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경북 의성군 신평면의 주민들은 가을걷이를 앞두고 있었다. 벼를 베는 일이 급하다고 했다. 모두 마을 토박이인 70대 이상 할머니들의 몫이다. 김태분(74) 할머니는 “옛날에는 애들이 기어서 밭에 나오면 떼어내는 게 일이었는데 요즘은 아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 면적(2.9㎢)보다 약 18배 넓은 신평면(56㎢) 11개리엔 산부인과와 어린이집, 유치원이 한 군데도 없다. 대신 경로당은 15곳이나 된다. “우리 동네(중률1리)에 초등학생이 딱 한 명 있는데, 놀 친구가 없다 보니 할머니를 따라 매번 경로당에 나온다”고 김 할머니는 말했다.
19일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이 <한겨레>에 공개한 전국 3482곳 읍·면·동의 ‘지방소멸위험지수’에서, 신평면은 전국에서 ‘30년 뒤 사라질 위험’이 가장 높은 곳으로 꼽혔다. 65살 이상 노인이 인구의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를 넘기면 ‘초고령사회’로 구분하는데, 신평면은 주민 811명(올해 7월 주민등록 기준) 중 노인이 444명으로 절반을 훌쩍 넘는다. 20~39살 젊은 여성 인구 대비 65살 이상 인구수의 비율로 산출한 이 지수에 따르면, 소멸위험권 안에 들어 있는 읍면동은 전체의 3분의 1인 1383곳에 달한다. ▶관련기사 6·7면
대한민국이 ‘인구구조 역전’의 시대 문턱에 섰다. 내년부터 우리나라는 노인 비중이 14%에 이르는 ‘고령사회’로 들어설 전망(통계청 ‘장래인구추계 2010~2060년’ 중위가정 기준)이다. 또 내년은 노인 인구가 유소년(0~14살) 인구를 앞지르는 분기점이다. 15~64살 생산가능인구가 감소세로 접어드는 것도 내년부터로 예상된다. 총인구가 줄어드는 시점은 2030년 이후이지만, 3가지 지표가 겹치는 2017년은 본격적인 인구구조 지각변동의 원년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태어나던 1960년대 일반적인 피라미드 형태였던 인구구조는 현재 40~50대가 많아지는 항아리 형태를 거치고 있다. 앞으로는 60대 이상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역삼각형의 항아리 모습으로 변화한다. 전체 인구를 나이순으로 줄세웠을 때 한복판에 있는 ‘중위연령’은 1980년 21.8살에서 지난해 41.2살로 높아졌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건 전세계적 추세지만, 우리나라의 인구 고령화 속도는 심각한 저출산 현상과 맞물려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다는 게 특색이다. 2000년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이후 2026년 초고령사회로 들어설 때까지의 기간이 26년에 불과하다. 미국이나 프랑스 등 다른 선진국에선 이 기간이 70년 이상 걸릴 전망이고, 일본도 36년이 걸렸다.
정부는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저출산 대책으로 80조원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이미 만성적 저출산 국가가 돼버린 상황에서 반등이 쉽지 않은 국면이다. 우리나라는 2001년 이후 16년째 합계출산율이 1.3명 아래인 ‘초저출산 사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백화점식 저출산 대응책이 아니라 저출산·고령화로 바뀌게 되는 인구구조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근본적 대비가 함께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백종만 전북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인구구조의 변화는 경제성장률과 국가재정 및 사회보험재정 수지에 적신호를 보내고, 병력자원 감소, 학교시설의 과잉, 농촌의 공동화 가속화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며 “초고령사회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으나 인구구조 전환에 따른 정부의 사회·경제적 체질 개선 노력은 아직 미흡해 보인다”고 말했다.
황보연 기자, 의성/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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