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고 백남기씨처럼 외상을 입고 쓰러져 약 10개월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숨진 사건에서 법원이 사망진단서의 사인인 ‘폐렴’을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숨진 당사자가 부검까지 받았지만 법원은 부검 결과는 언급하지 않고 사망진단서와 진료기록 등을 근거로 상해와 사망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과 대법원에서 제출받아 4일 공개한 이른바 ‘뇌사 도둑’ 사건 판결문을 보면, 서울고법 춘천 형사1부는 “사망진단서의 직접 사인은 폐렴이지만, 폐렴이 피고인이 가한 외상과 피해자 사망의 인과관계를 단절할 만한 독립적 사망원인이라고 할 수 없다”며 최아무개씨의 상해치사혐의를 인정해 징역 1년6월·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최씨는 2014년 3월 물건을 훔치려고 집에 들어온 김아무개씨를 발견하고 빨래건조대 등으로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고, 이 사건은 정당방위냐 과잉방어냐 논란을 일으켰다. 최씨는 지난 5월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았다. ‘뇌사 도둑’ 사건이 다시 부각된 건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3일 백남기씨처럼 피해당한 지 1년이 지난 다음 부검한 사례로 경찰이 제출한 유일한 자료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폐렴의 발병 원인은 빈혈 및 두부 손상 후유증에 따른 경막하 결종”이라며 “피해자처럼 두부 손상을 입어 의식불명 상태로 장기간 입원 및 수술 치료를 받는 환자는 폐렴 등 합병증이 흔하게 발생하고 그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 또한 잦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의식불명의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가장 유력하고 거의 유일한 원인은 폭행에 따른 두부 외상성 경막하 출혈”이라며 간질 등 기존의 질병이나 의료진의 관리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박주민 의원은 이날 서울고검·서울중앙지검 등 국정감사에서 “수사 과정에서 부검을 했지만 법원은 사망진단서와 진료기록만을 가지고 사망진단서의 직접 사인인 폐렴이 아니라 급성 경막하 혈종으로 판단해 상해치사혐의를 인정했다”며 “10개월 넘도록 병원에서 각종 진단을 받고, 사고 당시 수술까지 받은 백남기씨의 부검은 결과가 뻔한데도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며 유족에게 또다시 고통을 주는 것”이고 말했다. 박 의원 외에도 국감에서 백남기씨의 부검영장은 계속 논란이 됐다. 이날 국감에서 제기된 백남기씨 부검 영장 관련 질의에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은 “사람이 사망하는 중대한 결과가 발생했다면 사인을 과학적, 객관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부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