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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청년에게 공정한 출발선을 ⑥ ‘신졸채용’ 열차 고되지만…탈일본 0명, ‘청년’ 하면 “가능성”

등록 2016-01-20 22:00

[더불어 행복한 세상]
일본 도요대 학생들이 생각하는 ‘청년’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노력한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지난달 17일 오후 일본 도쿄도 분쿄구 도요대(동양대) 6호관 6015호 강의실, 사회학과 문정실 교수의 ‘사회실습’ 수업을 듣는 이 대학 3~4학년생 16명에게 물었다. ‘그렇다’고 14명이 손을 들었다. 손을 들지 않았던 여학생 두 명만 “원하는 고교, 대학 입학에 실패한 뒤 걱정거리가 많다” “인생의 선택지가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도요대는 한국의 한국외대 등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 중위권 사립대다.

■ 청년 하면? ‘가능성’ ‘찬스’

엔저(엔화 약세)로 상징되는 ‘아베노믹스’에 힘입어 일본 기업들은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잇달아 경신했다. 기업들이 구인난을 호소할 정도까지 되면서 청년들 고용 사정도 나아졌다. 2014년 11월 일본 대학생활협동조합연합회가 학부생 3583명을 대상으로 벌인 온라인 조사 결과를 보면 “취업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은 2013년에 비해 4%포인트 줄었다. 대신 “희망 직종에 취업할 수 있을까”란 고민이 3.5%포인트 늘었다. 한국에서 최근 ‘일본 청년들은 그래도 행복하다’는 이미지가 확산되고 있는 배경이다.

<한겨레>가 21~23살 도요대생 16명에게 물은 설문조사에서도 이런 경향을 엿볼 수 있었다. ‘일본을 떠나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나?’라는 질문에 단 한명도 그렇다는 답이 없었다. “생각해본 적 없는 주제”거나 “치안이 좋고 전쟁이 없는 안정적인 나라”, “일본이 살기 좋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다시 이 가운데 7명을 심층 인터뷰했는데, 5명은 청년이라는 단어를 듣고 ‘가능성, 놀이, 찬스, 자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상태’라는 대답을 내놨다. 한국 청년들이라면 어떨까. 지난달 <한겨레>와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실시한 청년 215명 심층 인터뷰에서 49.8%는 청년 하면 ‘취업난’을 떠올린다고 답했다.

도쿄 도요대생 16명 직접 설문
한국 청년들 ‘취업난’ 떠올릴 때
일본 청년들 희망적인 단어 말해
실상은 비정규직 40%대에 육박
‘잃어버린 20년’ 보고 자란 청년들
저성장에 순응해버린 것일까

■ ‘한번밖에 오지 않는 열차’에 탔다

하지만 일본에는 여전히 장기 불황이 바꿔놓은 노동시장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한때 ‘연공서열’ ‘평생직장’의 상징이라던 일본에서 파견 등 비정규직은 이제 40%에 육박한다. 설문조사한 16명 중 8명은 “미래에 낙오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4학년인 후루야마 에리(23)는 취업 과정이 불공정하다고 말했다. 취업 경쟁에서 학교 서열 때문에 서류 제출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어서다. 몇번의 시도 끝에 호텔 사무직에 내정된 그는 “대기업 사무직은 여성이 취업하기 힘들다. 서류나 면접 단계에서 연달아 탈락하면서 내가 취업하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바라던 철도회사에 취업한 4학년 마에노 쓰요시(23)도 구직활동 기간에 30~40개의 서류를 제출했다. 한국의 취업 과정과 일본의 취업 과정은 비슷하다. 마에노도 면접용 정장과 가방을 사고 세미나를 다니느라 10만엔(102만원)을 썼다. 그는 “내가 취업을 못할 것이란 생각을 한 적은 없다. 하지만 스터디, 선배와의 만남 등 챙겨야 할 취업 정보가 너무 많아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지난해 임용고사에서 탈락한 사카야 구즈누키(23)는 계속 시험을 볼 계획이다. 그렇지만 공백기간을 갖지 않기 위해 졸업 후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고 있다.

일본의 기업들은 대부분 이듬해 졸업하는 대학생 위주로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관행이 있다. 기업들이 신입사원의 나이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졸업이 늦어지는 것은 금기시돼 있다. 이른바 ‘신졸채용’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과 압박감은 상상 이상으로 치열하다. 사회학자 혼다 유키는 신졸채용을 ‘한번밖에 오지 않는 열차’라고 표현했다.

■ 저성장에 익숙해져버린 청년들

지금의 일본 청년들은 이른바 ‘잃어버린 20년’ 동안 나고 자란 세대다. 일본이 ‘1억 총중류 사회’라는 말을 쓰던 호황기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이들에겐 임금 상승이 멈추고 일자리가 불안해진 경제에 대한 기억밖에 없다. 최근 일본에선 자동차도, 해외여행도 관심 없이 지나치게 절약하고 근검하는 청년층이 경제 활성화의 고민거리로 떠오르고 있을 정도다.

실제 청년들은 부모보다 가난할 것으로 예상하거나 어려움에 대비해야 한다는 게 몸에 밴 듯했다. <한겨레>가 만난 도요대생 16명 중 14명이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하고 있었다. 시시쿠라 다쿠미(22)와 고지마 고(22)는 패밀리레스토랑과 드러그스토어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시급 950엔(약 9730원), 1200엔(약 1만2200원)씩 받고 한달에 5만~8만엔을 벌었다. 한달 월세만 7만~8만엔이고 4년치 학자금은 400만엔(약 4097만원) 이상이다. 이들은 졸업 뒤 20~30년 동안 대출한 금액만큼 갚아나가야 해 부담이 크다고 했다. 일본 생협이 2014년 10~11월 대학생 9223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에서 28.9%만이 ‘일본의 미래가 밝다’고 답했다. 일본의 청년이 한국의 청년과 닮은 듯 다른 이유다.

도쿄/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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