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1대1 교육과 학생별 맞춤형 교육이 가능합니다.”

서울 동작구에 있는 본동초등학교 이상헌 교장은 세밑, 세초가 되면 학생 유치를 위해 학교 주변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를 돌며 학교 홍보활동을 벌인다. 20년 전만 해도 100명 이상씩 입학하던 신입생 수가 최근 20여명대로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올해도 입학생이 24명에 불과했다. 이 교장은 “30년 넘게 교직 생활을 하면서 지금처럼 학생 유치에 공을 들인 적은 없는 것 같다. 취학 아동을 둔 학부모들에게 소규모 학교의 장점을 알리고 있다. 학생 한 명, 한 명이 귀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단일학구 지역에서는 취학통지서에 지정된 학교로 가야하지만 본동초처럼 공동학구 지역으로 묶인 곳에선 학교를 골라서 지원할 수 있다.

폐교 위기를 맞았던 충북 증평의 도안초는 교사와 마을 주민들이 학생 유치에 나서, 지난해 43명이었던 전체 학생 수를 올해엔 54명으로 끌어올렸다. 장학혜택, 무료 스쿨버스 운행 등을 내건 효과다. 경북 포항의 동성고는 최근 대학교처럼 학교 홍보 동영상을 만들고 입시 설명회를 여는 등 신입생 유치를 위한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최근 몇년새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학생 모시기’에 나선 학교들이 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학령인구(6~21살) 감소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탓이다. 학교정보 공시 사이트인 학교알리미에 공개된 전국 6219개 초등학교의 학교별 학생 수를 <한겨레>가 분석해보니, 전교생이 100명도 안 되는 초등학교는 전국 2027곳(32.6%)으로 나타났다. 올해 입학생이 10명 미만인 학교도 1393곳(22.4%)인 것으로 집계됐다. 과거 한 반에 50~60명이 빼곡히 모여 공부하던 풍경은 더는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이다.

■ 저출산에 학령인구 급감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 강서구 개화초등학교 운동장에선 1학년2반 아이들의 체육수업이 한창이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체육 시간 특유의 시끌벅적한 풍경도, 수많은 아이들이 운동장 이곳저곳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고 있는 9명이 전부였다. “아무래도 학생 수가 적다 보니….” 김정규 교장이 말을 흐렸다.

이 학교 1학년 학생 수는 18명밖에 되지 않는다. 1, 2반 각각 9명씩이다. 6개 학년 11개 학급을 다 합쳐도 167명이다. 학급당 평균 15명꼴인데, 올해 입학한 1학년 학생 수가 학급당 9명으로 가장 적다. 1956년 설립된 개화초는 저출산으로 인한 학생 수 감소의 전형을 보여준다. 1995년 1005명에 달하던 전교생은 이듬해인 1996년 943명으로 1000명 아래로 떨어진 뒤, 2006년 534명, 올해 167명으로 줄었다.

실제로 학령인구의 감소는 지난 20년새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 인구총조사 자료를 보면, 학령인구(미취학자 포함)는 1995년 1172만413명에서 지난해 875만2836명으로 25.3%(296만7577명) 감소했다. 특히 교육기관 가운데 아이들이 가장 먼저 거치게 되는 초등학교 학생 수 감소가 두드러진다. 교육통계연구센터의 교육통계연보를 보면, 올해 초등학생 수는 267만2843명으로, 20년 전인 1996년 380만540명과 견줘 112만7697명(30%)이 줄었다.

서초·강남·송파 등 이른바 ‘강남3구’의 일부 학교를 제외하면 서울에서도 한 반에 30명 이상 공부하는 학교는 드물다. 개화초는 학급 당 인원이 9~15명밖에 안 돼 여유 공간이 많다. 1학년 교실 뒤쪽에는 아이들이 쉬거나 장난감 놀이를 할 수 있는 놀이방 매트가 깔려 있을 정도다. 학생들이 2명씩 짝을 지어 분단별로 길게 줄지어 앉아 있던 교실 모습도 달라졌다. 학생 수가 적어 수업에 따라 칠판을 향해 ‘ㄷ’자 모양으로 앉거나, 반원 모양으로 동그랗게 둘러앉는 것이 가능하다. 김정규 교장은 “곳곳에 빈 교실이 생겨나, 2018년에는 유치원 3개 학급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잠재적 신입생을 확보하려는 학교 쪽의 고육책이다.

신입생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일부 학교는 뉴타운, 재개발 지역으로 이전하기도 한다. 서울 성동구 숭신초는 지난해 8월 종로구 숭인동에서 왕십리뉴타운 지역인 성동구 하왕십리동으로 학교를 옮겼다. 강서구 공진초는 2014년 가양동에서 마곡도시개발지구인 마곡동으로, 서초구 언남초도 같은 해 염곡동에서 지금의 내곡동으로 이전했다.

■ 교육의 미래, 어떻게? 소규모 학교에 대한 정부의 정책 기조는 ‘통폐합’이다. 작은 학교 여러개를 통폐합해 하나의 일정 규모 이상의 학교를 만들면 예산을 절감할 수 있고, 교육과정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논리다. 교육부는 각 시·도교육청에 △면·도서·벽지는 60명 이하 학교 △읍 지역은 120명 이하 초등학교와 180명 이하 중·고등학교 △도시지역은 240명 이하 초등학교와 300명 이하 중·고등학교를 통폐합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학생 모셔오기’에 열중인 학교들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학생 수가 적은 소규모 학교들은 일부 수업 과정에서 어려움이 따른다. 교과 내용이 대체로 정원 20여명인 학급을 기준으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교과서에 제시된 토론 수업이나 극발표 수업 등을 정원이 27명인 학급과 9명인 학급이 똑같이 한다고 가정하면, 9명인 학급에서는 한 학생이 3명의 몫을 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극발표를 하기 위해 주어지는 시간이 2시간인데, 아이들 9명의 발표로는 그 시간을 온전히 채울 수 없어요. 아이들 숫자에 맞게 교육과정을 교사들이 끊임없이 재구성해야 합니다.” 개화초 교사인 오은진(42)씨가 말했다.

반면 이런 학교는 학생과 교사의 일대일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다. 지역별, 규모별로 각 학교의 특성에 맞는 교육 실험을 할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학생수가 146명인 서울 은평구 북한산초는 북한산 야영 활동과 텃밭가꾸기를 통해 생태·환경교육을 실시하고, 경복궁·창덕궁 등과 가깝게 위치한 종로구 재동초는 국악오케스트라 교실을 운영 중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런 학교 8곳을 ‘서울형 작은학교’로 선정해 학교별 특성화 프로그램에 9억여원의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의 통폐합 정책에 대한 ‘역발상’으로, 학교 살리기를 통해 미래교육의 모델을 만들어 가겠다는 계획이다.

초·중등 교육기관의 경우, 학령인구는 감소하는 데 반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라 해마다 내국세의 20.27%가 교부금 명목으로 교육재정에 투입되면서 다양한 교육실험이 이뤄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등록금 등에 의존하고 있는 대학은 상대적으로 시장 논리가 더욱 강하게 작동한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대학구조개혁평가’를 통해 대학 정원 감축과 부실대학 퇴출에 나선 상황이다. 더욱이 2018년부터는 고교 졸업생보다 대학 입학 정원(60만명)이 더 많아지는 역전 현상이 발생하고, 지금 초등학교 5~6학년이 대학에 들어갈 2023년께는 대학 입학정원이 졸업생 수보다 16만명을 웃돌 것으로 예측되면서 구조조정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일부 지방에서는 신입생 충원율이 50%에도 못 미치는 4년제 대학들도 속출하고 있다.

이화여대 학생들의 본관 장기 점거농성을 가져왔던 ‘평생교육단과대학’(미래라이프대학) 문제도 근본 배경엔 학령인구 감소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령인구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등록금 손실분을 성인 평생학습 수요와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보장받으려는 대학과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대학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학령인구 감소 시대의 교육의 미래는 특성화·차별화에 달렸다고 지적한다. 반상진 전북대 교수(교육학)는 “교육적 고려 없이 경제적 논리로 접근한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이나 대학 구조조정은 지역 공동화를 부추기고 서울과 지방의 교육 격차만 키울 뿐”이라며 “지역적 요인이나 설립 형태, 규모별 특징을 고려한 다양한 작은 학교나 백화점식 전공이 아닌 차별화된 맞춤형 전공을 갖춘 대학 모델을 구축해야만 국가 교육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수명 한국교원대 교수(교육학)는 “지역별로 연구 중심의 국공립대 지원을 강화해 기초학문을 지켜내고, 그 뒤로 실용적인 융합형 개방공립대와 지역·분야별로 전문화된 특수한 대학들을 여러 겹 그물망처럼 배치해 지역과 대학의 선순환 균형발전을 이뤄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학령기 중심의 교육체제를 평생교육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노중기 한신대 교수(사회학)는 “평균 수명이 늘고, 지식기반 사회로 변화하면서 앞으로 재교육에 대한 수요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평생학습 체제 구축을 위해 대학들 스스로 주체가 돼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고, 국민들의 평생교육비를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