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고용 문제는 이제 정치권의 단골 구호가 될 만큼 전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최근 10여년 동안 정부는 거의 해마다 청년고용대책을 발표해왔지만, 청년 일자리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기업들의 채용방식을 바꿔 청년들의 취업비용을 높이는 ‘스펙 경쟁’을 중단하고, 근본적으로는 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철폐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 ‘취업 9종 세트’는 그만 취업을 위한 스펙 경쟁은 끝이 없다. ‘취업 3종 세트’(학벌, 학점, 토익점수)는 옛말이고, 지금은 ‘취업 9종 세트’(3종+어학연수, 각종 자격증, 공모전 입상, 인턴 경력, 봉사활동, 성형수술)가 떠오르고 있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대학이 기업이 요구하는 직무 역량 학습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취업준비생들이 개인적으로 취업 준비활동을 하면서, 스펙은 또다른 문지방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는 과도한 개인적·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스펙이 정작 직무 역량과는 거리가 멀다는 데 있다. 2014년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기업 인사담당자 1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현행 공채방식의 문제점에 대해 응답자 가운데 36.6%는 ‘고스펙과 업무능력이 비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취업 준비생 개인으로서는 적어도 남들만큼은 스펙을 쌓아야 하고, 더 나아가 조금이라도 차별화하기 위해 더 많은 스펙을 쌓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최근 몇년 사이 스펙을 보지 않겠다는 ‘탈스펙’ 채용을 도입했지만, 취업준비생들의 현실은 달라진 게 없다. 취업준비생들은 “기존에 강조되던 스펙은 그대로 쌓고, 여기에 기업이 원하는 직무적합성에 맞춘 ‘탈스펙 채용 대비 스펙’까지 갖추느라 짐만 늘었다”고 말한다. 은행권 취업을 준비중인 이아무개(24)씨는 “해외 연수나 자격증을 이력서에 쓰지 않도록 하는 곳도 있지만, 그래도 불안해 남들 다 따는 금융 관련 자격증 등 정도는 갖춰놨다”며 “이제는 블라인드 면접에 대비해 서비스 업종에 걸맞게 말하는 연습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채용 과정에서 ‘도전정신’을 강조하면, 취업준비생들은 ‘해외봉사활동 스펙을 쌓아야 한다’로 받아들인다.
이에 따라 청년들이 ‘묻지마식 스펙 쌓기’를 하지 않아도 되도록, 기업이 공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채용 기준을 정확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를 들어 기업들이 국가고시처럼 “토익점수는 일정 점수 이상이면 된다”거나, “특정 직군에는 영어회화 능력에 가산점을 몇점 준다” 등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윤정 청년허브 기획실장은 “기업이 채용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어떤 요소가 채용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주는지를 밝히고, 불합격 지원자에게는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등 불필요한 스펙 경쟁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데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 좋은 일자리 늘려야 근본적으로는 전사회적으로 ‘괜찮은 일자리’ 수를 늘리고, 일자리 간에 과도한 임금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년들이 자신의 학력과 능력, 적성에 따라 어떤 일자리를 가더라도 성실하게만 일한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의 질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김성희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은 “현재 정부가 지원하는 청년 인턴제 등은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공급하기에도 부족하고, 방식도 지원금을 주는 형태라 기업들에 유인동기도 약하다”며 “인턴제 같은 양적 접근이 아니라 ‘재벌 고용할당제’처럼 질 높은 일자리를 만드는 책임을 기업에 지우고 이를 시행할 수 있는 제도적 견인책을 마련하는 방법 등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공공기관에 해마다 정원의 3% 이상 청년을 고용하도록 규정한 ‘청년고용할당제’를 민간 대기업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이야기한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대기업·공기업 등의 일자리 나누기를 시행하고, 재정투입을 통해 상대적으로 질이 좋은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청년 지원의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청년층 고용 대책은 대부분 청년층의 취업 역량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양질의 일자리 자체가 부족한 상태에서는 오히려 취업 이후의 경력 형성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노동통계실장은 “취업 능력 제고 중심의 일자리 대책은 또다른 스펙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취업 뒤 역량을 높여 더 좋은 일자리로 옮겨갈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는 문제가 가장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대기업-중소기업 간 일자리의 질적 격차를 줄이는 데 정부정책이 가장 큰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박승헌 기자
abcd@hani.co.kr
[관련 기사]▷
너는 스펙 쌓을때 난 알바 부모경제력이 취업 가른다▷
취업 9종세트?…업무 무관·고비용 스펙 요구 없애야▷
명문대생 취업 하향지원…연쇄작용에 번지는 비명▷
돈벌며 학교다닌 20대 “자소서 쓰려다 보니 알바 경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