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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일본은 다시, 이 소녀를 끌고갈 수 없습니다

등록 2016-01-05 20:40수정 2016-01-08 00:44

일 대사관 앞 소녀상 24시
‘소녀상 지킴이’ 노숙 청년들
하루 수백명 시민들 발길 이어져
“그동안 할머니들 고통에 무심
일본의 역사 지우기에
정부가 합의해준 것이 참담”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건너편 ‘평화비 소녀상’ 앞은 지난 4일 오전부터 5일 오전까지 24시간 동안 시민들로 북적였다. 4일 저녁에는 시민 100여명이 모여 ‘한-일 협상 폐기를 위한 촛불문화제’에서 촛불을 밝혔다. 김명진 기자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건너편 ‘평화비 소녀상’ 앞은 지난 4일 오전부터 5일 오전까지 24시간 동안 시민들로 북적였다. 4일 저녁에는 시민 100여명이 모여 ‘한-일 협상 폐기를 위한 촛불문화제’에서 촛불을 밝혔다. 김명진 기자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건너편 ‘평화비 소녀상’ 앞. 지난달 28일 한국과 일본 정부가 ‘소녀상의 적절한 해결’을 담은 합의 내용을 발표한 뒤로 매일 수백명이 이곳을 찾고 있다. 청년들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그동안 무관심했다”며 소녀상 곁에서 밤을 새웠고, 중장년들은 “추운 날씨에 소녀상을 지켜줘서 고맙다”며 핫팩과 과자를 놓고 갔다. 가족들과 함께 찾은 어머니는 “우리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아이들한테 속삭였다. 지난 4일 오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24시간 동안 <한겨레>가 지켜본 소녀상은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시민들이 있어 외롭지 않은 듯 보였다.

■ 아침: 소녀상을 보며 우리를 돌아본다

“‘까치발을 들고’ 있는 소녀상은 할머니들이 고국에 돌아와서도 손가락질을 받으며 편히 발을 딛지 못했던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 ‘소녀상 해설사’로 나선 정수연(28)씨의 설명에 시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일 외교장관의 ‘12·28 합의’ 무효를 주장하며 소녀상 옆에서 농성중인 청년들은 지난 2일부터 소녀상의 의미를 시민들한테 알리는 해설단을 꾸려 운영하고 있다. 정씨는 “설명을 하면서도 ‘나는 그동안 할머니들의 아픔에 얼마나 관심이 있었나’ 싶어져 부끄러운 마음”이라고 했다. 정씨의 말에 귀 기울이던 김정환(38)씨는 “근처 회사에 다니며 소녀상을 매일 지나치면서도 의미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 오랜 세월 받으셨던 고통을 외면해온 것이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 낮: 소녀상 앞의 배움과 다짐들

“그 숭고한 정신과 역사를 잇고자 이 평화비를 세우다.” 충청북도 청주에서 소녀상을 보러 온 강은수(33)씨는 아들 박주형(7)군과 딸 다영(4)양에게 소녀상 아래 적힌 글귀를 천천히 읽어줬다. 강씨는 “소녀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 기억해야 할 역사가 무엇인지 가르치는 좋은 교육이 될 것 같아 휴가를 내고 찾아왔다”고 했다. 이기욱(26)씨는 캐나다 친구 에밀리(26)와 함께 농성장을 찾았다. 이씨의 설명을 듣던 에밀리는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며 눈을 붉혔다.

■ 저녁: 촛불 밝힌 시민들의 노래

“우리가 할매요, 소녀요, 민중이요. 평화의 소녀상 손잡고 지켜주오.” 무대에 선 대학생 박민회(23)씨의 선창에 따라 촛불을 든 시민 100여명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박씨는 “밀양 할머니들과 부르던 노래의 가사를 바꿔 만든 것”이라고 노랫말을 소개했다. 매일 저녁 7시에 열리는 ‘한-일 협상 폐기를 위한 촛불문화제’ 때 소녀상 앞은 가장 붐빈다. 문화제를 찾은 시민 이명옥(59)씨는 “소녀상은 국민들이 할머니들에게 사죄하고 역사를 기억하는 의미가 담긴 동상”이라며 “정부가 역사를 바로 세우지는 못할망정 그것을 지우려는 일본의 의도에 합의해준 것이 참담하다”고 말했다.

■ 새벽: 우리 세대가 풀었어야 하는 문제인데…

“몇 푼 안 되는 거다. 그냥 학생들 고생하는 게 마음이 아파서….” 5일 새벽 1시,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시민이 소녀상을 지키는 농성장을 찾아 검정 비닐봉투를 내밀었다. 봉투 안에는 초코파이 5상자가 들어 있었다. “대리운전을 하다가 잠깐 들렀어요. 우리 세대가 풀었어야 하는 문제인데 학생들이 밤을 새우며 농성하는 게 미안하네요.” 급히 말을 마친 그는 다시 어두운 빌딩 사이로 사라졌다. 청년들은 지난달 30일부터 소녀상 곁에서 새벽을 맞았다. 조지연(23)씨는 침낭 속에서 “할머니들은 이보다 더 추운 곳에서 더 참혹한 일을 겪으셨을 텐데 이 정도는 견딜 수 있다. 많은 시민들의 응원도 힘이 된다”며 꿋꿋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조씨 뒤엔 시민들이 두고 간 과자와 핫팩 등이 쌓여 있었다.

 ■ 다시 아침: 조금이라도 더 알려야 한다!

“일어납시다.” 아침 7시, 아직 어둑한 서울의 아침을 찬 바닥에서 맞은 청년들이 하나둘 침낭 밖으로 나왔다. 반쯤 감긴 눈으로 침낭을 정리하던 이관호(21)씨는 “생각보다 추워서 한숨도 못 잤다”며 “이렇게 자리를 지키는 게 할머니들에게 작은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게 웃었다. 출근 시간에 맞춰 청년들은 손팻말을 들고 도심 곳곳으로 흩어져 1인시위에 나섰다. 강지은(23)씨는 광화문 네거리로 나가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대통령이 되어주세요’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출근길 시민들은 강씨를 흘깃 살펴보며 지나쳤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바른 역사를 지키고 싶어요.” 강씨가 다부지게 말했다. 황금비 권승록 기자 withbee@hani.co.kr

관련영상 : 위안부 합의 파문, 누리과정 보육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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