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오른쪽), 길원옥 할머니가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연남동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쉼터에서 피해보상과 관련해 한국과 일본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우리 앞에 사죄하기 전에는 돈을 받을 수가 없어요. 1억이 아니라 100억, 1000억원을 줘도 받을 수 없어요.”
26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90) 할머니는 격앙돼 있었다. 한국·일본 정부의 12·28 합의로 출범한 ‘화해·치유재단’이 일본 쪽이 출연키로 한 10억엔(107억원)을 할머니들에게 현금으로 분할지급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다음날, 김 할머니는 길원옥(89) 할머니와 함께 서울 마포구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정대협) 쉼터에서 기자회견에 나섰다.
1992년부터 이어진 수요시위나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 곳곳의 증언대에서 할머니들이 수십번 아니 수백번씩 했을 이야기. 그런데도 이런 합의를 일본 정부와 한 우리 정부에 대해 두 할머니는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하게 말했다. “차라리 이런 길로 나가려면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서) 손을 떼는 게 나아요. 우리는 우리대로 한 사람이라도 남을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김 할머니는 “아베(일본 총리)가 나서서 법적으로 사죄하고 배상을 하도록 해 할머니들 명예를 회복시켜줘야지 지금 위로금이라며 돈을 받는다는 것은 정부가 할머니들을 팔아먹는 것밖에 안 된다”며 “이렇게 정부가 할머니들을 괴롭히기는 처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일본 정부로부터) 그 돈을 받고 소녀상을 철거하겠다는 거 아니냐”며 “우리는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철거·이전 문제에 대해서도 반대 목소리를 분명히 했다. “과거에 우리나라에 이런 비극이 있었다는 것을 후세들에게 알리기 위해 국민들이 한푼 한푼 (돈을) 모아 세운 겁니다. (일본)대사관 문 앞에 세운 것도 아니고 길 건너 평화로에 세운 건데 그것을 철거하라고 합니까?”
할머니들은 김태현 화해·치유재단 이사장이 전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피해 할머니들을 만나보니 배상금이 많지는 않지만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한 데 대해서도 “답답해죽겠다”며 울분을 토해냈다. 김 할머니는 “정부에서 피해 할머니 가족들에 ‘할머니들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몇 푼이라도 받는 게 낫지 않겠냐’며 협조해달라 충동질을 하고 다닌다. 할머니들은 지금 끄덕도 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 이사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연락)하지도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 이사장은 정대협과 나눔의 집에 있는 할머니 9명은 만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245명을 공식 인정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생존자는 40명이다. 한·일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45명을 대상으로 생존자에게 1억원, 사망자 유족에게 2천만원 범위에서 현금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25일 발표한 바 있다.
글·사진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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