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에 사는 사토 가오루(가명·31)는 회사 콜센터에서 파견직으로 10년 동안 전화업무를 하다 퇴사했다. 하지만 새로운 직장은 좀체 구해지지 않았다. 집세를 내지 못해 결국 쫓겨났다. 집을 잃어버린 사토는 하루하루 아르바이트를 하며 개인방이 있는 피시방, 이른바 ‘네트카페’에서 생활했다. 가정이 화목하지 못해 우울증을 앓았던 하세가와 도루(가명·20)도 집을 나와 네트카페나 24시간 맥도날드 점포에서 지냈다.
지난달 18일 오전, 도쿄 신주쿠의 한 빌딩 3층에 위치한 도쿄챌린지넷에는 사토와 하세가와 같은 11명의 사람들이 개호직(한국의 노인요양 보호사에 해당) 관련 수업을 듣고 있었다. 한국이 주민등록번호 사회라면 일본은 ‘주소 사회’다. “일본에선 주거가 불분명한 이들은 일자리를 구하거나 복지 혜택을 받기 어렵다”고 오다 도모오 도쿄챌린지넷 소장은 말한다. 이곳은 ‘일은 하고 싶지만 안정적인 주거가 없어’ 신주쿠, 시부야 등 번화가의 네트카페나 만화방, 패스트푸드점 등을 전전하는 이들의 주택 지원, 일자리 알선, 생활 상담 등을 위해 도쿄도가 민간에 위탁해 8년 전 운영을 시작한 기관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비정규직 확대, 고용 유연화 등으로 인한 불안정 고용이 나타나기 시작한 일본에 청년 문제는 ‘오래된’ 숙제다. 1990년대 장기불황으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젊은층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들이 40대가 된 2010년 이후엔 ‘네트카페 난민’으로 상징되는 주거와 일자리가 불안정한 빈곤층의 등장으로 이어졌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2014년 도쿄챌린지넷에서 도움을 받아 직장과 집을 구한 이들 가운데 40~50대는 50% 정도를 차지한다. 20~30대의 비중도 38%로 상당하다.
마쓰모토 이사오 도쿄도 복지보건국 생활원조계장은 “20~30대 경우 최근 취업 상황이 개선되었다곤 하나 이는 4년제 대졸 취업생 중심 이야기고, 이미 일본에선 파견 등 비정규직이 늘어난 상황이다. 게다가 점점 가족이 붕괴되어가며 의지할 가족이 없는 자발적 네트카페 난민이 되는 청년들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지난 20여년은 ‘가난하고 일자리가 불안한’ 청년층이 비슷한 처지를 맴돌다 중년층으로 이어짐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2014년 기준 일본의 비정규직 비율은 37.4%로 파견법이 처음 제정된 1985년(16.4%) 당시에 견줘 2배 이상으로 뛰어올랐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소득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1980년대 중반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가 0.291이었으나 2010년 이후 0.326으로 악화됐다. 양극화가 심각한 미국(0.315)보다 더 나쁜 수치다. 여기에 최근엔 젊은 청년 노동자를 대규모로 채용한 뒤 장시간 위법노동으로 착취해 회사를 나가게 하는 방법으로 성장하는 ‘블랙기업’ 문제가 커졌다. 이런 흐름에 맞서 일본 엔지오들, 그리고 도쿄챌린지넷처럼 민간과 손잡은 지방자치단체들은 ‘한 사람의 낙오자’라도 더 구하려는 노력을 곳곳에서 벌이고 있다.
NGO ‘포세’ ‘수도권청년유니온’
청년 구인사기·노동착취 이슈화
일본 정부도 “최저임금 1000엔”
경쟁사회 도태된 니트족등 위해
기업·정부·NGO 등 지원 사업도
“20대때 낙오되지 않도록 대처”
■ 블랙기업·임금도둑을 막아라
‘포세’는 일하는 청년층의 권익 보호 활동을 활발히 벌여온, 청년이 만든 비영리단체다. 곤노 하루키(33) 현 대표가 대학생 시절 청년층의 근로실태를 조사하고 심포지엄을 개최한 것을 계기로 2007년 출범한 이후 지속적으로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청년들을 착취하는 ‘블랙기업’이나 ‘블랙바이트’ 문제를 이슈화해왔다.
지난달 도쿄 세타가야구 사무실에서 만난 도쿄대 대학원생 와타나베 히로는 “블랙기업의 ‘구인 사기’ 실태를 적발하는 활동을 계획중”이라고 말했다. 기업이 구인광고를 낼 때는 조건을 부풀려 써놓고 일을 시작하면 전혀 다른 고용조건일 경우, 구직자 입장에서는 일종의 ‘사기’를 당한 기분일 것이다. 와타나베는 “고정적으로 야근을 해야지만 받을 수 있는 수당까지 기본급에 포함해 급여기준을 정해둔 음식점이나 아이티업계 등이 타깃이다.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하고 집단 연수를 받는 식의 신입 교육 시스템도 문제를 제기할 예정”이라고 했다. 실제 일본 3대 소고기덮밥 체인 가운데 하나인 ‘스키야’는 2년 전 심야시간 등에 젊은 아르바이트 직원 한명으로 하여금 손님 응대부터 설거지, 청소 등을 다 맡는 ‘완 오페’(원 오퍼레이션) 적용을 확대해 아르바이트생들이 집단퇴사하는 등 논란의 중심이 된 바 있다.
포세는 앞으로 정부를 압박해 최저시급을 올려 비정규 노동자의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고 정사원들의 장시간 노동시간도 줄여가는 쪽으로 정책 변화를 이끌 계획이다. 현재 일본 도쿄도의 최저시급은 907엔(약 9270원), 전국 평균은 약 800엔(약 8170원, 한국 6030원)이다.
2010년 한국에 청년유니온이 처음 만들어질 때 벤치마킹했던 일본의 수도권청년유니온은 16년째 활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요즘은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에게 업무 할당량을 주고 이를 강제로 달성하도록 하거나 근무시간 앞뒤에 붙은 준비시간은 시급에 포함하지 않는 등 크고 작은 ‘임금도둑’ 행위를 근절시키자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도쿄 도시마구의 도쿄노동회관 안 사무실에서 만난 진부 아카이(34) 집행위원장은 “일본 기성세대는 과거 청년들이 자유롭게 프리타의 삶을 선택한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고른 일자리이니 자기 책임 아니냐며 기존 노동조합에서도 이들을 상담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계속 나빠지자 청년 스스로 ‘이건 나의 책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인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도 최저임금 인상의 필요성엔 동의하는 편이다. 지바현 지바시 방송대학의 미야모토 미치코 부학장(사회학)은 “정부도 전국 평균 최저시급을 1000엔으로 올리고 보육비를 지원해서라도 청년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1억 총활약’ 사회를 만들겠다고 내걸었다. 초고령시대 연금으로 버텨야 하는 노인과 가난한 청년 세대의 공존을 위해 정부는 어떻게든 청년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 니트·히키코모리를 집 밖으로
경쟁사회를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도태되는 길을 택하는 이른바 니트(학교나 직장을 다니지 않고 구직의사도 없는 사람)나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를 집 밖으로 끌어내기 위한 지원도 진행중이다.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 있는 케이투 인터내셔널 그룹에서 회계스태프로 일하는 우에타케 마사키(34)는 한때 일을 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왕따를 당한 이후 학교를 잘 다니지 못했다.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졸업하는 데 8년이나 걸렸다. 이후로도 2년간 집 안에만 있었다. 가정 형편은 좋지 않았고 화목한 편도 아니었다. 버블경제 붕괴 뒤 건축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빚이 늘었다. 보험판매를 하던 어머니는 후에 기모노를 빌리는 가게를 열었다.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20대 중반까지 한번도 일한 적이 없어 불안하곤 했지만 스스로 벗어날 길을 알지 못했다”고 했다.
우에타케가 일하는 회사는 요코하마시와 후생노동성의 위탁으로 ‘지역서포트스테이션’이라는 지역 내 공동체를 만들어 마음이 아픈 청년을 돕고 있다. 우에타케도 그곳에서 ‘젊은이 자립 프로그램’을 이수한 뒤 차츰 집 밖으로 나왔다. 프로그램을 마친 이들의 80%는 다른 곳에 취업하지만, 취업이 잘 안되는 경우 이곳에 취직을 한다고 한다.
28년 동안 수천명의 니트족과 히키코모리를 지원해온 케이투 그룹의 가나모리 가쓰오 대표이사는 “취업을 시작하는 20대 때 낙오되지 않도록 적극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일하지 않고 20대를 보내버리면 이후에도 일을 시작하기 힘들다. 예전에는 이들이 특수하다고 했지만 급속한 사회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정부는 취업, 직업훈련까지만 하면 해결했다고 생각하지만, 이들이 계속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관계망 형성이나 생계 지원 등 포괄적 서비스가 필요한 시대”라고 말했다.
한국 통계청이 오이시디 기준으로 파악한 청년 니트의 수는 92만3000명, 전체 청년의 9.7%다. 이들은 ‘구직 의사가 없다’는 점에서 학교와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이탈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런 이들의 사회 참여활동을 지원하고 마음을 치유할지에 대한 정책이나 논의는 아직 특별히 없다.
도쿄·지바·요코하마/글·사진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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