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열린 <한겨레> 주최의 20대 진보-보수 좌담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오른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용혜인, 박진영, 임경지, 박권일, 장예찬, 이진호, 프레카씨.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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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세대보다 386세대에 대한 반감이 더 크다.”
이진호(29·<디스라이크> 디렉터)씨는 “80년대 후반 이후 태어나 외환위기 때 초·중학교를 다닌 20대에겐 지금 ‘먹고사니즘’이 가장 중요한데, 윗세대는 훨씬 더 편하게 취업을 했고 경제적으로도 많은 걸 누리고 있지 않으냐. 퇴직 이후를 걱정하는 부모님세대(유신세대)보다는 직장에서 자주 부딪히는 386세대와 포삼세대(포스트386)를 보면서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용혜인(26·청년좌파 회원)씨도 “386세대와 지금 청년세대가 사회 진출할 때의 압박감이 다른데, 이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다. ‘나 때는 됐는데, 너네는 왜 못해? 노력하면 되지’라고 말하는 데 대한 불만이 있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세대’로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서울 마포 미디어카페 후가 후끈 달아올랐다. 청년세대의 대변자로,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20대 진보-보수 청년들이 처음으로 마주 앉았다. 이날 <한겨레>가 주최한 20대 진보-보수 청년 좌담에는 진보 패널로 용혜인씨, 임경지(28·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씨, 박진영(25·<청춘씨:발아> 운영자)씨, 보수 패널로는 프레카(필명·27·보수성향 웹진 <자유주의> 대표), 이진호씨, 장예찬(28·자유미디어(<자유주의> 콘텐츠 제작 및 홍보컨설팅) 대표)씨가 참석했다.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박권일(프리랜서 저널리스트)씨는 사회자로 참여했다.
개인의 ‘노오력’으로 각자도생해온 청년세대가 공유하는 감정은 ‘불안정함’이다. 장예찬씨는 “청년들은 한번의 입사시험으로 인생이 결정나 버린다고 느낀다. 첫 직장이 끝 직장이란 말이 공공연히 돌고 있다. 임금격차가 너무 큰 탓이다. 현실이 그렇다 보니 대학에 들어가서 1학년 때부터 취업준비를 해도 원하는 일자리를 얻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진영씨는 “20년 동안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해서 꾹꾹 참고 견뎌왔는데 막상 사회에 나와 보니 배신당한 느낌이다. 청년들은 밑바닥부터 올라가도 기성세대가 ‘룰’을 조금만 바꾸면 바로 망할 수도 있다. 수능 준비를 열심히 해서 대학에 왔더니 해당 과가 없어진다는 발표가 나오는 식”이라고 말했다. 진단에는 공감했으되, 각자의 이념적 스펙트럼만큼이나 원인과 해법에 대해선 다양한 목소리를 쏟아낸 자리는 4시간을 훌쩍 넘어갔다.
한자리에 마주 앉은 20대 진보-보수 패널들은 스스럼없이 속마음을 쏟아냈다. 그때그때 기성세대가 입맛에 맞게 붙여버리는 청년세대에 대한 호명이 우선 뭇매를 맞았다. “‘20대 개새끼론’(20대가 보수화됐다는 의미)을 들먹이면서 정치의식이 낮다”고 폄하했다가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세대)라고 불쌍한 애들로 바라보기도 하는” 식이다. 이야기는 기성세대에 대한 성토에 이어 ‘20대 보수화’의 원인으로까지 번졌다.
보수 20대 “대기업 정규직 포진한 기성세대 임금 양보해야”
진보시민 반감 vs 보수정당 자극
박권일 마흔살이 된 박권일이다. 아직 아무런 느낌이 없고 몸만 좀 고되다.(웃음) <88만원 세대>를 내고 나서, 한 청년으로부터 “왜 나를 88만원짜리 인생으로 이름 붙였느냐”며 멱살잡이를 당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 나온 분들도 ‘아재들’ ‘꼰대들’(기성세대)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
용혜인 분명히 윗세대가 사회에 진출할 때와 지금 청년들이 느끼는 압박감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걸 너무 이해 못하더라. ‘나 때는 됐는데, 너네는 왜 못하느냐’ ‘노력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윗세대가) 말하는 데 대한 불만이 있다. 386에 눌린 청년세대랄까.
장예찬 산업화세대나 유신세대가 ‘청년들이 고생 안 해서 잘 모른다’ ‘중동 가라’고 할 때 욱하긴 하지만, 이들과는 솔직히 부딪칠 일이 별로 없다. 산업화세대가 영화 <국제시장>에 나오는 할아버지 느낌이라면, 386과 ‘포삼’은 현실에 실재하는 ‘꼰대’다. 이들이 독점하고 있는 정치·경제적 영향력에 대한 반감이 크다. 아 참, 90년대 초반 학번들, ‘엑스(X)세대’를 우리끼리는 포삼으로 부른다.
박권일 능력보다 과도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말인가?
장예찬 이분들은 정치민주화를 이끈 데 대한 자부심이 크다. 하지만 20대가 볼 때는 경제적으로 너무 많이 누리고 있는 세대로 보인다. 이들에 대한 반감이 20대 보수화로 이어진다.
임경지 잠깐만! 그게 왜 20대 보수화로 연결되나?
장예찬 ‘20대 개새끼론’도 386이 주도했다. 민주정부 10년을 하면서 반성할 부분도 있는데, 그런 것도 없이 자신들의 정치적 실패의 책임을 청년세대에 돌렸다. 우리나라가 진보 아니면 보수인 양당체제 아니냐. 진보에 반대하면, 자연스럽게 보수로 간다.
이진호 정확하게 말하면, 기존 386이 대표하는 ‘진보시민’에 대한 반감이다. 이건 보수라기보다는 청년세대 안에 있는 ‘반좌(파) 정서’로 봐야 한다.
용혜인 정말 반좌 정서 때문이라고 보나? 그렇지 않다. 현재의 청년들은 불평등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런 정서를 보수정당이 자극하고 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청년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하면서 아버지 세대와 우리 세대 간 불평등을 강조하는 식이다.
박진영 386을 포함한 기성세대가 본인들이 입으로 비판했던 사회구조 안에서 경제적으로 안정을 취하고 있는 것을 볼 때 혼란스러운 점이 있다.
프레카 능력과 실력이 있는데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기성세대가) 높은 소득을 올리는 모습을 볼 때 20대의 박탈감이 크다.
중향 평준화 vs 자산격차 해소
분위기는 점점 격앙됐다. 이날 처음 인사를 나눈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서로에게 날리는 질문은 거침없었다. 특히 청년세대가 경험하고 있는 불안정한 삶에 대한 감정을 토로할 때와 달리, 해법에 대해선 진보-보수 패널 간 입장이 명확하게 갈렸다.
장예찬 임금피크제에 대한 직장인들의 찬성 여론이 높은 것은 정년 연장이라는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정년 연장 혜택을 누리는 만큼 어느 정도 양보가 필요하지 않냐는 인식일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대기업 정규직에 진출해 있는 386·포삼세대와 (저임금·비정규직이 많은) 청년세대 간 격차를 줄여 ‘중향 평준화’로 가야 한다.
박권일 이를테면 기성세대가 양보를 해서 빨리 퇴직하든지, 아니면 임금을 좀 덜 받든지 하라는 식인가?
장예찬 재벌도 개혁해야 하지만 저성장 시대에서는 전체 소득의 48%를 차지하고 있는 상위 10% 계층도 같이 개혁하는 쪽으로 어젠다를 확장하자는 얘기다. 보수세력이 상위 10%의 개혁에 방점을 두고 있다면 진보세력은 상위 1% 개혁에만 무게를 둔다. 그동안 1%의 개혁에만 너무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만큼 앞으로는 개혁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용혜인 노동자 임금을 깎으면서 일자리를 늘리는 건 치킨게임이나 다름없다. 그런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상위 1% 개혁도 병행하면서 하자고 하지만, 실제로 추진되는 건 없지 않나.
프레카 50대가 회사에서 한 달에 600만~700만원을 받는다. 그만큼의 생산성을 유지하고 있을까? 반면에 비정규직으로 들어간 20대는 얼마나 받고 있을까. 임금피크제를 시작으로 기성세대의 임금을 더 줄이든가 아니면 일반해고를 가능하게 해서 ‘경쟁’이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기업은 ‘화수분’이 아니다. 노동자의 안정성만 이야기할 시절이 아니다.
이진호 진보 쪽에선 노동자끼리 치킨게임 안 된다, 재벌개혁 해야 한다고 하는데, 재벌이 중소기업에 나눠준다고 경제가 성장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대안 제시가 허무맹랑한 쪽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임경지 저성장 시대에 격차를 줄이려면 임금 격차보다는 자산 격차에 눈을 돌려야 한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서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취업준비생과 그렇지 못해서 주거부담이 큰 청년 간의 격차는 점점 더 크게 벌어진다. 청년들은 열심히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기대를 실현시키고 싶은 것이지, 아버지의 일자리 혹은 누군가의 무엇을 뺏어서 자신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다.
장예찬 2014년 연말정산 파동 때 충격을 받았다. 당시 핵심은 연봉 3500만~7000만원 구간의 직장인들도 좀더 세금을 내자는 거였다. 상위 10%에 속하는 언론사 기자들과 우리나라의 담론을 주도하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벌떼같이 들고일어나서 무산됐다. 부자들은 아니지만 파이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용혜인 연봉 4000만원 정도 직장인들도 포함되는 건데, 이 돈으로 4인 가족 생활을 유지하기 버겁다. 더 부담하라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청년들은, 기성세대가 무능해서 우리가 뺏어 와야 한다는 게 아니라, 우리는 이렇게 힘든데 저들은 왜 별로 안 힘들까라고 묻는 것이다. 왜 20대와 50대가 치고 박고 싸우게 만드나?
프레카 지금은 기업이 비정규직 고용만 유연하게 하고 있다. 공평하지 않다. 청년들에게 업무와 무관한 스펙을 더 쌓아 오라고 할 게 아니라, 회사가 일단 채용을 하고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평가를 해야 한다. 기성세대와 동등하게 평가해서 능력이 없는 사람이 밀려나야 공정하지 않은가. 요즘 청년들은 ‘불의’는 참아도 ‘불공정’은 못 참는다.
용혜인 대학 1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에만 매달려도 일자리를 얻기가 쉽지 않고 내집 마련을 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데다, 스무살 때부터 학자금 빚을 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외환위기 이후 청년기를 살고 있는 이들을 하나로 묶는 단어는 바로 ‘불안정함’이다. 청년 일자리 문제의 핵심은 좋은 일자리가 너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중소기업에 가서 열심히 돈을 벌어봤자, 학자금 대출금 갚기도 빠듯하다.
프레카 그렇다면 기아자동차 평균 연봉이 1억원인데 하청업체 직원은 2000만~3000만원 받는다는 건 어떻게 생각하나? 하는 일은 같다.
용혜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곳은 거의 불법파견이 많다. 그런 식으로 고용한 기업에 책임이 있다. 국제기구에서도 임금을 올려서 내수를 키워야 한다는 보고서들이 나오고 있다. 현대자동차에서 10년정도 일한 정규직 직원의 시급이 7900원 정도다. 야근과 주말특근을 해서 연봉 7천만원가량을 받는다. 이 사람들의 임금을 줄여야 하는가. 임금 수준 하락 없이 노동시간을 줄여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진호 신입사원 1~2년차들은 이직을 정말 많이 한다. 여건이 조금만 더 나아도 다시 공채 프로세스를 밟아서 들어가려고 한다. 1년에 상하반기 두 번 있는 이 바늘구멍을 통과하려고 사람들이 많은 비용을 쓴다. 이런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채용은 상시적으로 하고 윗세대나 아랫세대나 동등하게 일로 평가받는 시스템이 더 효율적인 것 아닌가?
진보 20대 “부모 일자리 뺏고 싶지 않아…싸움 붙이지 말라”
좌담에선 지난해 불거진 사법시험 존치 논란도 도마에 올랐다. 사시가 ‘계층 이동을 위한 희망 사다리의 대명사’라며 존치를 주장해온 법조계 일부와 정치권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선수들은 대체로 “사시는 이미 개천에서 용이 되는 통로가 아니다”라는 데 공감대를 드러냈다. 이진호씨는 “기성세대의 로망에 불과하다. 돈 없이 사시를 혼자 패스한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해졌다. 메가스터디 같은 것 안 보고 수학의 정석만으로 대학 가던 시절 이야기”라고 말했다. 용혜인씨도 “공무원 시험만 준비해봐도 돈이 엄청 든다. 신림동에서 방 얻는 게 얼마나 비싼지 아느냐. 적어도 ‘개천용’을 위해서 사시가 존치돼야 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주장”이라고 일갈했다. 한국 사회에서 공정한 출발선이 보장된다고 여길 수 있을 만한 것들은 이미 대부분 사라졌다는 항변으로 들렸다.
공정경쟁 보장 vs 사회구조 개선
한국 사회를 헬조선으로 만든 책임을 두고도, 20대 진보와 보수는 분노를 담은 ‘죽창’을 서로 다른 쪽에 겨누고 있는 모양새다. 보수 패널들이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간 공정한 경쟁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진보 쪽에선 사회구조적으로 청년들의 안전망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권일 각자가 생각하는 헬조선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또 헬조선을 만든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박진영 청년들이 느끼는 감정은 두 가지다. 사회로부터 받은 배신감과 미래에 대한 전망이 없다는 데 대한 절망감이다. 밑바닥부터 준비해서 올라가보려고 해도 기성세대가 룰을 조금만 바꿔버리면 망할 수 있다. 사법고시 존치 논란도 마찬가지다. 이런 경험을 공유한 것이 청년들이 느끼는 헬조선의 출발점이다. 헬조선이 자조적 개념이라면, 죽창이라는 말에는 분노가 담겨 있다.
임경지 정부의 역할을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면 전셋집은 쉽게 마련할 수 있는 줄 알았다. 너무 순진했구나 싶다. 지금은 자력으로 빚 없이 집을 살 수 있는 희망이 없다. 당장 청년들의 어려운 삶을 돕기 위해서는 주거 지원을 해서 소득이 유실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각종 사회적 위험에 대처하는 수단이 미약하다보면 불평등은 더 심화된다. 기성세대도 연금 환경이 좋지 않으니까 집값만 부여잡고 있으려고 한다. 기성세대의 불안한 노후, 청년들의 불안한 오늘, 앞으로 더 불안할 청년들의 노후를 가지고 어떻게 대타협을 이룰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장예찬 내가 재벌이 못 될 거라고 화를 내는 사람은 없지 않나. 다만 과거 80~90년대에는 금수저가 아니더라도, 대학 나와서 열심히 일하면 내 집 마련의 기회가 열려 있고 상위 10%로 올라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문이 너무 좁아져서 분노하는 거다. 상위 1%의 재벌과 상위 10%의 공생관계로 이런 문이 더 좁아졌다.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의 60%정도 밖에 안되는데 이렇게 임금을 덜 받으면서 비정규직으로 일할 수는 없지 않나. 지나치게 단단한 정규직의 보호막을 깨뜨려서 더 많은 사람이 기회를 누리도록 해야 한다.
프레카 처남이 구직중이다. 처남만 그런 게 아니라 그 주변 친구들도 다 그렇다. 열심히 기술을 배우고 스펙을 쌓아도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없는 현실이 많다. 사람들이 헬조선을 떠올리는 것은 공정한 경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용혜인 ‘미래 없음’에 대한 절망감이 헬조선의 정의다. 기성세대가 과거에 고시원에 살았어도 행복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렇게 살면 나중에 더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사라졌다. 요즘은 밥버거가 가난한 청년들의 최소한의 존엄을 지켜주고 있다. 800원짜리 컵라면이 아니라 밥이라는 형태의 무언가를 먹는 방식이라서다. 그만큼 존엄성이 보장되기 어려운 사회라는 의미다. 등록금이 계속 오르게 만들고 취업을 하기 어렵게 만든 역대 정부들에 분명히 책임이 있다. 나보다 조금더 잘사는 사람의 것을 뺏어 오는 식이 아니라, 사회구조를 개선하는 쪽으로 가야 죽창의 방향이 애먼 곳으로 가지 않을 것이다.
이진호 헬조선은 청년들의 기대값이 현실값보다 높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우리 세대는 앞으로 중산층 진입이 어려운데다 진입을 해도 부모세대의 평생 소득에 미치지 못할 것이란 불안함을 안고 산다. 게다가 소득이 어느 정도 되더라도 회사생활이 너무 힘들다. 회사에 들어가면 하기 싫은데도 등산을 하라고 하고 신입사원 연수 때부터 똑같은 옷을 입고 체조를 해야 한다. 개인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에도 헬조선의 원인이 있다.
박진영 수련회에 가면 아무런 이유 없이 기합을 받고 회사에 들어가서도 기마 자세로 벌을 받는다. 청년들이 헬조선을 외치고 있는 와중에서도 끊임없이 각종 교육과정에서 이런저런 강요를 받는다. 다양성을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부터 바꿔야 한다.
최저임금 현실화 vs 법 준수 강제
청년들은 거대 담론으로 접근할 때보다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해법을 찾는 이야기를 할 때 더 흥미를 보였다. 최저임금부터 준수하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 보수 쪽은 ‘지역별로 최저시급을 차등화하자’고 제안한 반면 진보 쪽은 ‘자영업자들의 임대료 부담부터 낮춰주자’는 의견을 냈다.
박권일 일자리 문제만 해결되면 되는가? 당장 청년들이 행복하려면 어떤 게 필요한가?
박진영 ‘일자리’라는 단어로만 이야기되는 게 문제다. 내가 이만큼 일하면 가난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이 정도 공부했으면 그에 부합한 일을 할 수 있겠지라는 기대가 부서지지 않았으면 한다. 일자리라는 단어에 가려진 이야기가 많다.
임경지 정부가 일자리 양을 늘리는 데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비정규직-과도기 노동이 너무 보편화돼버렸다. ‘누가 정규직부터 시작하느냐, 인턴·알바부터 시작해야지’라는 말이 익숙해져버린 현실을 바꿔야 한다. 요즘은 스펙보다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해서 해외 봉사활동까지 다녀와야 한다. 일자리를 구하는 데 얼마나 많은 구직비용이 들어가는지부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장예찬 질 좋은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한다면 ‘개천의 생태계’를 어떻게 잘 만들까도 고민했으면 한다. 하다못해 편의점 알바만 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을 유지할 수는 없는 걸까? 최저시급 6030원(2016년 기준)이라도 지키도록 해야 한다. 야간알바를 하면 한 달 178만원가량을 벌 수 있다.
박권일 왜 안 지켜지는 걸까?
장예찬 감시 기능이 없어서다.
프레카 일본처럼 지역별로 현실적인 최저시급을 책정하도록 해야 한다. 야간수당을 (통상임금의) 1.5배를 줘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못 주는 고용주들이 많다. 1.2배나 1.3배로 낮춰주고 지키도록 하면 어떤가? 최저시급이 계속 올라가면 민주노총 소속 제조업 노동자들에게는 이득이겠지만 영세한 곳에서 일하거나 자영업자들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임경지 최저임금이 더 낮아져도 괜찮다는 건가?
프레카 적어도 누구는 적용받고 누구는 적용 못 받게 하지는 말자는 거다.
이진호 나도 프레카의 말에 동의한다. 해당 지역의 시장 상황을 따져 최저시급을 정하면 되지 않나? 최저시급이 올라가면 영세 자영업자들은 알바를 고용할 형편도 못 된다.
용혜인 한국 사회에서 20대 청년들에게는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다. 야간알바를 하면서 한 달 170만원 버는 게 존엄한 삶은 아니지 않나. 잠도 못 자고 일하는 건데. 자꾸 하향 평준화를 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자영업하는 분들의 어려운 사정은 안다. 고용이 불안해서 다들 나와서 하는 것인데다 프랜차이즈는 대기업과의 관계에서 뜯기는 것도 많다. 이렇게 만든 이들에게 책임을 먼저 물어야 한다.
장예찬 법을 못 지키는 자영업자는 구조조정돼야 한다. 그래야 시장이 건강해진다.
임경지 현실적 타협안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 임대료 상한율을 제한해서 자영업자의 부담을 낮춰주는 것은 어떤가? 자영업을 할 때 가장 큰 비용이 임대료다.
프레카 그건 나도 동의!
마지막으로 ‘현실 정치가 청년을 대변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엔 진보-보수 패널 모두에게서 냉소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당장 청년에게 계급투표를 하라거나 정당으로 쳐들어가라는 이야기가 이들에겐 ‘꼰대질’로 보일 뿐이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청년들에게 ‘계급투표’를 하라고 했다. 그런데 직접 만나서 물어보고 싶더라. 도대체 계급투표를 하려면 어디다 하면 되느냐고. 과연 우리 세대의 이익을 반영하는 정당이 존재하는가.”(이진호씨)
임경지씨도 “다당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사실상 양당제로 돌아가는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노무현 정부 이후로 여당이 대략 170석, 야당이 130~140석을 왔다갔다 한다. 지나치게 획일화돼 있고 역동성이 정체돼 있는 구조에서 청년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싶겠느냐”고 잘라 말했다. 좌담에서는 “청년에게 투표 인증샷 캠페인이나 하도록 하는 정도의 발상”으로, 청년이 자기 편이라고 생각하는 기성 정당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한참동안 이어졌다.
황보연 최우리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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