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인 ‘일’을 하고 있는데도 가난한 청년들이 많다. 전문가들은 청년층이 새로운 빈곤위험집단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데 주목한다. 이를 특정 세대만의 문제로 보는 게 아니라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 여부를 가르는 중대 요인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산형성 못해 부모부양 못하고
늙으면 복지 지원대상 될 가능성
사회적 비용도 더불어 커지게 돼
노인과 더불어 새 빈곤집단 출현
그동안 정부의 빈곤대책은 주로 노인에 대한 것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한국의 65살 이상 노인 상대빈곤율은 49.6%(2013년·중위소득의 50% 미만 비율)에 이른다. 오이시디 회원국 평균치(13.5%)에 견주면 월등히 높다. 이처럼 노인 빈곤율이 높은데다 청년층은 근로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정책 대상에서 밀려나 있었다.
하지만 오이시디 국가들 사이에선 이미 청년층이 노인을 대체할 새로운 빈곤위험집단이라는 인식이 넓어지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의뢰로 지난해 11월말 만든 ‘청년근로빈곤 사례연구’ 보고서(초안)에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따른 불안정 노동의 전면화의 폐해가 청년세대에 집중되고 있다”며 “오이시디 국가를 중심으로 청년세대의 소득증가율이 감소함에 따라, 빈곤위험집단이 노인에서 청년으로 변화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또 보고서는 “기존 근로빈곤 개념으로 보면 청년층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빈곤율이 높지 않지만, 기존 분석에서는 구직포기자와 졸업유예자, 니트(일도 안 하고 구직의사도 없는 사람),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무급가족종사자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몇년 새 청년층의 사정은 더 안 좋아지고 있다. 보고서를 보면, 일을 하고 있는데 빈곤하거나 불안정 노동으로 미래에 빈곤해질 징후가 보이는 ‘근로빈곤 위기계층’(근로빈곤층 혹은 임시일용직·실업자·취업준비자 등 불안정 근로빈곤층) 비중이 중장년층(35~55살)은 2007년 36.2%에서 2013년 37.7%로 1.5%포인트 높아진 데 견줘, 청년층은 같은 기간 44.3%에서 47.4%로 3.1%포인트나 높아졌다. 취업자·실업자·취업준비자·구직활동포기자 중 중위소득 50% 미만인 근로빈곤층만 놓고 봐도, 청년층은 2007년 5.9%에서 2013년 5.9%로 동일하지만, 중장년층은 9.3%에서 7.7%로 낮아졌다.
청년층은 향후 한국 경제를 이끌어갈 핵심 생산인구이자, 미래의 핵심 소비계층이다. 일해도 가난한 청년들이 많다는 것은 한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백승호 가톨릭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청년들이 불안정 일자리와 실업 상태를 들락날락하게 되면 자산 형성이 불가능하고 세수 기반도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들이 미래에 노인층이 됐을 때 상당수가 복지 지원의 대상이 될 수 있어서 사회적 비용도 커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청년층이 결혼·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면서 인구 재생산 구조가 무너지고, 가정을 꾸리더라도 자녀에게 가난을 대물림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년들이 미래에 빈곤계층으로 전락하게 되면, 현재 기성세대도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 기성세대가 노인이 되면 현재 청년세대가 부양해야 하는데, 이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노년부양비(생산가능인구 100명당 고령인구)는 지난해 17.9명에서 2060년이 되면 80.6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계된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청년층 문제를 특정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생애주기 혹은 지속가능성과의 연관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향후 부양받을 노인들이 현재의 기성세대이고 부양할 납세자들은 현재의 청년세대가 된다”며 “청년세대가 노동시장에 제대로 진입하지 못하기 때문에 향후 생산가능인구의 허리가 취약해질 가능성이 높은데, 이들이 미래에 사상 최고의 부양률을 감당할 경제적 능력을 가질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청년빈곤에 대한 공식 통계조차 제대로 확보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청년빈곤의 실태를 다차원적 빈곤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청년빈곤은 불안정 노동과 낮은 소득뿐 아니라, 주거빈곤, 미래 불안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와 자존감 하락 등 여러 갈래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서병수 한국빈곤문제연구소 소장은 “소득과 순자산, 주거, 건강, 교육, 고용, 사회보장 등 다차원적으로 결핍 요소를 들여다봐야 한다”며 “이런 요인을 고려한 다차원 빈곤율을 보면, 20대 빈곤율이 19.5%(2011년 기준)로 높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청년기획 특별취재팀
황보연 박승헌 최우리 음성원 이승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