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청년에게 공정한 출발선을 ③ ‘2평 월세큐브’에 갇힌 청춘의 꿈

등록 2016-01-10 19:35수정 2016-01-18 10:56

지난 5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고시원에 사는 정다훈(가명·29)씨가 자신의 방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김성광 기자 <A href="mailto:flysg2@hani.co.kr">flysg2@hani.co.kr</A>
지난 5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고시원에 사는 정다훈(가명·29)씨가 자신의 방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더불어 행복한 세상]
정다훈(가명·29)씨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에 있는 한 고시원의 6㎡ 방에 살며 월 15만원을 낸다. 지난 2년간 서울 강서구 화곡동, 수원시 장안구 율전동 등 4개 고시원을 거쳐온 중 만난 가장 싼 방이다. 고시원 거주자 20여명이 냉장고 한 대, 샤워기 세 대, 7㎏짜리 세탁기를 공용으로 이용한다. 화장실 한 칸에 설치된 샤워기는 오늘도 물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는다.

창업준비 정다훈씨 15만원 방
냉장고·세탁기·샤워장 등 공용
집 구실 못하고 패배감만 공유

지난달 27일 찾은 정씨의 2평 안 되는 방 안엔 전기장판과 노트북, 화장품 몇 개와 겨울옷 4~5벌이 살림 전부다. 철 지난 옷은 전라북도 익산 부모님 집에 둔다. 그는 2013년 충청남도 천안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 창업을 준비 중이다.

싸다 보니 다른 고시원처럼 밥과 김치가 제공되는 부엌이 없다. 근처 사무실이나 가게에서 밥을 먹는다. 방에서 빨래가 잘 안 마르기 때문에 종종 세탁방에 간다. 정씨는 “월세가 아니라 전세인 반지하나 옥탑방에 사는 게 다음 집 소망”이라고 말했다.

‘큐브생활자’. 2013년 책 <아파트게임>에서 박해천 동양대학교 교수는 고시원, 반지하와 옥탑, 원룸 등 다양한 ‘방’에 사는 이들에게 이렇게 이름 붙였다. 2010년 통계청 조사 결과 1인 최저주거기준인 14㎡ 미만에 거주하는 이는 전국 499만7913명, 이 중 청년이 111만7629명이다. 지하나 옥탑방, 고시원까지 더하면 주거빈곤 청년은 138만명이 넘는다.

밥을 차려 먹고 빨래를 널고 이성친구를 초대하고…. ‘집’이라면 흔히 떠올리는 기능을 인근 식당, 세탁방, 모텔로 “외주 주고 있는 시대”, 청년들은 이제 기성세대가 모르는 ‘평등한 패배감’을 공유한다.

2016년 청년은 내집 마련의 꿈을 현실적으로 꿔본 적이 없다. 집값 폭등과 월세 비중 확대, 일자리 불안의 상시화 속에 버는 돈의 상당 부분을 월세에 쏟아부어야 한다. 기성세대가 전셋값이라는 목돈을 발판 삼아 집을 마련한 ‘전세세대’라면, 지금 청년은 월세의 무한순환 위기에 놓인 우리 사회 첫 ‘월세세대’다.

100만원 벌어 47만원 방값…‘돈모아 전세’ 꿈도 못꿔

지난 2일 저녁 새해 첫 출근을 마치고 방에 돌아온 한아름(가명·30)씨가 스마트폰을 보며 쉬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지난 2일 저녁 새해 첫 출근을 마치고 방에 돌아온 한아름(가명·30)씨가 스마트폰을 보며 쉬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해가 뜨지 않은 지난달 28일 아침 7시,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한 원룸 현관문을 열자 피부에 높은 습도가 느껴졌다. 방금 샤워를 마친 한아름(가명·30)씨가 침대 옆에 세워진 긴 거울 앞에서 볼에 크림을 발랐다.

빨래를 말리기 위해 늘 틀어둔다는 선풍기가 겨울까지 있는 것 말고는 특별할 것 없는 18㎡(5평) 크기 원룸이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5만원인 방. 침대 옆 벽은 냉기를 그대로 머금고 있고 대로변 소음도 차단하지 못한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면 방 바로 밖 4차선 도로를 달리는 차 먼지가 쏟아져 들어온다. 누가 보면 민망하게 화장실 안과 밖은 불투명 유리로 구분된다. 화장실 타일이나 벽에 피는 곰팡이 때문에 한씨는 아토피 피부염을 달고 산다. 하지만 서울의 방은 대체로 이렇다. 큐브생활자에게는 일상이다.

아침 7시40분, 환기가 잘 되지 않는 화장실은 문을 열어둔다. 방에 습기가 차지 않도록 난방을 최대한으로 올려놓고 나서야 출근을 한다. 강남의 한 기업형 병원 상담실에서 일하는 한씨가 퇴근하는 밤 8시까지 이 방은 평소 하루 12시간 이상 비어 있다. 연휴라 병원을 찾는 사람도 많은데다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도 많다는 한씨는 12월 마지막주 7일 동안 이틀 빼고 항상 밤 10시가 넘어서야 방에 돌아왔다. 전기밥솥은 코드가 뽑힌 채 신발장 위에 올려져 있다. 영하의 출근길, 한씨는 “씻고 잠만 자는 방”이지만 “방이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가게쪽방·고시원 등 전전하다
‘5평 월45’ 원룸 구한 한아름씨
“이보다 더 좋은 방 상상못해”

‘민달팽이 유니온’ 회원들 조사
월급 200만원 미만 청년 절반
‘소득 대비 주거비 비율’ 47%

‘청년월세’ 20년 사이 크게 늘어
“부모는 전세로 강제저축했지만
우리는 월세가 얼마나 아까운지…”

부엌과 세탁실은 혼자 서 있기도 비좁다. ‘쿡방’이 대세라지만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좁은 방에서 요리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식사는 밖에서 해결한다. 세탁물은 방 한쪽 벽에 걸어두고 선풍기를 틀어둔다. 김성광 기자 <A href="mailto:flysg2@hani.co.kr">flysg2@hani.co.kr</A>
부엌과 세탁실은 혼자 서 있기도 비좁다. ‘쿡방’이 대세라지만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좁은 방에서 요리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식사는 밖에서 해결한다. 세탁물은 방 한쪽 벽에 걸어두고 선풍기를 틀어둔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 쪽방, 고시원, 옥탑방 그리고 원룸 한씨는 20대 때 가게에 딸린 쪽방, 고시원, 옥탑방 등을 옮겨다녔다. 경기도 군포의 한 대학교 관광학과에 다닐 때 한씨의 방은 대학 친구 어머니의 옷수선가게에 딸린 쪽방이었다. 식당 알바를 하며 월 25만원을 방값으로 냈다. 낮에는 수선가게에서 일하는 이모들이 한씨의 방에서 바느질을 했다. 친구가 다른 남자들 앞에서 ‘우리 집에 얹혀사는 애’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본 뒤 그 방을 나왔다. 3년 전 병원에서 일하면서부터는 서울 강남의 고시원과 옥탑방에서 지냈다. 강남 고시원은 시설이 좋고 일터도 가까웠지만, 1인 최저주거기준에 겨우 맞춘 14㎡ 방은 월 65만원을 내기에는 “너무 좁았다”. 보증금 500만원으로 구한 옥탑방도 겨울에는 너무 춥고 여름에는 너무 더웠다. 그런 옥탑방의 월세가 45만원이었다. 한씨는 지금 사는 이 원룸보다 좋은 방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직장 3년차인 한씨가 실제 수령하는 월급은 190만원이다. 월세에 청소를 포함한 관리비, 난방비, 수도세, 전기세, 인터넷 사용료 등을 합치면 매월 평균 10만원이 주거비용으로 더 들어간다. 지난해 3분기 서울시 평균 전월세전환율인 6.4%로 보증금을 월세로 환산해보면 매월 2만7000원이 더 들어갈 테니, 한씨가 한 달에 주거에 쓰는 돈은 57만~58만원이다.

월급에서 주거비용 말고도 학자금대출 상환 20만원, 교통비와 통신비 20만원, 가족 용돈 등 20만원, 생활비를 제하면 남는 돈이 별로 없다. 유니폼을 입고 화장을 꼭 해야 하는 직장 특성상 스타킹과 화장품 값도 월 7만~8만원씩은 든다. 한씨는 “보증금을 올려 월세를 낮추려고 1년9개월 동안 500만원 넘게 모았는데 두 달 전 집안일로 깼다. 다시 자유적금을 붓고 있는데 언제 돈을 모으나 싶다”고 했다.

‘소득 대비 주거비 비율’(Rent to Income Ratio)은 한씨와 같은 이들의 상태를 들여다보는 데 유효한 개념이다. 한씨의 경우 30~30.5%에 달한다. 미국이나 유럽에선 이 비율이 25~30%가 넘는 이들을 주거비 지원 대상으로 삼는다. 저축은 물론이고 식비, 교육비, 의료비 등 일상생활 전반의 수준 하락을 가져올 수 있어 ‘주거권’의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산이 없고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은 20대는 주거비 지출이 생활 수준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청년 주거권 운동을 하는 민달팽이유니온이 지난해 10월5일 세계 주거의 날을 맞아 회원들을 상대로 온라인으로 조사한 RIR을 <한겨레>가 소득 200만원 미만인 경우 주거비 부담이 얼마나 되는지 세부분석해 봤다. 전체 응답자 102명 중 소득 200만원 미만이라고 답한 이들은 50명이었다. 이 중 전세이거나 보증금이 1억원을 넘는 월세 거주자 5명을 제외한 45명의 RIR을 따져봤다. 자신의 소득을 190만원부터 25만원이라고 밝힌 이들의 평균 RIR은 46.9%에 달했다. 40%를 넘는 이가 45명 중 19명이었고 30% 이상이 12명이었다. 25% 미만은 8명뿐이었다. 임경지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그동안 주택을 시세 등 공급자 중심 관점으로만 바라봤다면 이제는 RIR 같은 수요자 중심으로 생각해볼 때”라며 “청년의 주거비 부담은 불평등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 월세 버느라 집에도 못 가는데… 실제로 월세 사는 청년의 비율은 과거보다 높아졌다. 서울시의회가 지난해 8월 작성한 ‘사회적 경제주체 활성화를 통한 서울시 청년 주거빈곤 개선 방안’ 연구용역 보고서를 보면, 1990년 서울 청년가구의 자가와 전세 비율은 15.2%와 54%였다. 그런데 2010년에는 각각 12.6%와 40.3%로 줄어든다. 대신 월세는 20년 만에 28%에서 45.5%로 크게 올랐다. 서울에 사는 1인 청년 가구 절반 이상의 소득 대비 주거비 비율이 한씨와 같은 30% 이상이라는 최근 분석도 있다.(6면 표 참조) 김규정 엔에이치투자증권 부동산 연구위원은 “저금리 상황에서는 월세를 내놓는 집주인이 많아진다. 목돈이 없는 청년은 월세로 버틸 수밖에 없는데, 월세를 탈출하지 못한 청년들은 계속해서 자산을 늘릴 수 없는 악순환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전셋값이 비교적 안정됐던 시기, ‘전세 세대’는 전셋값이라는 ‘강제 저축’을 종잣돈 삼아 전세→평수 늘리기→자가로 나아갈 수 있었다. 반면 임대료를 비롯한 주거비가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등한 지금의 ‘월세 세대’는 목돈을 모을 틈이 없어 월세→월세→월세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를 ‘월세 세대’라 지칭한 유성호(27) <디스라이크> 편집장은 “부모 세대가 누린 전세가 사라지면서 ‘월세 세대’를 낳았다. 저성장시대를 사는 청년은 전세나 자가에 대한 욕망을 줄이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한씨 또한 방에 홀로 있으면 평생 자신이 안정적으로 살지 못할 것이란 불안이 밀려오곤 한다. 하룻밤에 얼마짜리 방인가 계산하다 보면 ‘본전 생각이 나’ 집에서 나가기 싫다. 하지만 정작 월세 버느라 방에 있을 시간이 없다. 부동산에서 ‘돈이 정말 많은 분’이라고 소개한 집주인에 대해선 솔직히 ‘나 덕분에 편하게 돈 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릴 적부터 습관적으로 아끼다 보니 더이상 절약하라는 말을 들으면 화가 난다. 병원 일이 적성에 안 맞고 힘들어도 못 그만두는 건 당장 다음달 월세 때문”이다. 매월 말일 주인에게 월세를 송금하는 한씨는 “이 돈이 얼마나 아까운지 느끼려고” 자동이체를 하지 않는다.

집이 아닌 방에서 한씨는 문득 “태풍이 부는데 우산만 쓰고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렇게 외로울 때면 고향 친구나 비슷한 월세살이를 하는 동료를 만나 위로받는다. 한씨는 ‘집이 아닌 방에 만족하라’는 시대에 적응해가고 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내란 나비’ 김흥국, 무면허 운전 벌금 100만원…음주·뺑소니 전력 1.

‘내란 나비’ 김흥국, 무면허 운전 벌금 100만원…음주·뺑소니 전력

[속보] 검찰, 윤석열 구속 연장 재신청…“보완수사권 당연히 인정” 2.

[속보] 검찰, 윤석열 구속 연장 재신청…“보완수사권 당연히 인정”

귀국한 전광훈 “체포하려면 한번 해봐라…특임전도사 잘 몰라” 3.

귀국한 전광훈 “체포하려면 한번 해봐라…특임전도사 잘 몰라”

서울중앙지법, 윤석열 구속 연장 불허…“수사 계속할 이유 없어” 4.

서울중앙지법, 윤석열 구속 연장 불허…“수사 계속할 이유 없어”

검찰, 윤 대통령 구속기간 연장 재신청…“가능하나 결과 장담 못해” 5.

검찰, 윤 대통령 구속기간 연장 재신청…“가능하나 결과 장담 못해”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