 ㄴ의 회사도 출장이 잦은 곳입니다. 시험이 몰릴 때면 ㄴ은 ‘시험 출제, 감독 들어간다’며 한동안 연락이 끊기곤 했습니다.

“시험 시즌 되면 우리는 전국으로 출장을 가잖아. 미혼은 수도권 출장은 꿈도 못 꿔. 일단 기혼자들이 수도권 배정되고, 나 같은 애들은 무조건 전라도 경상도야. 기혼들은 애들 챙겨야 되고 가족들이 싫어한다고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곳으로 먼저 배정해. 말 없는 미혼들을 멀리 보내는 거지. 시험 출제 들어가면 몇주 동안 외부랑 연락도 못 해. 어떤 때는 한 달에 절반은 출제 들어가서 갇혀 지내야 돼. 이것도 미혼들 먼저 배정하고 다음이 기혼자들이야.

결혼하고 가족 생기면 챙겨야 하는 거 이해는 하지, 당연히. 그런데 결혼을 안 했다는 이유로 당연하게 희생을 강요하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드니까…. 신입 때는 연차가 낮아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요즘에는 좀 억울한 생각도 들더라. 갑자기 행사라도 생겨봐. 다들 아이에 가족 행사 때문에 바쁘다고 잔무는 다 미혼 차지야. 싫어하는 기색이라도 보이면 억울하면 결혼을 하래. 그게 무슨 말이야 방구야.”

‘아이랑 놀아줘야 하는데…’
‘아내가 이혼하자고 협박하니…’
야근과 휴일근무는 언제나
“빨리 퇴근할 필요 없는”
싱글 직장인의 몫이다

두달 전 준비한 여름휴가도
“애 방학 맞춰야 해서…
혼자 가면서 조정 못 해줘?”
워킹맘 배려, 사회의 몫인데
왜 홀로에게만 떠넘기나

가장 직장생활을 오래한 10년차 직장인 ㄷ이 ‘이런 애송이들을 봤나’라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네요. ㄷ은 외국계 금융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직장생활의 애환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프로 직장인 ㄷ이 조용히 입을 엽니다.

“나 요즘 아침 7시에 출근한다.”

원래 출근시간은 오전 9시일 텐데…. ㄷ은 오징어 다리를 질겅질겅 씹으며 말을 이어 갑니다.

“임원진 회의가 9시에 시작해. 우리 팀에서 준비를 하는데, 회의하려면 자료에 회의실 세팅 등 은근히 일이 많잖아. 같이 해야 하는 과장이 아침에 아이 학교 데려다줘야 해서 일찍 못 나온대. 아내 회사가 멀어서 자기가 데려다줘야 한다고 나보고 다 해달라고 하더라. 애 학교 보내야 된다는데 어떻게 하냐. 알았다고 했지.

이건 괜찮아. 근데 우리가 외국계잖아. 본사 자료 받아서 보고해야 하는 것들이 있어. 시차가 있으니 오후 6시를 넘겨서 오기도 하지. 다음날 아침에 보고해야 하니 자료를 만들어놔야 하거든. 아침에 빨리 못 오면 이런 거라도 처리해주면 좀 좋아. 근데 야근 많이 하면 아내가 이혼하자 그런다면서 야근은 못 한대. 그럼 얌전히 가면 되잖아. 꼭 ‘너는 누구 밥 차려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빨리 안 가도 되잖아. 좋겠다. 싱글 라이프를 즐겨’ 이러면서 가. 그럼 나는 야근하고 다음날 아침 7시에 출근해야 돼.

아이 잘 챙기고 가정적인 남편 좋지. 그런데 같이 일하는 난 무슨 죄냐. 과장 애 키우는데 왜 내가 이렇게 힘드냐. 누가 알아주는 사람도 없어. 과장이야 애 잘 키워놓으면 좋은 아빠 되고 뿌듯하겠지. 과장 애는 알까. 내가 이렇게 힘들다는 걸….”

ㄷ은 말을 이어 갑니다.

“3월이면 아이 입학한다고, 새 학기 학교 인사하러 간다고 기혼자들 월차 내기 시작한다. 본인 월차 내고 가는 거니 잘못은 아닌데 결국 일은 나한테 와. 거기다 결혼기념일, 양가 부모님 생신, 부부 생일, 아이들 생일, 집안 대소사까지 경조사들도 많은데, 경조사 날짜가 회사 일정 따져가며 잡히는 게 아니잖아. 물론 당연히 챙겨야 할 것들인데, 문제는, 그래서 또 일은 결혼 안 한 나에게 와.

휴일에 갑자기 일이라도 생기면 그건 당연히 또 내 일인 거고. 야근, 출장 생기면 ‘이번에도 내가 하겠구나’ 싶고 그냥 내가 하는 게 속 편하기도 해. 문제는 꼭 ‘다들 애도 있고 집안일도 챙겨야 하는데, 자기는 싱글이니까 할 수 있지? 집에 있으면 뭐 해. 혹시 알아, 출장 가서 인연이라도 만날지?’ 아니면 ‘돈 벌고 좋지 뭐’ 이딴 얘기를 한다는 거야. 내가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나 생각해서 보내주는 것처럼.”

한창 하소연을 듣던 ㄹ도 할 말이 있나 봅니다. 건설사에 다니는 ㄹ은 작년 휴가 얘기를 꺼냅니다.

“작년 여름휴가 두 달 전부터 일정 팀원들에게 다 물어보고 맞춰서 준비를 했는데 같은 팀 과장이 휴가 일주일 전에 아이 방학에 맞춰야 한다고 날짜를 바꿔 달라는 거야. 비행기표에 호텔까지 다 결제했는데. 당연히 안 된다고 했더니 혼자 가면서 일정 조정도 못 해주냐고 서운해하는 거야. 배려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나는 과장을 배려해줄 수 있지. 그런데 항공사, 호텔이 이 사정 배려해서 위약금 안 받는 게 아니잖아. 한두 푼도 아니고 벌써 돈 다 내놔서 안 된다고 했더니 나보고 이기적이래. 이거 내가 잘못한 거니.”

주변의 배려가 필요하겠지만

얘기를 듣다 보니 한숨만 나옵니다. 연일 언론에서는 ‘워킹맘’ ‘워킹대디’들이 힘들다는 각종 사연들이 오르내립니다. 사실 일하며 아이까지 키워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주변의 배려가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배려의 역할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싱글 직장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인가 봅니다. 누군가의 배려를 당연한 권리인 양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죠. 아니 그 전에 어쩌다 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게 타인의 배려와 희생 없이는 못 하는 일이 되어버린 걸까요.

사실 근본적인 문제는 항상 일손이 부족한 회사, ‘당신이 아이를 낳지 않아 내일모레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며 ‘애를 낳아라 낳아라’ 해놓고 낳아놓으면 ‘자 이제 잘 키워봐라’라며 등 돌리는 정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짜 문제는 위에 두고 힘든 사람들끼리 폭탄을 돌리느라 가슴에 생채기만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이런, 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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